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 삼촌(miscellany)
가슴 먹먹한 노년의 이야기
제목 : 요양보호사 삼촌(miscellany)
부제 : 가슴 먹먹한 노년의 이야기
소개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나는 요양보호사가 아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나를 부를 때 요양 삼촌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집사람과 방문요양센터를 OPEN 하였는데 그곳에서 나의 직함은 사장님이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요양삼촌이라고 부른다.(본문 내용 중)
여기에 소개된 글은 센터를 운영하며 겪었던 이야기를 에세이로 전하는 나와 집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좋은 이별 나쁜 이별 이상한 이별
# 이상한 이별 1
# 나쁜 이별 5
# 좋은 이별 8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다.
# 가난이 죄인가요? (가난 때문에 포기하진 않아요.) 11
# 돌아온 탕자가 된 현이 (핏줄을 어떻게 포기해.) 14
# 막걸리 할아버지 (막걸리는 포기 못 해) 19
좋은 이별 나쁜 이별 이상 한이별
# 이상한 이별
[여보세요][안녕하세요 사장님! 강림요양병원 김철규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어쩐 일로 전화를...] 앞면은 있지만, 전화로 안부를 물을만한 사이는 아니기에 조금은 불편한 통화였다.
[다름 아니라 김순연 어머님 돌아가셨습니다.
전달할 것도 있고 장례절차도 상의드려야 하니 들려주세요.]
얼마 전 센터장님과 강림요양병원에 입소시켰던 할머님이신데 입소시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는데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나를 부를 때 요양 삼촌이라고 부른다.
얼마 전 집사람이 방문요양센터를 OPEN 하였는데 그곳에서 나의 직함은 사장님이었다.
사장이라고 부르긴 했지만 대부분 영업하고 운전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집사람은 센터장이라고 불렸는데 프로 봉사활동가이다.
수식어 앞에 프로라는 말이 붙을 만큼 그녀는 봉사활동을 많이 한다.
밥 봉사와 빨래 봉사는 기본이고 독고노인 발굴에서 말벗 도움까지 많이도 한다.
본인은 아니라고 하는데 하나도 하지 않는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그녀는 프로 봉사자이다.
봉사만 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마을건강센터 코디라는 직함이 생겼다.
행복복지센터와 구청보건소가 함께하는 일자리 사업인데 지역주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평소 가가호호 돌아다니며 취학계층의 고층을 덜어주는 봉사를 하던 그녀에게는 새로울 것 없는 일이었으며, 그녀 또한 그런 일을 즐겼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서로의 대면에 부담을 느끼시던 어르신들과 많은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코디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코로나 탓인 불편한 관계가 길어지자 그녀는 코디라는 직함을 버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요양센터를 open 하였다.
집사람과는 다르게 남편인 나는 계산적인 사람이고 센터에서 나의 위치는 명예사장이다.
[당신은 센터를 왜 해?] [이거 돈이 되는 거 맞아?] [힘들면 하지 마!] [당신은 어르신들 만나고 그러면 좋아?]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집사람이 답답하다고 느껴졌다.
기초 생활보장 대상자 중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치매, 알치하이모 등을 앓고 계시는 분들은 어찌 되었건 도움이 필요한데 그런 분들에게 정기적이고 계속된 도움을 주기 위해선 방문요양 선생님을 보내드리는 것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는 센터장의 말에 숙연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서 씨는 자신의 월급이 얼마나 된다고 센터를 차리고 요양보호사 선생님월급에 센터 운영비까지... 그건 너무 무리라고 생각하였다.
아무리 집사람이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경제적인 부분을 계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나라에서 지원해 준다 하니 아무 말 않고 지켜보기로 했지만, 문제는 사무실 운영비는
최소인원이 충족되지 않으면 본인이 부담해야 한단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나.
하는 수없이 최소한의 인원이 될 때까지 외조하기로 하고 함께 발굴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던 과정에 만난 할머님이 정순연 할머님이시다.
유난히 볕이 따갑던 8월 말 푹푹 찌는 더위에 한 발짝 내딛기조차 힘이든 날이었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아이스크림은 미처 먹기도 전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아스팔트 위를 날고 있는 아지랑이가 마치 가스레인지 위에 달궈진 프라이팬에서 올라오는 화기처럼 느껴졌다.
출근할 때 챙겼어야 할 서류 한 장 때문에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뭔 날씨가 이렇게도 따갑냐.]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은 없었다.
평지를 지나 오르막길로 접어드는데 허리가 굽어있는 할머님 한 분이 손수레를 끌며 오르막길을 오르는 것이 보였다.
얼른 달려가 뒤에서 밀어 드리며 몇 마디 말을 건네어봤다.
[어르신 오늘은 많이 모으셨네요.] , [어 ~ 요양삼촌이구나! 하하 고마워요.]
[그런데 출근 안 했어?]
[했었는데... 서류를 잊어버려서 다시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요즘은 사람 좀 늘었어?] , [아이들은 몇이야?] , [색시는 어디 갔어?]
할머님의 끝없는 질문은 조금만 더 밀어 달라는 뜻이 담겨있다.
할머님 나름의 삶의 지혜이다.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 잠시 도와주기는 하지만 오르막을 모두 오르려면 한참 남아있으니 계속 말을 시켜 잡아두려는 것이다.
나는 이미 집을 지나쳤고 오른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은 녹은 지 오래였다.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하시는 할머님은 이미 내가 아이가 3명이고 집사람은 근무 중이라는 것이라는을 알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할머님의 속내를 알고 있었지만, 오늘도 속아주고 있었다.
오르막을 지나면 다시 평지가 시작되는데 조금만 더 가면 할머님의 단골 고물상이 나온다.
고물상주인이 할머님을 개근 계로 인도하면 사내는 왔던 길을 되돌아갔지만, 그날은 그러지 않았다.
[도대체 할머님 얼마나 버시는 거야?] 궁금해진 내가 고물상주인과 할머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할매 오늘은 뭐 이리 많아] , [저 삼촌이 책을 좀 줬다 아이가] , [아~ 요양 아제]
이곳에서 서 씨는 요양아저씨로 불린다.
안사람이 방문요양센터를 운영하고 있는데 늘 함께 붙어 다니고 무엇보다 둘 다 서글서글해서 동내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다.
특히 안사람은 동내 토박이로 마을 내 봉사활동을 엄청나게 많이 하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데 어느 날 방문요양센터를 차린 후부터 동내 어르신들이 서 씨를 부를 때 요양삼촌이라고 불렀다.
[할매 82k인데 손수레 무게 15k 빼고 67k 나왔어요.]
사장님이 사무실로 들어가더니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을 할머님에게 주시며
[k 85원이니까 5,695원 자 ~ 받으세요] 하며 돈을 건네셨다.
[뭐! 85원 그 세 또 떨어졌나? 조금 더 쳐줘] 하시면 강짜를 놓으시지만 소용없었다.
할머님이 그렇게 한 달을 모으시면 대략 9만 원 남짓 버신다고 하셨다.
힘없이 뒤돌아가는 할머님에게 사장님이 달려와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셨다.
아마도 할머님은 조금 전 받은 초코파이 하나로 한 끼를 때우실 것이다.
요양삼촌은 도서관에서 일한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 폐기해야 하는 잡지책이나 광고지 같은 것들을 쉽게 얻을 수 있다.
그때마다 삼촌은 할머님댁으로 가져다주곤 했다.
며칠 전에도 폐기하는 전단지를 모아서 할머님댁에 가져다 드렸는데 그때마다 할머님은 초코파이를 주셨다.
하지만 삼촌은 단 한 번도 초코파이를 받은 적이 없다.
요즘 들어 부쩍 파지를 줍는 노인을 자주 만난다.
대부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시다.
그분들이 온종일 손수레에 종이를 모으시고 받는 돈은 고작 13,000원가량의 보수를 받으신다.
한 달 내 모으셔도 30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신다.
물론 나라에서 받는 지원금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의식주를 해결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일이기에 어르신들은 소일거리 삼아 상자를 모으시는 것이다.
순연 할머님은 우리 집 근처를 담당하시는 듯했다.
그런 할머님이 한동안 보이지 않자 센터장이 찾아가 보았는데 홀로 누워 거동을 못하고 계셨다고 했다.
