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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19. 2016

포항에서 만난 대철이

나는 회를 좋아한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께서 주신 100원, 200원을 모아서 폐장하는 마트에 가서 떨이 회초밥을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모든 것이 완벽한 회의 유일한 단점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여기 죽도시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작년에 책을 구상하러 포항에 여행을 왔을 때 먹지 못했던 개복치와 상어를 먹으러 왔는데 혼자 먹기엔 양이 너무 많고 개복치와 상어의 물량이 얼마 많지 않아 싱싱하지 않은 탓에 다음으로 미뤘다. 죽도시장 끝자락에 선 판장이라는 곳에 가면 우리가 보통 먹는 각종 회를 바구니에 담아놓고 파는데 그 양이 어마어마하다. "아주머니 회 만원 어치만 주세요."라고 말하자 아주머니가 "왜 이거 다해서 2만 원에 가져가"라고 말하며 두 바구니에 가득 담긴 회를 보여준다. "혼자서 먹을 거라서 만원 어치만 주세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큼지막한 손으로 방어, 가자미, 전어를 덜어주신다. 더 달라고 하기엔 이미 너무 많다. 나는 시외버스 터미널 근처의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청포도맛 웰치스 한 캔과 함께 회를 먹었다. 가을 전어가 쫄깃하고 제법 먹을만했다.  

숙소 침대가 안락했는지 예비군의 피로가 덜 풀려서인지 1시간쯤 잤을까. 대철이가 대전에서 오고 있다는 사실이 문득 생각이 났다. 핸드폰을 보니 대철이는 포항에 도착해있었다. "형 어디서 볼까?" 우리는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생각했다. '내가 대철이한테 뭐 잘못한 거 있나. 분명 때리진 않았는데.......' 그 순간 하늘에서 비가 몇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숙소로 돌아와 다시 우산을 챙겨 나왔다. "이게 얼마 만이야!" 반갑게 인사한 우리는 근처에 보이는 갈빗집으로 들어갔다.

형 여행 다니는 건 가끔 봤어. 잘 지내는 것 같더라. 전역하고 애들 좀 만났어?" "전역하고 거의 못 봤지. 군생활할 때는 되게 자주 볼 것 같았는데 말이야. 다들 사는 게 바빠. 우리도 전역하고 처음 보는 거잖아?" 바로 그때 갈비 한 짝이 나왔다. "주문하신 갈비 나왔어요." 대철이는 갈비를 구우며 말했다. "형, 그럼 요즘 뭐 하는 거야? 책 쓰는 거야?" 나는 대답했다. "응 책도 쓰고 마음 정리도 하고 앞으로 계획도 세우고 뭐 그렇게 복잡할 땐 여행만 한 게 없더라고. 너는 뭐하고 지냈어?" 그러자 대철이가 대답했다. "'나 전역하고도 대학교 다니면서 당구치고 술 마시고 했지. 당구를 치다 보니까 어느새 500 정도 치게 됐어. 근데 당구 치다가 어떤 사람이 당구대를 수리하는 걸 봤는데 그게 재밌어 보이더라고. 그래서 그 사람을 찾아가서 기술을 알려달라고 했어. 7번까지 거절당하다가 8번째에 겨우 배우게 됐어. 처음에는 돈도 안 받고 열심히 일했어. 하루에 두 시간씩 자면서 쪽잠 자고 다시 일하고. 힘들었지. 그렇게 일하니까 그만큼 돌아오더라고. 나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 대철이는 또래의 아이들보다 생활력이 강했다. 군대에 오기 전에도 지게차를 몰면서 돈 좀 만졌는데 지금은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었다.

대철이가 떠나고 주위를 둘러보니 어린아이가 고깃집에서 뛰어논다. 고깃집 안에 있는 놀이방에서 친구들하고 놀다가 다시 뛰어와서 고기를 먹는다. 옆 테이블에선 30대 초중반의 부모들이 외국을 가야 한다 한국에서 버텨야 한다를 놓고 얘기하고 있다. "애들 키우기가 요즘 너무 힘들어. 월급 받은 걸로 집 사는 건 택도 없고 다 빚이지 뭐. 너 저번에 나한테 빌린 돈 언제 갚을 거냐?" 그러자 다른 아저씨가 얘기했다. "금방 갚을게. 지금 힘들어서 그래." 그러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얘기했다. "그냥 저희랑 같이 외국으로 이민 가는 건 어때요? 기술만 갖고 있으면 외국에서 사는 것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돈을 빌려준 아저씨가 말했다. "야, 너 나랑 외국 가면 그 돈 안 줘도 돼. 같이 가자 인마." 그때 아이가 놀이방에서 나와서 부모님께 달려갔다. 돈을 빌린 아저씨는 아이에게 고기를 먹이며 얘기했다. "아냐. 난 그래도 한국에서 살아볼래. 여기서 성공하면 그때 외국으로 나가지 뭐."

화장실에 갔던 대철이가 돌아왔다. 우리는 밥을 마저 먹고 북구(영일대)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대철이는 머쓱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나 남자 둘이 이렇게 카페 온 거 처음이다. 형은 이렇게 자주 와?" "응 남자 둘이 카페 오는 게 뭐 어때서" "모르겠다. 좀 그렇다."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커피를 마시면서 얘기를 하다가 여행 얘기가 나왔다. 각자가 다녀온 여행 얘기를 하다가 동경 올림픽 때 당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이 되면 대철이가 일본으로 출장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최연소 기술자이기도 하면서 실력도 좋았기 때문이다. 왠지 모르게 내가 뿌듯했다. "야 대철아 너 대단하다. 멋져."

우리는 카페를 나와 바닷가를 따라 걸었다. 부서지는 바닷바람에 의미 없는 말들을 툭툭 던지기도 하고 군생활 얘기도 하면서 얼마나 걸었을까. 지진의 피해로 바닥이 갈라진 2층 구조의 건물이 나왔다. 그곳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다가 헤어졌다. 먼저 택시를 태워 보낸 후에 바닷가에 앉아서 혼자 생각해보았다. '너무 대책 없이 여행만 다닌 것은 아닌가. 나보다 동생인 대철이도 저렇게 성실하게 살아서 열매를 맺고 있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오만 가지 생각이 짠 바람과 함께 머리를 스쳤다. 집으로 가는 길, 독도로 가는 선착장이 보였다. 내일 날씨가 좋으면 독도나 가야겠다.라는 다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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