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벌어지는 요양보호사의 실제사례

리얼한 현장의 목소리를 담다.

by 서기선

제목 : 현장에서 벌어지는 요양보호사의 실제사례


소제 : 리얼한 현장의 목소리


소개 : 요양보호사를 준비 중이거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요양보호사님은 물론이고 관련업을 하고 계시는 분들의 길라잡이가 되기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사례별로 담아보았습니다.

미약하지만 도움이 되길 바라봅니다.


목차 :


# 성폭력에 노출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2


# 요양보호사는 가정부가 아닙니다.( 1 )...................... 3


# 요양보호사는 가정부가 아닙니다.( 2 )...................... 4


# 섬세함의 승리..................................................... 5


# 긍정의 힘........................................................... 8


#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본인의 quality가 달라져요...... 9


# 해고의 사유........................................................ 10


# 신 고려장.......................................................... 12



# 성폭력에 노출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으로 성폭력이 있다.

얼마 전 들어온 남자 어르신을 두고 깊은 논의 끝에 결국 돌봄 포기를 선언하였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야릇한 눈빛이 마치 자신을 성적으로 보는 듯하다며 거부하신 선생님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벌써 다섯 분의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바꾸셨던 할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요구사항은 안마해 달라는 것이었는데 단순히 안마라고 하면 딱히 부담스럽지는 않았겠지만 분명 서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그동안 그만두신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짐작할 수 있었다.

남자인 내가 듣기에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몇 있었는데, 가령 손 마사지를 해달라고 말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냐면 보통 안마라고 하면 등이나 어깨 혹은 무릎 등 혼자의 힘으로 하기 힘든 그런 곳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요구일 텐데 손이라면 자신이 충분히 가능한 부위였기 때문이었다.

또 증언에 따르면 슬쩍슬쩍 기대거나 우연을 가장한 신체접촉을 자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는 피가 거꾸로 쏠리는 듯 화가 나기도 했다.

그만두신 선생님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몇 번이고 물어보았지만 한 분을 제외하고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분의 이야기와 관리차원에서 현장방문을 하셨던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의견도 같았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을 움직였던 이야기는 그곳에 새로운 요양보호사님을 소개할 때마다 마치 자신이 포주가 된듯한 느낌이 든다고 이야기한 센터장의 말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 그러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해 봤자 잡아떼면 그만일 테고 이래저래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국 센터에서 할 수 있는 건 남자 어르신 돌봄 전 일종의 성폭력에 관한 각서를 받는 것 말고는 딱히 도움이 될만한 것이 없었다.

센터 자체교육을 통해 도출된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여성가족부에서 운영하는 성범죄자 알림e이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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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e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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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알림e 어플리케이션


애플리케이션을 켜 보면 자신의 주변에 성범죄자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어떠한 범죄기록이 있는지 알 수 있었고 우리는 다음의 회의 때 모든 요양보호사 선생님에게 해당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렇듯 현장의 어르신들을 돌보는 요양 보하사 선생님은 언제나 성폭력에 대한 노출이 되어있음을 자각하시어 사전에 충분한 검토를 통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완고한 거부행위와 확실한 자기표현 그리고 무엇보다 기관장에게 사례를 충분히 설명하여 이후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수급자 어르신의 의식개선이 최우선이겠지만 말이다.



# 요양보호사는 가정부가 아닙니다.( 1 )


상담을 하다 보면 대부분 어르신은 요양보호사님을 가정부 정도로 인식하시는 분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청소상태를 지적하시거나 만들어주신 음식의 맛이 없다는 등의 이야기가 일반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 항의를 들을 때면 운영자 처지에서 어떻게든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가정부가 아닙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하지만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그러려면 뭐 하러 오느냐는 등의 반응을 보이시는 분이 생각보다 많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당사자인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역시 본인 스스로 가정부처럼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센터에서 정기적인 교육을 하고 있지만, 현장에 반영되기까지 양쪽 모두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센터로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항의전화라 하면 일반적으로 수급자 어르신 혹은 그의 자족이 보편적이겠지만 이번 사례는 달랐다.

항의하고 있는 당사자가 요양보호사 본인이기 때문이었다.

[센터장님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요 그런 건 선생님 몫인데 센터로 연락해서 뭘 어떻게 해달라는 말입니까?] [진짜 너무너무 힘들어요] [선생님! 처지 바꿔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 부모님께서 생선 드시고 싶어 몇 마리 구워두셨는데 기름 튄다고 올케언니가 부모님 타박하면 선생님은 어떻겠어요? 어떻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십니까?] [그렇게 이야기하시면 어쩔 수 없고요 그러면 전 이 집 못하겠어요] [예 그러세요. 다른 선생님 구해볼게요] [허~ 참! 센터장님 너무하신 거 아닌가요? 어떻게 달래줄 생각은 하지 않으시고 바로 사람을 바꾼다고 이야기하시나요?]

