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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03. 2016

부러진 벚꽃 나무 가지

우리를 위해 어머니는 기꺼이 부러지셨다.

벚꽃이 활짝 피어난 거리는 온통 사진 찍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이미 무성하게 뻗어나간 벚꽃 가지와 그 위에 하얗게 피어있는 꽃들. 사람들의 환호와 탄성을 받는 그 벚꽃들의 그늘 밑에는 매미처럼 딱 달라붙어서 작게 피어난 어린 벚꽃 가지가 있었다. 가지라고 하기도 민망한 크기. 마치 땅 위에 피어난 잔디와 같이 뚱뚱한 나무의 몸체에 피어난 작은 꽃. “나도 벚꽃이야!”라고 외치는 듯한 나름의 몸부림이 왠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길고 긴 겨울을 지나 아름답게 피어난 꽃인데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억이라는 보상을 받기 위해 나뭇가지채 꽃을 꺾는다. 꽃만 따서 귀에 거는 사람도 있지만 나뭇가지채 꺾어서 핸드폰에 꽂아놓는 사람도 있다. 밤이 어두워지고 바닥 곳곳엔 나무에 매달려 있어야 할 벚꽃 가지들이 여기저기 팽개쳐져 있다. 분홍색 꽃잎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있는 벚꽃 가지를 바라보고 있는데 한 부부가 또 찾아왔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이거 사진 찍어주는 거예요?”  

서울 신정동에 사는 부부였다. 남편은 32살, 아내는 30살. 끌고 나온 유모차 안에는 아이가 타고 있었다. 나는 부부에게 말했다. “사진은 찍어드리는데 제 질문에 대답해주셔야 합니다. 괜찮으시겠어요?” 부부는 흔쾌히 수락했고 나는 부부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하고 계신 일과 앞으로 하고 싶으신 일, 그리고 꿈을 여쭤봐도 될까요?” 남편이 먼저 내게 대답했다. “저는 건축업을 하고 있습니다. 남의 집을 매번 지어주는데 언젠가 제 집도 갖고 싶네요. 지금은 좁은 빌라에 살고 있지만 넓은 아파트로 이사 가고 싶어요. 꿈은 우주정복이요!” 우주정복이라는 말에 옆에 있던 아내는 장난치지 말라고 했지만 남편은 사뭇 진지했다. 그리고 이어서 아내가 말을 꺼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주부예요. 결혼하기 전에는 꿈이 있었는데 임신을 하고 나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어느새 꿈이라는 단어가 참 허무해졌네요.” 아내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요즘 조금 많이 답답해요. 술을 마시러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혼자 놀러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집에서 드라마나 보는 게 낙이라고 할까요. 친구들을 만나도 친구들 중에 저 밖에 결혼한 사람이 없어서 서로 대화하기가 힘들어요. 서로 공감하는 게 다르니까. 26살에 일찍 결혼해서 그런지 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더 힘들기도 하네요.” 나는 남편이 아이와 함께 사진을 찍으러 간 동안 아내에게 물었다. “그렇게 일찍 결혼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세요?” 그러자 아내가 대답했다. “후회하진 않아요.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저도 행복해요. 직장, 젊음, 자유 등 많은 것을 잃었지만 그것보다 훨씬 큰 기쁨인 아이가 있으니까. 아이가 빨리 자라서 중학생쯤 되면 저도 다시 제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고 나니 속이 조금 후련하네요.” 그때 우주정복을 꿈꾸는 남편이 와서 말했다. “여보 끝났어? 이제 가자. 사진 찍어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부부는 사라졌다.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사진을 찍었다. 41살의 부부였다. IT계열의 회사를 다닌다고 본인을 소개한 이 부부에게 나는 또 질문을 던져보았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꿈이 있으신가요?” 그러자 어머니가 대답했다. 저는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고 회사에 입사했었는데 회사에서 아이 아빠를 만나고 아이를 가지고 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었어요. 그리고 이제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재취업을 했었는데, 퇴근하고 집에 와서 아이를 보는데 아이가 항상 학교-학원-학습지-컴퓨터 게임에 빠져있는 것을 보고 시골로 이사를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어요. 올해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와 함께 시골로 가고 싶어요. 아이가 논밭에서 뛰어놀면서 자연과 공부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나는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재취업을 하셨었다고 했는데 다시 퇴직하는 게 아쉽지 않으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요, 아이를 위해서라면 전혀 아쉽지 않아요. 일은 또 할 수 있지만 아이의 인생은 한 번뿐이잖아요.” 나는 “어머니 인생도 한 번뿐이잖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왜 자기 인생을 살지 않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확신에 찬 눈을 보고 차마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아이의 인생은 어머니의 인생이었고 어머니의 전부였다.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새 밤 11시가 되었다. 벚꽃을 비추던 형형색색의 조명들이 꺼지고 사람들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도 삼각대와 카메라를 정리하고 가려는데 꺾인 벚꽃 가지들이 발에 밟혔다. 흰 눈송이처럼 아름답게 피고 자라 봄바람에 산들거리던 벚꽃나무. 누군가의 아름다움을 위해 꺾여야만 했던 벚꽃 나무 가지를 함부로 밟지 못했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에. 
그날 밤, 부러진 벚꽃 나무 가지는 그 어떤 벚꽃 나무보다도 아름다웠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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