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과 고뇌 속에서의 따뜻한 손길
내가 만난 독고 노인에겐 시간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의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체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스스로 포기한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혼자서 사는 노인들은 공간은 언제나 고요했으며 마치 갇혀있는 듯 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시간은 어느 작가의 표현처럼 한 뼘씩 흐르는 느낌이었고 차가웠다. 하지만 P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들어서면서 그 안에서도 작은 따스함이 흘러나왔다.
이전엔 그마저도 없었지만,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오신 후 새롭게 느껴지는 온기였다. 하지만 어르신은 아직 온기를 맞이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어쩌면 낯설다는 이유로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 처음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맞이하시는 어르신이 느끼는 감정이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처음의 차가움은 사라지고 따스함만 남는다.
A 어르신과의 만남도 그랬다.
[선생님 들어오세요.] 센터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밖에 서 계신 선생님을 불러들였다.
P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와, 어르신 곁에 다가섰다. [어르신 처음 뵙겠습니다] 하며 어르신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낯선 눈동자가 다가오자, 고요했던 바다가 크게 움직였다.
선생님은 잠시 바다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며 그 눈동자 속에 비치는 자신이 마주할 깊고 넓은 하지만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르신 어깨가 많이 올라와있는데... 아프지 않으세요? 긴장하셔서 그런건가?... 어르신 제가 잠시 만져볼게요! 불편하면 말씀하세요] 어르신은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물음에 말과 행동이 따로 놀았다. 입으로는 그래 알았다 했지만, 몸은 오히려 이전보다 더 경직되고 있었다.
[어르신 긴장하지 마세요!] 선생님은 섬세한 손길로 고통을 달래주었다. 가벼운 마사지였지만, 숙련된 선생님의 섬세한 손길은 충분히 마음을 움직일 만했다.
그렇다고 숙련된 손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손길에는 사랑과 이해가 담겨있어서, 어르신의 고독한 마음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센터장이 돌아간 후 선생님과 어르신이 함께할 시간이 비로소 만들어졌고 이번엔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책을 어르신에게 가져와 읽어 주었다.
짧은 시집이나 에세이쯤일 거로 생각했지만, 사뭇 다른 이야기였다. 노인의 삶과 고난, 희망이 담긴 이야기가 스며있는 책이었는데 책 속의 글자들이 마치 어르신의 마음을 감싸 안으며, 함께 여행하는 듯한 기분을 안겨 주었다.
비교적 짧게 읽어주었지만, 충분히 자신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지 어르신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보호사는 어르신을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며 자기 손가방을 뒤지기 시작했다. 검은색 민무늬 가방은 선생님을 닮아 크지 않고 아담했다. 크지 않은 가방이었지만 무엇이 들었는지 유난히 배가 불러 있었고 그곳에서 선생님은 작은 화분 하나를 들어 보였다. 사실 센터장이 어르신 집을 나서면서 준비한 작은 이벤트화분이었지만, 자신을 감추고 선생님 이 준비한 것인 양 건네주라고 시켰던 그 화분이었다. 화분을 빼고 나니 가방은 본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갔다. [아버님!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 어느새 아버님이라 부르고 있지만, 어르신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뻤다. 마치 가족이 생긴 듯했기 때문이다. [이게 뭐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며 물어본 말 이었다. [장미 허브라고 해요, 향이 너무 좋아서 아버님에게 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의 손을 잡고 꽃을 쓰다듬듯 꽃잎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손바닥을 어르신 코에 갖다 대며 향을 맡아보게 했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로운 꽃향기가 머릿속까지 맑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꽃을 흔들며 어르신의 곁으로 한 발 더 다가가선 선생님은 다가선 걸음만큼 어르신의 마음의 거리도 좁혀졌다. 그리고 꽃 냄새와 함께 아름다운 선생님의 마음도 함께 전해졌다. [어르신 머리맡에 둘께요] 어르신은 꽃에 손을 대며, 마치 영혼의 위로가 속삭이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고마워요.] 흔히 사용하는 말 이었지만, 어르신은 고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 선생님과 어르신의 만남이 조금은 어색했지만, 한동안 말씀이 없던 어르신께서 비록 고맙다는 말과 이게 뭐요? 라는 짧은 물음이었지만 변화가 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제발 이들의 만남이 내가 생각하는 그곳까지 이어지길 바라본다. 스스로 포기한 삶을 사는 어두운 세상의 사람들은 어쩌면 소통하고 싶지만, 자신의 처지를 지나치게 비관한 나머지 온기마저 밀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처음의 온기를 전해주는 것 그것은 현장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일구어낸 특별한 가치일 것이다. 그들의 진정성 있는 손길은 어쩌면 생의 끝자락에 서 있는 그들을 되돌리는 생명의 손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