[선생님! 화를 참고 있는 건 오히려 제 쪽입니다. 어떻게 생선구워드시는데 기름 튄다고... 생선 드시지 말는 그런 말을 해달라는 말을 하세요 그리고 그만두겠다는 분은 선생님 본인이잖아요]

가끔은 말도 안 되는 항의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대화내용에서 보았듯 5등급 치매 할머님이시고 생선을 무척 좋아하셔서 매일 생선반찬을 드시는 분이었지만, 생선 튀길 때 기름이 가스레인지 주변으로 튄다며 그것을 청소하기 힘드니 수급자 어르신에게 더는 생선 드시지 말라고 전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거세게 항의하는 선생님에게 더욱 강하게 화답하는 센터장의 모습이 과연 잘못된 것일까?

이미 선생님 본인이 스스로 나는 청소하는 사람이다 하는 인식을 하고 계십니다.

사연의 주인공은 심하지 않은 결벽증을 가지고 계신 선생이셨는데 청소가 본인의 장점이었으며, 장점답게 청소 하나는 정말이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그런 분이셨다.

마치 편의점에서나 봄 직한 상표별로 정확히 줄지어 있고 크기별로 나누고 자주 사용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별도로 보관하셨으며 보관용기 또한 같은 것으로 준비시켜 냉장고를 열어보면 언제나 깔끔하였고 청결하였다.

마치 32년 전 점호를 기다리던 내 모습 같기도 했다.

매트리스와 담요 그리고 이불까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일직선으로 각을 세워 정리한 체 일직사관을 기다리는 점호 전 내 모습이 잠시 그려졌다.

선생님의 항의는 푸념이었을 것이다.

센터를 운영하는 운영자가 그걸 모를 리 없다.

다만! 조금 더 발전하길 바라는 센터장의 속내를 정확하게 전달시키지 못한 센터장 본인도 씁쓸해하고 있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가정부가 아닌데도 자꾸만 청소 하나만 고집하는 선생님께서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센터장은 5등급 치매이면 치매 교육도 해드려야 하고 소근육 대근육 운동도 함께하셔야 하는데 온종일 청소만 한다는 선생님 그리고 그런 것이 힘들다고 하시는 선생님께서 딱해 보였지만 그렇게 이야기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다.

방문요양을 하다 보면 정말이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선생님처럼 오로지 청소만 바라는 일도 있다.

그런 곳에 선생님을 보내 드리면 양쪽 모두 만족해하실 것이다.

이를테면 다른 건 필요 없고 무조건 환자 방 청결만 신경을 써 달라는 보호자님 같은 경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 하더라도 결국 가정부와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본인 스스로 프로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과 본인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다.



# 요양보호사는 가정부가 아닙니다. 2



보호자님의 선을 넘는 요구사항

[센터장님 000 보호자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요즘도 집에 계시지요! 요즘은 날이 참 푹해서 좋은데 나들이라도 가 보세요] [예 그래야겠어요 다름 아니라.... 우리 집에 오는 요양보호사 선생님 좀 바꿔 주세요.] [예? 왜요? 무슨 일 있나요?] [문제는 아니고 선생님께서 너무 융통성이 없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하셨나요?] [제가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 뒀거든요 그런데 제 것은 모두 빼 버리고 어머님 빨래만 돌리잖아요] [하하하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융통성이 없는지...]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그런데 보호자님! 본래 요양보호사님은 수급자 어르신 본인만 care 하는 것이 맞아요.

교육원에서도 그렇게 교육을 하고 있답니다 아마 보호자님께서 모르셨나 봅니다.]

[센터장님 세탁기에 있는 빨래 돌릴 때 함께 돌리는 것도 안된단 말인가요? 제가 무리한 부탁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보호자님! 물론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사실 그런 건 경중에 따라 다른 일 이기도 하잖아요 그러니 본래의 취지를 알아달라는 이야기입니다. 빨래가 많았나요?]

[겨울옷 몇 벌 있었지요] [겨울옷이면 부피도 컸겠다가 그렇지요!] [그래서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보호자님 죄송하지만 그런 건 다소 지나친 부탁인 것 같아요 어머님 빨래는 얼마 안 되는데 따님 빨래가 더 많다면 그런 어머님 빨래라고 하기보단 따님의 빨래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요? 말씀드렸듯 요양보호사님은 당사자인 수급자 어르신 본인만 car 하시게 되어있어요. 죄송하지만 따님이 그런 부분은 양보 좀 해 주세요.]

현재 요양보호사로 근무하시는 분이라면, 아마 이런 일 많이 겪어 보셨을 겁니다.

주객 전도된 이런 상황 말입니다.

선생님들뿐 아니라 센터에서도 비슷한 전화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런 항의가 있을 때마다 선생님들뿐 아니라 센터에서도 곤혹스럽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센터에서는 정확한 정보를 알려 드려야 하므로 통화내용처럼 응대합니다.

