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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03. 2016

에메랄드 빛 바다보다 아름다운 것

우중충한 나의 오늘을 비난하지 말자


제주에 도착해서 핸드폰을 한동안 안 보니 어느새 단체 채팅방에 수백 개의 카톡이 와있다. 뭘 먹고살지, 어떻게 먹고살지, 사는 게 뭔지. 학교 졸업을 앞둔 친구들의 불안 섞인 얘기가 가득했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술이나 먹는 거지."라고 말한 한 친구의 말이 가볍지 않다. 그렇게 한 숨 섞인 밤이 또 하루 지났다.

한숨 짙은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왔다. 부스스한 눈으로 알람을 끄고 sns를 확인했다. 요즘 들어 눈에 띄는 것은 세계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글이다. 남들을 따라 여행을 간 사람, 알바로 돈을 모아 떠난 사람, 장기간의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


여행 중의 고민들을 털어놓는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의 마음이 항상 기쁜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진으로 보이는 여행의 기쁜 순간이 있기 전까지 고생스럽고 유쾌하지 않은 순간도 꽤나 존재한다.  

며칠 전, 숙소 주인 형이 내게 물었다. "청춘 유리라고 유명한 여행가가 온다는데 보러 갈래?" "네" 그렇게 제주대학교로 차를 타고 갔다. 청춘 유리는 자신의 여행 얘기와 더불어 이런 말을 했다. "열심히 걷다 보면 행복을 만날 줄 알았어요.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행복해질 줄 알았죠. 그런데 아니었어요. 행복은 길 끝에 있는 게 아니라 길 위에 있었어요. 힘들어 보이는 이 순간에도 감사하는 것. 그것이 행복이었어요."

숙소를 나왔다. 날씨도 우중충한 게 해물 가락국수 먹기에 딱 좋다. 가락국수를 먹고 나와 걸었다. 길을 걷다 보니 에메랄드 빛 바다로 유명한 서우봉 해변이 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많이 부는 탓에 사람들이 해변에 거의 없다. 대신 큰 바퀴 자국이 해변을 따라 주욱 늘어져있다.

 바퀴 자국을 따라가 보니 노란색의 큰 차가 해변을 정리하고 있다. 해변에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있는데 이를 정리하고 모래를 탄탄하게 정비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과 따스한 햇살 아래 에메랄드 빛 바다와 멋진 모래사장을 위해서는 비 오는 날도 있어야 하고, 모래를 평탄화하는 순간도 있어야 한다. 에메랄드 빛의 바다를 준비하는 사람의 눈에는 그 바다가 담겨있다. 그렇기에 이 수고스러운 순간마저도 행복할 수 있다. 우중충한 나의 오늘을 비난하지 말자. 우중충한 오늘에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은 에메랄드 빛 바다보다 아름답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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