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의 또 다른 가족
# 요양보호사의 또 다른 가족
공단을 가로질러 골목길을 들어섰을 때 익숙한 모습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누구지? 어디서 본 얼굴인데….] 옆에 타고 있던 센터장의 시선을 느낄 무렵 지난달 우리를 힘들게 만들었던 JS 어머님과 곁을 지키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르며 생각이 멈췄다.
[아~ B 쌤이구나!] [무슨 말이야.? B 쌤이왜?] [조금 전 지나간 사람 B 선생님이라고]
내 말에 화들짝 놀란 센터장이 고함치듯 놀라며 급히 차를 돌리라고 했다.
[왜? 무슨 일인데?] [지금 시장에서 선생님을 만나면 안 되지! 근무 시간인데 근무지 이탈이잖아! 확인해 봐야겠어] [아~! 그렇네! 반가운 마음에 잠시 잊고 있었네!] 요양보호사의 근무는 수급자 어르신의 안위를 책임지는 직업이라 대상자의 곁을 벗어나면 안 된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불문율에 가까운 일이었다.
잠시 후 오던 길을 되돌아 선생님을 다시 마주했을 때 선생님의 손에 장바구니가 들려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할 수 있었다.
[쌤!] [센터장님!] [어딜 다녀오십니까?] [엄마가 감자 좀 사 오라고 하셔서 감자 좀 샀어요. 그런데 어딜 가세요?] [선생님 보고 뒤따라왔어요. 이 시간에 시장에서 볼 얼굴은 아닌데 싶어서요.] [아이고 제가 하루 이틀 일 하는 것도 아닌데 설마요 하하하]
선생님의 호탕한 웃음도 좋았지만, 엄마가 라는 표현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르신의 처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우리는 엄마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선생님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JS 어르신을 처음 만났을 때 한 평 남짓 작은방에 등을 켜지 않으면 빛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어두운 방에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는 빛만으로 생활하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소리 없이 화면만 움직이던 텔레비전을 의미 없이 바라보던 JS 어르신은 가족이 없다.
처음부터 없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본인의 거친 성격 탓에 남아있던 친구도 가족도 모두 곁을 떠났고 시간이 흘러 더는 본인도, 곁을 줬던 가족들도 생사조차 확인할 길 없는 처지였다.
그 무렵 만났던 선생님이 B 선생님이었다.
몇 번의 요양보호사가 바뀌는 동안 JS 어르신의 남다른 거친 성격을 알게 되었다.
욕설은 기본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토라져 말도 하지 않으셨으며, 더러는 얼마 남아있지 않은 집기류를 집어던지기도 하신다고 곁을 거두어들인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증언으로 알 수 있었다.
B 선생님을 JS에 소개해 드리고 사흘이 지나던 어느 날 B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었다.
벌써 여러 번 곁을 거둬들였던 선생님들이 계셨기에 휴대전화의 발신 번호만으로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른 선생님의 반응에 고마움과 안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센터장님! JS 어르신 휠체어 주문 좀 해주세요.] [예? 휠체어요? 필요하다고 하시던가요?]
[아니요! 싫다고 하시는데 그렇다고 가만 보고만 있을 수 있나요. 모시고 나가려고요] [선생님! 혹시 어머님이 욕 안 하시던가요?] [하하하! 하시지요. 휴지도 집어던지고 그러세요.] [선생님 괜찮겠어요?] [하하하 상관없어요. 우리 어머니도 그러셨어요. 오히려 우리 엄마 같아서 좋은데요!] [그래도 조심하세요! 휠체어는 센터에서 무상으로 지원해드릴게요.]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가 저 다칠까 봐 휴지 같은 것만 던져요. 너무 귀엽지요! 하하하] 이런 게 인연이라 하는 건가? 아니면 선생님의 mental 좋으신 건가? 센터장과 내가 서로를 바라보며 잠시 뜸 들이는 사이를 비집고 JS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망할 년! 뭐라고 씨불이고 있나?] [엄마 흉봤다 왜!] [지랄한다. 망할 년!] [센터장님 끊어요.]
요양보호사는 하루 최대 8시간 주 5일 월 40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한다.
물론 특별한 일이 생기면 조금 더 할 수는 있지만 기본이 그렇다.
자신의 곁을 주지 않던 JS가 어느덧 B 선생님을 받아들이신 모양이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전화하신다. 물론 지금은 이해하시지만, 초창기엔 그랬다.
[B가 오늘은 안 오네? 왜 안 오는 거야?] [주말에는 안 가요 어머님] [망할 년 주말에 꽃구경 갈라했드만 ...] [아~ 그러셨구나. 월요일에 가세요. 어머님] [주말에 가야 사람도 구경하고 그카지... 알았소] 집 밖을 나가지 않겠다던 JS가 자진해서 나가겠다는 말은 엄청난 변화였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B 선생님이 JS를 대할 때 가끔이지만 반말을 섞어가며 이야기하시는 걸 들었다.
분명 지적사항이었지만, 지적할 수 없었다.
하는 쪽도 듣는 쪽도 합이 워낙 좋아서 마치 가족 간의 대화같이 친근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어르신의 망할 년엔 亡이 존재하지 않았고 지랄하네. 에도 지랄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선생님의 언어에도 마찬가지였다.
운동 안 하면 오지 않겠다는 말도 당신 욕 하고 있다는 말도 모두 거짓이었기 때문이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저들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JS에게 가족이 되어준 선생님과 당신의 곁을 내어준 JS 모두의 안녕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