그러면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셔야 할까요!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 본인의 quality는 본인 스스로 정하는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 섬세함의 승리



앞서 잠시 이야기했듯 선생님 중에는 대접받아가며 근무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못한 예도 있습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본인 스스로 대접받을만한 행동을 했는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굿이 대접받는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리글 (대접받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대접받다 : 상대로부터 마땅한 예의를 갖춘 베풂을 입다.

지금 선생님들은 예의를 갖춘 베풂을 받고 계십니까?

충분히 받고 있다면 축하합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해답을 P 복지사 선생님을 통해 얻었습니다.

방문요양 센 에 근무하시는 복지사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가정방문하십니다.

가정방문을 통해 수급자 어르신의 건강상태와 매달 변화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 센터는 총 다섯 분의 복지사 선생이 근무를 하셨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P 복지사 선생님께서 가장 만족도가 높으셨다.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복지사 선생님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당황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해답을 그쪽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유독 P 복지사님의 만족도가 높아 센터장과 내가 관심을 두고 관찰하기 시작했고 몇 가지 차별화된 선생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진정성이었고 두 번째는 일 자체를 즐기셨으며, 세 번째는 섬세함이었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진정성과 즐기는 마음이었지만,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이미 봉사 정신을 가지고 계신 분들 이어서 세 번째 섬세함에 관하여 이야기해 봅니다.

P 선생님과 요양 1등급 외상상태의 90대 남자 어르신을 찾아갔었다.

할머님을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나간 후였으며, 집안엔 할머님과 요양보호사 그리고 수급자 어르신만이 텅 빈 집을 지키고 계셨다.

우리가 찾아갔을 땐 식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계셨으며 할머님은 거실에서 TV 시청이 한창이었고 홀로 남은 할아버님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계셨다.

이미 우리가 들어올 것을 알고 계셨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미리 현관문을 열어둔 탓에 우리는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다.

열려있던 현관문을 살짝 밀어 안으로 들어간 센터장은 곧장 할아버님께서 계신 곳으로 향했다.

이미 몇 차례 들렸던 가정이라 집안구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센터장의 걸음에 거리낌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집인 양 거침없이 할아버님께서 계신 곳으로 향했다.

들어오는 길에 할머님을 뵙긴 했지만, 데면데면하셨는지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셨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하며 불러보지만 아무런 말씀 없이 눈만 깜박거리셨다.

때 마치 식사준비를 마친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밥상을 들고 할아버님에게 다가와 식사도움을 드리기 위해 다가왔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음식을 드리는 동안 집안 곳곳을 살피던 복지사 선생님의 시선이 식사하고 계시는 할아버님에게 꽂혔다.

[선생님 아버님 머리는 언제 감겨 드리셨어요?] [지난주에 감겨 드렸으니 감을 때 됐어요]

목욕도움 주실 때 감겨 드리면 좋겠지만, 평소에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신다며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감정을 드러내셨다.

[제가 방법 알려 드릴 테니 다음부터는 직접 하세요] [예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수건 3장만 가져다주세요 그리고 혹시 비닐 있을까요?] [비닐은 없고 지난번 센터장님이 주셨던 일회용 우의는 있는데 그러가도 드릴까요?] [아주 좋지요]

와상환자는 시간 대부분을 누워서 생활하신다.

그러다 보니 목욕을 위해 잠시 앉아 계시는 것조차 힘들어하신다.

잠시 허락된 짧은 시간 내에 목욕을 마무리해야 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기게 되고 서두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런 것을 잘 알고 계셨던 P 복지사 선생님께서 누워서 머리를 감기는 법을 알려주셨다.

마치 미용실에서 머리 감듯 말이다.

다행히 아버님의 침대는 프레임 위에 매트리스만 올라간 단순한 구조이며 별도의 머리는 없었고 그렇기에 가능했다.

먼지 침대보를 끌어당겨 아버님을 위쪽으로 밀어 올렸으며 다시 머리 맛에 우의를 깔아 매트리스가 젖지 않도록 하였고 바닥에 떨어질 수 있는 물기를 위해 수건 1장은 준비시킨 뒤 세수 대아에 반쯤 물을 담아 들고 오셨다.

들고 오신 세수 대아를 아버님 머리맡에 두고 마치 어린아이 머리 감기듯 할아버님의 머리를 감기기 시작하셨으며 다행히 아버님 역시 발버둥 치거나 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의 분주한 움직임을 느끼신 할머님이 마침내 TV에서 시선을 떼시고 우리를 힐끗 보시더니 관심을 보이시며 우리 쪽으로 다가와 가만히 들여다보시며 농담을 던지셨다.

[영감 호강하네] [하하하] 머리 감기가 끝나고 복지사님은 손톱과 발톱도 손수 깎아 주셨는데 굿이 본인가방에 있던 손톱깎이를 고집하셨다.

