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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03. 2016

벚꽃 위를 걷는 아빠 개미

아버지를 강하게 만든 것은 가족을 향한 사랑이다.

집에만 있기엔 눈치가 보였다. 그렇다고 또 즉석사진 장사를 해서 외국 여행을 떠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나는 카메라 회사의 후원을 받기 위해 xx필름이라는 회사에 쪽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xx필름 제품으로 세계여행을 다니며 스토리와 사진을 담아온 이서준이라고 합니다. 제 사진이 xx필름의 광고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그러자 xx필름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 "회사 1층 로비로 한시쯤에 오시겠어요?" 얼마 후, 회사 직원과 얘기를 했다. 그녀는 계획을 갖고 후원 요청을 하러 오는 사람은 있어도 결과를 갖고 후원 요청을 하러 온 사람은 처음이라며 놀랐다. 내 여행 얘기를 쭉 듣더니 상부에 보고하고 검토해보겠다는 말을 했다. " 혹시 추후에 xx필름의 홍보모델 같은 것을 뽑는다면 제가 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이 카메라를 오랫동안 쓰면서 장점과 어필할 수 있는 특징들을 잘 익혔거든요." 나는 직원과 얘기를 마치고 회사를 나왔다.


얼마 후 벚꽃이 흐드러지게 폈다. 나는 여의도에 가서 사비를 털어 사진을 찍어주러 나갔다. 그냥 사진을 찍어주면 사람들은 소중함을 모르기에, 사람들의 꿈을 물어보고 적었다.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아버지들이 많았다. '꿈이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아버지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 아이가 건강하게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진급이니, 돈을 많이 버는 것이니 라고 대답하지만 결국엔 그 모든 것의 목적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진다.

하룻밤 사이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바닥은 꽃비에 흥건하게 젖었다. 나는 꽃길을 걸으며 오늘도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시를 읽는데 떨어진 벚꽃 잎 위로 걸어가는 개미가 보였다. 먹을 것을 실어 나르며 부지런히 움직이는 개미. 검은색 아스팔트 위를 걸어서 여태껏 보지 못했던 개미. 분홍의 벚꽃 잎 위로 올라오니 개미가 눈에 확 띄었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족들을 위해 이동하는 개미의 모습이 우리들의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개미를 지긋이 보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이거 사진 찍어주는 거예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서 온 34살의 가장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아내와 함께 벚꽃 나들이를 나온 사람이었다. 제조 회사 기술 영업을 하고 있다는 이 사람에게 꿈을 물어보았다. 그러자 남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는 거요. 그게 꿈이에요." 간단명료하게 대답한 남자는 사진을 받아 든 뒤 유모차를 끌고 아내와 함께 걸어갔다.

사진을 찍고 바닥을 보니 어느새 개미가 사라졌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손을 모으고 삼각대 앞에 섰다. 그러자 또 한 가족이 사진을 찍어달라며 내게 다가왔다. 건축업을 하며 강서구 마곡동에 사는 41살의 가장이었다. 남자의 꿈은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직원들이 억지로 일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일을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좋아서 일을 하는 회사.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남자에게 물어보았다. "그런 회사가 가능할까요?" 남자는 내게 대답했다. "네 그럼요. 저는 가능하다고 믿어요. 좋은 회사의 출발은 좋은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원들의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다 가족들을 위해 하는 일들이잖아요? 가족이 행복한 회사는 분명히 좋은 회사가 될 것입니다." 옆에 있던 아내가 빙긋 웃었다. 그리고 뒤에 있는 사람이 이어서 사진을 찍었다.

경기도 안산에 사는 28살의 가장이었다. 그는 경찰이었는데 꿈을 물어보니 집을 얻고 싶다고 대답했다. 둘이 살던 집에서 사랑을 나누다 보니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조금 더 큰 집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기에 집을 갖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뱃속에 있는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났으면, 집을 얻었으면, 아내가 순산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밤이 되고 가로등이 켜졌다. 벚꽃들은 분홍색으로 충혈된 눈을 껌뻑였다. 덩달아 나도 잠시 아스팔트 난간에 앉아 쉬었다. 글도 정리하고 거리에 울려 퍼지는 음악도 듣고, 지치긴 하지만 보람차다. 이렇게 계속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 이 일을 하면 돈이 저절로 따라왔으면 좋겠다. 밤하늘에 푸념 섞인 혼잣말을 뱉고 있는데 또 다른 사람이 왔다. 안양에 사는 30살 부부였는데 내가 하는 프로젝트에 대한 얘기를 듣더니 자신도 여행을 많이 다니고 지금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행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 돈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는 도시계획을 공부했어요. 20대에 세계여행을 다니며 전 세계의 도시들을 보고 돌아왔어요. 즐거운 순간이었죠. 각 나라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남긴 자료들이 저한테 굉장히 큰 자료가 됐어요. 그것을 기반으로 지금은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돈은 저절로 따라왔죠." 남자는 내 고민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듯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꿈을 물어본다고 했죠? 제 꿈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거예요. 예전엔 돈이 생기면 여행을 갔는데 지금은 돈을 벌어서 가족을 위해 쓰는 것이 행복해요. 지금은 아이가 없지만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 옷도 사고 싶고 더 넓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싶어요. 아이가 크면 아이하고 같이 여행도 가고 싶고요.” 그는 내게 응원한다며 악수를 청했다. “처음부터 조급해하지 말고 본인이 하는 일을 끝까지 믿어봐요. 그럼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꿈에 대해 물어봤을 뿐인데 이렇게 큰 위로를 받았다. 나도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다.

직장이 있는 가장이 아이를 이끌고 주중에 벚꽃 놀이를 온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겨우 하루 쉴 수 있는 날에 다른 것을 포기하고 이곳에 온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처럼 평범한 벚꽃놀이지만 여기 오기까지는 해야 할 일을 먼저 끝내야 하는 압박감과 예상치 못한 짜증의 연속되는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오늘 사진을 찍어주며 가족들을 위해 자신이 맡은 곳에서 어려움을 이겨내고 묵묵히 걸어가는 아버지들을 만났다. 벚꽃 위를 부지런히 걸어가는 개미와 같이 가족들을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일하시는 아버지. 개미는 자신의 몸무게의 수십 배의 달하는 물건을 들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강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아버지를 강하게 하는 것은 가족들을 위한 사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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