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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4. 2016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게 없다.

선택할 것이 많아지자 겁이 생겼다.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게 없다. 젊음이 자신감이었던 다짐은 취업의 현실 앞에 무너졌다. 다른 선택이 없을 때는 겁이 나지 않았는데 선택이 많아지자 겁이 생겼다.

가이드하다가 실패하면 그걸로 값지다.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더 이상 부모님께 도움을 받지 않아야 할 상활이 되니까 취직에 목을 매게 되고 취직에 목을 매다 보니까 떨어지면 어떡하지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실패할 것이 겁이 났고 떨어질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실패하면 실패하리라. 실패가 하늘의 뜻이라면 실패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내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에 의지하는 것. 그것이 축복이다. 그런데 지켜야 할 것이 많으면 두려움이 커진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소심해졌다. 자신감이 사라졌다. 여행 중에 얻은 자신감과 확신을 모두 소진해버렸다. 자그마한 일에도 심장이 벌렁벌렁하고 왠지 모르게 움츠려 든다. 작아지는 느낌이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맞는 찬바람처럼 이십 대 중반의 현실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나이는 들어가고 학교는 졸업하는데 '너 뭐 먹고 살 거냐.'라는 질문이 다시 꿈틀 거리기 시작한다.

아니 사실 이런 근원적인 스트레스보다는 조금 디테일하고 현실적인 것들이 내 목을 옥죄여 온다. '나는 하나밖에 없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에 수면제처럼 찾아오는 것은 '너는 별로 특별하지 않아.'라는 현실이다.

내 돈으로 처음으로 장을 샀다. 어색한 넥타이를 매고 말끔한 구두도 신었다. 그리고 항공사 면접을 보러 갔다. 면접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약 2분. 2분을 위해 준비한 수많은 시간들, 고민하고 곱씹었던 수많은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한편으로는 화가 나기도 했다. "당신들이 나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고작 이력서 종이 쪼가리와 이분이라는 시간 동안 나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아?" 따지고 싶지만 그러지 못했다. 굉장히 폭력적인 현실이다. 내가 가진 낭만과 꿈이라는 날개를 모두 접어야 저 좁은 골목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골목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골목의 끝은 있을까? 이것도 또 하나의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막도 있고 광야도 있고 잔디도 있고 동산도 있는 것이다. 그중에 골목이 있는 것이다. 골목 안에 있더라도 마음의 날개를 접지 말자. 마음의 날개를 접지 않고 골목을 지나다 보면 언젠가 날개를 펴고 활짝 피고 날아가야만 하는 절벽이 나를 마주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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