먼저 할머님댁을 방문했던 센터장이 할머님댁에 형광등이 나갔는지 어둡다며 형광등 교체를 부탁해 왔다.
다행히 삼촌 집에 형광등을 led로 교체하면서 남은 형광등이 몇 개 있어서 삼촌이 방문했었는데 냄새가 얼마나 지독하던지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삼촌은 그때 처음으로 할머님댁을 들어갔었다. 늘 밖에서 만나 인사를 했고 간혹 폐기하는 전단지나 책자가 생기면 퇴근할 때, 문밖에 던져두고는 왔지만 직접 들어가 본적은 처음이었다.
요즘은 발암물질로 구분되어 사용하지 않는 나프탈렌 냄새 같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형광등을 교체해 주었다.
할머님이 고맙다며 역시나 초코파이 하나를 주셨지만, 삼촌은 여전히 받지 않으셨다.
할머님 목욕시켜 드린다던 센터장이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뭐야 벌써 다 한 거야?] [아니! 보일러를 틀지 않으셔서 찬물이야.] 더는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할머님은 난방비용 아끼시려고 보일러를 틀지 않았을 것이다.
하루가 멀다고 치솟는 물가에 나 역시도 부담스러운데 자식도 없이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그렇다고 삼촌이 부자이거나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이런 땐 참 난감해하셨다.
이미 알고 있는데 모른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도움을 드리자니 경제적 부담이 되니 말이다.
연말이 되면 TV에서 익명의 기부자분들이 자주 소개되곤 한다.
그리고 따뜻한 온정을 나누시는 기업들의 소식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가도 어떻게 저렇게 하는지,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저들처럼 할 수 있는지 자신이 작아지고도 한다.
순연할머님댁에 요양보호사를 보내기 위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요양등급이 있어야 하므로 건강보험공단에 심사 신청을 해야 하는데 그전에 의사검진이 먼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고 했다.
다음날 삼촌이 센터장 숙모와 할머님을 모시고 병원을 방문하기로 약속했으나 당일 할머님이 완강히 거부하셨다.
의료비 때문에 싫다고 하시는 할머님은 의료 1급 대상자이시다.
[어머님 병원비 안 들어요! 걱정하지 마시고 진찰만 받아봅시다.]
병원비 안 든다고 이야기했지만 끝내 고집을 꺾지 않으셨고 삼촌과 숙모는 그렇게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그 후로도 몇 번을 더 방문했지만 순연 할머님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며칠 후 오래간만에 다시 순연 할머님댁을 방문하였는데, 할머님의 부엌에는 음식을 드신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삼촌과 숙모가 아무래도 할머님 연하 골란 오신 것 같다며 설득하고 강요하고를 수차례 반복하더니 드디어 병원진료를 약속하셨다.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언제 또 마음이 바뀔지 모르니 말이다.
이동하는 동안 할머님은 [진짜 병원비 않들지? 나오면 너희가 책임져라] 다짐을 받으셨다.
코로나는 우리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접수만 하면 받을 수 있던 검사가 이제는 검사 전 PCR 검사를 거쳐야 하고 음성판정을 받은 환자만이 의사의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아주 기분 나쁜 절차가 생긴 것이다.
까다로운 절차도 문제이지만 이미 연하곤란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더는 시간을 끌 수는 없는 노릇이라 비교적 절차가 간단한 요양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요양병원이든 일반병원이든 입소하시면 한동안 대면 면회가 힘드니 우리는 입구에서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돌아왔는데, 입소하신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는데 사망소식을 들은 것이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이별소식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돌아가신 할머님의 유품이라며 자그마한 가방 하나를 병원 측에서 전달받았다.
가방 안에는 통장 하나와 오래된 목도장 하나 그리고 입출금 영수증과 각종 고지서가 있었고,
가방 안쪽에 따로 마련된 지퍼를 열어보니 할머님의 결혼사진인지 신혼 시절인지 알 수 없는 오래된 사진 몇 장이 있었다.
사진 속 할머님은 젊었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곁에 서 계시는 분이 돌아가셨다던 할아버님 같아 보였는데 건장한 체구에 미남이셨다.
손수레를 밀며 짧게 오고 갔던 이야기들 속에서 40대 중반에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자녀는 없다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간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순연할머님과의 인연을 정리하였다.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이렇게 허무하게 돌아가시다니 슬픔보다 늦게 발견했다는 죄책감이 더욱 컸으며, 삼촌은 이리 빨리 이별할 줄 알았다면 그때 주셨던 초코파이라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였으면 가시는 길 조금이나마 덜 미안해하셨을 텐데 같은 사소한 것들이 마음을 아프게 만든다며 슬퍼하고 계셨다.
돌아가신 할머님 생각에 한동안 너무 큰 슬픔 속에 살았다.
하지만 순연할머님덕에 우리는 더욱 부지런해졌으며 조금 더 많이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 언제 어떻게 되실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내 부모든 남의 부모든 계실 때 조금 더 적극적인 보살핌과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우리는 그렇게 첫 번째 이별을 경험했고 아픔의 크기만큼 성장하였다.
# 나쁜 이별
모든 센터장이 그렇겠지만, 센터에 명절이 찾아오면 관리하는 회원의 수만큼 바빠진다.
대표적인 것이 명절선물 돌리기인데 가가호호 방문하여 돌려야 하므로 차량이동을 책임지고 있는 요양삼촌은 덩달아 바빠진다.
이제는 제법 늘어서 손해를 보는 일은 없지만 그만큼 삼촌의 업무량도 늘어났다.
어르신들이 한 곳에 모여 계시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우리 센터의 경우 차량으로 2시간을 가야 만날 수 있는 분도 계신다.
추석이 다가올 때쯤 선물을 돌리기 위해 참기름 set’하고 조미 김과 사과를 자랑 뒷좌석에 싣고 센터장과 배달을 하고 있었는데 전화가 들어왔다.
센터장이 휴대 전에 적힌 이름을 보더니 놀란 눈으로 통화하였다.
[여러 이 어르신이 웬일이지? 평소 전화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예 어머님! 잘 지내시죠? 그렇지 않아도 오늘 어머님 찾아뵈려고 했는데 전화를 다 주시고 무슨 일 있으세요?]
센터장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예 어머님 제가 조금 있다 찾아뵐게요 그때 다시 이야기해 주세요.]하며 통화를 마쳤다.
평소 같으면 물어보지 않아도 본인이 먼저 이야기를 하는데 그날은 달랐다.
[무슨 일인데?] [휴 ~ 요양보호사가 할머님 팬티를 가져갔다고 하시네...]
[하하하 에이 설마! 누가 남이 입던 속옷을 가져간다는 말이야 말도 안 된다.]
[어머님께서 자신이 널어뒀던 팬티하고 수건이 없어졌다고 하시는데 설마 요양보호사가 가지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고 내가 걱정하는 건 요즘 들어 어머님께서 치매증상이 보이시는 듯해서 보호자에게 이야기해야 하는데 보호자가 만만치 않으시거든 거의 방임하시는 편이라 아마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 같은데 어떡하지?]
[치매 안심센터나 병원 진료받아보셨으면 좋겠는데... 아마 분명 싫어하실 것 같은데... 어떻게 설득시키지? 자기가 이야기해 볼래? 당신 말 잘하잖아!]
[뭐래! 갑자기 훅 들어오네 허허 센터장님 그러는 거 아닙니다. 이러지 마세요.]
치매는 참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지능이 떨어지던지 의지가 약해진다든가 기억 등 정신적인 능력이 감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 중에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시는 분도 계시고 과격한 행동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폭력성 치매와 의심 치매인데 펜티를 훔쳐갔다고 하시니 아무래도 의심치매로 의심이 되었다.
일반적인 치매 초기증상은 새로운 것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거나 인내력, 집중력 저하가 일어나며 최근의 일 들을 자주 잊어버린다든가 우울증이나 수면장애와 같은, 평소와 다른 이상행동을 보인다.
하지만 중기 혹은 말기로 넘어가면 확연히 큰 차이를 보이는데 대부분 초기에는 인정하지 않다가 중기가 되면 본인 스스로 인지하기 시작한다..
중기는 평소 외우고 있던 집 주소나 가족이름을 잊어버린다든가 갑자기 감정변화가 생겨 울거나 화를 내는 등 감정조절을 못 하기도 하신다.
