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고려장

# 버림받은 노인

by 서기선

처음 이 단어를 듣게 된 건 정규뉴스의 앵커를 통해 듣게 되었다.

처음 듣자마자 저건 단어선택이 잘못된 것이다 라며 뉴스 속 앵커를 지적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날 육두문자를 날려가며 맹비난했던 내 모습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후회하게 되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본인 혹은 보호자가 원하지 않으면 방문요양 서비스를 할 수 없다.

올해 98세가 되신다는 000 할머님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 센터를 막 시작했던 초창기였다.

초창기라 주변의 홀로 사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어르신을 대상으로 홍보를 시작할 무렵이었다.

할머님을 기억하는 건 센터로 직접 찾아오신 첫 번째 어르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만 몰랐지 이미 할머님은 주변에서 유명한 분이셨고 우리는 곳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연세도 많을뿐더러 그 연세에 어르신 보행기를 끌고 다니셨는데 말씀은 잘하셨지만 이미 중증 치매를 앓고 계신 터라 할머님이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지린내가 진동하였고 주변상인들은 그런 할머님이 방문하시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센터를 찾은 할머님은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도움을 요청하셨다.

도움을 드리는 것 당연한 건데 일반적으로 가족분이 찾아오시는데 직접 찾아오셔서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할머님은 너무나도 인상 깊었다.

알겠다고 이야기한 후 가족을 만나보려 시도했지만, 가족을 만날 수 없었고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이었는데 그사이 할머님이 또 방문하셨다.

이미 구면인 할머님을 우리는 반갑게 맞이했지만, 할머님은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낯설어하셨다. 그런 할머님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할머님을 보는 순간 단번에 치매임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할머님 몸에서 나는 지린내로 보아 이미 중증 치매는 되어 보였다.

어제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계셨지만,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자식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 어제 자녀분 있다면서요!] [없어 아무도 없어] [어머니 어디가 재일 불편하세요?]

[다 아프지! 여기가 노인네 도와주는 곳이라며 날 좀 도와줘] [예 알겠어요 먼저 아드님 하고 이야기해 볼게요] [아들 없어 며느리도 없고] 할머님의 말씀은 아들과 며느리가 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말이기도 했다.

자식에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어머님의 마음이었거나 거짓말이라도 해서 서비스를 받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의 방은 한 평쯤 되는 듯 아주 협소한 공간이었는데 일어서면 성인남성 가슴높이쯤에 있는 창문 하나와 입고 덮을 이불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작은 반다지가 있을 뿐 TV나 냉장고 같은 전자제품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허리가 휘어 창문 밖을 바라볼 수 없겠지만, 지난날 할머님은 저 작은 창문 너머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꿈을 키웠던 날들이 있었을 것이다.

반다지 옆으로 아주 작은 쪽문이 있지만 열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장 났거나 실내장식 소품용도 같아 보이기도 했다.

방안을 가득 메운 지린내 때문에 머리가 아팠지만, 그곳에서 생활하시는 할머님을 생각하면 내색할 수 없었다.

우리는 빨래봉사를 하시는 회장님의 도움으로 할머니 방에 있는 모든 빨래를 세탁해 드렸고 건조까지 마친 후에야 할머님을 다시 모셨지만, 할머니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셨다.

고맙다는 말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토록 아무런 반응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 이해하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그날 이후 할머님이 좀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변상가에 물어보았지만, 그곳 사장님 역시 같은 반응이었다.

궁금해진 내가 할머님댁을 찾았는데 할머님의 고함이 창문 밖으로 들리는 것이었다.

할머니를 보기 위해 창문을 들여다보았지만, 너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님 괜찮으세요?] [나가련다. 이놈아] [할머님 왜 그러세요?] [나가련다. 이놈아]

이후로도 계속되는 질문에 [나가련다. 이놈아]만 외치셨다.

불현듯 심각한 생각이 들어 경찰서에 신고하였고 곳 경찰서에서 할머님댁을 방문하였지만 닫힌 문을 열 수 없었다.

[할머니 경찰관입니다. 어디 불편하세요 문 좀 열어봐요] [나가련다 이놈아]

동내가 떠들썩해지니 슈퍼마켓 사장님도 세탁소 사장님도 다들 나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질 무렵 할머님댁 옆 철문이 열리더니 부스스한 모습의 사내가 걸어 나왔다.

[아이 시끄러워 무슨 일이에요?] [옆집이신데... 혹시 옆에 할머님 잘 아시지요?]

[우리 어머니 신데 왜요?] [예? 자제분이십니까? 신고가 들어와서요] [누가 왜? 신고해요?]

경찰관과 아들이 잠시 대화를 하다 힐끗거리며 우리 쪽을 쳐다보았지만, 다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영문을 몰라 쭈뼛거리는 우리에게 경찰관이 다가와 [아들이신데 치매 걸린 어머니가 자꾸만 밖으로 나가셔서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갔답니다.]

어렵게 아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지만, 한마디 말도 못 해보고 그렇게 보내버렸다.

