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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6. 2016

행복의 조건

사르나트에서 만난 얼음 소년

‘찰칵, 찰칵’ 누군가 나를 찍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깬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가 내 다리를 쓰윽 만졌다. 나는 깜짝 놀라서 일어났다. 일어난 곳은 기차였다. 그때 경수가 내게 말했다. “일어났냐. 이제 내릴 준비 하자.” “여기가 어디야?” 내가 경수에게 묻자 경수는 내게 대답했다. “우리 갠지스강 가는 중이었잖아. 바라나시 역에 조금 있으면 도착하니 화장실 먼저 다녀와.” 대변을 보러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 비주얼을 보고 소변만 보고 나왔다.

 중국에서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는 택시를 타고나서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인도에서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릭샤들을 보고 충격에 대한 충격을 내려놓았다. 무질서에 익숙해져 질서가 되어버렸을 때 쯔음, 우리는 바라나시에서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라는 곳을 가기로 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의 바라나시의 땅은 진흙과 소의 똥이 뒤엉켜 뒹굴고 있었다. 몸집이 큰 만큼 똥의 크기도 컸다. 누군가가 앞서 밟은 소의 똥을 보며 '불쌍한 사람... 발에서 얼마나 냄새가 날까.' 하고 이미 지나간 사람에 대한 동정을 표할 때, 내 발에 진흙과는 다른 무언가가 밟혔다. 윽. 똥이었다. 옆에 있던 경수가 내게 말했다. "야 더럽다. 저쪽으로 떨어져서 걸어라."

한국에서 떨어진 지 꽤 오래돼서 한국음식이 먹고 싶었다. 얼마 전 델리의 빠하르간지에서 먹은 신라면은 인도인이 끓여준 한강수 라면이었기 때문에 인도 현지 음식을 먹은 기분이었다. 인도식 신라면은 오히려 더 한국음식을 먹고 싶게 만들었다. 발에 여전히 남아있는 소똥을 보고 투덜거리며 얼마나 걸었을까.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발견했다. 메뉴판을 보니 한국음식이 있었다. 라면 한 그릇을 주문하고 발에 묻은 똥을 씻어내며 기다리고 있는데 머리카락과 수염이 길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을 만났다. 영상을 공부하는 한울이형이었다. 형은 젖은 옷을 툭툭 털고 들어와 마루에 앉았다. 그리고 비가 오는 풍경을 지긋이 바라보다가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보드가야 같이 갈래요?" 마침 목적지가 맞기에 기차 시간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기차 시간이 다음 일정인 네팔을 가기엔 굉장히 애매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이 처음 설법을 했다는 사르나트로 목적지를 바꾸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게으른 햇살이 우리를 비추며 아침을 알렸다. 우리는 창문을 열어놓으면 원숭이가 들어와 짐을 가져갈 수 있다는 말에 창문을 닫고 걸어서 바라나시의 중심가로 갔다. 한국 돈으로 몇백 원 정도 하는 생과일주스를 한잔 한 뒤, 우리는 지그재그로 운전하는 릭샤를 탔다. 소를 피해, 또 다른 릭샤를 피해, 공사 중인 비포장도로를 피해 운전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사르나트에 도착했다.

