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글방] 36. 우리동네
트위터를 다시 시작하게 되면서 동네에서 더 재밌게 살고 있다. 같이 술먹는 친구들, 뜨개모임, 맛있는 곳 같이 가는 번개, 변해가는 은평구를 찍는 은평필름, 그리고 지금 글쓰는 이곳까지.
작년 여름에 트위터를 다시 시작했는데 벌써 또 여름이 왔다. 겨울에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이 동네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을 치르고 친구랑 속초를 갔다가 서울에 들리지 않고 둘째이모가 있는 여수로 내려가서 며칠을 지냈지만 종착지는 정해져 있었다.
용산역에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 지옥 같았다. 토할 것 같고 누가 나를 달려오는 열차로 밀어서 죽여줬으면 좋겠다가도 가서 현실을 마주해야 살 수 있다며 마음을 꾹꾹 다져 새절역에 도착했다. 마을버스 08-1번이 지나간다. 집 앞에 바로 내려주는 버스를 다 지나쳐 보내며 정자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모든게 익숙해서 역겨웠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웃고 말하고 타고 내리며 나를 지나갔다.
집이라고 말하기도 싫은 고시텔 방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문을 열었는데 엄마 영정사진이 나한테 말을 걸면 어쩌지. 왜 엄마는 사진이지. 엄마한테 연락해볼까. 아, 엄마랑 연락 못하지. 씨발 진짜 짜증나. 문을 열고 엄마를 부르며 지겹고 짜증나고 개같고 더럽다 왜 우리는 아직도 여기에 사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지만 그렇게 죽으면 다냐고.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서울로 올라왔을거 아니냐고. 쪽방으로 시작해 고시텔로 죽으니까 속이 시원하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웃고 술 마시고 놀고 자전거 타고 동네를 기록하다가 갑자기, 정말 갑자기 운다. 마음이 찢어지는 소리가 난다. 혼자 외롭지 말라고 동네 친구들을 알게했냐며 이불에 얼굴을 파묻는다. 우리동네였다가 아무곳도 아니였다가.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없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