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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03. 2016

인생의 파도를 헤쳐나갈 배를 만들자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사람들의 여행기를 소개하는 것이 즐겁고 행복하지만, '그 사람들의 유명세를 이용해 내가 유명해지고 싶은 거 아니야?'라는 뭇사람들에 질문을 진지하게 내 마음에 물어보니 아니라곤 못하겠다. 스스로 실패라고 생각했던 순간들을 여기저기 하소연하고 다녔다. 그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만났고 형, 누나, 동생, 선생님 등의 감사한 분들은 내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하소연을 하면 그분들은 내가 스스로 실패라고 말하기에 부끄러울 정도로 멋진 순간들이었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멋지지 않다. 여행 자금을 모으기 위해 사진 장사를 하다가 쫓겨나고, 얻어걸린 운으로 취업을 하려다가 떨어지고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출판사에게 큰돈을 요구당했던 당시에 나는 매 순간 비참했다. 마인드 컨트롤에 미숙했기 때문일까.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고 실패자로서의 인생이 몇 달이고 지속됐다.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중요성을 여행 중에 계속에서 느끼면서도 보이는 것을 쫓으려고 했던 내 모습에 이제는 작별인사를 하고 싶다.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을 향해 달려갔던 그 순간들이 실패처럼 보이고 스스로에게도 실패라고 느껴왔던 것이지만 젊은 날에 할 수 있는 값진 것들이었다. 적어도 실패처럼 보이는 그것들을 하러 다닐 때, 나의 가슴은 뛰었고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멋졌다고 생각한다.

며칠 전, 하던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제주도에 왔다. 숙소에 미국 친구 2명, 중국 친구 1명, 러시아, 프랑스, 독일 친구가 각각 1명씩 있다. 여기가 외국인지 한국인지 잘 모르겠다. 숙소에선 한국말보다 영어를 많이 쓰는 것 같다. 각자의 일정을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티비를 보는데 유명한 여행자들이 나온다. 프리다이빙으로 유명한 사람, 김치버스로 유명한 사람, 무인도로 유명한 사람, 청춘으로 유명한 사람. 자신의 여행을 소개하고 패널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시금 질투 섞인 부러움이 생겼다. 나는 옆에 있던 미국 친구에게 말했다. "야 나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 저 사람들처럼 되고 싶어서 유명함을 쫓았는데 결국 의미 없더라고. 그 순간들이 굉장히 공허했어." 그러자 미국 친구가 내게 말했다. "유명함은 환상이야. 미국에서도 유명한 배우들이 티비에 나왔다가 마약이나 다른 것들을 통해서 금방 사라지곤 하거든. 유명함은 그렇게 허무해."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제주도에 오기 전, 한 모험가가 내게 말해주었던 것이 계속해서 맴돈다.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그것에 매진해봐. 정말 네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네 안에서부터 강해져야 해." 숙소를 나와 바닷가를 터벅터벅 걷는데 정박되어있는 배들을 보았다. 바다를 항해하기 전에 기름도 넣고 정비도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겨우 몇 번의 파도에 부딪혀서 돌아온 통통배였다. 문득 항구에 들어온 잔잔한 바닷물에 내 모습을 비춰보았다. 남들의 여행을 쫓아서, 유명함이라는 허영을 따라서, 돈이라는 편함을 위해서 사는 내 모습이 일렁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또 다른 파도와 함께 스윽 사라졌다.

제주도에서는 그동안 손에 꽉 쥐고 있었던 것들을 내려놓고 안에서부터의 내실을 다져나가야겠다. 인생이라는 드 넓은 파도를 항해하기 위해 스스로를 정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다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구멍 난 배를 출항시키면 얼마 못 가 가라앉을 뿐이기에 천의 바다에도 견뎌낼 수 있는 배를 뚝딱뚝딱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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