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바깥일이 있어 셔츠와 바지를 입고 서랍에서 양말을 꺼내 신었다. 그런데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이 삐죽 내밀며 인사를 한다. 순간 아이고 마누라 했다.
나는 발가락 중 검지 발가락이 유난히 길어 양말을 신으면 검지 발가락에 구멍이 났다. 신발을 신어도 꼭 맞는 것을 신으면 검지 발가락에 멍이 들어 한참 고생해야 했다. 그래서 오 밀리미터는 더 큰 신발을 신어야 두 번째 발가락에 줄 수 있는 상처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이런 선택이 항상 득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피해는 신발이 커서 발이 신발 안에서 놀아 발뒤꿈치가 까지거나 아님, 양말과의 분리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구멍 난 양말을 그냥 신을 수 없어 양말을 벗어 들고 돋보기를 꼈다. 바늘구멍에 실을 끼워 바느질을 시작했다. 홈질과 감침질로 마감을 하니 큰 구멍이 메워졌다. 마누라에게 양말에 구멍이 나서 바느질하여 메웠다고 이야기하자 ❛버리면 되지 궁상떤다❜고 한 소릴 한다.
오랫동안 이런 사실조차 잊고 살다가 구멍 난 양말을 보니 옛날 생각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적부터 이불 바느질과 우산 바느질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협립 우산이란 상호를 달고 시민들에게 고급 우산을 판매하던 회사가 있었다. 또 우산 회사로부터 하청 받아 완성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자영업자들도 있었다. 내가 살던 동네에도 그런 집이 있었는데 우린 통상 그 집을 우산 집이라 불렀다. 어머니는 그 집으로부터 우산 살과 방수천을 받아 오셨고, 우산대에 방수천을 씌우고 각각의 우산살에다 천을 고정하는 바느질을 하셨다. 워낙 바느질 솜씨가 좋고 꼼꼼하신 성격에 다른 사람으로부터 지적당하는 걸 못 견뎌하셨던 당신의 성격 탓에, 바느질을 다시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는 다들 가난하던 시절이어서 물건을 아끼고 아끼면서 살았던 시기였다. 나의 기억으로는 구멍 나거나, 찢어지거나 한 것들은 무조건 바늘로 깁고 꿰매고 했던 걸로 기억된다. 심지어 초등학생 때 신었던 깜장 고무신이 찢어지면 그것도 꿰매 신었던 걸로 머릿속에 있다. 다른 일화는 양은 냄비 바닥에 구멍이 나면 그걸 알루미늄 리벳으로 메우고 수리하던 수선공이 있었다. 수선공에게 바닥을 때우면 상당히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닌 그 돈도 아까워 연탄불에 비닐을 녹여 구멍을 메워 사용했었다. 지금으로 보면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지만 그땐 그렇게 해서 먹고살았다. 환경호르몬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으니까.
1980년대 군대 생활했던 난 군 전체에서 한 달에 하루를 정기적으로 정해 놓고 보급품 수선을 했던 날이 기억난다. 모든 훈련을 멈추고 총기를 닦고 수리하고, 피복, 양말, 속내의 등을 꿰매거나 수선하는 날이었다. 내가 군 생활할 때는 속옷을 광목 팬티로 지급했는데 땀이 차거나 격한 몸놀림을 하면 팬티가 찢어지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일과 후 속옷을 수선하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난 바늘귀에 실을 집어넣고 당겨 일정한 길이를 만들고, 이빨로 실을 끊고, 끝을 말아 매듭을 만든 후에 찢어진 곳을 보며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다. 그렇게 정성 들여 수선한 속옷을 세탁장에서 비누를 묻혀 빨고 건조대에 널었다.
팬티와 러닝셔츠에 대문짝만 하게 이름을 적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왜냐하면 선임병이 속옷을 가져가서 입는 것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기에. 내 빨래를 잃어버렸다고 이야기할 곳도 없었거니와 이야기한들 돌아오는 건 욕설과 군기가 빠졌다고 기합이나 받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빨래가 완전히 마를 때쯤 되면 건조대에 올라가 보초를 선다. 그래야 내 속옷을 사수할 수 있기 때문에.
내 이런 바느질에 대한 사랑은 제대 후에도 이어졌다.
바느질 중에 제일 어려운 건 양복바지 밑단 바느질이다. 물론 나와 같은 아마추어의 경우에. 이유는 바느질 자국이 바지 밖으로 표시가 나면 안 되기에. 가장 작은 바늘 귓구멍에 가는 실을 꿰고, 올려붙인 단은 깊이 넣고, 바지 안쪽은 반만 넣어 엇대어 바느질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세대는 물질적 풍요와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돈의 가치를 풍족과, 많이 얻음에서 찾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었다. 일례로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변을 잠깐만 돌아다녀 보면 어린아이들 씽씽이가 여기저기 처박혀 있고,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자전거 또한 버려진 것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만 전부가 아니다. 먹다 버린 빵조각과 과자 부스러기는 새들의 먹이가 된 지 오래되었다. 소비하고, 빨리 싫증 내고, 유행을 찾아다님으로써, 그것이 개성으로 인정받는 문화가 정착되었기 때문이란 생각이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고 단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래야 꼰대 소리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우리 세대가 궁상의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한다. 부모님 사신 세월은 육이오 전쟁 중 입에 풀칠하는 게 우선인 시기였고, 우린 이후에 근검절약이 미덕인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은 누릴 것들이 있으면 아낌없이 누리고 살려고 한다. 그래도 절약 근성은 남아서 점심값으로 만 원이 넘으면 심히 부담스럽다. 어쩌다 한번 특식으로야 괜찮겠지만.
세대 간 생각의 차이로 인해, 서로 단절을 불러일으킨 것 같아 몹시 속이 상한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인 상부상조와 두레 정신도 퇴색되어 가고 있어 안타깝다.
그래도 옛날 생각을 가진 세대와 현대식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와 사고의 절충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우선 나이 든 세대부터 스스럼없이 자신을 낮추고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가야 한다. 또한 자신이 살면서 평생을 통해 얻은 지식과 지혜를 나누며 생활해야 한다.
지금부터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하자. 당연시하던 것부터 내려놓고 젊은 세대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발상을 지워 나가되, 무절제하게 사용하는 것들에 대한 충고는 하자. 소비만이 절대 선이 아님을 말해 주어야 한다.
작은 실천이라도 수행해야 한다. 유한한 자원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유산임을 자각하고, 잘 설득하고 이야기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자.
양말 구멍을 꿰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