말기에 접어들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거나 사람, 시간, 장소 등의 인지를 잘하지 못하거나 식욕이 왕성해지기도 하며 소리를 지르는 돌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 다양한 변수가 있어 요양보호사 선생님 중 치매 전문교육을 받으신 분만 5등급(치매) 어르신들을 보살필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된다.
하지만 5등급(치매) 자체가 힘든 일이고 별도의 교육이수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꺼리시고 그런 분들 구하는 것 역시 힘들다.
센터장은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4시쯤에서야 할머님댁에 도착하였다.
이복년 할머님댁은 다세대주택 2층에 사신다.
2층으로 올라가려면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경사가 너무 심해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양손에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계단 중간쯤 구석에 천 쪼가리가 보였지만 무시하고 올라갔다.
뒤이어 올라오던 센터장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복년 할머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
[누구요?] [요양삼촌입니다.] 그때 뒤이어 올라온 센터장이 큰 목소리로 인사하며 올라왔다.
[어머님 저 말년입니다.] 잠시 후 모습을 보이는 할머님은 잠에서 막 깨어나신 듯 정신이 없어 보였다.
[식사는 하셨어요?] [하모! 무따! (그래 먹었다.)] [아까 무슨 이야기예요? 선생이 뭘 가져갔다고?] 복년 할머님은 현관에 서 있는 삼촌을 힐끗 보시더니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셨다.
둘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삼촌은 조용히 자리를 피해 타고 온 자동차로 돌아갔다.
잠시 후 센터장이 돌아와서야 그간의 이야기들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뭐라셔?] [아까랑 똑같지 뭐 요양보호사 선생이 수건하고 팬티 가져가셨다고 계속 우기셔]
[아까 계단 오를 때 속옷 같던데 천 쪼가리 혹시 봤어?] [맞아 그거야 올라갈 때 보이길래 주워서 가져다 드렸더니 그년(요양보호사)이 버린 거라며, 또 욕을 하시네]
[치매 검사받아보자고 이야기했어?] [에이 휴~ 그것 때문에 난리 났지... 병자취급 하신다고 다시는 오지도 말래]
[그럼 어떻게 해?] [어떻게 긴 뭘 어떻게 해! 그렇다고 모른척해? 어떻게든 달래 봐야지]
[그나저나 배고프다. 밥 먹자 조금 더 있음 저녁 먹을 시간이야 점심 겸 저녁 먹어야겠다. 하하하!]
그날 일과는 늦은 점심 겸 저녁을 끝으로 마무리했다.
다음날 센터로 걸려온 복년할머님의 보호자로부터 센터종용을 통보받았다.
이유는 자신의 어머님을 치매환자로 매도했다는 이유였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호자도 알게 될 것이다.
중기 혹은 말기가 되면 또다시 돌아오길 것임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가족 중 치매에 걸린 분들은 대부분 고령의 할머님 할아버님 혹은 부모님께서 대부분일 것이다.
초기치매는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들 스스로 적극적인 대처를 해야만 진행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거부하게 되면 결과를 낙담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나는 아닐 거라는 착각과 고집이 대부분이다.
막상 치매에 걸리게 되면 본인이 가장 힘들겠지만, 그로 말미암은 가족 또한 힘들기는 매한가지다.
팬티를 훔쳐갔다는 복년 할머님은 가벼운 수준이고 말기 치매환자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등 상당히 힘든 사례들도 많이 있다.
어떤 어르신은 자신의 변을 움켜쥐고 밥이라 말하는 어르신도 계시고 조금 전 식사를 하셨으나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배고프다며 소리 지르는 어르신도 계신다.
결국 치매는 본인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몹시 나쁜 병이다.
본인 스스로 꾸준한 관리와 철저한 조사를 통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족들 또한 본인만큼이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가족들도 자주 목격한다.
그런가 정의 경우 지나친 애정이 있으셔서 그런 예도 있지만, 방임 역시 만만치 않다.
초기치매는 대인관계 활동을 통해 예방 및 악화를 늦출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과의 교류가 활발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치매 걸릴 확률이 1.5배 낮다는 보고도 나와 있다.
또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규칙적인 운동인데 운동을 통해 특히 걷기나 달리기 같은 운동으로 인지장애는 33% 치매위험 31%를 낮추어준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주위에서 만날 수 있는 치매노인은 대부분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하거나 꾸준한 운동을 하지 않는 분들이 대부분인 걸 보면 굉장히 신뢰할만하다.
센터장이 복년 할머님은 더욱 심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지막 통화에서 그간 느꼈던 문제점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가파른 계단을 할머님이 홀로 오르내리기란 사실상 힘든 일이라 복년 할머님은 외출을 거의 하지 않으셨다.
외출하지 않다 보니 대인관계가 없었고 이야기할 상대라곤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유일했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끊어버리게 되면 할머님의 대화상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또한 외출하지 못하시니 당연히 운동도 하지 않으실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타지에 떨어져 사시는 보호자님께서 매일 들여다볼 수도 없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 곁에서 지켜봐 온 센터장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개입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만 현재의 거주상황이 너무나도 열악하니 이사를 하시는 것이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만 해 줄 뿐이었다.
그렇게 잠시 이별을 고한 복년할머님이 다시 센터로 오기까지 6개월이 걸렸고 돌아오셨을 때에는 이미 중증 치매로 악화한 다음이었다.
이제 더는 센터장을 알아보지 못하셨고 그렇게 또 서너 달이 지난 후 결국 요양병원으로 입소하셨다.
우리는 또 그렇게 다시 한번 이별을 경험하였다.
코로나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들 때문에 대인관계를 꺼리는 사회적 풍토가 만들어지며 이 시기에 치매환자가 늘었다는 통계가 있다.
치매에 걸렸다고 다 요양병원에 모시는 건 아니다, 다만 가족들조차 대면하기 꺼리는 풍토인데 요양선생님인들 달가워하겠는가 말이다.
복년 어머님은 그런 사회적 풍토에 발맞춰가기 위한 가족들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나마 복년할머님은 상황이 좋은 편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독고노인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런 독고노인에 비하면 복년 할머님은 그나마 행복하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본다.
# 좋은 이별
행복빌라 701호에는 노부부가 살고 있다.
두 분은 단지 내에서 유명한 잉꼬부부이시다.
항상 손을 잡고 다니시고 두 분은 빌라에서 멀지 않은 병원에도 함께 다니신다.
그날도 두 분이 병원에 가시는 날이었다.
깔끔한 베이지색 바지에 흰색 셔츠 흰색 구두에 연한 갈색 중절모자를 쓰고 있는 87세 할아버님의 손에 이끌려온 할머님은 하늘색 주름치마와 흰색 티셔츠와 저고리를 입고 있으셨다..
오늘도 두 분이 손을 잡고 병원 내 원을 위해 빌라를 벗어나고 있었다.
멀리에서도 한눈에 대근 어르신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르신 ~ 어디 가세요?] [누고? 요양삼촌이 가? (누구냐? 요양삼촌인가?)] [예 어르신 댁에 가려던 참이었는데... 병원 가십니까?] [하모 오늘 병원 가는 날 아이가!] [모셔다 드릴 테니 타세요.] [그럴까! 고맙네] 하시며 할머님을 먼저 태우셨다. [어서 타소]
병원까지는 차로 2분 남짓 거리였지만 걸어서 가기엔 그래도 제법 먼 거리에 있다.
거리도 거리지만 경사로구간이 꽤 길어서 가실 때보다 댁으로 돌아가실 때가 힘드실 것이다.
할아버님은 평소 오시는 길에 집 주변 마트에 들러 반찬거리를 사서 가신다.
요양보호사에게 시켜도 될 일이었지만 할아버님은 본인이 직접 하셨다.
센터 초기에 소개받은 할아버지였는데 처음에 찾아뵀을 땐 완강히 싫다고 하셨지만, 나중에 보호자님 (큰아들)이 직접 전화를 주셔서 함께하게 되었다.
두 분이 워낙 금실이 좋으셨지만, 할머님이 치매 초기증상을 보이셨고 불안했던 큰아들이 요양보호사를 들이자고 적극 주장하셨다고 하셨다.
센터장은 2주에 한 번꼴로 수급자 어르신들을 만나고 있다.
