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진심

(단편소설) 솔양 했지만 사랑해! (15화)

by 서기선

# 아빠 시선


에이미에게 어떤 말이든 해야만 했다.

어떤 이야기가 됐든 어떻게 풀어가야 하든 지금이 적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두서없이 마구 생각나는 데로 이야기했고 하다 보니 하나둘 정리가 되는듯했다.

다행히 두서없는 이야기들 속에서도 에이미는 내 진심을 알아주었다.

한참 대화가 이어지고 있을 무렵 비숍이 내 머리를 툭 하고 쳤다.

참았다.

분위기가 무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죽거리며 또 한 번 툭 하고 치는 것이다.

멈춰야 했다.

더는 계속되면 힘들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에이미의 눈치를 살폈다.

에이미가 내 눈을 보며 고개를 절레거렸다. 그러더니 비숍에게 “형! 하지 마! 그러면 아빠가 아파해 아빠가 아팠으면 좋겠어?”하며 충고를 하자 비숍이 “아냐 아빠 아프면 싫어”하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비숍에게 있어 에이미는 동생 이전에 친구이고 좋은 선생님이기도 했다.

어느덧 에이미는 가족의 중심이 되어있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다시 이야기를 이어 가려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비숍 덕에 생긴 잠깐의 침묵을 틈타 에이미가 이야기를 가로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 손님이 찾아왔다며 친모냐고 물어보았지만, 아니라고 했다.

그건 사실이었다.

에이미의 친부 친모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보육원에서 에이미를 처음 만나는 날 그 아이의 고모가 함께 있었는데 그분으로부터 직접 들었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대부분 보육원엔 여러 가지 사연으로 홀로 된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은 스스로 버려졌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 아이들은 아직 자신의 인연을 만나지 못했을 뿐 버려진 것이 아니다.

인연이라는 것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살아가면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만들 수 있다는 건 반대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건 세상 사람 누구나 똑같다.

누군가가 그랬다. 악연도 인연이라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악연도 인연도 만들어 간다.

원하든 원치 않든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것처럼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다.

아직 인연을 만나지 못했을 뿐 없는 것은 아니다.

설령 없다고 하더라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 없으면 만들면 된다.

내가 생각하는 보육원이란 아직 어려서 스스로 인연을 만들 수 없는 아이들이 타인에 의해 인연이 만들어지거나 스스로 인연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잠시 머무는 곳, 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에이미 역시 어려서 인연을 만나지 못했던 그런 흔한 보육원 아이들 중 한 명이었다.

고모라는 인연이 있기는 했지만, 관계를 지속하기엔 어려운 상황이라 나에게 기회가 온 것이다.

특히 에이미에게 끌리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에이미 역시 몹시 어렵게 얻어진 아이였다고 했다.

첫째 아들 비숍처럼 말이다.

우리 부부가 비숍을 처음 선물 받았을 때의 감사함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전부를 얻은 듯한 기쁨이었는데 에이미 역시 그런 감사함과 기쁨의 축복 속에서 태어났다고 하니 더욱 마음이 움직였었다.

입양 당시 고모가 우리 부부에게 한 번씩 만나봐도 되겠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당연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언젠가 이야기할 것이고 그 이전이라도 언제든 환영한다고 흔쾌히 허락하였기에 에이미의 물음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다만 생부 생모의 죽음을 이야기할 때는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오히려 에이미가 우리 부부를 위로해 주었다.

부끄럽게도 말이다.

오히려 유연한 모습의 에이미를 보면서 안도의 마음이 잠시 들었었지만, 그 뒤로 부끄러움과 존경심마저 교차했다.

더 이상의 위로는 필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다만 혼란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한 시간은 필요해 보였다.

가령 고모와의 관계유지라던가 앞으로의 계획 같은 그런 것들 말이다.

어떻게 이런 것들을 풀어야 할지 나 역시 겪어보지 못했던 부분이라 어떠한 조언도 할 수 없었다.

이제 우리 가족은 앞으로의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비숍과 에이미 사이로 따스한 온기가 흐리고 있었고 몸도 마음도 녹아내리는 듯했다.
멀리 빛나는 햇살들은 자작나무 사이로 우리 가족을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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