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공부 4년, 나의 20억 달성기 1화
아버지의 회사는 우리 가족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4인 가족인 우리 가족을 위해 리비아라는 아프리카의 가장 덥고 불안한 독재자의 나라에서 약 20년 간 홀로 근무를 하셨다. 5달 동안 리비아에서 근무하고 3주 정도 한국에 머무르는 일정으로 우리의 방학에 맞춰 아버지께서는 휴가를 나오셨다.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온 가족이 1992년식 르망을 타고 거제도에서 문경, 월악산을 거쳐 부천인 집으로 1주일 간의 일정을 거친 가족여행이 문득 생각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MBTI는 엄청난 J였던 것 같다.
여름방학 맞이 3주 휴가를 나오기 전부터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휴가 몇 달 전부터 생각한 일정에 맞춰 여행을 떠나야 했고 우린 그게 즐거웠다.
비가 많이 오거나 가족 중 누군가의 건강으로 일정대로 여행을 떠나지 못하면 아버지께서는 집 베란다에 나가서 꽤 오랫동안 담배를 태우셨다.
나는 그 시간이 그렇게 소중한지 몰랐다.
아버지께서는 5개월 간 이 날만 생각했기에 생각한 일정을 해내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으신 모양이다.
하루는 아버지의 휴가 기간 중 먼 친척의 상으로 인해 인천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1992년식 르망을 타고 인천에 간다는 사실에 기뻤다.
아버지는 나와 함께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에 나쁘지 않은 하루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날따라 인천에서 부천으로 돌아오는 길이 얼마나 막혔는지 우리의 1992년식 르망은 아버지의 조작을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앞의 차를 받아버리고 말았다. 100% 아버지 과실이었기에 아버지 한 달 월급에 달하는 수리비를 물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또’ 엄청 싸우셨다.
돌이켜 보면 나의 방학, 아버지의 휴가 기간엔 아버지와 어머니가 참 많이 싸우셨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내가 봤을 때도 주로 싸우던 원인은 ‘돈’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가 약속을 나갈 때 들고나가는 그 몇 만 원이 아까웠고 경조사 비용이 아깝다고 했다.
아버지께서는 몇 달에 한번 들어와 친구들을 만나고 회포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며 그 시간을 통해 들어가는 돈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매 방학기간엔 그 싸움이 벌어졌다.
부부 사이엔 싸우는 게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나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들어차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중에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30년 동안 한국과 리비아의 건설현장을 오가며 직장생활을 하셨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나와 동생의 등록금을 어떻게든 마무리 지으려 회사에서 버티셨다.
당시 나의 동기들은 대부분 남자라면 대부분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던 시기였지만 나도 한 학기라도 더 버티려 3학년 1학기까지 혼자 다니며 아버지의 회사 등록금 찬스를 받으려 애썼다.
그렇게 조금 늦게 간 군대, 상병쯤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는 더 이상 회사에서 버틸 수 없어 퇴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우리 가족에게 전하셨다.
대출 없이 경기도 부천 외곽의 90년대식 48평 집, 현금 약 1억 원,
1992년식 르망, 50대 후반의 부모님, 20대 초반의 나와 내 동생
그게 우리 집 전재산이었다.
아버지께서는 퇴직 후 다시 직장을 알아보려 주택관리사 자격증을 준비하거나 회사 이력서를 작성하곤 하셨다.
하루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노트북에 워드프로그램을 설치해 달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바탕화면에 있던 몇 개의 이력서가 있었고 나는 그 이력서의 첫 문장을 보고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1956년 9월 22일 인천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를 졸업 후
동아건설에서 30년 간 재직하였고 리비아 대수로공사 기술직을 역임하였습니다.
나이는 많지만 몸은 건강합니다. 참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 있습니다.’ (중략)
아버지의 회사는 우리 가족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회사도 나의 가족을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아래의 질문을 드리고 싶다.
10년 후의 나는 얼마를 벌었으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나도 이 글을 쓰기 전까지 진지하게 그려본 적이 없었다.
아마 우리 아버지도 없었을 것이다.
정말 무섭게도 나의 회사와 일터에서 주는 월급은 나의 60살 이후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당신의 자녀 인생은 더욱더 그럴 것이다.
나는 4년 전 우연히 서점에서 만난 책 한 권 덕분에 이 무서운 사실을 깨달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인생을 바꾸는 노력을 해왔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방법을 알아냈다.
나는 앞으로 6년 간 지금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내 인생을 바꾸려 노력할 것이다.
지금 당장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했기에 늦지 않았다는 생각을 했는지 차근차근 풀어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