[선생님 왜? 선생님 것을 사용하세요?] [이건 제가 어르신들 손, 발톱 깎아 드리려고 가지고 다니는 전용이에요 그리고 이건 다른 것보다 커서 특히 발톱 깎을 때 좋아요. 어르신들은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발톱이 두꺼운 분이 많아요 작은 것은 힘들고 이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것으로도 안 되면 어떻게 하나요?] [발톱 줄 이용하면 대부분 해결돼요]

그날 저녁 보호자님에게 감사전화를 받았다.

할아버님보다 지켜보던 할머님이 감동하셨다며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셨다.

이런 작은 배려가 P 복지사님에게는 몸에 배어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 우리는 그곳에서도 선생님의 섬세함을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소변 줄을 차고 계셨던 어머님의 소변 통을 비우는 것 말고도 소변 줄에 묻어있던 잔뇨를 알코올로 닦아 주셨으며 소 변통 역시 청결하게 유지되도록 특별주문을 하시는 선생님의 섬세함은 센터를 운영하는 내가 보기에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섬세함이 정점을 찍었던 사건은 따로 있었다.

추위가 절정이던 1월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고 귀찮았던 겨울이었는데 그날도 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명단을 들여다보시던 P 복지사님께서 센터장에게 지난해 사용하고 남은 무릎담요 1장을 달라고 하셨고 행사 종료 후 마땅히 사용할 곳도 없었었던 것이라 흔쾌히 허락하였다.

센터 밖을 나오니 찬 바람이 순식간에 밀려와 옷 속 깊은 곳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듯했다.

잔뜩 움 끄리고 서둘러 자동차에 오르니 따뜻한 공기가 마중 나와 우릴 반겼다.

[휴 ~ 이제야 살 것 같네요 하하하] 몸이 녹자 웃음이 찾아왔다.

이동하는 동안 별생각 없이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담요는 뭐 하러 달라하셨어요?]

[쓸 때가 있어요] [선생님 본인이 필요한 거면 몇 장 더 드릴까요?] [아니요 이거면 됩니다.]

짧은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방문지에 도착하였고 서둘러 어르신 댁으로 들어갔다.

방 안 공기는 차가워 걱정하는 센터장에게 전기장판을 켜고 있어서 지낼만하다며 애써 웃어 보이셨다.

센터장이 가스레인지를 돌려 주전자에 물을 끓이자 함께 간 복지사 선생님께서 누워계시던 할아버님에게 다가가 건강상태와 불편한 점에 관한 것들 묻고 있었다.

잠시 일지작성을 하던 복지사 선생님께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부르시더니 겨울철 혈액순환에 관한 운동을 알려 드린 후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셨다.

복지사 선생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버님께서는 귀찮아하시며 호응하지 끈질긴 복지사의 설득에 마지못해 동작 서너 번을 따라 해 주셨다.

[아버님 겨울철에는 혈액순환이 안 돼서 손발이 차가워요. 아버지가 운동도 하지 않고 그리 누워만 계시면 나중에는 걷는 것도 힘들어져요. 불편하고 귀찮겠지만, 운동은 하셔야 해요.]

[아마 운동하고 나면 열 오르실 거예요 저 한번 믿어보세요.]

복지사의 노력으로 몇 차례 따라 하던 어르신께서 그만! 그만하자 하시며 거부하셨고 복지사 선생님은 더는 운동을 시키지 않았다.

대신 센터장이 끓인 물을 세수 대에 담은 뒤 차가운 물을 이용해 적당히 따뜻한 온도로 만들고는 족욕을 시켜 주셨다.

그 모습에 놀란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내가 할게요 하며 빼앗으려 했지만, 복지사 선생님은 자신이 하는 모습을 답습하라는 말로 대신 전한 후마저 마무리를 지으셨다.

어느 누가 자신의 발을 씻겨주는 사람을 싫어하겠는가. 그뿐만 아니었다.

자리에 누우신 아버님의 발에 가지고 간 무릎담요를 둘둘 말아 체온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하셨으며 그 제야 자신에게 달라고 했던 담요의 쓰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세심한 배려인가 말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언제든 이야기할 곳이 생긴다면 이번 사례를 꼭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렇듯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복지사 선생님은 오늘도 대접받고 계신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광고문구가 있다, 마찬가지로 섬세함의 차이로 대접을 받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 긍정의 힘


요양보호를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건 요양보호사 말고 다른 일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그런 경우 빨리빨리 풀어주지 않으면 올바른 care가 되지 않을뿐더러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인에게도 전이되기도 한답니다.

또한 그렇게 쌓인 스트레스는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와 결국 개인 생활에까지 지장을 주기도 하므로 되도록 빨리 안정을 찾아야 해요.

내가 피로를 느낀다는 것은 몸과 마음의 안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란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만 찾아보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에 관하여 많은 사람이 조언하고 있답니다.

제가 굿이 덧붙이지 않겠다는 말이에요. 전문지식을 가지고 계신 훌륭한 분들의 조언을 듣길 바랍니다.

