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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Sep 29. 2016

돈 걱정을 할 때 인생은 흥미진진해지는 거야

애트르타 해안에서 만난 모네

친구와 밥을 먹고 카드를 긁는데 잔액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친구가 계산하고 나는 얼굴이 붉어졌다. 벌써 돈이 다 떨어진 것인가. 걱정이 됐다. 그리고 모네 생각이 났다.


스페인 마드리드를 떠나서 프랑스 파리에 도착, 샤를 드골 공항에서 rer을 타고 파리 시내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한 프랑스 커플의 도움을 받았다. 지하철 노선을 헷갈려하는 나에게 길 설명을 해주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손짓을 했다.

손짓의 의미는 뒤에 있는 가방을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커플이 내게 말했다. "여기는 파리야" 그 옆에 있는 다른 귀엽게 생긴 여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날 보고 웃었다. "여기는 파리야." 아는 동생이 페이스북에  소매치기당했다는 글을 올린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 여기는 파리다. 소매치기와 온갖 삐끼들의 파라다이스이다. 조심해야겠다.

몇 정거장을 지났을까 나는 지하철에서 내렸다. 작년 여름 터키에서 만난 가이드님이 프랑스로 다시 돌아왔다는 얘기를 듣고 가이드님 집으로 향했다. 밤 열두 시가 돼서야 겨우 문을 두드렸고 가이드님은 졸릴 눈을 비비며 문을 열어주었다. "어 왔어?"

반가운 마음에 가이드님을 꽉 끌어안고 인사했다. "이게 얼마만이예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가이드님은 "야 나 내일 투어 가야 돼 징그럽게 그러지 말고 빨리 씻고  자"라고 말했다. 나도 매우 피곤 한터라 얼른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금세 잠이 들었다.

날이 밝고 가이드님이 내게 물었다. "오늘 뭐해?" 나는 대답했다. "모르겠어요. 저 뭐하죠?" 그러자 가이드님이 계란 프라이를 해주시며 말했다. "할거 없으면 오늘 내 짐꾼이나 해" 나는 가이드님을 따라서 개선문 앞으로 갔다. 그곳에는 가이드를 받을 손님들이 있었는데 머리카락과 수염을 기른 내 모습을 보고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사람들이 나를 가이드로 착각하곤 했다. 사람들이 다 모였고 버스를 탔다.  

모네가 살던 애트르타에 도착했다. 가이드님은 근처 카페에 있을 테니 마음껏 구경하고 오라고 하는 말에 에트르타 해변을 같이 거닐 예쁜 여자를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 우중충한 날씨만큼이나 우중충한 기분으로 언덕을 올랐다. 바람이 쌩쌩 부는 언덕 위에는 푸른 잔디 위에 자그마한 교회가 있었다.

나는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맞으며 절벽을 감상했다. 이곳에서 모네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모네는 분명 이곳에서 그가 사랑했던 까미유를 떠올렸을 것이다. 모네가 파리에서 지내던 시절, 과일을 고르고 있는 처녀에게 한눈에 반한 모네는 그 여성에게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하고 부탁한다. 며칠 뒤 여인은 모네의 집으로 왔고 모네는 여자를 그리고 그 여자와 사랑을 나눈다. 그 그림은 유명해져서 모네가 세상에 알려지게 한다. 그녀의 이름은 까미유, 모네가 사랑한 여자이다.

까미유와 결혼을 하려고 했던 그는 아버지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사랑하는 까미유와 결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한다. 당시 모네에게 아버지는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지원이 끊기면 굶어 죽는 상황이 왔다. 까미유의 뱃속에는 아이를 가진 상태였고 모네는 두 갈림길에 놓였다. 사랑을 택할 것인가. 안정적인 삶을 선택할 것인가.

모네는 안정적인 삶을 택해서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간다. 그는 애트르타의 해안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 당연히 까미유의 생각이 났을 것이다. 뱃속의 아이는 잘 크고 있는지 까미유가 아프진 않은지 자신이 선택한 결정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며 하는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돈 때문에 보이지 않는 미래를 걱정하는 것은 100년 전 프랑스에 살던 모네와 지금 한국에 사는 우리가 똑같았다. 돈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멀어지고, 돈 때문에 소중한 꿈들을 포기하고, 돈 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에서 나는 미래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해안에 부딪히는 파도를 보며 '여행이 끝나면 앞으로 뭐해서  먹고살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미래에 대한 생각은 회의감을 넘어 두려움으로 내게 다가왔다.  

부딪히는 파도를 보다가 더 이상 이렇게 있다가는 오늘 하루가 모두 망가질 것 같아서 다시 절벽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그런데 내려올 때는 보지 못했던 동굴을 하나 발견했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순간. '별 일 있겠어?' 하는 마음으로 동굴로 들어갔다. 허리를 숙이고 걷다 보니 얼마 안가 다른 절벽으로 이어졌다. 동굴이 아니라 통로였다.

들어갈 때는 두려움이 가득한 동굴이었지만 지나다 보니 새로운 길로 연결되는 통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나만의 비밀통로를 나와 다시 절벽으로 올라왔다.

모네의 친구 르누아르는 돈 때문에 미래를 걱정하는 모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돈 걱정을 할 때 인생은 흥미진진해지는 거야."


돈 걱정을 한다는 것은 무언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미래이든 혹은 누군가 소중한 사람의 미래이든 돈 걱정을 하면서 사람은 수많은 일들을 겪는 것 같다. '앞으로 뭐해서  먹고살지, 대학교 졸업하면 뭐하지, 돈 벌면서 사람 구실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을 모아보니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이 대부분 돈에 관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내 인생은 지금 흥미진진하다.

인생이 두려움 가득한 동굴 같을지라도, 걷다 보면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나만의 비밀통로가 될 수 있다. 돈이라는 현실 때문에 두려워서 동굴 한가운데 움츠려있는 것보단 쫄려도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언젠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는다.

해안 절벽에서  몇 번이나 흔들리고 피어난 꽃처럼 모네는 결국 까미유에게 다시 돌아가서 사랑을 꽃피운다. 의미 있는 꽃이기에 꺾고 싶었지만 보는 것으로 충분했기에 사진으로 담아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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