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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3. 2016

무서운 외국인

영어 면접을 준비하는 방법

어릴 때는 외국인을 보면 무서웠다. 외국인은 뭔가 나에게 시험의 대상이었고 학원이나 혹은 어른들 사이에서 외국인과 함께 있는 시간은 평가를 받는 시간이었다. 외국인을 상대할 때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외국인을 상대하는 것이 굉장히 꺼려졌다. 중학교 3학년 소풍 때는 한 외국인 아줌마에게 HEY라고 했다가 혼났었다. 알고 보니 그 아줌마는 옆 학교 영어 원어민 선생님이었다. 뭐라고 뭐라고 나에게 얼굴을 붉히며 했던 것 같은데 아마도 처음 보는 사람에게 hey라고 한 것이 무례해서 그런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잘 몰라서 그랬던 것인데...... 아무튼 그 이후로는 외국인에 대해 정나미가 뚝 떨어졌었다. 


고등학교 영어 수능성적 또한 그랬다. 학원이나 학교에서는 문제를 푸는 스킬을 알려주었다. 문제 푸는 스킬을 어설프게 따라 하려니 점수는 안 나오고 그래서 수능 성적을 5등급을 받게 됐다. 나는 영어가 싫었다.


근데 지금은 외국인만 보면 뭔가 챙겨주고 싶다. 여행 중에 나를 도와주고 챙겨주었던 그들에게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서울이 좋아서 온 외국인들에게 서울을 소개하여주는 것은 참으로 매력적인 일인 것 같다. 폴라로이드 장사를 하면서 낯선 외국인들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었다.


남산타워에서의 주 고객은  외국인이었다. 나는 외국인들에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고 따로 가져간 dslr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리고 메일 주소를 받아서 그 사진을 서비스로 보내주었다. 외국인들은 굉장히 좋아했고 나는 친분을 쌓은 뒤에 외국인들을 상대로 서울 가이드를 해주었다. 여행 다니면서 현지인들에게 받은 친절이 너무 고마웠기에 나도 그러한 친절을 베풀었다. 가이드는 당연히 무료였고 나는 여행 품앗이와 같은 개념으로 취미생활을 했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기뻐했다.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서울에는 생각보다 외국인들이 많았다. 교환학생으로 오거나 어학연수로 온 외국인 친구들, 서울을 구경하고 싶은데 혼자 다니기 막막한 친구들에게 서울을 소개하여주고 싶었다. 다른 학교에 있는 친구들을 통해 외국인 친구들을 소개받아서 서울 구경을 시켜주었다.


여행 중에 만난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에 왔을 때 서울을 소개하여주기도 했다. 그리스의 이순신과 같은 테미스토 클래스가 싸웠던 살라미스 해안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관광지 중심으로 여행자들의 루트가 짜여있어서 그런지 관광지에 대한 정보라던가 길 안내라던가 그런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현지인에게 물어가면서 살라미스 해안으로 가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기 시작했다. 아테네 근교만 갔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과의 언어의 문제가 생겼다. 학교에서 그리스어를 한 학기 정도 배웠지만 고대 그리스어를 배웠었고 딱히 제대로 공부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길을 찾아가는 게 막막했다. 버스를 탔는데 어디서 내려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던 도중에 한 여자가 내게 말을 걸었다. 한국 사람이에요? 그녀의 이름은 엘레나. 케이팝을 좋아하는 친구였다. 여동생과 친구와 함께 3인조 케이팝 그룹으로 그리스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친구였다. 영어를 아주 잘했다. 한국어도 어눌하지만 몇 마디씩 했다. 주로 노래 가사 위주로 배운 터라 어떤 한국어는 유창하게 하지만 어떤 한국어는 어눌했다. 엘레나는 나를 살라미스 해안에 데려다주고 배까지 태워줬다. 배를 타고 테미스토 클래스가 페르시아의 대군 하고 싸웠던 장소를 데려다주고 가이드도 해주었다. 다음 장소인 영화 300의 무대가 되는 테르모필레로 가는 길도 알려주었다. 결과적으로 길을 잃긴 했지만 아무튼 엘레나는 그렇게 내게 도움을 주었다.  그리스 여행 중에 나를 도와주었던 Allen이 한국 k-pop 페스티벌에 그리스 대표로 초대를 받아서 한국에 올 일이 생겼다. 나를 도와준 친구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리고 몇 년 전 분당 만나교회에서 신학생 신분으로 일하고 있을 때 목사님 심부름으로 일본 오사카에서 온 Anna를 교회로 데려온 적이 있었기 있었는데, 안나가 한국에 다시 온다는 얘기를 듣고 안 나와 안나의 친구들을 데리고 서울 구경을 시켜주었다.


