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가 온통 검은색 천지
검은색 옷, 넓고 높은 검은색 털모자, 흰색 스타킹, 말끔한 구두, 덥수룩하게 긴 수염, 정갈하게 땋은 구레나룻, 엉덩이 밑으로 내려온 주렁주렁한 끈들, 이마 위에 하고 있는 검은색 상자. 자신감과 소속감에 가득 차 있는 남자. 그리고 그 옆에 영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여자. 혹은 뚱뚱한 여자.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거리가 온통 검은색 천지이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지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한 방향이 아니라 매우 여러 방향으로 움직인다.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서쪽 벽을 향해 숙소에서 약 40분을 걸었을까. 익숙한 모습의 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군인의 모습도 보인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군인들은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군들도 남자 못지않게 많이 보인다. 나라를 지키는데 남자와 여자가 구분되지 않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이곳이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솔로몬이 지은 성벽이 바벨론의 네브카드네자르라는 왕에게 파괴되었기 때문인데, 지금은 사람들이 이 앞에서 기도하고 춤추고 노래한다. 그런 면에서 이곳은 이제 더 이상 통곡의 벽이라고 불리지 않고 서쪽 벽이라고 불린다. 사람들은 주로 무리 지어 다닌다. 아쉽게도 내가 낄 틈은 없다. 한 아저씨가 큰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광장에 서있다. 사람들이 국기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아저씨는 매우 자랑스러운 듯 깃발을 펄럭이며 계속해서 서있다.
유대인들에게 다가가기가 어렵다. 너무 많은 한국 관광객을 봐서 내가 신기하지도 않은가 보다. 이 글을 적는 순간 그 깃발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서 말을 건다. 깃발 아저씨의 이름은 '라니' 라니 아저씨는 캘리포니아에서 25년 동안 살다 오셨다. 국기를 들고 돌아다니다가 내 옆에 앉아서 말을 건다. 갤럭시와 삼성에 대해 얘기한다. 삼성이 자국 내에 더 비싸게 판다고 하니까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물어본다. 또 내가 미국에서 직접 구매해서 해외배송을 하면 세금으로 제한을 한다니까. 대한민국은 민주국가 아니냐고 물어본다. 미친 짓이라고 한다.
나는 아저씨에게 대학교 히브리어 수업시간에 배운 쉐마 이스라엘과 바룩 아타 아도나이를 노래로 들려주었다שמה עשר אל יהוה 아저씨가 반갑다는 듯이 듣고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보았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날이 건조해서 그런지 한국의 가을 날씨와 비슷하게 쌀쌀하다. 11시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이 점점 집으로 간다. 거리를 걷다 보니 예전 성지순례를 왔을 때 잠깐 내려서 구경했던 거리가 보인다. 이상하게 별거 없는 이 골목을 거니는 꿈을 많이 꿨었다. 같이 갔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내일 아침은 한인교회에 가서 예배를 해야겠다.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