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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18. 2016

반찬에서 나온 수세미

예비군을 하러 서울에서 포항까지 갔는데 반찬에서 수세미가 나왔다.

이튿날, 경찰이 되고자 하는 선임이 일어나서 말했다. "어제 x 되는 꿈 꿨어. 다 까먹는 꿈." 그는 일어나서 다시 공부를 했다.  

점심시간, 라면을 들고 식사를 하러 갔다. 메뉴가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밥을 식판에 담고 뜨거운 물을 정수기에서 받았는데 라면이 익지 않을 만큼의 미지근한 물이 나왔다. 물에 불려먹는 과자와 같은 마음으로 우적우적 먹는데 반찬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수세미였다. 우리가 우리 돈을 내고 먹는 반찬, 돈 내고 오는 열정 페이 예비군에서 주는 반찬엔 수세미가 들어있었다. 반찬의 이름이 햄 xx구이였으니 햄 수세미 구이 정도로 하면 되겠다. 식사를 마치고 지휘통제실로 찾아가 말했다. "오늘 반찬에서 이게 나왔습니다." 당직자는 이게 뭐죠? 하면서 수세미 가닥을 보고 말했다. "나는 "수세미요."라고 대답했다. 당직자는 "이리 줘보세요." 하고 가져가려 했지만 분명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자기 선에서 묻을 것이기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직자에겐 사실관계만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이런 게 밥에서 나오면 안 되겠죠?" 그러자 그는 약간 당황한 모습으로 내게 말했다. "일단 줘보시라니깐요!" 


우리는 손가락 사이에 수세미 한가닥을 놓고 힘 싸움을 했다. 서로의 엄지와 검지가 부들부들거렸다. 그러던 중 눈이 마주쳤다. 당직자는 순간 손에 힘이 풀렸고 나는 수세미 가닥을 가지고 생활반으로 돌아왔다.

"야 이거 솔직히 너무 하는 거 아니냐. 나 이렇게 문제집 가져와서 여기서 공부하면서 훈련받는데 수세미 반찬 주는 건 좀 아니지." 생활반 안에 있던 예비군들은 불쾌한 표정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는 훈련복으로 갈아입고 각개전투, 화생방, 사격 등의 훈련을 받았다. 비가 오는 날이라 그런지 온 몸이 비에 젖고 흙투성이가 됐다. 저녁시간, 샤워를 하고 나와서 생활반에 앉아있는데 옆에 앉은 선임이 계속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선임에게 물었다. "공부 잘 돼요?" 그렇게 몇 마디를 나누다가 선임이 내게 이런 얘기를 했다. "전역하고 몇 년 동안 법률회사에서 일했었어요. 일을 하던 도중,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뭘까 라고 생각해봤는데 경찰이더라고요. 그래서 퇴사를 하고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경찰 공무원 시험 준비하고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머리에 안 들어와서 너무 힘드네요. 근데 아무리 힘들어도 해낼 거예요. 인생은 하고 싶은걸 하면서 살아야 재밌는 거거든요." 그리고 선임은 계속해서 공부했다.

시간이 지나 아침이 됐다. 향방작계 훈련을 미리 6시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조기퇴소를 준비하고 있었다. 샤워를 하고 나갈 준비를 하는데 지휘통제실에서 나를 불렀다. 지휘통제실에 가보니 급양 담당관이 와있었다. "어제 밥에서 수세미가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밥통 특성상 설거지를 하다가 수세미가 나올 수도 있어서 그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나는 대답했다. "밥이 아니라 반찬에서 나왔는데요?" 담당관은 당황한 표정으로 "아무튼 제가 책임자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병사들을 다시 교육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담당관에게 물었다. "저희 인원이 몇 명이고 조리병이 몇 명이죠?" 담당관이 대답했다. "예비군 400명에 현역 80명, 그리고 조리병은 3명입니다." 내가 다시 말했다. "아니 고작 3명이서 480명이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데 이게 중세시대 노예랑 도대체 뭐가 다릅니까? 병사들 잘못 하나도 없어요. 로봇이 아닌 이상 저 자리에는 누가 가도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담당관 잘못도 아니고 병사들 잘못도 아니에요. 이 시스템 잘못이에요." 담당관은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아니 죄송할게 뭐가 있어요. 최선을 다하고 있으시잖아요."

생활반에 들어가 다시 짐을 싸려고 하는데 이번엔 주임원사가 나를 불렀다. "이번 일은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책임자하고 병사들에게 다시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계속 나아지고 있으니 이해해주세요." 나는 대답했다. "아까도 말했는데 책임자 하고 병사들 잘못 하나도 없어요. 480명을 3명이서 책임지는 게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거죠." 그러자 주임원사가 얘기했다. "병사는 3명이고 민간지원이 1명 더 들어와서 총 4명입니다. 저는 빨간 명찰 아래 모두가 한 핏줄이고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계속 지켜봐 주세요." 나는 대답했다. "3명이나 4명이나 무슨 차이예요. 그리고 왜 매번 본인들 불리할 때만 핏줄이고 가족입니까. 가족 먹을 밥에 수세미 넣고 그러진 않잖아요. 지켜봐 달라고 하시니 알겠습니다. 몇 달 있다가 제 친구가 또 여기로 입소하는데 그때도 나아진 게 없으면 그땐 저도 가만히 안 있습니다."

얘기를 마치고 생활반으로 올라와 나는 짐을 싸고 퇴소했다. 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린 나는 전투복과 워커 등을 택배로 집에 보냈다. 핸드폰을 켜서 확인해보니 군대 후임이었던 대철이에게 카톡이 와있었다. "형 저 휴가예요. 지금 대전인데 포항으로 내려가고 있어요. 이따 밤에 봐요!" 카톡을 확인한 나는 일단 죽도시장으로 향했다. 죽도시장엔 2박 3일 내내 기다렸던 그것이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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