이제 일을 대하는 태도에 관하여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마지못해 일하고 있는 선생님과 일을 즐기는 선생님의 차이는 확연히 다릅니다.

같은 상황 다른 평가의 예시를 들어볼게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이신 A 할머님의 집은 이불을 제외하면 남는 공간이 없을 만큼 비좁았습니다.

간신히 두 다리 펴고 누울 자리만 있을 뿐이었고, 화장실도 마당에 마련된 공동화장실을 사용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고요.

부엌은 비좁아 몸을 돌리기조차 힘들었답니다.

그런 곳에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보내려 했더니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거절당했어요.

수급자 어르신에게는 요양보호사 선생이 간절했지만 그랬어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기본적으로 봉사정신을 장착하고 계실 거라는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었답니다.

그렇게 낙담하고 있을 때 J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의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요양보호사를 시작하려면 (이런 마음가짐을 가지세요.)라고 하는 듯했습니다.


[선생님 방이 비좁아서 힘드시겠지요?] [아니요 비 좁은 만큼 치워야 할 것도 많이 없겠는데요]

[그래도 너무 비좁지 않아요?] [내가 누워있을 것도 아닌데 문제없어요]

[그리고 부엌도 좁은데...] [좁으면 조금 덜 움직여도 되고 좋네요] [화장실이 밖에 있어 불편하지 않겠어요?] [오히려 화장실이 밖에 있어 다행이네요 그렇게라도 해야 어르신이 움직이지 안 그러면 온종일 누워 계시잖아요 건강생각하면 밖이 훨씬 좋아요]

동일조건이었지만 말씀하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아주 예쁘지 않나요?

어떤 마음으로 근무하는 것이 좋아 보이나요? 마지못해 근무하신다면 좁은 공간 때문에 스트레스받아가며 일하겠지만, 그 덕에 내가 조금 덜 움직여도 된다고 말씀하시고 있네요.

그래서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긍정의 힘,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그런 긍정적인 생각으로 근무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자신을 괴롭히는 스트레스로부터 조금은 벗어날 수 있잖아요.

이거야말로 나를 다스리는 긍정의 힘 아닐까요!


#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본인의 quality가 달라져요.



요양보호사님들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부분이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언어는 어떤 것들인가? 잠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언어에도 인격이 존재해서 듣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도 할 수 있고 행복하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훌륭한 인격을 가지고 있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종종 있지 않은가 TV나 영화에서 상스러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간혹 접하게 된다.

물론 사랑스러운 언어를 사용하는 때도 자주 접하게 된다.

전자는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게 되지만 후자처럼 아름다운 언어를 듣게 되면 어느새 나 역시 행복해짐을 느끼게 된다.

요양보호사님들은 어떤 언어를 선물하고 싶으신가요?

특히 소통이 어려운 경우이거나 상대가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는 짐작만으로 폭력적 언어를 사용하진 않나요?

[몇 번을 알려줬는데 그걸 아직 못하세요.] [그러길래 제가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잖아요]

[또 그러신다.] 같은 언어는 상대에게 공격성을 심어주는 언어이기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하는 언어 중 하나이므로 될 수 있는 대로 순화된 언어를 사용하기 바란다.

특히 언어폭력은 치매 어르신을 모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사이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치매에 걸린 어르신들은 인지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들어도 각인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그런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선생님들조차 인지능력 저하의 심각성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자주 목격된다.

1) [어머님 식사하셨잖아요] [언제? 내가 식사를 했다고?] [예! 아까 드셨잖아요 또 잊어버리셨어요?] [........] [큰일이다, 큰일이야! 우리 어머니 식사하신 것도 잊어버리고] [배고프면 식사 차려드려요?] [됐다!] [또 삐치셨네]

2) [아버님 그런 거 자꾸 드시면 안 돼요] [놔둬라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아버님 그러니까 병이 생기는 거예요 내가 드시면 안 된다고 얼마나 이야기를 했는데... 또 혈당 올라가겠네]

[거 봐요 또 올라갔잖아요 약만 드시면 뭐해요 말을 들어야지]

요양보호사란 따스한 온기를 나누는 사람이다.

요양보호사란 서로의 감정을 교감하는 것이다.

요양보호사란 함께 늙어가는 것이다.

이제 위의 2가지 대화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보세요 그리고 나는 어떤 요양보호사인가 우리 함께 생각해 봅시다.

오늘부터 당장 변화된 언어를 사용해 보세요 변화된 quality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해고의 사유


아주 오래전 퇴직금 때문에 고용인을 해고한다는 뉴스를 접한 적 있다.

뉴스를 읽고 있는데, 오래된 기억 하나가 문득 생각났다.

내가 근무한 지 3년이 되어갈 무렵 정규직전환을 피하려고 폐업신고 후 새로운 이름으로 회사명을 바꾸는 사업주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함께 입사한 동기들과 나는 사장의 속내를 알고 있었지만 받아들였고 그 후로도 6년을 더 근문 했지만, 그때마다 사장님은 2번의 폐업신고를 하면서 회사 운영을 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얼마나 비겁한 방법인가 말이다.

