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함의 승리
# 섬세함의 승리
앞서 잠시 이야기했듯 선생님 중에는 대접받아가며 근무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그렇지 못한 예도 있습니다.
물론 사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본인 스스로 대접받을만한 행동을 했는가 한 번쯤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굿이 대접받는다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우리글 (대접받다)라는 표현이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대접받다 : 상대로부터 마땅한 예의를 갖춘 베풂을 입다.
지금 선생님들은 예의를 갖춘 베풂을 받고 계십니까?
충분히 받고 있다면 축하합니다. 선생님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계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을까요?
저는 그 해답을 P 복지사 선생님을 통해 얻었습니다.
방문요양 센 에 근무하시는 복지사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가정방문하십니다.
가정방문을 통해 수급자 어르신의 건강상태와 매달 변화되는 과정을 기록하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 센터는 총 다섯 분의 복지사 선생이 근무를 하셨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P 복지사 선생님께서 가장 만족도가 높으셨다.
요양보호사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복지사 선생님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당황할 수 있겠지만, 앞에서 이야기했듯 해답을 그쪽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유독 P 복지사님의 만족도가 높아 센터장과 내가 관심을 두고 관찰하기 시작했고 몇 가지 차별화된 선생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진정성이었고 두 번째는 일 자체를 즐기셨으며, 세 번째는 섬세함이었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것은 진정성과 즐기는 마음이었지만,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이미 봉사 정신을 가지고 계신 분들 이어서 세 번째 섬세함에 관하여 이야기해 봅니다.
P 선생님과 요양 1등급 외상상태의 90대 남자 어르신을 찾아갔었다.
할머님을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나간 후였으며, 집안엔 할머님과 요양보호사 그리고 수급자 어르신만이 텅 빈 집을 지키고 계셨다.
우리가 찾아갔을 땐 식사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에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부엌에서 요리하고 계셨으며 할머님은 거실에서 TV 시청이 한창이었고 홀로 남은 할아버님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계셨다.
이미 우리가 들어올 것을 알고 계셨던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미리 현관문을 열어둔 탓에 우리는 초인종을 누르고 기다리는 번거로움을 덜 수 있었다.
열려있던 현관문을 살짝 밀어 안으로 들어간 센터장은 곧장 할아버님께서 계신 곳으로 향했다.
이미 몇 차례 들렸던 가정이라 집안구조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센터장의 걸음에 거리낌이 없었다. 마치 자신의 집인 양 거침없이 할아버님께서 계신 곳으로 향했다.
들어오는 길에 할머님을 뵙긴 했지만, 데면데면하셨는지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셨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하며 불러보지만 아무런 말씀 없이 눈만 깜박거리셨다.
때 마치 식사준비를 마친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밥상을 들고 할아버님에게 다가와 식사도움을 드리기 위해 다가왔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음식을 드리는 동안 집안 곳곳을 살피던 복지사 선생님의 시선이 식사하고 계시는 할아버님에게 꽂혔다.
[선생님 아버님 머리는 언제 감겨 드리셨어요?] [지난주에 감겨 드렸으니 감을 때 됐어요]
목욕도움 주실 때 감겨 드리면 좋겠지만, 평소에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신다며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감정을 드러내셨다.
[제가 방법 알려 드릴 테니 다음부터는 직접 하세요] [예 제가 뭘 도와드릴까요?] [수건 3장만 가져다주세요 그리고 혹시 비닐 있을까요?] [비닐은 없고 지난번 센터장님이 주셨던 일회용 우의는 있는데 그러가도 드릴까요?] [아주 좋지요]
와상환자는 시간 대부분을 누워서 생활하신다.
그러다 보니 목욕을 위해 잠시 앉아 계시는 것조차 힘들어하신다.
잠시 허락된 짧은 시간 내에 목욕을 마무리해야 하다 보니 늘 시간에 쫓기게 되고 서두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런 것을 잘 알고 계셨던 P 복지사 선생님께서 누워서 머리를 감기는 법을 알려주셨다.
마치 미용실에서 머리 감듯 말이다.
다행히 아버님의 침대는 프레임 위에 매트리스만 올라간 단순한 구조이며 별도의 머리는 없었고 그렇기에 가능했다.
먼지 침대보를 끌어당겨 아버님을 위쪽으로 밀어 올렸으며 다시 머리 맛에 우의를 깔아 매트리스가 젖지 않도록 하였고 바닥에 떨어질 수 있는 물기를 위해 수건 1장은 준비시킨 뒤 세수 대아에 반쯤 물을 담아 들고 오셨다.
들고 오신 세수 대아를 아버님 머리맡에 두고 마치 어린아이 머리 감기듯 할아버님의 머리를 감기기 시작하셨으며 다행히 아버님 역시 발버둥 치거나 하지 않으셨다.
선생님의 분주한 움직임을 느끼신 할머님이 마침내 TV에서 시선을 떼시고 우리를 힐끗 보시더니 관심을 보이시며 우리 쪽으로 다가와 가만히 들여다보시며 농담을 던지셨다.
