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것들은 또 뭐야?]
명게수가 두리번거리며 혼잣말로 말했다.
[저도 있습니다.]
[나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저도요]
군중들 사이에서 하나 둘 일어나 케이지 앞으로 다가서며 동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여든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대략 4~50명 남짓의 노인과 젊은이로 그리고 여성으로 이루어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케이지를 둘러싸자 처음 이들을 불러 모은 노인이 "족장을 지키자!" 라며 소리쳤다.
그때 동일이 케이지 입구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고맙습니다. 하지만 나 한 사람 지키기 위해 무모한 전쟁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동일이 연설하는 동안 킬링족의 사람들은 그가 하는 연설에 귀 기울여 들었다.
동일의 인품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B11에서 조직적인 생활을 하면서부터 쌓아온, 오래된 습관 때문이었다.
더욱이 동일은 족장이었기 때문에 그가 연설을 시작할 때면 마치 기계처럼 몸이 움직였다.
[물론 여러분들의 분노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분노를 마치 마녀사냥하듯 나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삭힌다면 너무 의미 없지 않겠습니까?]
[시끄러워 어디서 세 치 혀를 놀려! 차라리 살려달라고 애원해라!]
명게수가 마치 무리의 대표인 양 소리쳤다.
하지만 곁에 있던 노인이 명게수가 소리칠 때마다 동일을 대신해 말싸움을 하고 있어서 일방적인 분위기로 끌려가지는 않았다.
[어찌 됐건 당신은 요원이고 우리처럼 목숨 걸고 싸울 필요가 없잖소]
[어쩐지 자기가 이야기하는 사람만 죽이라고 하더라]
[맞아요! 분명 산소가 많았는데도 죽이지 말라고 하고....]
[얼마 전엔 아이들이 온다고 했는데 그때도 저 신입에게 살리라고 시켰어요!]
그 말에 근처에 있던 군중이 일제히 그 말을 한 사내 쪽으로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자 사내가 멋쩍은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왜들 이러세요! 들.... 들었어요! 저 사람 그러니까 족장이 도청하는 거 들었어요.]
[도청이라니? 무슨 도청?]
명게수가 사내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자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다 곁에 있던 친구의 등을 떠밀며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그게.... 나도 처음엔 몰랐어요. 이 친구가 알려줘서.... 족장이 도청한다는 걸 알았어요.]
동일이 요원들의 주파수를 도청하고 있었다는 말에 처음에 족장을 지지하던 사람들 중 몇이 뒤돌아 군중들 속으로 숨어버렸고 분위기는 점점 족장이 배신한 것이 맞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죽여라! 그러면서 우리들에게 마치 선심 쓰듯이 산소 재킷을 나눠주었단 말이냐!.]
[맞아 마음만 먹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산소 걱정 없이 살 수 있었는데 저놈이 그걸 막은 거다.]
[죽여라!] , [죽여라!] , [죽여라!]
격분한 군중이 또다시 동일을 죽이자며 소리쳤고 앞줄에 있던 사람들이 또다시 케이지를 밀기 위해 접근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노인이 막아서며 "이러지들 말어! 이러면 안 되는 거야" 하며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거칠게 밀고 들어오는 인파를 노인의 몸으로 막아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인파에 떠밀려 노인이 넘어졌지만 이미 성난 군중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아악!]
[아아악!]
[허흑...!]
밀고 들어오던 인파에 밟혀고 차이든 노인의 신음이 어느덧 조용해졌다.
[이봐요! 노인장]
[이봐요! 눈 좀 떠 보세요]
[여기 사람이 죽었다.!]
그제야 정신이든 군중이 일제히 노인이 쓰러졌다고 소리치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멈춰 섰다.
그 시각, 케이지 안쪽에서 동일이 생민과 존 아단을 끌어안은 채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얘들아, 내 말 잘 들어라! 지금 이대로라면 우리는 물론이고 요원들마저 위험해진다. 그러니 너희들은 분위기를 봐서 이곳을 빠져나가 요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만약 너희가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B11은 아비규한이 될 거야, 그야말로 무법 행성으로 남게 된다. 그러니 반드시 전해야 한다. 알겠니?]
"여기 사람이 죽었다." 군중 속에 있던 누군가가 소리치자,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에 집중되었고, 동일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생민과 존 아단을 케이지 밖으로 내보냈다.
생민을 필두로 6명의 젊은이가 케이지로 들어올 때 잠겨있던 열쇠를 풀고 들어왔기 때문에, 케이지 열쇠를 맨 처음 열었던 생민에게 열쇠가 들려있었다. 때문에 짧은 시간에 그들을 케이지 밖으로 보내는 게 용이했다.
생민과 존 아단이 군중 속을 빠져나가다 아비규환 속 노인을 힐끗 쳐다보며 "할아버지"하고 눈물을 흘렸다.
[헉! 헉!] 한참을 내달리던 아단이 생민에게 [이쪽 방향이 맞아?] 하며 물었다.
생민이는 주머니에서 수신기를 꺼내어 다시 한번 위치를 확인한 후 말했다.
[맞아! 이쪽이야! 설마 아저씨가 고장 난 수신기를 줬겠어?]
