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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3. 2016

어른은 꽃을 꺾고 아이는 꽃을 본다.

어린아이는 큰 스승이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는데 너무 더웠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싶은 나는 창문을 열어보았다. 창 문 밖엔 이미 꽃이 피었다.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얼어붙었던 마음이 녹아내렸는지 사람들은 서로 사랑을 하기 시작했고 사랑의 씨앗은 어느새 꽃이 되어 벚꽃축제로 발길을 이끌었다. 혼자라는 외로움이 가득했지만 그 외로움을 뛰어넘게 하는 것은 여행에 대한 열정이었다. 여의도에 사전답사를 가보니까 벌써부터 벚꽃이 피어있었다. 

벚꽃 축제가 시작하기 전, 먼저 사진 찍을 장소를 찾아 DSLR 카메라를 들고 구도, 조리개 값 등을 연습했다. 날이 밝을 때와서 해가 질 때까지 여의도 공원을 돌아다녔다. 겨울 내 감추고 있었던 몽우리진 꽃잎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벚꽃 축제가 시작하기 전에 먼저 와서 데이트를 즐기는 커플들이 보였다. 꽃은 피었지만 날씨는 여전히 쌀쌀했다. 



여의도를 다시 찾았을 때, 도로 통제에 대한 공지와 벌써부터 북적이는 사람들이 벚꽃 축제가 다가왔다는 것을 말해줬다. 처음에 혼자 장비를 들고 장사를 하러 갔다.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지하철 개찰구를 지나기 위해서 인기 많은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수십 분의 줄을 섰다. 지하철역을 겨우 빠져나와서 사람들 사이로 걸었다. 사실 걷는다기보단 그냥 사람들이 걷는 곳으로 밀려갔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틀었다. 밋밋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흥겨운 노래로 가득 찼고 사람들은 나를 흥미롭게 쳐다보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길을 가던 의경들도 봄바람이 설레었는지 같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고 갔다. 아버지의 어깨 위에 목마를 탄 아이들도, 손을 잡고 나온 풋풋한 연인들도 봄을 느끼며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수시간 동안 계속 서있자니 무릎이 아팠다. 그래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가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날이 어두워지고 사람들은 더 북적였다. 폴라로이드의 인기는 굉장히 좋았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찍었고 때론 줄이 너무 길어서 사람들이 기다리다가 지쳐서 그냥 가기도 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손님이 너무 많아서 혼자 감당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친구와 같이 사진을 찍었다. 줄 서있는 손님을 관리하는 역할, 사진사 역할을 나눠서 사진을 찍었다. 사진의 퀄리티는 생각보다 뛰어났다. 사진을 받아 든 사람들의 표정이 밝아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행복했다. 

외국인들도 몇 명 왔었는데 그들에게는 사진을 공짜로 찍어주었다. 돈을 벌자고 하는 장사이긴 하지만 돈의 최종 목적은 여행이었기 때문이었다. 화질 좋은 스마트폰을 갖고도 사람들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이유는 추억을 찍고 싶어서 이다. 손에 잡히는 사진, 지갑을 열었을 때 보이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좋아서 줄을 서서 찍는 것이다. 나는 외국인에게 기분 좋은 친절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지갑을 열어볼 때마다 여행을 추억하고 한국인의 친절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많은 사람들이 벚꽃 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가다가 잠시 멈추었다. 아이는 여기저기 핀 벚꽃이 아닌 땅바닥을 보고 있었다. 땅바닥을 보니 이름 모를 노란 꽃이 펴있었다. 엄마는 아이를 기다렸고 아이는 계속 쳐다보았다. 꼬마는 그윽한 표정으로 꽃을 보다가 씨익 웃고 엄마 손을 잡고 갔다. 


꽃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은 꽃을 꺾는다.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작은 프레임 안에서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SNS에 사진을 자랑하느라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놓친다. 그리고 끝내 싸우고 만다.

아이는 꽃을 꺾지도 않고 사진 속에서 억지로 웃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높은 나무 위에 피어있는 벚꽃을 잠시 두고 땅바닥에 핀 이름 모를 파란 꽃에 사랑을 준다. 그리고 미소 한 송이 내려놓고 엄마 손 잡고 걸어간다. 아이는 하늘나라를 걷는 듯했다. 발걸음이 깃털 같아 보였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사람들은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한 곳으로 달려갔던 것이 기억이 난다.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모나리자다. 다른 장소는 한산해도 모나리자 앞은 북적인다. 왜 북적이는지 모르고 사람들이 가니까 가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모나리자 앞에는 모나리자를 감상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다만 모나리자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사람이 대다수이다. '나 진짜 모나리자 앞에서 사진 찍었어.'라고 SNS에 올리고 자랑한다. 그렇게 모나리자와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다른 작품들을 대충 훑어보다가 너무 넓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길을 잃고 다리가 아프다고 싸운다.


우리는 과연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행복한 것을 자랑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중요한 것은 행복한 척하지 않는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데 행복한 척 인정받는 것만큼 비참한 것도 없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함께 느끼고 내 안에 있는 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 행복인 것을 꽃을 바라보던 어린아이는 알고 있었던 것일까.  어린아이는 큰 스승이다.


밤이 되자 사람들이 더욱 많아졌다. 준비해 간 필름이 부족할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 진상 손님도 있었다. "필름 좀 더 사 올 걸"이라고 말하는 나의 후회 섞인 말에 같이 장사를 한 유섭이가 대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욕심부리지 말자."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찬 바람이 불어왔다. “이게 무슨 바람이야!” 잠에서 깬 나는 창문이 조금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창문을 닫고 일어나 생각해보았다. “내가 정말 항공사에 들어가고 싶은가? 월급이 적거나 없어도 스튜어드를 하고 싶을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월급을 적게 주면 당연히 안 하려고 했다. 직업 자체가 좋다기보단 그 직업을 통해 따라오는 것들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싶어 했던 내 모습을 발견했다. 내 안에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고민을 하게 됐다. ‘일단은 하던 것에 최선을 다하자.’ 그렇게 나는 2차 영어 면접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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