[영감 호강하네] [하하하] 머리 감기가 끝나고 복지사님은 손톱과 발톱도 손수 깎아 주셨는데 굿이 본인가방에 있던 손톱깎이를 고집하셨다.
[선생님 왜? 선생님 것을 사용하세요?] [이건 제가 어르신들 손, 발톱 깎아 드리려고 가지고 다니는 전용이에요 그리고 이건 다른 것보다 커서 특히 발톱 깎을 때 좋아요. 어르신들은 고생을 많이 하셔서 그런지 발톱이 두꺼운 분이 많아요 작은 것은 힘들고 이 정도는 돼야 합니다.]
[그것으로도 안 되면 어떻게 하나요?] [발톱 줄 이용하면 대부분 해결돼요]
그날 저녁 보호자님에게 감사전화를 받았다.
할아버님보다 지켜보던 할머님이 감동하셨다며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셨다.
이런 작은 배려가 P 복지사님에게는 몸에 배어있었다.
그리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 우리는 그곳에서도 선생님의 섬세함을 볼 수 있었다.
이를테면 소변 줄을 차고 계셨던 어머님의 소변 통을 비우는 것 말고도 소변 줄에 묻어있던 잔뇨를 알코올로 닦아 주셨으며 소 변통 역시 청결하게 유지되도록 특별주문을 하시는 선생님의 섬세함은 센터를 운영하는 내가 보기에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선생님의 섬세함이 정점을 찍었던 사건은 따로 있었다.
추위가 절정이던 1월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고 귀찮았던 겨울이었는데 그날도 선생님과 함께 가정방문을 하게 되었다.
명단을 들여다보시던 P 복지사님께서 센터장에게 지난해 사용하고 남은 무릎담요 1장을 달라고 하셨고 행사 종료 후 마땅히 사용할 곳도 없었었던 것이라 흔쾌히 허락하였다.
센터 밖을 나오니 찬 바람이 순식간에 밀려와 옷 속 깊은 곳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듯했다.
잔뜩 움 끄리고 서둘러 자동차에 오르니 따뜻한 공기가 마중 나와 우릴 반겼다.
[휴 ~ 이제야 살 것 같네요 하하하] 몸이 녹자 웃음이 찾아왔다.
이동하는 동안 별생각 없이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선생님 담요는 뭐 하러 달라하셨어요?]
[쓸 때가 있어요] [선생님 본인이 필요한 거면 몇 장 더 드릴까요?] [아니요 이거면 됩니다.]
짧은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방문지에 도착하였고 서둘러 어르신 댁으로 들어갔다.
방 안 공기는 차가워 걱정하는 센터장에게 전기장판을 켜고 있어서 지낼만하다며 애써 웃어 보이셨다.
센터장이 가스레인지를 돌려 주전자에 물을 끓이자 함께 간 복지사 선생님께서 누워계시던 할아버님에게 다가가 건강상태와 불편한 점에 관한 것들 묻고 있었다.
잠시 일지작성을 하던 복지사 선생님께서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부르시더니 겨울철 혈액순환에 관한 운동을 알려 드린 후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이셨다.
복지사 선생님의 생각과는 다르게 아버님께서는 귀찮아하시며 호응하지 끈질긴 복지사의 설득에 마지못해 동작 서너 번을 따라 해 주셨다.
[아버님 겨울철에는 혈액순환이 안 돼서 손발이 차가워요. 아버지가 운동도 하지 않고 그리 누워만 계시면 나중에는 걷는 것도 힘들어져요. 불편하고 귀찮겠지만, 운동은 하셔야 해요.]
[아마 운동하고 나면 열 오르실 거예요 저 한번 믿어보세요.]
복지사의 노력으로 몇 차례 따라 하던 어르신께서 그만! 그만하자 하시며 거부하셨고 복지사 선생님은 더는 운동을 시키지 않았다.
대신 센터장이 끓인 물을 세수 대에 담은 뒤 차가운 물을 이용해 적당히 따뜻한 온도로 만들고는 족욕을 시켜 주셨다.
그 모습에 놀란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내가 할게요 하며 빼앗으려 했지만, 복지사 선생님은 자신이 하는 모습을 답습하라는 말로 대신 전한 후마저 마무리를 지으셨다.
어느 누가 자신의 발을 씻겨주는 사람을 싫어하겠는가. 그뿐만 아니었다.
자리에 누우신 아버님의 발에 가지고 간 무릎담요를 둘둘 말아 체온유지를 할 수 있도록 하셨으며 그 제야 자신에게 달라고 했던 담요의 쓰임을 알 수 있었다.
이 얼마나 세심한 배려인가 말이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언제든 이야기할 곳이 생긴다면 이번 사례를 꼭 많은 사람에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이렇듯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는 복지사 선생님은 오늘도 대접받고 계신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는 광고문구가 있다, 마찬가지로 섬세함의 차이로 대접을 받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한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