대근 어르신 댁을 찾아뵐 때면 노부부의 금슬이 너무 보기 좋아서 기분 좋은 방문이 되곤 했다.
할머님은 평소 말씀이 적으셨지만, 할아버님은 말씀도 잘하셨고 애정표현도 젊은 사람들보다 더 잘하셨다.
나도 저렇게 늙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했더랬다.
산책도 함께하시고 산책길에선 늘 손잡고 다니셨으며 할머님의 발도 손수 씻겨주셨다.
너무나도 잘하고 계시는 할아버지 신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 있었다.
큰 아드님의 요구사항은 전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라 한편으론 숙연해지기까지 했었다.
장도 봐야 하고 음식준비도 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을 할아버님께서 하시다 보니 정작 할아버님 개인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평소 독서를 즐기셨다던 할아버님은 할머님의 치매판정 이후부터 자신의 취미에 더는 시간을 한에 하지 않으셨고 오로지 할머님을 위해 스스로 족쇄를 차신 것이었다.
할아버님께서 젊었던 시절 춤바람에 가정도 버리고 몇 년간 두 집 살림을 하신 적 있다고 하셨다.
당시를 생각하면 할머님은 지금도 할아버지가 밉다고 하셨다.
그래서 자신에게 잘해주시는 할아버님을 볼 때마다 부아가 치민다고 하셨다.
[그년에게도 이렇게 해줬나?] 하시며 할아버님의 진심을 곡해하셨다고 말씀하지만 그래도 할머님은 그런 할아버님께서 싫지는 않으신지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부르신단다.
아드님의 특별요청 사항 : 할머님이 할아버님을 찾지 않도록 하루 3시간 할머님과 놀아줄 것.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할아버님을 위해 할머님과 놀아달라는 말이 그간 얼마나 힘드셨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할머님은 흥이 많으신 분이다.
이번에 채용한 요양보호사는 1970년생으로 비교적 젊은 선생님 이셨는데 이 선생님도 흥이 남달랐다 저음 면접을 보는 순간 이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상은 적중하였다. 아드님도 할머님도 모두 만족하는 그런 선생님으로 좋은 선생님 구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전화도 받았다.
너무나 칭찬하셔서 궁금해졌던 나와 센터장은 선생님 근무시간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마침 해당 시간에 근처 상담예약도 있고 해서 일부러 신간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상담은 순조롭지 않았다. 대부분 처음에 계약하는 보호자는 그리 많지 않다.
먼저 경계심을 드러내고 힘겨루기를 몇 번 하고 나면 센터 쪽에서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진심이 전달된 이상 먼저 연락을 하신다. 아마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상담 후 근처 행복빌라로 자리를 옮겼다.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 좌측에 대근 어르신 댁이 보인다.
현관문은 이미 우리가 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살짝 열려있었는데 그 사이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야 야 야 ~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요양보호사 선생님의 목소리 같았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소파에 앉아계신 할머님의 양손이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내가 보던 할머님 모습이 아니었다.
흥에 겨워 연신 손을 흔들고 계셨으며 엉덩이는 들썩이고 있었다.
맞은편에 안에서 연신 노래를 부르며 손 유희를 하고 계시는 선생님을 보았을 때 와 ~ 하는 감탄사만 나왔다.
평소 다른 곳에 근무하시는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을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낯설기는 했지만, 상당히 프로페셔널해 보였다.
기존 선생님들은 가사도우미 같았는데 이번에 만난 선생님은 보육교사 선생님 같았다.
진정한 요양보호사 선생이셨다.
물론 환경이 그리 만들기는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잘 적응하시고 분위기를 주도하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여서 가지고 있던 휴대전화로 동영상 촬영을 했다.
선생님께서 우리가 도착했음을 알게 된 건 할아버님 때문이었다.
거실 한쪽 편에서 할머님과 선생님을 지켜보시던 할아버님에게서 맞은편에 있는 우리를 뒤늦게 확인하시고 우리 곁으로 오시며 “센터장님 오셨네 들어오세요”하며 우리를 맞이해 주셨고 그 모습에 놀란 선생님께서 뒤늦게 우리를 보고 멋쩍어하시며 인사하셨다.
“아 ~ 오셨어요” 하시며 연신 쑥스러워하셨지만, 그 모습마저 예뻐 보였다.
“문이 열려있어서 그냥 들어왔어요, 선생님 너무 잘하신다 ~ 나중에 센터회의 때 1일 강사로 초대해야겠다. 선생님 부탁해요” 하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격려하였지만, 여전히 멋쩍게 웃고 계셨다.
이후에도 선생님의 당시 활약상은 신입 선생님들 교육지침으로 활용되곤 하였다.
함께 노래 부르며 춤추시던 할머님의 모습에 감동한 건 비단 우리만이 아니었다.
보호자면담 때 당시 동영상을 보여 드렸더니 보호자님 역시 매우 기뻐하시며 연신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셨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할머님의 치매는 날로 심해지셨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자녀분 중 작은 아드님께서 코로나 확진이 되셨으며 다시 할머님까지 확진되는 불운이 겹쳤다.
다행히 할아버님은 함께 계셨지만 확진되지 않으셨고 확진 이후 할머님은 병원으로 입원하셨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다른 집으로 가려하였지만, 보호자님께서 혼자 계실 아버지가 격정 되신다며 당시 오양 보호사 선생님을 붙잡으셨다.
초기 코로나 시절엔 감염되면 자가격리 2주일을 하였으나 할머님은 고령인 데다 예우도 좋지 않아 그보다 더 오랫동안 병원에서 계셔야만 했다.
완치 후 할머님이 댁으로 돌아오려 하셨지만, 이번엔 걸음을 걸을 수 없게 되셨다.
아마 그동안 병원에서 움직이지 못한 채 누워계셨던 터라 그러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었다.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닌 것이 방문요양서비스를 받다가 요양병원으로 옮기시는 분의 대다수는 걸음을 걷지 못하셨다. 그만큼 운동량이 줄어들어 부족한 운동량만큼 근육도 함께 주는 듯했다.
할머님의 부제는 또다시 할아버님의 우울증으로 전이되셨고 행복했던 노부부의 삶이 코로나 때문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할아버님의 유일한 취미는 독서이다. 주로 논어하고 천수경을 읽으셨는데 할머님의 치매 이후 책을 멀리하셨지만, 할머님의 빈자리만큼 다시 독서를 시작하셨다.
할머님이 병원에 들어가시고 할아버님을 간호하게 된 선생님께서 하루는 베란다에 앉아서 책을 보시던 할아버님에게 “아버님 제가 발 닦아 드릴게요” 하며 다가가니 할아버님의 발을 온수로 닦아 드렸더니 그동안 참았던 할아버님께서 눈물을 보이시며 묻어두었던 속마음을 이야기하셨다.
“샘 님아! 고맙데이! 할멈 발 닦아주던 게 생각나네 잘 있겠지?” “내가 다시 볼 수 있겠나?”
하시며 연신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드님 만나면 할머님 면화 가실 때 꼭 아버님 데려가라고 전해 드릴게요” 하며 선생님께서 달래 보았지만, 할아버님은 고개를 절레절레하시며 체념한 듯 축 처져 힘없는 목소리로 “안된다네 아들이 안 된데... 병원에서 대면 면회가 안된데...” 하시며 연신 흐느끼셨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가 세계인을 상대로 위엄을 떨칠 때라 병원뿐 아니라 자영업자 또한 줄도산 위기를 맞았으며 당시 병원은 철책 없는 감옥이라고 불렸었다.
입소하면 나오지 못하는 당사자나 입소시킨 가족이나 마음 아프기는 매한가지였다.
집안에 할머님이 안 계시자 할아버님은 우울증이 시작되었고 가족들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지경까지 오고야 말았다.
결국 결단을 내린 건 이번에도 큰아들이었다.
할아버님을 할머님이 계신 병원에 동반입소 시키기로 하신 것이다.
아드님 말로는 형제들 간 의견이 갈려 조율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하지만 곁에서 줄곧 지켜보던 큰 아드님께서 이러다 어머님보다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겠다고 판단되어 강행하셨다고 하셨다.
할아버님 입소하던 날 할머님이 병원차로 마중 나오셨는데 병원 측에서 차량으로 이동한다는 조건에 허락해 주셨다고 하셨다.