[그렇겠지! 그런데 아저씨는 무사하겠지?]
아단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지만, 생민에게도 알 수 없는 질문이었기에 어떠한 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달리기만 했다.
[뭐! 산소가 다르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명게수가 따지듯 묻자, 사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자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을 뿐 난 아무것도 몰라 우리들 산소 재킷에는 뭐라더라.... 몰라 아무튼 뭔가 다른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확실해? 확실하냐고?]
32화 이어집니다.
[이봐! 족장 이게 무슨 소린지 당신이 직접 이야기해 봐요.]
명게수가 소리쳤지만, 동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
[만약 이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안합니다.]
진위를 묻던 면 계수가 화를 내며 당장이라도 뛰어 들어올 기세로 목소리를 높이자, 동일이 빠르게 사과했다. 하지만 동일의 빠른 사과가 그리 도움이 되진 않았다.
[미안하다! 그렇다면 사실이란 말이군!]
웅성거리던 인파 속에서 성난 목소리가 들렸다.
[개자식! 죽여라!]
[모조리 죽여버려!]
동일의 사과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들였고 케이지가 녹아내릴 듯한 뜨거운 시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뜨겁고 건조한 시선을 뚫고 차갑고 서늘한 여인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저는 여과된 산소 재킷을 사용합니다.]
모두의 시선이 여인에게로 옮겨갔다.
[족장이 주었어요. 호흡기 장애가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자기 것을 벗어 줬어요. 나도 그때 알았어요. 재킷이 다르다는 걸.... 하지만 말할 수 없었어요. 빼앗길까 봐!]
케이지를 빠져나간 생민과 아단은 A 구역에 도착했지만 이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동일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야! 이제 어떻게 하냐??]
우두커니 서서 생민의 얼굴을 바라보던 아단이 물었지만 답답하기는 생민 역시 매한가지였다.
[글쎄.... 철문이라도 두드려 봐야 하지 않을까?]
생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단이 들고 있던 정글도의 손잡이 끝부분으로 철문을 두드렸지만, 요원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광쾅쾅' , [여보세요!]
[저 자식들 뭐야?]
모니터링하고 있던 보안요원이 모니터 속 킬링족의 이상행동을 경영에게 통보하였다.
통보를 받은 경영이 보안실에 도착한 건 채 5분도 지나지 않은 비교적 빠른 시간이었다.
보안실에서 경영의 집무실까지 도보로 3분 남짓 걸리는 거리인 걸 감안해 이례적으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저 자식들은 뭐야? 언제부터 저러고 있었나?]
뒤늦게 도착한 경영이 모니터 속 생민과 아단의 모습을 바라보며 물었다.
[얼마 안 됐습니다. 그냥 쏴 버릴까요?]
[아니야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내가 나가볼 테니 저격 요원 준비시키게]
그리고 잠시 후 경영이 철탑 밖으로 나와 그들이 있는 곳으로 걸었고 경영의 뒤로 우식과 소연히 함께했다.
[이곳은 너희가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왜? 철탑을 두드렸나?]
철망을 사이에 두고 경영이 물었다.
[족장이 주었어요. 호흡기 장애가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자기 것을 벗어 줬어요. 나도 그때 알았어요. 재킷이 다르다는 걸.... 하지만 말할 수 없었어요. 빼앗길까 봐!]
여인이 용기 내 이야기했지만, 그 일로 여인은 죽음을 맞이해야만 해다.
'퍽!', [크헉!]
여인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퍽' 소리와 함께 쓰러졌고, 순간 산소 재킷을 차지하기 위해 킬링족의 몸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과된 산소 재킷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군중 속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나 처음 동일에게 도움을 받았다며 일어서던 사람들 몇이 발각되어 여인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진짜 산소가 다르잖아.! 와 하하! 이거 아주 좋은데 기침도 나오지 않고….]
처음 여인의 재킷을 빼앗았던 사내가 크게 웃어 보이자 군중 사이에 여과된 재킷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 아수라장이 되었다.
[멈춰봐요~]
[멈추라고~]
명게수가 소리치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우리 이럴 것이 아니라 요원들 것을 빼앗읍시다.]
[분명 철탑에는 여과된 산소를 충전할 수 있는 곳이 일을 겁니다. 우리 싸워봅시다]
명게수의 말에 호응하듯 사방에서 '콰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님 이제 어쩔 거요?]
동석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긴 차라리 잘 됐어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었고 생각보다 빨리 온 것일 뿐 다를 건 없어]
동일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동석은 그런 동일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보면 성인인 줄 알겠소, 어떻게 남 말하듯 하시오? 잘못하면 죽게 생겼는데 참 팔자도 좋소!]
동일이 케이지 밖으로 손을 뻗어 아비규환 속에 죽은 시체의 산소 재킷을 벗겨 동석에게 내밀며 말했다.
[얼른 갈아입어!]
[예?]
[자네가 여과된 재킷을 사용하는 걸 알면 저들이 가만히 두겠나!]
동일의 말에 놀란 동석이 서둘러 재킷을 바꿔 입었다.
----- 다음에 이어집니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