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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6. 2016

남을 도와주는 여행

돈을 따라 살면 돈에 휘둘리더라.

그렇다 오늘은 미용인 여행가 영주형을 만나는 날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샤워를 하고 홍대에서 영주형을 만났다. 영주 형은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미술로 대학을 들어가고 싶었지만 너무 많은 돈이 들어서 포기하고 손으로 뭔가 만드는 게 좋아서 식품영양학과를 진학했다. 그런데 학교에 입학한 후에 뭘 만들기는커녕 지루한 이론들만 내뱉는 학교 수업에 질려버렸고 형은 어머니의 권유로 미용을 시작했다. 형은 내게 웃음을 지으며 얘기해주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재미를 느끼니까 학교 수업도 잘 따라가고 성적도 잘 나왔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 중국 여행을 다녀왔는데 미용만큼이나 여행이 좋았다. 여행과 미용 두 개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한 끝에 교수님께 찾아가 말씀을 드렸다. “교수님 저 유학 가고 싶습니다. 도와주세요.”     

시카고와 LA 중에 고민하다가 LA로 갔고 나는 그곳에서 4000불 정도를 벌었다. 정말 악착같이 모았다. 식비를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들고 다니고 교통비를 아끼기 위해 1시간 정도 집에서 일찍 나와서 걸어서 출근했다. 그렇게 모은 돈을 가족에게 썼다. 어머니에겐 명품가방을 선물하고 아버지와는 미국 서부여행을 떠났고 형에게는 테니스 신발을 사주었다. 힘들게 번 돈이지만 행복하게 썼다. 그렇게 버킷리스트에 써놓은 것들을 하나하나 지워나갔다. 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와서 시간 날 때마다 여행을 떠났다. 가족들은 집에 같이 있기를 원하기 때문에 조금 걱정이 됐지만 떠나고 싶은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여행을 떠날 때 가족들을 설득하는 것이 참 어렵다. 그러나 설득이 되지 않아도 이미 내 마음은 정해져 있다. 어찌 보면 타협보다는 발표와 같은 것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항상 내 발길을 지지해주시는 부모님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아버지와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돈을 모아 캄보디아로 여행을 떠났다. 나는 앙코르와트에 도착했고 그전까지와는 다른 것을 보았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멋진 관광명소가 아닌, 그 관광지에서 액세서리를 팔고 있는 꼬마들이었다. 한창 학교에서 배워야 할 어린아이들이 ‘원 달라 원 달라’를 외치며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 아이들에겐 배우는 것보다 당장의 생존이 중요하기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전까지의 여행은 내게 힐링이었고 많은 것을 보면서 시야를 넓히는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앙코르와트에서 원 달라를 외치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 다른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눌 수 있는 여행, 사람들을 위해서 머리를 무료로 잘라주면 좋은 경험과 여행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동남아 여행을 다니면서 프리커트를 시작했다. 처음엔 베트남에 갔는데 아무것도 없이 미용기구만 가져가서 사람들하고 제대로 얘기도 해보지 못했다. 베트남에서는 한 명도 잘라주지 못하고 돌아왔다. 실패였다. 다음 여행지는 태국이었는데 태국을 갈 때는 어느 정도 프리커트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박스에다가 프리커트 문구를 써서 등에 지고 다녔고 머리를 자를 때면 켈리그라피 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커튼보에 ‘미용인 여행가 이영주’를 써서 머리를 자르곤 했다. 한 사람, 두 사람, 아름아름 프리커트를 하고 있는데 어느 공원 벤치에 노숙자 한분이 보였다. 정말 미용이 필요하신 분처럼 보였는데 몇 달 동안 감지 않은듯한 머리가 “내겐 미용은 사치야.”라고 말하는듯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갔다. 처음에 언어가 통하지 않아 조금 당황했는데 지나가던 사람이 통역을 해주었다. 무언가 좋은 일을 하려고 하니 사람들의 도움이 저절로 따라왔다. 노숙자의 머리 상태를 살피는데 미용하면서 이렇게 기름진 머리는 처음 만져보았다.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참았다. 머리를 자르고 거울을 보여드리니 노숙자 아저씨는 활짝 웃으시며 내게 고맙다고 했다. 나로 인해 사람들이 웃게 되는 게 이렇게 좋은 일일 줄이야. 울상한 삶 속에서 위로를 드린 것이 행복했다. 대화를 많이 나누진 못했지만 신체적인 접촉을 통해서 스스로가 뿌듯하고 행복했다. 나는 그 날, 여행 중에 다른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감정을 느꼈다. 사람들이 내게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이렇게 하고 있는 여행의 행위 자체가 나를 굉장히 기쁘게 했다. 그래서 내가 이 여행을 멈출 수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나를 보며 “그런 여행하면 힘들지 않아요?”라고 내게 묻는다. 사실 남을 돕는 여행은 나를 위한 여행이다. 내가 남을 도우면 즐겁고 행복한데 힘든 게 무슨 소용인가?     