센터장과 함께 마지막이 될 할머님과 할아버님을 배웅하기 위해 행복빌라를 찾았다.
할아버님께서는 할머님이 마중 나오신다는 말에 벌써 1시간째 빌라 1층에 앉아계셨다.
평소 발이 차가웠던 할아버님을 위해 수면 양말과 털 슬리퍼를 준비해 갔다.
병원에서는 대부분 반입을 허용하지 않지만, 슬리퍼나 양말은 허용할 수 있다 이곳에 오기 전 센터장이 병원에 전화를 걸어 미리 확인하였으며 허용 가능한 선물을 선택한 것이다.
현관에 앉아계시는 할아버님에게 인사를 하고 함께 할머님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기다리는 동안 준비해 둔 선물을 드렸다.
물론 보호자님에게 드렸다. 반입 가능한 물품이라 설명해 드리고 평소 아버님께서 발이 차서 준비했다고 하니 세심함에 감사하다며 또 한 번 인사하셨다.
잠시 후 할머님을 태운 병원차 한 대가 도착하였다.
우리보다 병원차를 먼저 확인하신 할아버님께서 벌떡 일어서 앞장서 할머님을 맞이하셨다.
정차한 병원차의 옆문이 열리니 할머님이 보이셨는데 몇 달 새 수척해진 모습이셨고 걸음을 걸을 수 없어 앉아계신 체 팔만 벌려 할아버님을 맞이하셨다.
간혹 TV를 통해 금실 좋은 부부 이야기를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살면서 이렇게 애틋한 재회는 처음이었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고 두 분 모습에 흐뭇하기도 했으며, 큰 아드님의 판단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제 두 분은 같은 병원 같은 병실에서 함께 하신다고 했다.
돌아가는 병원차를 끝까지 바라보며 두 분의 앞날을 기도했다.
이런 아름다운 이별을 하게 되어 너무나도 기쁜 하루였다.
요양센터에서는 만남만큼이나 이별도 많이 경험하게 된다.
주 고객층이 65세 이상 거동이 불편한 분 이기 때문이다. 만남도 중요하지만 이별할 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도 생각을 해봐야겠다.
몇 번의 이별을 경험하며 이별의 아픔만큼 우리는 성장했으며, 아름다운 이별을 통해 사랑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다.
# 가난이 죄인가요? (가난 때문에 포기하진 않아요.)
재래시장 주변에는 1평 남짓한 작은 쪽방촌이 모여있다.
쪽방촌이라고 하면 아주 거창하고 그 일대 오래된 가구의 집들이 대부분 방 1칸에 부엌도 따로 없고 마당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이 있는 구조이다.
그런 곳에 가면 어김없이 독고노인이 살고 계신다.
나라에서 제공하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가 있기는 하지만 그조차도 들어갈 형편이 안 되시는 분들이 모여 사신다.
왕년에 방귀깨나 뀌셨던 분들이라고 들었지만, 풍문일 뿐 확인되지는 않았다.
어떤 어르신은 아들딸 다 키워서 유학도 보내시고 서울서 잘살고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잘살고 있다던 자식들이 있기는 한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생활환경이 열악하시다.
딱 한 사람 허리 펴고 누울 자리만 있고 장롱이며 TV 냉장고 같은 대형 전자제품은 이미 소품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마치 범죄자들을 수용하는 독방 같은 분위기이다. 얼마 전 전직 대통령과 시장이 묵었다던 독방을 TV에서 보여준 적이 있었는데 그보다도 훨씬 열악했다.
진순이 할머님은 우리 센터 1호 고객이시다.
처음 센터를 open 하고 센터장과 전단을 들고 홍보를 하였는데 그러던 중 할머님댁에 전단을 붙이러 갔다가 마당에 나와 계신 할머님에게 읽어보시라며 드렸더니 그 자리에서 가입하셨다.
이미 다른 센터를 많이 이용해 보셨기에 오히려 나보다도 더 잘 알고 계셨다.
심지어 센터장도 쩔쩔맬 정도였었다.
나중에야 알계된 사실인데 다른 센터에서 블랙리스트 라며 받아주지 않아서 우리 같은 신생센터로만 들어가신단다.
그렇게 어렵게 들어가셨지만, 요양보호사가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그만두는 통에 보호사 수급이 힘든 신생센터가 몇 번 도전했지만 떨어져 나가는 악순환을 하고 계셨다.
우리라고 용빼는 제주 있겠냐 말이다.
첫 고객이니 시간도 많겠다. 요양보호사 구합니다.라고 적힌 전단을 40장쯤 출력해서 길목마다 붙이고 붙였다.
이미 정부에서 지원하는 취업알선 애플리케이션인 워크넷을 통해 수십 분이 다녀가셨지만, 환경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와 성격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 등 다양한 이유로 하루가 멀다고 그만두기 일쑤였으며 심지어 악성이라는 꼬리표까지 생기게 되었다.
요양보호사들은 자신들만의 대화 공간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우리 센터의 이미지가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쉽사리 포기할 맘은 없었기에 전단을 배포해 가며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센터 주변과 수급자 어르신 댁 주변에 전단을 붙이고 있었는데 뒤따라오던 50대 후반에서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님이 조금 전 부쳤던 전단을 떼어내는 것이다.
[뭐야! 저 아주머님은? 저걸 왜 떼어내시지?] 하며 아주머님 곁으로 다가가 조금 전 상황에 항의하였더니 자신이 요양보호사라며 근무를 해보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서둘러 약속시각을 잡고 센터에서 정식 면접을 보기로 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다음날 어제 만난 요양보호사 선생님 면접 후 함께 할머님댁을 찾았는데 우리 센터에서만 벌써 30명은 족히 바꾸셨을 할머님이기에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첫 만남을 주선하였다.
가로로 뻗은 주방에는 싱크대 이외엔 어떤 것도 들어올 공간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방에서 방문까지 성인걸음으로 2보 정도였는데 막상 방문을 열어보니 그곳 사정도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
1.5평 쯤되는 작은방에 이불이 깔렸었는데 이불을 제외한 여유공간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협소했다.
대부분 시간을 누워서 생활하시는 할머님은 인기척이 들렸지만 일어나지 않으셨으며 고개만 돌려 우리를 맞이했다.
새로운 요양보호사 선생님인데 소계 시키려고 왔다고 이야기했지만, 할머님은 길어야 몇 시간 후면 도망갈 거로 생각하셨는지 시큰둥하셨다.
잠시 집안을 둘러보시던 요양보호사 선생이 할머님에게 식사는 하셨느냐고 물어보시곤 바로 근무를 시작하려 하셨지만, 이번엔 할머님이 말리셨다.
[야야 니는 태그도 안 찍고 일하나?] [예 어머님 오늘은 식사만 챙겨 드리고 내일부터 일하려고요 어머님 잘 부탁합니다.] 하시며 식사준비를 하셨다.
그 모습에 나와 센터장은 놀랐지만, 진순 할머님은 그러려니 하셨다.
선생님께서 돌아가신 후 센터장이 할머님에게 어떠시느냐고 물어봤지만, 진순 할머님은 [모르지 몇이라나 버틸지... 저런 사람 어디 한두 번 봤어야지] 하시면 두고 보자고만 하셨다.
마음에 상처가 크신 듯 보였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요양보호사가 배정되면 의료보험 관리공단에 신고해야 하는데 이런 절차가 생각보다 귀찮고 까다롭다.
먼저 경찰서에 노인학대 등 범죄기록이 있는지 조회를 해야 하고 고용보험 및 산재신청도 반드시 하여야 하는 절차 중의 하나다.
이런 절차를 마치게 되면 선생님께서 근무하실 때 일종의 출근부 같은 것을 가정에 부착하게 되어있는데 이런 걸 태그라고 부른다.
휴대폰으로 출퇴근과 특이사항을 적을 수 있게 되어있다. 보니 휴대전화 조작이 힘든 분들이 더러 있다.
얼마나 많은 분을 겪었으면 어머님께서 근무 시작 전 태그를 찍어야 한다는 식의 전문 용어를 쓰신단 말인가.
충분히 그간의 고충을 이해하고도 남았다.
좋은 만남이던 나쁜 만남이던 우리는 이런 만남을 인연이라고 말한다.
진순할머님이 악성이 된 것은 할머님의 성격도 한몫하셨겠지만, 환경이 아주 큰 목을 차지했다.
