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가는 길

by 서장석

일주일에 두, 세 번 도서관에 간다.

집을 나서면 길가에 굵은 금강송 십여 그루가 보인다. 대략 높이 15m 정도 지름이 40cm나 되는 나무가 우뚝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지난겨울 혹독한 설화의 흔적을 안고서. 작년 겨울엔 유난히 무거운 눈이 많이 왔다. 다른 나무들은 피해가 덜한데 유독 소나무만 피해가 심해 여기저기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앞에 보이는 나무도 지난겨울 눈에 가지가 부러져 설해목임을 나타내고 있다. 부러진 가지는 수액이 돌지 않아 누렇게 변해있다.

도서관을 가려면 사거리를 두 번 지나야 한다. 시간상으론 왕복 40분 정도 소요되고 걸음 수로는 4,200걸음이 된다. 버스 정류장으로는 두 정류장, 걷기 딱 좋은 거리다.

그러나 요즘같이 더운 한낮에 걷는 건 조금은 무리다. 그래서 난 오후 4시에서 6시 사이에 주로 가는데 그래도 덥다. 가는 길엔 가로수와 아파트 단지 안 나무들이 뒤섞여 터널을 만들어 주고 있다. 가로수는 느티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아파트 단지 안 나무들은 수종이 다양하다. 그중 특히 눈에 띄는 나무는 단연코 전나무다.

전나무가 바늘 같은 잎으로 가로수와 함께 만든 터널은 그늘을 촘촘하게 만들어 놓아 빛 한줄기 샐 일이 없다. 마치 독일의 흑림을 보는 듯하다. 느티나무가 넓적한 잎으로 성기게 만들어 놓은 그늘을 전나무는 가시같이 생긴 잎으로 더 세밀하게 엮어 하늘을 가려 버렸다.

마치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듯이 완벽하게 상대를 껴안고 있다.

도로 왼쪽으로 야트막한 야산이 있다. 얼마 전까지 아카시아가 꽃을 피워내며 향기를 산지사방으로 뿌려대고 동네 벌들의 잔치가 벌어졌었다.

산 아래엔 조그맣고 예쁜 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 OO 성당.

성당 옆으로 심하게 굽은 노송 아래에 동상이 하나 보인다. 궁금하여 안으로 입장, 앞에 놓인 표지석을 들여다보았다. 성 프란치스코란 분이며 얼굴을 약간 위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며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었다. ❝평화를 구하는 기도❞란 글귀가 보인다.

성당에는 건물 다섯 채가 있고 산 아래 성모 마리아상이 보인다. 난 천주교 신자는 아니지만 무언가 엄숙하고 차분한 느낌과 정숙한 아름다움이 있다.

인류사에 무엇인가 남겨 놓는 종교가 좋다. 바티칸 성당이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는 경주 불국사와 토함산의 석굴암이 그런 존재라는 생각이다.

이십여 년 전 유럽 출장 시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보았던 두오모 성당의 아름다움과 안에서 본 엄숙함과 경건함을 잊을 수 없다. 최고의 극찬은 뭐니 뭐니 해도 로마 바티칸 성당일 것이다. 부러웠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남겨준 찬란한 문화유산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모으며 누리는 경제적 이득과 문화적 자부심이 심하게 부러웠었다.

때론 인간적으로 행하지 말아야 할 사건들이 뉴스에 튀어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 저지른 인류 문화유산 파괴 행위를 접했을 때다. 내 것만, 내가 믿는 신앙만이 유일한 것이라 믿는 무지가 벌인 참혹한 파괴 행위다. 반면 튀르키예의 이스탄불을 방문했을 때 소피아 성당에서 문화의 섞임을 보았다. 기존 성당 벽화를 훼손하지 않고 그 위에 아랍어를 적은 표식으로 가림막을 하고 자신들의 종교적 성지로 삼은 모습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의식적이던 그렇지 않던, 파괴 행위보다 보전하고 어울림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진정한 인류애를 가진 시민의 모습이라 생각한다.

잠깐의 상념을 뒤로하고 앞으로 전진, 가다 보면 학교 세 곳이 나오는 데 안화 초, 중, 고가 담장을 맞대고 나란히 있다. 가끔 생각 없이 도서관을 가고자 길을 나섰다가 아이들 하교 시간과 마주칠 때가 있다. 사거리에서 하교하는 아이들과 마주할 때면 엄청난 귀 아픔을 견뎌야 한다. 수업을 끝내고 귀가하면서 내는 소리가 논에서 들리는 개구리울음소리만큼 엄청난 기운으로 다가온다. 직장인들도 출근할 때보다 퇴근할 때가 기분 좋듯이 저 아이들도 그럴 것이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즐거울 것인가. 중학생들의 교복이 더워서 그런지 반바지에 반소매 옷차림으로 시원하게 보인다. 참으로 합리적이다.

우리 땐 무조건 긴바지였는데. 시간이 가고 시대가 변하면서 생각과 사고도 함께 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된다.

학교는 가운데가 고등학교다. 초등학교가 첫 번째고 두 번째가 고등학교고 사거리 바로 앞이 중학교 순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도 깊은 뜻이 있으리라.

고등학교 정문 옆으로 육교가 설치되어 있고 육교를 건너면 공원이 나온다.

병점근린공원. 아담한 정자가 있고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폭포가 있다. 반원형으로 둥글게 만들어서 지붕으로 물을 올리고 자연스럽게 낙하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발상의 전환!

대부분 인공 폭포는 자연 폭포를 모방하여 돌과 나무를 심어 조성하면서 비용이 많이 들게 만들어져 있다. 이곳은 물을 올리고 떨어지는 기능만 추가하여 단출 그 자체다. 그런데도 인위적인데도 오히려 자연스럽다. 아무것도 사족을 붙여 놓지 않았다. 물 떨어지는 위쪽 모습이 궁금하여 육교 위로 올라가 보았다. 방수기능을 하는 우레탄 칠과 나머진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시원하다. 물소리가 바람이 불면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중학생인 듯한 아이가 발을 담그고 있다. 시원하냐고 묻자. ❝네 ❞한다. 시원하게 머물다 땀 식으면 집에 가라 하고 답해 주었다. 공원은 작고 아담하며 안에 ❝꿈의 정원❞이란 팻말과 함께 소박한 정자를 가진 숲을 가지고 있었다. 수국이 한창이다. 백설기처럼 하얀 꽃이 수북이 피어 눈을 씻어 준다.

누군가가 심지 아니한 야생화도 바닥에 자라고 있다. 이름은 모르지만 작고 앙증맞은 꽃이 예쁘다. 꼭 간추린 것만 아름다운 건 아니지 않은가? 함께 해서 더 좋은 것이 있다면 서로 살아 가는데 지장 없다면 더불어 살아야 자연스럽다고 생각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바투 보이는 도서관이 코 앞이다.

자연을 품고 있는 도서관은 늘 보아도 언제 보아도 정겹다.

안에서 책을 보고 있을 우리의 전우들을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긴다.

1층으로 들어갔다. 시원하다.

2025.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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