릭샤 기사는 우리가 돌아갈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하며 세차를 시작했다. 우리는 부처님이 설법한 곳이 어딘지 찾아 헤맸다. 눈에 보이는 가장 큰 불상이 있기에 들어간 곳은 그냥 사원이었고, 길을 잃어서 들어간 곳에는 귀여운 동자승이 있는 법당이었다. 법당을 나와 걷고 있는데 제법 큰 규모의 건축물이 보였다. 드디어 부처님이 설법하신 곳에 도착한 것인가. 큰 건축물과 함께 제법 걷기 좋은 공원이 있었다. 한울이형과 경수와 나는 길을 끝까지 걸었다. 근데 그곳에는 막다른 길과 사랑을 나누고 있는 인도 커플이 있었다. 우리는 눈치껏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왔다. 알고 보니 그곳은 부처님이 설법한 곳이 아니었다. 우리는 공원을 나와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다가 여태껏 온 길을 반대로 가보기로 했다. 걷다 보니 박물관이 나왔다. 그리고 박물관 옆에 부처님이 설법하신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는 박물관에 들어갔다가 설법한 장소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가족끼리 소풍 나온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들은 우리들의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사진을 찍고 걷다 보니 부처님이 설법하신 곳을 상징하는 건물이 보였다. 정교한 무늬와 큰 건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처님이 이곳에서 느꼈을 그 무언가 이다. 부처님은 룸비니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 이곳 사르나트에서 구도자들과 같이 금식을 하며 깨달음을 탐구했다. 그러나 금식을 하면  할수록 배가 고파지기만 할 뿐, 깨달음은 찾기 힘들다는 것을 느낀 부처님은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려 룸비니로 가서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같이 고행을 했던 이곳 사르나트로 돌아와서 자신을 배신자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설법을 했다. 그때 부처님의 심정은 어땠을까.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고 내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에게 내가 말해주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은 틀렸어! 내가 깨달음을 얻어왔으니 이 얘기를 들어봐!'라는 식의 공격적인 말. 보란 듯이 성공한 뒤에 다가가 부끄러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공격적인 태도는 또 다른 공격을 불러온다. 싸움에는 끝이 없기에.

부처님이 설법하신 곳을 나와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어떤 소년이 와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 짙고 순수한 눈을 보고 혼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은 곤욕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아이스크림 아저씨에게 말했다. "아저씨 아이스크림 하나만 더 주세요." 아이스크림을 받아 든 소년은 세상을 다 얻은 듯한 표정으로 아이스크림을 들고 뛰어다녔다. 보는 내가 흐뭇했다. 그런데 소년의 행복이 얼마나 갔을까. 옆에 있던 어른이 그 아이스크림을 빼앗어 먹었다. 행복으로 가득 찼던 소년의 표정은 금세 울상이 돼버렸고, 소년은 다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아저씨를 한번 째려보고 소년에게 내 옆에서 먹으라고 말한 뒤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사주었다. 소년은 다시 행복해졌다. 그리고 나도 더불어 행복해졌다.

푹푹 찌는 더위에 아이스크림 하나에 행복해하던 소년을 만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세차를 마친 릭샤 기사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는데  도로포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거리는 공사 때문에 매우 혼잡했다. 그때 어느 구간에서 길이 갑자기 막히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그 도로 위해서 야채 장수가 야채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로를 막고 서 있는 야채 트럭 장수를 피해 가고 있는데 앞에 이상한 하얀 것이 보였다. 수레 위에 올려져 있는 하얀 물체는 다름 아닌 얼음이었다. 얼음을 자전거 수레로 끌고 있는 아버지와 뒤에서 밀고 있는 아이들이 보였다. 신기한 마음에 그 광경을 찍었는데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을 알자 웃으며 카메라 렌즈를 응시했다.

 

한국에선 겨울왕국 엘사 인형을 안 사준다고 생떼를 부리지만 이곳에선 아버지의 얼음 수레를 맨발로 밀면서 얼음이 녹으며 떨어지는 시원한 물을 손에 한가득 모아 활짝 웃는다. 작은 것에 감사하고 웃을 줄 아는 인도 아이들의 모습에 마음이 짠하다. 동시에 그들이 겪는 암울한 현실에 마음이 아프다. 나라는 부유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 나라 인도, 가난하지만 불행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서 행복의 조건이 과연 무엇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운 날, 낯선 여행객이 선물한 아이스크림.

아이스크림 하나에 행복해하는 소년의 미소.

아버지의 얼음 수레를 미는 아들의 손.

작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     


행복은 지금 우리 곁에도 여러 가지 이름으로 곳곳에 숨어있다. 바로 그때, 내가 타고 있던 수레가 멈췄다. 그리고 얼음 수레를 끌던 소년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내게 다가왔다. 소년은 얼음물이 뚝뚝 떨어지는 손을 내게 털었다. ‘앗 차가워!’ 나는 잠에서 깼다. “오빠 오늘 누구 만난다고 하지 않았어?” 잠에서 깬 내게 동생이 말했다. “지금 한시야 빨리 씻고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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