그래서 한 가지 다짐한 것이 그래 나는 그러지 말자 지금 내가 욕하고 있듯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사람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좋은 사람을 찾는 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살아보니 알겠더라 말입니다.

우리 센터에는 초창기부터 함께 해오신 요양보호사님들이 몇 분 남아 계신다.

그런 분들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얼마나 열심히 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의 요양보호사님들은 너무나도 쉽게 해고당하신다.

다른 곳은 몰라도 우리 센터는 단 한 차례도 센터에서 해고한 적이 없다.

아마 다른 곳도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특이한 것은 방문요양센터의 요양보호사님들은 각자가 개인사업자나 다름없는 구조인데 보통의 개인사업자는 매출을 올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고 있지만, 요양보호사님들은 그런 노력을... 물론 열심히 하고 계시는 분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그렇게 이야기하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면 아래의 사유를 읽어 보기 바란다.

관리하는 인원이 늘어날수록 항의 전화도 함께 늘어난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100% 마음에 들지는 않겠지만, 사용자(보호자) 처지에서는 100%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은 요양보호사님 본인은 물론이고 센터나 보호자님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자질이 문제일까? 그런 것도 아니면 환경일까? 온갖 생각을 하다가 문득 가장 최근에 해고당하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말]이었다. 표현의 문제였던 것이다.

옛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반대로 해석하면 말 한마디 잘못하면 천 냥 빚을 지기도 한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센터장과 복지사님을 통해 그동안 해고당하신 분들의 사유를 모아보았고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나 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고, 그 사유를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사례 1)

운동 삼아 매일 마당을 마당청소를 하시는 어르신이 계셨다.

이 어르신은 단독주택에 살고 계셨는데 대부분 시간을 마당에서 지내신다.

볕이 좋아서 나오시고 비가 오면 비 구경하러 나오시고 그리 넓지 않은 마당 한쪽에 자신만의 의자를 마련해 두시고 대부분의 일과를 그곳에서 지내신다.

하루는 할머님이 점심 식사하러 들어가려는데 가을낙엽 몇 장이 담장을 넘어 들어왔다.

아마 옆집에서 기르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진 모양이다.

다시 나가기 귀찮아진 어머님께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에게 마당에 나뭇잎 들어온 걸 가르치며 [선생 저것 좀 치워줘] 라며 부탁하셨다.

문제는 선생님의 대답이었다. [요양보호사는 그런 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선생님의 단호한 대답에 화가 난 어머님께서 [그까짓 나뭇잎이 얼마나 된다고...] 하시며 말을 흐리자 선생이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매일 떨어지는 낙엽 언제까지 치우라고 그 정도는 어머님께서 직접 하세요.] 하더란다.

화가 난 어머님은 [내가 만날 치우잖아 내가 언제 선생 보고 치우라고 한 적 있어?] 하시며 역정을 내셨고, 그런 이유로 어르신 본인이 선생님을 해고하셨다.

사례 2)

000 할머님은 주택 2층에 살고 계신다.

2층짜리 단독주택이었는데 1층은 세입자가 주인인 할머님은 2층에 살고 계신다.

주말에 딸이 다녀갔는데 할머님의 빨래를 하셨다고 하셨다.

단독주택 2층에는 빨래를 널어둘 공간이 없다. 1층이면 마당에 널어두면 좋겠지만 2층에는 그럴만한 장소가 없다.

빨래건조대를 이용해 집안에 널어두거나 옥상 빨랫줄에 걸어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딸은 옥상을 선택하였는데, 볕이 좋아 빨리 말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딸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고, 그것은 변덕스러운 날씨였다.

딸이 돌아가고 다음날 요양보호사님이 방문했을 땐 이미 보슬비에 옷이 젖은 후였다.

옥상에 널어둔 빨래가 걱정되신 할머님이 요양보호사 선생님에게 [빨래 좀 걷어줘 다시 빨아야겠다.] 하셨지만, 선생님은 거절하셨다.

[제가 다리가 아파서 옥상에는 올라갈 수 없어요, 따님 오시면 걷으라고 하세요.]

[그러면 다음 주까지 기다리라고!] 선생님은 50대 중반이었다.

다리가 아파 계단도 오르지 못한다는데 나를 어떻게 보호한다는 거냐 하시며, 다른 분으로 바꿔달라며 항의하셨다.

사례 3)

기초생활보장 대상가 되면 나라에서 쌀과 음식물쓰레기를 버릴 수 있는 플라스틱 칩 그리고 종량제 봉투 등을 지원받는다.

000 할아버지는 홀로 사는 80대 후반의 노인이다.

뇌혈관질환으로 반신불수가 되신 할아버지는 요양보호사의 도움 없이는 외출하기 힘들다.

양손이라도 멀쩡하면 휠체어를 끌고라도 나가고 싶지만, 전동 휠에 가 없는 000할 아버지는 답답할 때면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외출을 하신다.

