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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준 Mar 31. 2016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다시 일어난 중국

여행을 다니다 보면 그때의 그 순간을 저장해놓고 싶을 때가 있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의 언어,  마음속 깊이 숨어있다가 떠오르는 감정, 사진으로 찍을 수 없고 글로 쓸 수 없는 그 무언가. 여행이 끝나면 그것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또 그렇게 앞으로 걸어간다. 때로 그리움이 엄습해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짙게 깔릴지라도 그렇게 여행을 떠난다. 


어젯밤 기차에서 만난 왕자이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놀고 숙소로 들어왔다. 늦은 아침, 나를 깨우는 것은 알람 소리가 아닌 문틈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햇살이었다. 모두가 떠난 도미토리에 있으면 뭔가 지각을 한 느낌이다. 그러나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여행은 그렇게 자유와 여유의 맛이 있다.  새벽같이 나가 많은 것을 둘러보고 오는 여행도 좋지만 있는 그대로를 느끼고 나 자신에게 진솔한 느린 여행을 하는 것도 좋다. 여태껏 기차 시간이니 비행기 시간이니 시간에 쫓기다가 시간을 부자처럼 쓰고 있으니 기분이 좋다. 양치를 하고 모닝 x 을 싼 뒤에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왔다. 오늘은 천단공원에 가기로 했다. 


천단공원에서 길을 잃었는데 중국 음악도 나오고 성문도 계속 내 앞을  가로막는 게 꼭 초등학생 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바람의 나라를 하는 기분이다. 사람들도 많고 자연이 정리된 느낌이 드는 게 베르사유 궁전을 산책하는 것과 비슷하다. 공원 곳곳에 장기를 두는 할아버지들이 보인다. 나도 가서 껴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쉽게 낄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고개 넘어 기웃기웃 구경만 하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저곳 혼자 돌아다니며 구경하다가 천단을 발견했다. 크기와 위용이 대단하다. 

 북방에 있던 오랑캐가 힘을 키워서 명나라를 침략했다. 명나라는 위정자들의 부정부패로 백성들의 신임을 잃은 상태였고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은 여기저기서 민중봉기를 일으켰다. 부패한 왕조에게 힘은 없었다. 그들은 반란세력에게 밀리고 북방의 오랑캐에게 점령당하고 만다. 그렇게 명나라는 청나라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한다.


베이징의 대표 관광명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자금성과 천단공원이다. 이들은 모두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지어졌다. 청나라는 몽골과 게르만족과는 다르게 힘을 가지고 정복을 했지만 명나라의 문명과 잘 융합했다. 그리하여 청나라는 오랜 세월 동안 강성 대국했다. 청나라와 명나라가 무너지고 세워지던 때에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났고 십자군 전쟁을 통해 이슬람 세계와 마주쳤다. 서로 다른 두 문명은 서로에게 충격이 되었고 그 결과 발전을 낳았다. 여기까지만 해도 동서양의 세력의 판도가 동양 쪽인 청나라와 이슬람이 훨씬 앞섰다. 하지만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인해서 서구는 강력한 힘을 얻게 되었다. 반대로 청나라는 명나라가 그랬듯이 위정자들의 탐욕과 혼란으로 하락의 길을 걸었고 다가오는 세대에 대한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편전쟁을 통해 영국에게 짓밟히고 말았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동양은 서양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몇천 년 동안 이어져오던 패권이 불과 수십 년 만에 바뀌어 몇 백 년 동안 서양에 의해 세계의 흐름이  주도되고 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가장 강력했던 것이 가장 약해지고, 가장 위대했던 것이 가장 허무해진다. 가장 아름다웠던 것은 가장 추악해지고, 가장 찬란했던 것은 가장 보잘 것 없어진다. 그래서일까 미래에도 패권이 서구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의구심이 생긴다. 미국이 전 세계의 패권을 잡은지 이제 30년이 지났다. 그런데 벌써 중국이라는 세력이 위협적인 세력으로 대두하기 시작했다. pax로마의 시대가 천년, pax 영국의 시대가 100년인데 비해 굉장히 짧은 시간 내에 pax 미국의 시대가 위협받고 있다. 이렇게 급변하는 시대에 우리나라는 무엇을 하고 있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이 된다.


중국은 sns를 통제한다. 이렇게 글을 모아놨다가 연속으로 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중국에 오기 전까지 북한도 아니고 무슨 정부가 이런 걸 통제하나 싶었는데 막상 와서 중국 역사를 되돌아보니 이해가 간다.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은 그 마음이 sns 산업분야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중국 정도의 스케일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단하다. 


천단공원을 나와서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베이징에 가면 꼭 후통을 가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서 나는 난뤄구샹이라고 불리는 후통(골목길)을 갔다. 

우리나라 명동+삼청동과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화장품을 많이 파는데 여기서는 전통악기, 길거리 음식, 고물상 등의 상점이 많았다.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오카리나와 전통악기 소리를 들으며 걷고 있자니 중국이라는 나라에 여행을 온 것이 실감 났다. 후통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았다. 거리를 걷다 보니 약간의 외로움이 느껴졌다. 혼자 여행하면 자유롭다가도 금세 외로워지기 때문에 힘이 든다. 그래서 먹을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숙소로 돌아와 일기를 쓰고 있는데 중국인 크리스천을 만났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여행 얘기를 하다 보니까 이스라엘 성지순례 얘기가 나왔고 본인도 예수를 믿는데 나보고 예수를 믿냐고 물어보았다. 그렇게 서로 예수 얘기, 북한의 아픈 현실에 대한 얘기, 여행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빅터, 빅터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금방 시간이 갔다. 즐거운 밤이다.


다음 날 아침, 인도로 출발하기 전, 10년 전에 갔던 천안문 광장과 왕푸징 거리를 걸어보았다. 그때는 너무 비싸서 마음껏 먹지 못했던 북경오리도 혼자서 마음껏 먹어보고 선양 시장에서 산 짝퉁 오메가 시계를 차고 오메가 시계 매장 앞에서 나중에는 진짜 오메가 시계를 차고 오리라는 다짐도 했다.


천안문 광장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내 옆에서  기웃기웃거렸다. 여행객끼리는 뭔가 통하는 게 있다. 서로가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보았더니 캐나다에서 온 인도 사람과 호주 사람이었다. 마침 다음 여행지가 인도라고 말을 하자, 내게 물을 조심해서 마시라고 재밌는 여행이 될 거라고 말해주었다. 


공항철도를 타고 베이징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시간에 딱 맞춰서 비행기를 탔고 상하이 푸동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어떤 가족이 한글로 된 중앙일보를 읽고 있었다. 말을 걸어보고 싶었는데 서로 분위기가 무거워 보여서 말을 걸지 않고 인도인 옆에 앉았다.

   


상하이를 거쳐서 인도로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은 새벽 4시 델리, 사람들의 생김새가 달라졌고 냄새와 분위기, 시선들이 달라졌다. 기대되고 궁금하다. 인도에서는 무슨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길이 끝나면 - 박노해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


중국이 청나라 시절 영국에게 당한 치욕의 길을 끝났다. 미국의 패권을 흔드는 중국을 경험하고 한국은 어떻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됐다. 중국은 정직하게 절망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다. 이제 새로운 길이 열렸고 중국은 앞으로 걸어가고 있다. 중국 여행을 마치고 인도에 도착하자 또 다른 길이 열렸다. 정직히 절망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인도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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