정확히 몇 번이나 교체했었는지 기억조차 아물거리지만 대부분 환경에 관한 지적이 많았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어르신이 크고 넓고 깨끗한 곳에서 생활하기란 쉽지 않다.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 걸 지적하고 그건 걸 빌미로 시작조차 하지 않는 걸 보면 요양보호사 선생님들 역시 반성해야 할 것이다.
화장실이 밖에 있어서 싫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다.
화장실에 밖에 있으면 똥 못 싸나? 어를 적엔 신문지 깔아 두고도 잘만 했는데 불과 몇 년 사이 먹고살기 편해졌다고 그런 걸 지적하면 어떡하겠는가 말이다.
잘살기 싫어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는 사람은 없을 텐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는지 마음이 무겁고 안타깝다.
또 부엌이 좁아서 일하기 힘들다고 1시간도 안 되어 그만두시는 분도 계셨다.
핑계도 너무 다양했다.
방이 좁아서 쉴만한 공간이 없다는 이유에서부터 실외 화장실에 이르기까지 환경에 대한 지적은 이것 말고도 더 있었지만 들을수록 화가 나서 그런 경우 더는 말도 썩지 않고 보내주었다.
제삼자인 내가 그럴 텐데 당사자인 할머님은 오죽했겠는가.
당장 이사를 할 형편도 되지 않는데 그런 이유로 거부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이번에 다녀간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환경에 대한 거부감은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면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고 놀랍다.
그간 마음고생 심하셨을 텐데 다행히 선뜻하겠다고 나서는 분이 계시니 얼마나 고마운가 말이다.
그리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을까 소이 버림받은 악성의 할머님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하였고 놀라운 변화였다.
여느 때처럼 센터를 마치고 아이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진순 할머님에게 전화가 왔다.
덜컥 겁이 나 전화받기조차 겁이 났었다. 그렇다고 오는 전화를 안 받을 수 없지 않은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예 어머님! 요즘은 어떠세요?] [뭘 묻노 지난주에 다녀갔음서] [하하하 어쩐 일이세요? 식사는 하셨나요?] [먹었다. 근데 내일 요양보호사 않온다카데 와~ 갸도 내가 싫다 카드나?]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건강검진받는 날이라서 하루 못 간다고 이야기하셨지만, 진순 어머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또다시 버림받는 건가 싶어 확인전화를 하신 것이었다.
[아니에요 선생님께서 건강검진받는다고 이야기 안 하던가요?] [했다. 그카데 건강검진받는다고]
[그런데 왜? 물어보셨어요?] [그런 년들이 하도 많았으니 갸도 그런가 싶어 물어봤다.]
[아니에요 어머님 선생님께서 그러시는데 어머님 너무 좋다던데요] [귀엽다고 하시던데 하하하]
[하하 지랄한다 문디 알았다 끊어라] [예 어머님 쉬세요. ~]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잠시 후 진순이 어머님 담당 요양보호사 선생님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또 두근거렸다. 대부분 선생님이 저녁 시간에 전화하면 그만두겠다는 전화가 많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 쉰다고 하든지 아니면 코로나에 걸렸다든지 그런 전화가 많았으니 나 역시 진순이 어머니처럼 노이로제에 걸리는 듯 예민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하셨다.
[센터장님 내일 제가 쉰다고 했잖아요 건강검진받는다고] [예 선생님] [어머님께서 아무래도 믿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센터장님이 이야기 좀 잘해주세요.] [그렇지 않아도 조금 전 통화했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선생님이 생각 하시 것이 맞아요 이야기 잘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선생님은 괜찮아요? 어머님 힘드시지 않나요? 환경도 녹록지 않을 텐데...]
[하하하 센터장님! 저는 진순 어머님 너무 좋아요 메너도 있으시고 경우도 바르시고 환경이야 어렵게 사시는 분들이 다 그렇지 뭐 다른가요? 저는 그런 건 상관없어요.]
[선생님 감사합니다. 너무 고마워요 우리 진순이 어머님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어머님께서 마음에 상처가 깊어요 그동안 많이 힘드셨거든요. 선생님이 잘 보살펴 주시고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알겠어요 그리고 센터장님에게 한 가지 부탁하려고 전화했어요.]
[예 말씀하세요.] [다름 아니라 내일 제가 쉬면 어머님 식사 차려드릴 사람이 없어요 어머님 좀 부탁해요 차려만 돼요 치우는 건 검진 마치고 제가 잠시 들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죄송해요 이런 부탁드려서...] [아니에요 선생님 제가 차려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내일 건강검진 잘 받으세요.]
선생님과 통화를 마치고 얼마나 고맙던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이후로도 선생님과 진순 할머님은 서로 보듬어주는 좋은 친구처럼 잘 지내고 계신다.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한 달에 한 번 센터에서 관리하는 모든 가정에 직접 방문하시어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잘하고 계시는지 또한 불만이나 요구사항은 없는지 추가 건의사항 같은 것을 조사하고 기록에 남기시는 작업을 하신다.
이를 욕구사정기록이라고 하는데 욕구사정을 적기 위해 방문하신 사회복지사 선생님에게 진순이 어머님이 좋은 사람 만나서 너무 좋다고 센터장에게 고맙다고 전해달라며 인사를 몇 번이고 하셨다 한다.
이런 가치 있는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준 요양보호사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런 보람과 기쁨의 순간이 있기에 봉사활동을 하는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
# 돌아온 탕아가 된 현이 (핏줄을 어떻게 포기해)
현이는 22살 여자아이다.
눈이 크고 예뻤지만,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는 버릇이 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여성스러운 모습이었으나 목소리나 하는 행동은 걸걸했으며 사납기까지 했다.
현이가 초등학교 때 어머님께서 돌아가셨고 이듬해 아버님마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셨다.
그래서 현이는 할머님과 할아버님 밑에서 자랐다.
현이가 걸걸하고 사나웠던 것은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할까 봐 더욱 사납게 행동했으며 사내아이보다도 더 사내아이처럼 행동을 해왔다.
현이가 20살 되던 해 할머님이 허리를 다치셔서 자리에 누우셨는데 이후 보행을 포기하시고 휠체어에 의존하여 살고 계신다.
그나마 할아버님이 주민센터에서 연결해 준 노인 일자리를 통해 얻은 수익으로 생활하였다.
하지만 현이는 그런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도 싫었다.
어른들의 시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 이겠지만 현이는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허트로 보내고 있었다.
하루는 할머님께서 방구석에 누워있는 현이 에게 나이 20이 넘도록 하는 일 없이 빈둥대는 손녀에게 푸념하셨는데 잔소리 듣기 싫다며 집을 나가버렸다.
현이가 집을 나간 후 할머님과 할아버님은 늘 마음이 무거웠다고 하셨다.
어미 아비 없이 자라는 손녀가 안쓰럽기만 하시다며 손녀 이야기만 하시면 눈시울을 붉히셨다.
하루는 현이 할아버님께서 일과를 마치시고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시다 갑자기 균형을 잃고 쓰러지셨다.
너무 당황한 할머님께서 평소 알고 지내던 센터장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영감이 쓰러졌다. 어떻하노?] 다급한 목소리였지만 설마 119를 생각 못 하고 본인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람이 당황하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물었다. [어머님 119에 신고는 하셨어요?] [119 난 모른다. 119 어떻게 신고하는데?] 너무 어이없는 어머님의 대답이었지만 침착게 행동했다.
[어머님 제가 신고할게요 아버님 잘 보고 계세요 금방 갈게요] 통화를 마친 센터장이 119에 신고를 하고 할머님댁을 찾았다.
여전히 할아버님께서는 누워계셨지만, 우리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가 도착한 뒤 바로 119구급차가 도착해서 응급대원들의 도움으로 근처 병원으로 옮겼지만, 할아버님은 옛날 말로 중풍(뇌졸중)을 맞으신 것이었다.
이후 할아버님이 퇴원하셨지만, 반신불수가 되셨다.
그나마 할아버님의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생계를 꾸리시던 가정이 한순간 풍비박산이 났다.
그렇다고 할머님께서 일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이제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은 현이가 유일했지만 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두 분은 그렇게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셨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덕분에 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이다.
또한 할아버님과 할머님의 의료비도 지원할 수 있니 이런 때 의료 1급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는 것이 두 분을 위해 잘된 일이었다.