그때마다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 하셨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이신 할아버님은 마음만 있을 뿐 자신이 해드릴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점 늘어가는 음식물쓰레기 칩이 아까우셨는지 선생님께서 아버님의 양해를 구한 후 몇 개를 가지고 가셨다.

자신이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에 할아버지는 기뻐하셨지만 그런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엔 물어보고 가져가시더니 이제는 당연히 알아서 챙겨가시는 것이었다.

심지어 음식물쓰레기봉투까지 가지고 가셨다.

지켜보던 할아버지가 괘씸한 생각이 들어 왜? 물어보지도 않고 가지고 가냐고 다그치자 선생님께서 [아버지 남아돌잖아요 그리고 이까짓 거 얼마 안 해요] 하더란다.

화가는 할아버지가 하나를 보면 열을 않다며 해고하셨다.


# 신 고려장


처음 이 단어를 듣게 된 건 정규뉴스의 앵커를 통해 듣게 되었다.

처음 듣자마자 저건 단어선택이 잘못된 것이다가 라며 뉴스 속 앵커를 지적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날 육두문자를 날려가며 맹비난했던 내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후회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본인 혹은 보호자가 원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할 수 없다.

올해 98세가 되신다는 000 할머님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 센터를 막 시작했던 초창기였다.

초창기라 주변의 홀로 사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어르신을 대상으로 홍보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할머님을 기억하는 건 센터로 직접 찾아오신 첫 번째 어르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만 몰랐지 이미 할머님은 주변에서 유명한 분이셨고 우리는 곳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연세도 많을뿐더러 그 연세에 어르신 보행기를 끌고 다니셨는데 말씀은 잘하셨지만 이미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신 터라 할머님이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지린내가 진동하였고 주변상인들은 그런 할머님이 방문하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센터를 찾은 할머님은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하셨다.

도움을 드리는 것 당연한 건데 일반적으로 가족분이 찾아오시는데 직접 찾아오셔서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할머님은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알겠다고 이야기한 후 가족을 만나보려 시도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었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었는데 할머님이 또 방문하셨다.

이미 구면인 할머님을 우리는 반갑게 맞이했지만, 할머님은 표현하지 않았고 오히려 낯설어하셨는데 그런 할머님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신 할머님을 보는 순간 치매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할머님 몸에서 나는 지린내로 보아 이미 중증 치매는 되어 보였다.

어제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셨지만, 오늘은 자식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어제 자녀분 있다면서요!] [없어 아무도 없어] [어머니 어디가 재일 불편하세요?]

[다 아프지! 여기가 노인네 도와주는 곳이라며 날 좀 도와줘] [예 알겠어요 먼저 아드님 하고 이야기해 볼게요] [아들 없어 며느리도 없고] 할머님의 말씀은 아들과 며느리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할머니의 방은 한 평쯤 되는 듯 아주 협소한 공간이었는데 일어서면 성인남성 가슴높이쯤에 있는 창문 하나와 입고 덮을 이불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작은 반다지가 있을 뿐 TV나 냉장고 같은 전자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허리가 휘어 창문 밖을 바라볼 수 없겠지만, 지난날 할머님은 저 작은 창문으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반다지 옆으로 아주 작은 쪽문이 있지만 열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장 났거나 실내장식 소품용도 같아 보였다.

방안을 가득 메운 지린내 때문에 머리가 아팠지만, 그곳에서 생활하시는 할머님을 생각하면 내색할 수 없었다.

우리는 빨래봉사를 하시는 회장님의 도움으로 할머니 방에 있는 모든 빨래를 세탁해 드렸고 건조까지 마친 후에야 할머님을 다시 모셨지만, 할머니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고맙다는 말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토록 아무런 반응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 할머님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변상가에 물어보았지만, 그곳 사장님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궁금해진 내가 할머님댁을 찾았는데 할머님의 고함이 창문 밖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할머니를 보기 위해 창문을 들여다보았지만,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님 괜찮으세요?] [나가련다. 이놈아] [할머님 왜 그러세요?] [나가련다. 이놈아]

이후로도 계속되는 질문에 [나가련다. 이놈아]만 외치셨다.

불현듯 심각한 생각이 들어 경찰서에 신고하였고 곳 경찰서에서 할머님댁을 방문하였지만 닫힌 문을 열 수 없었다.

[할머니 경찰관입니다. 어디 불편하세요 문 좀 열어봐요] [나가련다 이놈아]

동내가 떠들썩해지니 슈퍼마켓 사장님도 세탁소 사장님도 다들 나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 무렵 할머님댁 옆 철문이 열리더니 부스스한 모습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아이 시끄러워 무슨 일이에요?] [옆집이신데... 혹시 옆에 할머님 잘 아시지요?]

[우리 어머니 신데 왜요?] [예? 자제분이십니까? 신고가 들어와서요] [누가 왜? 신고해요?]