프리커트를 하면서 느낀 것은 내가 먼저 다가갔지만 내가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었다. 당사자 분도 나로 인해서 도움을 받았지만 또 다른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도와주고 이따금 자신의 것을 선물해주고 했던 것에서 행복함을 느꼈다. 아름다운 삶을 선물할 수 있는 것, 그날 하루만큼은 노숙자가 웃음을 가졌으니까. 어쩌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마지막 웃음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커트를 하면 묘한 책임감마저 든다.

그 이후로 노인정의 할머니, 군인, 학생, 등의 머리를 무료로 잘라주었다. 서울역 근처 쪽방촌에 찾아가서 커트를 한 적도 있다. 오토바이 뺑소니로 머리가 찌그러진 사람의 머리를 만지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미용실에만 앉아있으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그렇게 만났다. 앞으로도 여러 개발도상국에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의 머리를 잘라주고 싶다.

형은 약간은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내게 물었다. “내가 너무 내 얘기만 했나? 궁금한 건 없어?” 나는 형에게 말했다. “저는 즉석사진 사진을 찍어주면서 여행을 했었는데 저도 그렇게 나누는 여행을 하면서 기쁨을 느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돈이 문제더라고요. 누군가를 도와주려면 내게 돈이 있어야 여유로운 마음으로 기쁘게 도와줄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주변에서 ‘너 그렇게 해서 뭐 될래? 취업하고 돈 벌어야지.’라고 말할 때면 딱히 할 말이 없어요. 형은 어때요?”

그러자 형은 내게 대답했다. “나는 사실 기술직이라 그렇게 큰 걱정은 안 돼. 오히려 이런 커리어들이 나한테 굉장히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거든. 앞으로 개발도상국뿐만 아니라 뉴욕, 파리, 런던, 밀라노 같은 세계 4대 패션 위크를 여행하면서 경력을 쌓아보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커트 한 번에 10만 원 20만 원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갖고 싶어. 그런 실력으로 또 커트할 형편이 안 되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머리를 잘라 주는 게 훨씬 더 값진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 그런데 가끔 내가 나누는 것들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진 않아. ‘저 이태리에 있는데 머리 자르러 언제 오실 거예요?’라는 식의 쪽지를 보내는 사람들 말이야.”

형은 자신이 하는 일과, 여행을 분명히 접목시켜서 먹고 살 걱정까지 해결한 사람이었다. 부러웠다. 형이 유명해서 부러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확신과 그를 향해 달려가는 당당한 발걸음이 부러웠다. 꿈을 품고 달려가는 청춘의 모습.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청춘을 나보다 나이 많은 형에게서 느껴야 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나이가 많고 적음이 무슨 상관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하는 일과 여행을 같이 할 수는 없을까. 꼭 여행 관련 업종을 하지 않더라도 각자의 분야에서 그게 가능하다면 여행의 폭이 더 넓어질 것 같다. 남을 도와주는 여행을 하고 싶다. 그런데 항상 돈이 문제다. 내가 누굴 도와주려고 해도 내 형편이 어려우면 마음 씀씀이가 줄어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영주형과 헤어지고 나서 용규 가이드님, 지선 누나와 만나는 내내 ‘돈을 벌고 싶다! 돈이 없어서 그렇다!’라고 계속해서 머리 속에 되뇌었다. 냉면 한 그릇 사주시며 용규 가이드님이 내 마음을 읽었는지 한 마디 툭 던진다.

“돈을 따라 살면 돈에 휘둘리더라. 그런데 돈을 넘어선 가치를 위해 살면 그 가치에 따라 살게 되는 것 같아. 사실 돈을 넘어선 가치를 따르는 기쁨보다 돈 버는 기쁨이 더 빨라. 그런데 돈 버는 기쁨은 빠른 만큼 금방 사라지고, 그 기쁨이 큰 만큼 없을 때의 상실감도 커지게 되더라고. 그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지금 잘하고 있어.”

남을 도와주는 여행은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여행이다. 그것이 꼭 돈이 될 필요는 없지만 여행을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돈 보다 소중한 것들을 경험했지만 돈이 필요할 때 돈에 마음이 휘둘리게 되는 것 또한 감출 수 없는 사실이다. 돈이 뭐길래 이렇게 내 마음을 흔들까. 확실히 감사한 것은 이렇게 흔들릴 때마다 격려의 말을 건네주는 사람들이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나는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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