할아버님과 할머님이 그리되자 현이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다.
얼마 후 센터장이 할아버님에게 요양등급을 내자고 권유를 했고 밑져야 본전이니 한번 해보자고 할머님께서 승낙하셨다.
이후 병원에서 의사소견서를 받아 등급신청을 진행하였는데 다행히 요양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요양자를 파견시켜 가사도움 및 할아버님 욕창 생기지 않도록 관리를 해야겠다고 판단 이선 센터장이 구청의 워크넷을 통한 구인광고를 내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명의 지원자가 나타나 우리는 면접을 보기로 하였다.
새로운 사람을 들이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첫인상은 모두 좋아 보였지만 막상 취업이 되고 나면 처음의 생각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분들도 많았다.
현이내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그랬다.
첫인상은 참으로 부지런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수려한 말, 솜씨도 선택하는데 한몫 거들었다.
하지만 근무 시작 하루 만에 항의전화를 받았고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할아버님이 반신불수 상태이기 때문에 스스로 일어서나 걷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등의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하지만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이해하려 하지 않고 부자연스러운 대화를 짜증스럽게 받아치시기도 하셨으며 부축이 필요한 상태임에도 힘들다는 이유로 거절하는 등 도저히 상식 밖의 행동을 하셨다고 첫 출근임에도 TV 시청을 하시며, 점심시간에는 식사까지 챙겨 드시고 가셨다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정말로 그랬다면 기본소양이 안되신 분이었다.
하지만 확인절차가 필요했기 때문에 속단하면 안 된다..
먼저 선생님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현장방문을 통해 한 번 더 확인 후 판단을 내려야 한다.
어설픈 판단은 수급자나 요양사 모두에게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지난 몇 번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었기에 우리는 시간을 두고 확인작업을 하였다.
그날 저녁 현이내집에 방문하여 그간의 변화된 모습을 찾아보았지만, 딱히 변화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전히 집안 곳곳에 쌓여있는 먼지가 보였으며 어제 봤던 빨래 더미가 오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바로 지적을 하면 안 된다. 조금 더 확신이 필요했고 여러 가지 문제점을 이야기해 주셨기에 하나하나 집어보며 따져보기로 했다.
우리는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변화된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흔히 가장 많이 하시는 빨래나 청소조차도 변함이 없었고 이건 심각한 문제점이었다.
사전에 수급자 어르신에게 7일만 참아 달로고 이야기했지만 조급한 건 우리 쪽이었다.
4일째 되던 날 선생님과 통화를 했다.
요즘 힘드신 일이나 건의사항 있으면 말해달라는 센터장의 물음에 남자 어르신을 보살펴 드리고 있다 보니 부축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푸념을 하셨고 배변통 비우는 것이 너무 싫다고 하셨다.
간단한 대화내용이지만 그 속에서 요양보호사의 자질을 알 수 있었다.
그런 경우 보호자 요청으로 교체할 수 있지만, 기회를 7일 달라고 했었기에 잠시의 시간만 벌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개선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하는 것 역시 센터의 몫이었다..
물론 개선이 가능한 경우에 한하긴 하지만 구역질이 나서 배변통 치우는 것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하시는 선생님을 더는 센터에서 함께할 이유가 없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수급자 어르신으로선 조금 더 일찍 판단을 내렸어야 했다.
사람이 다 좋을 수는 없겠지만, 교육하는 기관에서는 더욱 검증된 절차가 필요할 것이다.
다행인 건 면접을 보겠다는 요양보호사가 많았기에 빠른 교체가 가능했고 차기 보호사 선생님께서는 큰 저항 없이 적응을 잘해주셨고 수급자 어르신 역시 만족해하셨다.
하지만 몇 달 후 뜻밖의 전화를 한 통 받았는데...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단다.
왜 나쁜 일은 한꺼번에 오는 것인지... 전날 현이가 또다시 가출한 것이었다.
할아버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현이는 발인 날이 돼서야 돌아왔지만 끝내 참석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할머님의 이야기로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날 강해 보이기만 했던 현이의 모습은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서럽게 울고만 있었다.
아마도 현이는 지난날의 자신을 원망하며 조금만 더 잘해드릴걸. 하며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님보다 할아버님과 더욱 친하게 지냈던 현이가 할아버님께서 돌아가신 후 정신을 차리고 가정으로 돌아와 할머님의 보호자로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 마음이 돌아섰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짐작은 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 암기했던 송강 정철의 효행 시가 생각이 났다.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달프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은 이뿐인가 하노라.
우리는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불효를 범하게 된다.
막상 살아계실 때엔 느끼지 못했던 일들이 돌아가시고 난 후엔 어쩜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슬픔으로 다가오는 것인지 그래서 어른들이 상을 치러봐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 하셨을 것이다.
현이는 그렇게 비싼 값을 지급했고 그만큼 성장했을 것이다.
앞으로 그녀의 앞날은 밝고 따뜻하고 아름답기를 기도했다.
할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남겨진 가족들은 다시 한번 오열하게 하는 일이 생겼다.
할아버님의 유품을 정리하다 통장 하나를 발견했는데 무려 10년을 적게는 300원부터 많게는 10만 원까지 어떻게 마련한 돈인지는 알 수 없지만, 할아버님께서는 저축하고 계셨었다.
총액이야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할아버님의 손길이 묻어있던 근면함을 눈으로 직면하는 순간 할머님과 현이는 다시 한번 할아버님을 그리워하며 오열하게 하였다.
통장에는 30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있었는데 견물생심이라고 현이가 또다시 도망갈까 봐 할머님은 불안해하셨다.
가정방문하던 날 할머님께서 센터장에게 상담 요청하셨는데 현이가 또 도망갈까 봐 할머님은 걱정을 넘어 불안해하고 계셨다.
그렇다고 경험도 없는 젊은 사람의 조언이 할머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까마는 속 시원히 이야기할 상대를 찾는 듯했다.
며칠 뒤 우려가 현실로 일어났고 할머님은 우울증은 극에 달했다.
[어머님 그래도 식사는 하셔야지요]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겠나? 그냥 혼자 있으련다. 가라]
[어머님 그러지 마시고 한술 뜨세요!] [일없다, 가라] 한참을 설득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현이는 이틀 뒤에야 돌아왔다, 그리고 가지고 있던 할아버님의 돈 역시 대부분 사용했고 고작 70만 원이 조금 넘게 남아있었다.
나는 처음 현이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가 남았는지를 먼저 물어보았지만, 할머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다친다는 없는지 밥은 먹고 다녔는지에 관한 질문이 먼저였다.
할머님의 그런 첫 질문에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들 수조차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이런 감정은 비단 나뿐 아니라 현이도 마찬가지였다.
현이가 바닥에 ‘툭’ 하고 종이가방 하나를 내려놓으며 [할매거다] 하며 퉁명스럽게 이야기하자 할머님께서는 [이기 뭔데?] 하며 종이가방을 열어 확인하셨다.
[이게 뭔데? 니 그 돈 다 썼나? 누가 이런 거 사달라고 하드나 같다 주라] 그제야 할머님은 현이가 가져간 돈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다.
[이건 내 돈으로 산 거다. 그리고 그 돈으로 오토바이 샀다.] [뭐! 오토바이 가스나가 미쳤나! 갑자기 무슨 오토바이 타령이고] [할매! 걱정하지 마라 나! 집 안 나간다. 이제 할매랑 살 거다. 그리고 배달하려고 산 거다.] [뭐? 배달? 그게 뭔데?] [그런 게 있다. 그냥 쫌! 뭐라 하지 마라 내 알아서 할게] 하며 자신의 방으로 황급히 들어가며 문을 닫아버렸다.
할머님은 배달기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니 더욱 답답해하셨지만, 굳이 다시 물어보지 않으셨다.
그렇게 현이와 할머님의 저녁이 저물었다.
현이는 라이더가 되었고 힘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처음 현이를 보았을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여전히 사내다운 걸걸한 말투를 사용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상냥함이 생겼으며 할머님을 향한 애틋한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얼마 후 이번에는 현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쩐 일이니? 무슨 일 있어? 할머님 안 좋으시니?]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제가 일을 하는 동안에는 할머님이 식사를 잘 안 하세요.. 어떻게 해야 하나 물어보려고요.]
