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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Oct 20. 2016

고장난 내비게이션

숙소를 나와 독도를 가보려고 했는데 하늘을 보니
'꽝. 다음 기회에'라고 써져있는 듯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는 마음에 생각을 하다가 터키에서 만난 경인 이형이 떠올랐다.

"형 요즘 뭐해요?" 
"나 백수야." 
독도를 가려고 아침에 하늘을 보니 
"그럼 지금 어디 있어요?" 
"울산에 있지 형 집이 울산이잖아."
"그럼 저 형 만나러 울산 가도 돼요?"
"그래 와서 연락해라."  

그렇게 울산으로 향했고 경인 이형을 만나 밥을 먹었다.


경인 이형은 터키 여행 중에 만난 가이드였다. 형은 만나자마자 마음속에 쌓여있던 그런 것들을 내뿜기 시작했다. 스스로 현자라고 말하지만 그의 그 얘기를 하는 그의 눈 빛엔 뭔가가 서려있었다. 부당한 무언가를 당하고도 얽히고설킨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얘기하지 못하는 그였다.

우리는 얘기를 하다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형 그래서 "이제 뭐할 거예요?"라고 물어보니 "다른 일을 해보려고 세상에 직업은 많으니까."라고 대답했다. "여행 쪽으로는 다시 안 가실 거예요?"라고 내가 묻자 "나를 아껴주던 선배들과 함께 하고는 싶지."라고 대답했다.

커피를 마신 후, 형은 나를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나는 다른 건 안 부러웠는데 또래의 친구들이 여행 가는 거 보면 재밌을 것 같아보였어. 그게 부럽더라. 젊은데 열심히 돈 벌고 시간 쪼개서 여행하는 사람들 있잖아. 나도 가이드를 하면서 항상 사람들이 나한테 부럽다고 말했었는데 매일 똑같은 곳을 보는 게 뭐가 재밌겠어." 나는 형에게 맞장구쳤다. 그건 여행이 아닌 노동이겠군요." 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나는 형에게 말했다. "형 근데 저는 형 보면서 되게 행복해 보였거든요. 많이 부럽기도 했고." 그러자 형이 말했다. "행복은 상대적인 게 아니겠나. 다 남의 생활이 부럽고 좋아 보이는 거지."

내비게이션을 따라 숙소로 이동하는데 도시가 아닌 시골 풍경이 펼쳐졌다. 평화로운 논밭을 보며 우리는 얘기를 이어갔다.

"사실 예전에 나로 돌아가라 가고서 선택하라고 하면 나는 예전에 내게 기회가 있었던 회사로 들어갈 거야. 예전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안 들어간 거거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려고." 나는 "그 선택에 후회하세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형이 대답했다.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복잡하다. 가이드하면서 사람들 만나고 경험하고 특히나 좋은 선배와 함께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았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또 좋은데 지금 내 현실을 보고 있자니 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무튼 그래." 형은 무언가에 굉장히 지친 얼굴이었다.


얘기를 마치고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익숙한 건물들이 보이지 않았다. 지도를 켜서 우리 위치를 확인해보니 엉뚱한 곳에 와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우리는 내비게이션을 다시 설정하고 목적지로 향했다.

형 집에 빨리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음 조금 서둘러야겠다." 형이 대답했다. 
다시 목적지로 향하는 발걸음이 헛돼 보였지만 우리는 그 덕에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다. 신호를 대기하는데 형이 말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차 쓴다고 하면 기름 꽉꽉 채워서 주셔. 참 감사하지. 난 지금 약간 마음이 해탈 단계야. 쉴 수 있을 때 쉬어놔야지. 다시 바쁘게 일하기 전까지 말이야.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어머니 구두도 찾아야 하고 아버지 생신 케이크도 사가야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할 일이 많은 형이지만 조급해하는 마음을 버려야겠다는 다짐 때문인지 형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숙소에 도착하고 카톡을 했다. 형 오늘 고마웠어요. 어머니 구두는 잘 찾았어요? 그러자 형이 내게 말했다. "응 이제 나도 도착했다. 어머니 구두, 아버지 케이크 다 해결했지 다음에 또 보자."

늦었다고 조급해할 필요 없다. 때론 고장 난 내비게이션과 같은 상황이 올지라도 그 상활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결국엔 목적지에 잘 도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 군대 동기인 주영이에게 카톡이 왔다. "야 대구 언제 오냐 나 오늘 밖에 시간이 없어!" 그래? 그럼 지금 갈게. 대구에서 보자." 그렇게 대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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