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행거에는 많은 옷이 걸려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옷이 많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좁은 고시텔 방을 가득 채운다. 행거에는 롱패딩부터 여름에 자주 던 원피스까지 계절과 상관없이 모든 옷이 상시 대기 중이다. 장롱이 있었다면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처럼 , 뙤약볕을 걷다가 그늘에서 잠깐 쉬는 인간처럼 옷들도 잠시 쉴 수 있을텐데. 다 요즘 상태가 안좋다는 이유로 옷걸이에도 걸어주지 않는 주인 덕에 열심히 고생중인 내 옷들. 옷을 대충 쌓아둔 것은 내가 한 일인데 퇴근하고 방에 들어갈때마다 인상을 찌푸리고 한숨을 쉰다. 어느 날은 그 옷들중에 하나를 빼려고 하다가 나머지 옷들이 바닥으로 다 떨어졌다. 짜증을 내면서 침대에 누워 옷이 다 떨어지고 정리가 잘된 것처럼 보이는 행거를 봤다. "깔끔한데?" 생각하곤 옷을 다 주워 빨래통에 넣었다. 다시 침대에 엎드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너무 많은 것이 쌓인 것은 아닐까, 내가 쌓은 것은 아닐까, 옷무더기를 들 듯 이 우울을 들고 일어날 것도 내 몫이겠구나 생각하다 잠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