제삼자의 눈에 분명 노인학대 같았지만, 아직 우리 사회엔 노인학대로 처벌받거나 신고하는 사례가 많지 않았고 설마 자식이 어머니를 학대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아 그날의 일은 해푸닝으로 끝이 났다.

경찰관이 돌아간 뒤 우리는 다시 옆집에 사는 할머님의 보호자인 아들을 찾아갔지만 귀찮다는 듯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센터장이 아니었기에 몇 번의 끈질긴 설득으로 그의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방문을 열자 건물 외관과는 다르게 상당히 세련된 현대식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았다.

양문형 냉장고에 대형 TV까지 할머님의 작은 방과는 사뭇 달랐다.

고개 글 틀어 꽃무늬 벽지를 구경하다 문득 현대식 인테리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반문의 반도 안 되는 작은 크기였는데 마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시골집 사랑방의 문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높이는 더 작았다.

이 사람 취향 참 특이하네 이런 걸 굿이 어울리지도 않는 문을... 하는 순간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는 생각 하나가 들었다.

할머니 집에서 보았던 열리지 않는 작은 문 그것이었다.

내가 머릿속을 정리하는 동안 센터장이 아무렇지 않은 듯 보호자에게 물어다.

[이곳이 할머님 집으로 통하는 문인가 봐요]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당당한 물음에 사내가 흠칫 노라며 [예 그런데요] 하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러면 지난번에 사람들 데려와서 할머니 집 빨래하고 청소할 때도 계셨나요?]

[그러길래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세요 내가 해달라고 이야기한 것도 아니잖아요]

사내가 씩씩거리며 목소리를 높이자 한발 물러난 센터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더했다.

[목소리 낮추세요 할머니 들리겠어요] [괜찮아요 하루 이틀 일도 아닌데 뭐] 하며 보호자님이 오히려 목소리를 더 높였다. 마치 들으라는 듯...

센터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머니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저렇게 놔두실 건가요?]

[상관하지 마세요.] [어떻게 상관을 안 해요 그러지 마시고 저희에게 맡겨주세요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말인가요?] 사내의 물음에 센터장의 긴 연설이 시작되었고, 사내는 안식구와 상의하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를 돌려보냈다.

사내의 집을 나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아무런 답을 듣지 못하였고 할머니 역시 더는 사무실을 찾아오지 않으셨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다.

홍보전단을 돌리고 돌아온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기 전 잠시 사무실로 들어와 오후에 전달할 전단을 미리 챙기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니 한동안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다시 사무실을 방문하신 것이다.

[할머니 왜 요즘 안 들리셨어요?] [뭐라고?] 너무나도 반가워 말을 빨리했더니 할머니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할머니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아픈 데는 없고?] [없기 왜 없어 만날 아프지 그러니까 나 좀 도와줘] 예전과 똑같은 말씀을 하고 계셨지만 느낌이 달랐다.

측은한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안타까웠고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아드님에게 이야기했어요. 무슨 말씀 없던가요?] [몰라 그래서 언제 올 건데?]

일방적인 할머니의 말에 일일이 답하기엔 무리라고 판단한 우리가 할머니를 댁까지 모셔 드린 후 뒤늦은 식사를 하였고, 그날 저녁 자신을 000 할머니의 며느리라고 소개한 여성이 센터를 찾아왔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신다며 자신의 일과를 넋두리처럼 쏟아내던 여성이 할머니가 센터의 도움을 받게 되면 발생하는 비용을 물었고 이야기를 들은 여성은 고민에 빠졌다.

[할머니가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시라면 비용이 들어요 물론 소득에 따라 차등적용 되기 때문에 정확한 건 아니겠지만, 최대 180,000원까지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180,000원 이면, 부담스럽네요] [그렇다고 저리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남편이 일을 안 하니 제가 벌어서 생활하거든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던 며느리가 돌아가고 난 후 우리는 공항상태가 되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자식이 부모를 버린다는 말은 TV 뉴스에나 나오는 그런 이야기인 줄 알았지만, 현실을 맞닥뜨리니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결국 비용이 문제였지만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남편까지 자신의 어머니를 돌볼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집사람과 상의하겠다던 사내의 말도 자신의 문제가 아닌 양 책임 전갈하는 꼼수에 불과했다는 말이었다.

이야기를 듣던 센터장이 그러면 봉사단체에서 가끔 찾아가 돌봐 드리는 것은 어떠냐며 제안했지만, 그 또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두려웠던 보호자의 거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다 한들 본인 혹은 보호자가 원하지 않으면 서비스를 할 수 없다.

더러는 자신의 무지함으로 거부하기도 하고 일부는 알고 있지만, 현실의 벽 때문에 거부하기도 한다.

무지함에서 비롯한 거부는 되돌릴 수 있지만, 현실의 벽 때문에 거부하는 건 되돌리기 힘들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건 자존심 혹은 방관으로 거부당하는 경우이다.

내가 남의 가정사에 관여할 것은 아니지만 저런 거야말로 고려장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할머니 방의 작은 창틀이 그리고 창틀 아래 번들거리는 손자국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창문 너머 세상을 얼마나 그리워하셨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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