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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29. 2016

북경 가는 기차에서 만난 여대생

그녀가 내게 말을 걸었다.

심양에서 나를 도와주신 선교사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기차 안에서 먹을 과자 한 봉지와 음료수 한 캔을 샀다. 역내에서 심심해서 기차역을 구경하다가 의자에 앉아서 여행책자를 읽었다. 같은 동양인인데도 차이가 있어서 일까. 아니면 긴 머리의 남자가 특이해서 일까. 사람들은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중에 한 명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제 티켓이 이건데 여기서 타는 게 맞나요?" 의자에 앉아있던 아저씨는 내게 "응 빨리 저쪽으로 가서 줄  서"라고 대답했다. 아저씨의 말대로 줄을 섰는데 5분 정도 후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내 뒤로 줄을 섰다. 나는 아저씨에게 고맙다는 손짓과 눈빛을 보내고 기차에 탑승했다.


북경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심심했는데 옆에 앉은 22살 여자 대학생과 영어가 되어 몇 마디 나누게 되었다. 친구의 이름은 '왕자이'  롤이라는 게임을 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4-5시간을 갔다가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내가 중국 사람들은 탁구나 장기는 안 두냐고 물어보자 그런 건 아저씨들이나 하는 거고 요즘 젊은이들은 모두 롤을 한다고 대답했다. 자신의 계급이 다이아(많이 높은 계급), 친구의 계급이 챌린져(가장 높은 계급)인데도 한국인을 이길 수는 없다고 했다. 한국이 게임에서는 단연 세계 1위라고 말하는 왕자이의 얘기에 왠지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졌다. 여행 얘기도 하고 게임 얘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음식점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왕자이는 내게 오늘 밤 파티에 오지 않겠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고 지금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가는 길이다. 파티라고는 생일파티랑 돌잔치, 그리고 고등학교 국사선생님의 싸대기 파티 밖에 가본 적이 없는데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일단은 가본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된다.




잠깐을 졸았을까 어느새 베이징 역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는데 같이 있는 왕자이에게 사람이 많다고 하니까 이 정도는 굉장히 적은 것이라고 했다. 서울역과 같이 세련되어있는 기차역은 8년 전 내가 봤던 베이징 역하고는 많이 달랐다. 당시에는 굉장히 덥고 냄새나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많이 바뀐 모습이 신기했다. 더욱 신기했던 것은 베이징역 입구에 있던 노숙자들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전에 왔을 때는 어떤 소녀가 와서 다리에 매달린 다음에 돈을 주지 않으면 떨어지지 않는 방법으로 구걸을 적극적으로 했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기차역 입구를 나온 우리는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간 곳은 랍스터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날은 중국의 공휴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길가에 굉장히 많았다. 번쩍이는 전광판과 북적이는 사람들은 내가 북경에 왔구나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택시에서 내린 후에 우리는 어떤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여기저기 만화 원피스의 모습이 보였다. 여행가방을 한 가득 매고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모두 나를 쳐다보았다. 조금 걸어들어가 룸에 들어갔는데 룸 안에는 왕자이의 친구 둘이 먼저 와있었다. 한 친구는 경제학을 전공하는 친구고 한 친구는 패션 디자인과 모델을 하는 친구였다. 



식탁에는 푸짐한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친구 두 명이 더 오게 되었다. 영어를 전공한 친구가 한 명 있어서 그 친구가 다른 친구와 나와의 통역을 해주었다. 왕자이는 내게 여러 종류의 랍스타를 보여주었고 나는  그중 마늘 랍스타를 골랐다. 식탁은 랍스타와 몇 가지 다른 요리들로 가득 찼다. 음식이 나오고 나니 내가 생각했던 랍스타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큰 새우 같은 것이 나왔다. 랍스타긴 랍스탄데 뭐랄까 제주도에서 먹을 수 있는 딱새우 같은 느낌이랄까.


