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에게

by 서장석


컴퓨터 부팅을 하면서 중앙 상단에 뜬 네 얼굴을 보았다.

빨간색과 흰색이 교차로 섞인 줄무늬 옷을 입고 식판의 밥을 먹고 있는 네 모습이 확대되면서 너에 대한 광고 문구가 눈에 띄었다. “보호시설 선생님을 엄마라 부르는 두 살 세아”란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문구를 보는 순간 명치끝에서 통증이 시작되었고, 이내 가슴 전체로 아픔이 번져 나갔다. 극심한 흉통으로 인해 화면을 다른 곳으로 돌려 겨우 숨을 쉴 수 있었다. 그게 다였다. 그리곤 잊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널 머릿속에서 지운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갑자기 네 얼굴이 떠오르며 엄마란 단어가 강렬하게 머릿속을 채워지기 시작했다. 자지러지게 놀라 시원한 물을 한 그릇하고 나서야 가슴을 달랠 수 있었다. 이 나이 먹도록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놀라움이 몇 차례 몸에서 번지는 순간 네게 무언가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네 모습에서 어릴 적 내 딸의 모습이 실루엣처럼 다가왔고, 엄마가 누구인지 모른 채 네게 음식을 주는 분에게 엄마란 고유 명사를 부르는 네 모습과 환경이 안타까워 명치끝이 먹먹해져 왔다.

다음에서 네이버에서 네 이름을 알고자 검색창에 입력하고 검색하였으나 알 수가 없었다.

너를 세상에 알린 단체의 이름을 치고 검색하였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단체 홈페이지에서 이것저것을 알아보던 중 단체 상담자로부터 느닷없이 전화를 받고서야 네 이름을 알 수 있었고, 네 근황을 적게나마 알 수 있었다. 상담하는 분과 통화하던 중 네게 직접 도움을 주는 방법은 그리 쉽지 않았고 너와 같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내용을 전달받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일시적 도움과 장기적 도움의 방법을 두고 지금의 내 능력과 소득 수준을 감안하여 결정하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결정하자 네게 진 빚의 일부가 상쇄되는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한편으로 지나친 감상의 결과가 아니었는가 하는 자책도 하게 되었다.

눈을 하늘에 두고 살지 않는 한, 땅에 발 붙이고 사는 인간 세상에는 차마 목불인견의 상황이 항시 널려져 있다. 일부러 보려 하지 않아도 눈에 치이고 귀에 주워 담긴다.

나는 다르다고 그들과 다른 인간이라고 변명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저들과 똑같은 인간이고 한치도 나을 게 없는 속물이다. 끊임없이 탐내고, 더 가지려 하고, 욕심부리며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아니할 때 이윽고 좌절하고야 마는 소인이다. 이런 소인배에게 넌 너의 모습 하나로 잠시나마 날 인간으로 돌아오게 해 주었고 인간일 수 있게 해 주었다.

너뿐 아니라 엄마와 아빠의 보살핌이 결핍된 아이들이 이 땅에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를 생각하니 목울대가 잠겨온다. 모든 아픔과 가난과 불행을 구제할 수 없다 하더라도 눈에 보이거나 혹 보이지 않더라도 작은 성의를 통하여 잠시 잠깐의 아픔일망정 달래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라도 다행한 일이라고 위안 삼고 싶다. 나의 아픔과 통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네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이러한 위선으로 자문자답하며 위안 삼는다.

작고하신 어머님께서 내 젊은 날에 누누이 강조하신 일이었건만 그때는 귓전으로 흘리고, 귓등으로 흘려들었었다. 내 주제에 하잘것없는 소득 가지고 별 신통치 않은 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마뜩지 않았다. 어머니의 수고는 수고고, 당신과 모자지간이지만 행위와 생각마저 같을 필요가 있느냐고 행동하였었다. 배움이 적은 분이셨으나 행위만큼은 당찬 어른이셨다.

당신의 생각과 행위를 자식에게 주입시켜 같이하길 원하셨으나 난 그렇게 하지 못한 칠칠치 못한 아들이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세월이 켜켜이 쌓여갔다. 젊은 날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면서 모나고 뾰족했던 것들이 조금씩 무디어져 갔다. 남에게 무심했던 생각도 안으로 되짚어가면서 그늘을 만들고 쉼을 생각할 줄도 알게 되었다.

그때 바로 너를 만나게 되었고, 네 사연을 읽게 되었고, 처음으로 가슴앓이를 앓게 되었다.

내가 네 장래를 담당해 줄 능력은 없다. 그러나 범상치 아니한 너의 유아기 환경과 무엇인지 모를 네 성장 과정에서의 불편을 네가 알게 되는 날이 반드시 도래할 것이고 그것으로 인한 네 가슴앓이의 흉통이 미리 느껴져 몹시 마음이 무거워진다.

난 네가 가진 일상적이지 아니한 환경을 극복하라는 이야기 하지 못하겠다. 내가 살아오면서

그것을 위로할 아무것도 가진 적이 없었기에 이 부분을 마음속 깊이 우려하는 바이다.

사는 것은 어떻게 하던 살아진다. 그러나 시작부터 평범하지 않은 시간과 환경을 맞이한 너는 또 얼마나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어야 할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하나는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너는 평범함으로 이끌어야 한다. 더 안온하며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아내 어린 네가 지금 웃듯이 그 맑은 웃음을 간직하고 이어 나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커가면서 더 많은 것과 경쟁하고, 부딪혀야 할 것이다. 그때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네가 가진 너의 걸음으로 너만의 세상을 가꾸어 갔으면 좋겠다.

너보다 나이 많은 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정말로 많은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내 마음이 협소하고 옹졸하여 마음조차 너그럽게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부끄러움을 덜고자 쓰는 글은 문자 하나하나마다 부끄럽고 미안함으로 가득 넘쳐난다.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한번 네 얼굴을 보며 네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그리고 작고 아름다운 행복으로 넘쳐나길 빌고 또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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