경찰관과 아들이 잠시 대화를 하다 힐끗거리며 우리 쪽을 쳐다보았지만, 다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문을 몰라 쭈뼛거리는 우리에게 경찰관이 다가와 [아들이신데 치매 걸린 어머니가 자꾸만 밖으로 나가셔서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답니다.]

어렵게 아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한마디 말도 못 해보고 그렇게 보내버렸다.

제삼자의 눈에 분명 노인학대 같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엔 노인학대로 처벌받거나 신고하는 사례가 많지 않았고 설마 자식이 어머니를 학대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아 그날의 일은 해푸닝으로 끝이 났다.

경찰관이 돌아간 뒤 우리는 다시 옆집에 사는 할머님의 보호자인 아들을 찾아갔지만 귀찮다는 듯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센터장이 아니었기에 몇 번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의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문을 열자 건물 외관과는 다르게 상당히 세련된 현대식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았다.

양문형 냉장고에 대형 TV까지 할머님의 작은 방과는 사뭇 달랐다.

고개 글 틀어 꽃무늬 벽지를 구경하다 문득 현대식 인테리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반문의 반도 안 되는 작은 크기였는데 마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시골집 사랑방의 문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높이는 더 적었다.

이 사람 취향 참 특이하네 이런 걸 굿이 어울리지도 않는 문을... 하는 순간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는 생각 하나가 들었다.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열리지 않는 작은 문 그것이었다.

내가 머릿속을 정리하는 동안 센터장이 아무렇지 않은 듯 보호자에게 물어다.

[이곳이 할머님 집으로 통하는 문인가 봐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당당한 물음에 사내가 흠칫 노라며 [예 그런데요] 하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러면 지난번에 사람들 데려와서 할머니 집 빨래하고 청소할 때도 계셨나요?]

[그러길래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세요 내가 해달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잖아요]

사내가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이자 한발 물러난 센터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더해다.

[목소리 낮추세요 할머니 들리겠어요] [괜찮아요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뭐] 하며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였다.

센터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머니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렇게 놔두실 건가요?]

[상관하지 마세요.] [어떻게 상관을 안 해요 그러지 마시고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요?] 사내의 물음에 센터장의 긴 연설이 시작되었고, 사내는 안식구와 상의하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를 돌려보냈다.

사내의 집을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였고 할머니 역시 더는 사무실을 찾아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홍보전단을 돌리고 돌아온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기 전 잠시 사무실로 들어와 오후에 전달할 전단을 미리 챙기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한동안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다시 사무실을 방문하신 것이다.

[할머니 왜 요즘 안 들리셨어요?] [뭐라고?] 너무나도 반가워 말을 빨리했더니 할머니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할머니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픈 데는 없고?] [없기 왜 없어 만날 아프지 그러니까 나 좀 도와줘] 예전과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셨지만 느낌이 달랐다.

측은한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안타까웠고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아드님에게 이야기했어요. 무슨 말씀 없던가요?] [몰라 그래서 언제 올 건데?]

일방적인 할머니의 말에 일일이 답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한 우리가 할머니를 댁까지 모셔 드린 후 뒤늦은 식사를 하였고, 그날 저녁 자신을 000 할머니의 며느리라고 소개한 여성이 센터를 찾아왔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신다며 자신의 일과를 넋두리처럼 쏟아내던 여성이 할머니가 센터의 도움을 받게 되면 발생하는 비용을 물었고 이야기를 들은 여성은 고민에 빠졌다.

[할머니가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시라면 비용이 들어요 물론 소득에 따라 차등적용 되기 때문에 정확한 건 아니겠지만, 최대 180,000원까지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180,000원 이면, 부담스럽네요] [그렇다고 저리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남편이 일을 안 하니 제가 벌어서 생활하거든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던 며느리가 돌아가고 난 후 우리는 공항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자식이 부모를 버린다는 말은 TV 뉴스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현실을 맞닥뜨리니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결국 비용이 문제였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까지 자신의 어머니를 돌볼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집사람과 상의하겠다던 사내의 말도 자신의 문제가 아닌 양 책임 전갈하는 꼼수에 불과했다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센터장이 그러면 봉사단체에서 가끔 찾아가 돌봐 드리는 것은 어떠냐며 제안했지만, 그 또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두려웠던 보호자의 거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 한들 본인 혹은 보호자가 원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할 수 없다.

더러는 자신의 무지함으로 거부하기도 하고 일부는 알고 있지만, 현실의 벽 때문에 거부하기도 한다.

무지함에서 비롯한 거부는 되돌릴 수 있지만, 현실의 벽 때문에 거부하는 건 되돌리기 힘들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건 자존심 혹은 방관으로 거부당하는 경우이다.

내가 남의 가정사에 관여할 것은 아니지만 저런 거야말로 고려장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할머니 방의 작은 창틀이 그리고 창틀 아래 번들거리는 손자국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창문 너머 세상을 얼마나 그리워하셨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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