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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18. 2016

예비군 일기 1

오늘은 예비군 가는 날, 가까운 김포 내버려 두고 포항으로 오라고 하길래 포항으로 가는 내 돈 내고 타는 셔틀버스를 타기로 했다. 7시까지 서울 병무청으로 오라는 말에 밤을 새우고 버스를 타러 갔다. 버스 안은 올여름처럼 찜통더위인 탓에 땀 냄새와 발 냄새가 섞여 진동을 했다. "여기요. 버스 안이 너무 더운데 에어컨 좀 틀어주세요." 그러자 안내하는 사람이 대답하기를 "아 여기 버스 공회전 때문에 민원이 들어와서 그냥 계셔야 돼요. 아니면 밖에 나와 계시던가요." 나는 대답했다. "저희도 민원 넣을 수 있는데요?" 그러자 안내하는 사람은 당황하면서 어쩔 수 없으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너무 더운 탓에 버스 밖에 나와 배수관 위에 걸터앉아 버스를 기다렸고 출발시간보다 30분 늦게 버스는 출발했다.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예비군 훈련장에 도착했다. 고무링과 전역 마크가 없는 사람은 저기 보이는 마크사에서 구매하라는 얘기를 듣고 구매했다. 2-3개의 물품을 사고 나니 6500원. 앞사람이 "이거 왜 이렇게 비싸요?"라고 물어보니, "원래 그래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후 2시 30분, 생활반에 들어와 내 자리를 확인하고 베개를 보았는데 깜짝 놀라서 저절로 욕이 나왔다. "아이 xx" 베개 커버를 보니 붉은색의 녹이 쓴 듯한 곰팡이가 뒤덮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건너편의 선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 제 옆에 사람 안 올 것 같은데 이 베개 쓰세요.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어쩔 수 없이 쓰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그러자 그 선임이 검은색 천을 들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이거 가져왔어요. 베개에 덮으려고요."

입소식을 하는데 예비군 훈련단장을 봤다. 처음 입대할 때 봤던 교육 연대장이었는데 여기서 또 보다니 반갑다. 그가 얘기했던 것 중 앨버트로스 얘기가 기억났다. 부리가 부러져도 다시 이겨내고 단단한 부리를 갖는 새, 그렇다. 부러지는 것은 성장하는 과정이다. 부러진 부리를 두고 슬퍼하지 말자.

오후 6시, 밥이 나왔는데 상태가 너무 심각하다. 실무에서는 그러려니 했는데 예비군 와서까지 형편없는 밥이 나온다. "이거 얼마짜리 밥이에요?"라고 급식을 안내하는 교관에게 물어보니 "나도 잘 몰라. 한 2천 원쯤 하겠지. 이 정도면 감사히 먹어야지."라고 말한다. 끝나고 설거지도 해오라고 하길래 해갔다. 나는 "서울에서 여기까지 불러놓고 밥이 정말 형편없네요."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교관은 "다 같이 먹으면 어쩔 수 없어요."라고 하며 자리를 피했다.

생활반으로 돌아와 앉아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선임이 흰색 a4용지에 빼곡한 무언가를 외우고 있었다. "그게 뭐예요?" 내가 묻자 선임은 대답했다. "아 고시 준비 중이어서 공부하는 거예요. 뒤처지면 안 되니까 열심히 해야죠. 몇 번째 시험을 보는데 떨어졌어요. 전 병신이에요." 그래서 나도 말했다. "어휴 저도 병신인걸요." 그러자 고시생 선임이 말했다. "한국에서는 병신 아니면 살 수가 없어요." 그러자 주변에 있는 예비군들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 이동식 P.X가 도착했다. 교관들은 약 1시간이 주어질 테니 자유롭게 이용하라고 말했다. 재빨리 나간 사람들은 손에 한 가득 먹을 것을 사 왔지만 대부분 그러지 못했다. 40분 동안 줄 서 있다가 그냥 돌아온 다른 선임이 생활반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아니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어떻게 1시간 만에 저걸 이용해요. 이거 진짜 너무 하네요."

오후 7시, 교육 훈련이라는 이름 아래 강의가 시작됐다. "여러분 돈 내고 예비군 훈련 오는 것 압니다. 오죽하면 열정 페이 예비군이라는 말 까지 나왔을까요. 그런데 휴대폰 몰래 쓰지 말고 담배 아무 곳에서 피지 마세요. 그리고 예의 좀 지키세요." 시설이 열악한 것은 나라가 가난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참고 견뎌야 합니다. 저희도 점점 좋아지는 중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px가 왔을 때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훈련 기간 중 하루밖에 오지 않기 때문에. 40분을 줄 서고도 사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PX를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밥이 형편없었기 때문입니다. '받아들여라 이 정도면 잘 나오는 것이다. 감사히 먹어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생업 포기하고 여기까지 와서 훈련받는 사람들에게 너무한 거 아닙니까?"라고 말하려고 하는데 강의자는 바로 퇴장해버렸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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