 또 다른 음식은 개구리가 나왔다.  난생처음 보는 개구리탕 조림?을 자신 있게 먹어보았다. 맛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닭고기와 같은 맛이지만 조금 더 쫄깃하고 연했다. 다만 양념이 조금 매콤해서 많이 먹지는 않았다. 또 북경오리가 식탁에 올라왔다. 맛은 한국에서 먹는 닭고기와 비슷했다. 후식으로는 볶음밥이 나왔다. 볶음밥은 뭐 별반 큰 차이는 없었다. 내가 기차에서 생각했던 파티랑은 조금 달랐다. 한국으로 치면 토다이 같은 곳에 커플 친구 동반으로 벌이는 파티 같은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절친들이었던 그들은 다들 22살이었다. 영어를 통역해주는 친구는 구릿빛 피부가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독일에서 1년 정도 살다가 왔다고 했다. 베이징 여행을 하는데 있어서 천안문 광장이라던가 자금성은 관광객들이 가는 곳이고 진짜 베이징을 여행하고 싶으면 구석구석 숨어있는 실제 사람들의 생활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그녀의 말대로여서 일까. 나는 지금 늦은 아침 침대에 누워서 중천에 뜬 해를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왕자이 친구의 차로 이동했다. 바로 이동했는데 구릿빛 소녀는 내게 자꾸 술을 권했다. 바에 가서 오렌지주스 마시면 모두가 날 쳐다볼 거라고 말하면서 조금 놀리는 말투로 내게 레몬에이드가 조금 섞인 보드카를 권했다.


 여행 다닐 때 가장 걸리는 부분이 술에 대한 부분이다. 사실 이것은 인생을 살면서 가장 걸리는 부분이기도 하다. 술을 통해 사람의 깊은 얘기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좋은 역할을 나는 안다. 기존에 내가 갖고 있던 술 취함의 부정적인 편견은 이미 무너져버린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혹자는 내게 율법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결국 나는 콜라를 마셨고 나를 놀리던 구릿빛 소녀는 나 같은 사람을 처음 봤다며 놀랐다. 술 담배 안 하는 20대 청년이 자신의 주변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 자신의 아버지 얘기를 해주었다.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인생을 즐겨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구릿빛 소녀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며 살아왔다고 했다. 실제로 그녀는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무언가를 절제하는 내 모습이 굉장히 신선하다고 했다. 운전하는 친구와 나는 콜라를, 나머지 친구들은 보드카와 럼주 진 등의 술을 마셨다. 


우리가 간 바는 굉장히 크기가 작았다. 안에는 공간이 많지 않기에 밖으로 나와서 테이블을 차렸다. 그곳에는 외국인들과 중국인들이 곳곳에 앉아서 오손도손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리가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굉장히 인기가 좋았다. 신기했다. 이처럼 큰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작은 바에 열광하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우리는  이런저런 가십거리를 얘기했다. 어떤 연예인이 이런 일을 했다더라, 전 남자친구가 나쁜 사람이었다, 중국에서 런닝맨이 굉장히 유명하다는 등의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또 이성에 관한 얘기를 했다. 여자친구는 몇 번 사귀어봤는지, 최근 만나는 여자는 없는지, 여자를 볼 때 어디를 먼저 보는지, 동성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예전에 프라하나 하이델베르크에서 느꼈던 것들이 떠올랐다. 국가, 인종, 문화, 언어를 떠나서 인간의 기본적인 것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베이징에 있는 부잣집 자제들은 뭔가 다르고 특별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다 같은 사람이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 우리는 노래방으로 가게 되었다. 새벽 2시 베이징 거리의 공기는 적막했다. 뇌 속에서는 현지 사람들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뿌듯하다는 생각과 처음 보는 사람들과 허세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계속 걷다 보니 왕자이의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왕자이의 얼굴이 붉어지더니 전화를 끊는다. 친구들은 왕자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더니 버럭 화를 낸다. 왕자이는 울상이 된 표정과 화가 난 표정이 뒤 섞인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리곤 이렇게 말했다. "나 가봐야 할 것 같아." 왕자이는 남자친구를 보러 갔고 그렇게 노래방은 파투가 났다.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숙소까지 바래다주는 왕자이와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네고 숙소로 들어가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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