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닐 직장이 없어진 후 타고 다니던 차가 없어졌다. 기존에 타던 차는 집사람이 타고 다니고 난 당장은 차가 필요 없을 듯하여 구매를 보류하였다. 사실 지금 당장 목돈도 없고······.
직장이 없는 관계로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3월 초부터 시작하였으니 벌써 다섯 달이 넘었다. 집에서 도서관까지 멀지 않아 가방을 둘러메고 걸어가고, 걸어오는 것에 지장이 없었으나 날이 더워지면서 꾀가 나기 시작하였다. 전략을 수정. 오후 늦게 도서관 가는 걸로 바꾸었다. 그래도 덥다.
그래서 집사람이 오면 차를 타고 가서 책을 빌려오는 것으로 변경하였다. 이것도 주차 문제에 봉착하여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투덜투덜하다가 아이디어가 반짝하고 떠올랐다. 자전거였다. 그래 자전거가 있으면 모든 게 해결되는 거 아닌가? 아파트 자전거 보관소에 자물쇠로 채워 놓지 않은 자전거를 본 것이 생각났다. 다음 날 오후에 주인이 누군지 모르는 자전거를 빌려 타고 도서관에 갔다.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생각이 났다. 책을 반납하고 빌리는 시간 동안 자물쇠를 채워 놓아야 하는데 그렇게 할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잠깐의 고민 끝에 입구에서 최대로 가까운 곳에 세워 놓고 볼일을 보러 안으로 들어갔다. 찜찜한 기분을 남겨두고······.
반납과 대출을 마치고 나와 보니 자전거는 놓아둔 장소에 그대로 점잖게 있었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집으로 왔다. 집사람에게 도서관 갈 때 너무 더워 자전거 한 대 사야겠다고 말했다.
아내가 말한다. 김서방 집에 자전거가 두 대 있으니 한 대 달라고 해봐야겠다고. 그러라고 하고. 다음 날 오후가 되어 아내로부터 전화가 온다. 사위하고 통화 좀 해보란다. 사위 왈 자기 자전거는 아버님이 타실 수 없단다. 자신에게 특화되게 맞춘 것이어서 자전거 길이, 높이 페달 전체가 맞지 않는다고 한다. 알았다고 답하고. 당근 앱에서 중고 자전거를 알아봐야겠다고 답해 주었다. 잠시 후 웬걸! 사위로부터 온 카톡을 열어보자 귀엽고 예쁜 자전거 한 대가 보인다. 이건 어떠시냐고 묻는다. 사드리겠단다. 무조건 오케이. 고맙다고 답하고.
자전거를 구매했던 게 언제였던가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기념으로 사주었던 자전거가 처음이었다. 사준 그날 바로 아들이 PC방에 갔다가 자물쇠를 채우지 않아 잃어버리고 집에 와서 어찌할 줄 몰라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으나 어디서 잃어버렸느냐고 묻고, 죽은 자식 불알 만지기 식으로 잃어버린 장소에 갔던 게 기억이 났다.
다행히 아들에게 화를 내거나 야단치지 않았다. 얼굴이 굳어졌던 기억은 난다. (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 아빠가 다시 사줄 테니 잃어버리지 말라고 약속하고 일주일 정도 있다가 다시 사주었던 기억이 있다.
두 번째는 신규 오픈하는 아웃렛 매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 경품 추첨에 당첨되어 자전거를 집으로 가져왔던 게 생각이 났다. 이것은 순전히 딸아이의 공이다. 아이가 자기가 경품권에 이름 쓰고 상자에 넣겠다고 하여 그러라고 했는데 자전거 경품에 당첨된 것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벌써 30년 전 일인데 어제 일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지난 일은 아름답다. 아니면 아름답게 포장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하고 모든 걸 이룬 것처럼 들떠 있던 파릇파릇한 젊은 날이었었다. 그런데 그 일이 세월이 흘러 30년 전 일로 기억되다니.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샤워, 식사하고 외출하려는데 현관에 커다란 택배 상자가 보인다. 사위가 주문한 다음 날 바로 상자가 도착한 것 같았다. 무게가 꽤 나간다. 들지 못하고 질질 끌어 거실로 가져왔다. 칼과 니퍼 등 공구를 챙겨 들고 상자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상자 위를 개봉하니 자전거가 맞다. 들어 올려 바닥에 놓았다. 여러 가지 충격 완화 장치가 보여 니퍼와 도구를 이용해 끊어내고 조립하기 시작하였다. 설명서부터 들여다본다. 나이 먹음에는 장사가 없다. 젊었을 때 같으면 뚝딱뚝딱 설명서 없이도 조립이 가능하였을 텐데 돋보기 없이는 어떤 것도 눈뜬 장애인이 되어 버린다. 조립은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헤드랜턴을 붙이고, 반사판을 앞, 뒤로 달고 따릉이를 달았다. 완성된 후 내게로 와 가족이 된 녀석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였다.
이름은 TITICACA, 하얀 피부에 날렵한 몸매를 가졌고, 바퀴는 흙을 한 움큼 집어 뒤로 내던지며, 앞으로 튀어 나갈 것 같은 힘차고 우악스러운 요철을 가졌다. 녀석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제 몸을 반으로 접어 공간을 적게 차지할 수 있는 변신이 가능하단 점이다. 30분 정도 걸려 완성하고 사진을 찍었다. 가족 단톡방에 완성품 사진을 올려놓고 사위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누구에겐가 선물을 받아 본 것이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생일날에도 밥 먹고 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고 보면 선물을 받는 것이 생소한 일이기는 하다. 더군다나 필요한 것을 받고 보니 고맙다. 감사하다. 내일은 자식들 오라고 해서 저녁이나 먹어야겠다. 자주 가는 갈매기살 맛있는 식당에 가서 반주도 같이하면서 식사할 계획을 잡았다. 브런치 스토리에 작가 승인도 났겠다 겸사겸사 한턱내야겠다. 손자 녀석의 자전거 타는 솜씨가 엄청나게 늘었다고 집사람이 전해준다. 손자에게 전화해서 내일 올 때 자전거를 가져오라고 해야겠다. 경기도 농업기술원 들녘까지 손자와 달려봐야겠다. 이래저래 내일은 바쁘겠다.
2025.0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