폴라로이드 사진 장사를 할 수 있는 마땅한 자리를 찾으러 한 번은 포항에 내려간 적이 있었는데 포항에 내려가서 한동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친구 자취방에 묵은 적이 있다. 경주 천마총 앞에서 폴라로이드 장사를 해볼까, 불국사 앞에서 해볼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장사는 조금 아닌 것 같아서 발걸음을 돌렸다. 포항에 있는 해병대 교육훈련단 앞에서 입대하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해볼까 했었는데 괜히 서있다가 선배 전우회 해병들과 함께 주차 봉사하다가 올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대하는 후배들을 대상으로 이윤을 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아무튼 그렇게 포항에서의 폴라로이드 장사 자리는 찾지 못했다. 우리는 그냥 친구 자취방에서 자다가 밤새 치킨과 사이다를 먹고 한동대학교에 놀러 갔다. 친구가 사주는 학식을 먹고 캠퍼스 내를 걷고 있는데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스탄불 전시회가 포항 바로 옆에 있는 경주에서 열린다는 포스터였다. 그 해 여름 터키 여행을 2-3주 다녀온 나로서는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고, 가는 김에 천마총도 볼 수 있다는 말에 우리는 이스탄불 전시회로 향했다. 

전시회를 가기 전 천마총을 들렸다. 천마총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입장료를 받는 곳에서 내가 티켓 오피스에 물어보았다. "혹시 학생  할인되나요?" 그러자 티켓을 판매하는 사람이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그런 거 없으니까 그냥 어른 돈 내세요." 사실 입장료는 굉장히 쌌다. 비교의 대상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입장료가 15유로(한화 약 20000원)인데 비해 천마총의 입장료는 1500원밖에 하지 않았다. 입장료가 너무 쌌다. 과연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와서 문화재의 소중함을 잘 알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유럽여행을 할 때 문화재, 박물관, 미술관은 학생 할인이 꽤 잘 돼 있어서 돈을 많이 아낀 기억이 있다. 대학생에게 이러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학생에 대한 복지가 꽤나 잘 돼 있었다. 반면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80%가 대학을 가는 우리나라는 대학생의 복지가  형편없는 것 같다. 모든 요금의 기준은 나이 별로 나뉜다. 유아-청소년-일반, 문화재, 박물관, 미술관의 입장료를 올리고 학생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것이 바람직한 경영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천마총을 구경하고 이스탄불 전시회를 보러 향했다. 전시회를 구경하던 도중 터키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반갑게 "멜하바!"(안녕하세요.)를 외쳤고 터키 여행을 다녀왔다면서 얘기를 하니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여러 명의 터키인들이 있었는데 그중 세히르라는 친구는 서울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왔다고 했다. 우리는 서울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고 나는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세히르에게 서울 가이드를 해주기로 했다.  그렇게 서울에 와서 세히르를 다시 만나서 서울 야경을 구경시켜주었다.  


장사 도중에 만난 미 해병대 출신 친구는 텍사스에서 만날 수 있으면 만나기로 했고, 그 외에도 수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서울에 대해 알려주었다. 뭐 만날 가능성이 그렇게 높진 않겠지만 각자의 나라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서울 가이드 루트는 친구들이 원하는 장소 중심으로 짜서 데리고 다녔다. 기회가 된다면 스키장이나 제주도에도 데려가 보고 싶었지만 교통편의 문제와 시간의 문제, 비용의 문제, 또 여러 가지 안전상의 문제로 데려가긴 힘들었다.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니 영어가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그렇게 외국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운 영어를 바탕으로 나는 2차 면접을 준비했다. 계속해서 영어 면접을 준비하는데 1차 면접 결과가 나오는 날이 다가왔다. 1차 면접에서 떨어지면 영어 면접은커녕 면접비도 못 받고 끝나는 꼴이었다. 나는 마음이 점점 조급해졌다. 영어 예상 질문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영어 지문을 외우려면 외울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그렇게 밤이 됐고 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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