생각지도 못한 전화에 센터장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저녁에 들려볼게. 몇 시에 오니?] 하며 약속을 잡으려 했지만 라이더의 저녁은 콜이 자장 몰릴 때라 힘들다며 차라리 아침에 만나자고 하였고 그렇게 오전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아침 일찍 센터로 찾아온 현이의 모습은 피곤함에 찌든 듯 보였다.
늦게까지 배달일을 하고 나면 피곤할 법도 한데 할머님이 걱정돼서 찾아온 현이가 대견해 보였다.
[피곤하지?] [아니 괜찮아요! 저기... 할머니가 식사를 안 하세요] [왜? 무슨 일 있었니?]
[아니야 몰라요 일 나가기 전에 차려놓고 나가는데 돌아오면 그대로예요 어떻게 해요?]
[글쎄 무슨 이유가 있는지 할머님 만나봐야겠는데... 한번 알아볼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운전 조심하고 서두르지 마라] [감사합니다. 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 혹시...]
무슨 말인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보였는데 도통 입 밖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현이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할 말 있으면 해 봐 뭐 궁금한 게 있니?] [저... 혹시 요양보호사 선생님 오시면 얼마나 들어요?]
[아니 그건 왜?] [혹시 선생님께서 차려주시면 식사하시려나 해서요] [하하하 우선 너희는 요양보호사 선생님을 들여도 돈을 내지 않아 공짜야 하지만 먼저 할머님이 요양등급이 있어야 가능한 거라 절차가 필요해 신청한다고 다 되는 것도 아니고 먼저 의사소견서가 있어야 하고... 신청을 하게 되면 공단에서 가정방문 후 심사를 받아야 하는 거야] [그러면 신청은 어디 서해요?]
변화된 현이의 모습에 절로 마음이 따스함을 느꼈다.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신청은 우리가 해 줄게 그럼 의사소견서는 현이가 준비해 주겠니?]
[예 그럴게요] [혹시 안 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고 할머님이 정상적인 생활이 안 되니 가능할 수도 있긴 하겠다. 하지만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어. 그래 우리 한번 해보자] [감사합니다.]
현이가 돌아가고 난 후 센터장이 할머님댁을 찾았지만 그사이 현이는 출근하고 할머님 혼자 누워 계셨다.
몇 달 전 만났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에 너무 놀란 센터장이 [어머님 요즘 식사 안 하신다면서요] 하며 말을 걸자 [누가그카데?] 하며 되물으셨다.
[아침에 현이가 센터 다녀갔어요 할머님 식사 안 하신다고 걱정을 얼마나 하던지 왜 식사를 안 하세요] [걱정은 무슨 배고프면 먹는 거지 아무 때나 먹나?] [그래도 때가 되면 식사를 하셔야지요]
[어머님 화장실은 어떻게 가요?] [왜? 여기에다 그냥 쌀까 봐? 급하면 기어서라도 가야지 어떻게 해]
[힘드시면 할아버님 쓰시던 변기 있잖아요 그거 방에다 넣어 드릴까요?] [그러면 고맙지!]
[참! 현이가 할머님 요양보호사들이면 안 되느냐고 물어보던데 어머님은 어떠세요?]
[현이가 그카더나?] [예 걱정 많이 하네요] 할머님의 눈가에 눈물이 고이시더니 잠시 훌쩍이시며 [요즘 갸가 잘한다. 이제 정신 차렸는 갑다.] 하시며 연신 눈물을 훔치셨다.
[울지 마시고 이참에 어머님 등급신청 해 봅시다.]
그렇게 일사천리로 신청이 이루어졌으며 현이 할머님은 4등급을 받으셨다.
현이의 걱정과는 다르게 할머님은 그날 센터장과의 상담 이후 식사를 잘 드셨다.
물론 지금은 방문요양 4등급으로 요양보호사 선생님께서 주 5일 3시간씩 가사지원 및 정서지원을 하고 계신다.
비록 할아버님은 계시지 않지만 현이와 할머님은 서로 의지한 체 오늘도 살아내고 있다.
살아낸다는 말이 마음 아프지만 가장 현실성 있는 표현인 듯하다.
치유하다, 보듬고 있다, 의지하다는 표현도 있지만 내가 본 현이 가정은 살아내고 있는 듯했다.
# 막걸리 할아버지 (막걸리는 포기 못 해)
[여보세요 119지요! 여기 새벽시장로...인데요 할아버님께서 호흡을 잘 못하고 계세요 빨리 좀 오셔야겠습니다.]
몇 년 전 센터장이 행정복지센터에서 근무할 때 만났던 독고 할아버님은 그날 센터장의 발 빠른 대처로 살 수 있었다.
그날은 동장님과 보건소장님 앞에서 사례발표가 있던 날이었는데 여느 때처럼 출근길에 인사차 들렸던 할아버님께서 호흡곤란을 호소하셨으며, 눈빛도 예전 같지 않았다.
머릿속에선 이미 사례발표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아버님 정신 차리세요.] [아버님 제 말 들리시면 손가락 움직여봐요] [아버님 이제 119올 테니까 조금만 힘내세요.] 혹시 정신을 놓으실까 센터장은 계속해서 말을 걸면서도 예전에 배웠던 심폐소생술을 머릿속으로 그리고 있었다.
다행히 할아버님의 의식이 있을 때 119 대원이 도착하였고 들것에 실려 할아버님께서는 병원으로 이송되셨다.
[보호자님 타세요.] [저 제가 보호자는 아닌데...] [그러면 보호자 없나요?]
할아버님은 홀로 사는 노인이시다 20년 전 할머님이 먼저 돌아가셨지만 두 분 사이에 자녀도 없었다.
할머님 역시 고아로 자라신 분이라 형제자매도 없이 두 분이 함께 사셨지만, 자식마저 없는 가정에 할머님이 먼저 별세하시니 할아버님 홀로 남은 생을 살아가고 계셨다.
[예...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그렇게 엉겁결에 119 이송차량에 몸을 실은 센터장이 그제야 사례발표 생각이 났다.
[아! 맞다 오늘 사례발표 있는 날인데... 미치겠네...] 다급해진 센터장이 손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다 그만 바닥에 떨어뜨렸다.
다시 주우려 했지만, 생각보다 좁은 공간이었고 할아버님의 상태를 예의주시하며 호흡기를 짜주고 있는 대원들 사이에서 떨어진 휴대전화를 집어 들기는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그때 행정복지센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하지만 떨어진 휴대전화를 빨리 줍지 못하자 대원 중 한 명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빨리 전화받으세요.] 하며 짜증 섞인 말을 했다.
[자세가 잘 안 나오네요] 미안한 맘에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고 있으니 눈치 빠른 대원이 재빨리 집어 들어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짧게 묵례를 하고 통화버튼을 누르니 숨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어떻게 된 거예요? 왜! 아직 안 와요? 무슨 일 있나요?] 하며 담당공무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예~ 사실 옥기 어르신이라고 자주 들여다보는 홀로 사는 노인 할아버님께서 계시는데...]
믿을지 안 믿을지 알 수 없지만, 상황설명을 하고 있었고 너무 다급하니 말도 두서없이 나왔으며 내용이 산으로 가는듯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있었는데 통화내용을 듣고 있던 구급대원이 대화 중에 끼어들어 상황의 긴박함을 전달하였고 그렇게 짧은 통화가 마무리되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당시 센터장과 통화하던 담당자 역시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있어서
동장님과 보건소장님 이하 사례발표자들까지 모두 통화내용을 들었다고 했다.
있지 되었건 자신이 준비한 사례발표를 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 이상의 성과가 있었다.
생동감 있는 실시간 사례발표였던 셈이다.
응급실에 도착한 어르신이 들것에 실려 응급실 안으로 빠르게 사라지셨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멍한 상태로 정신을 가다듬던 센터장이 함께 이송을 도왔던 대원에게 몇 가지 조언을 들은 후에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빠르게 찾아 하기 시작했다.
먼저 절차를 밟았으며 그곳에서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는 등 분주히 움직였다.
심근경색의 골든타임은 30분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대부분이며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생존확률이 낮아진다.
다행히 옥기 어르신은 센터장의 대처가 빨랐기에 빠른 회복과 후유증도 없었다.
병실에 있던 어르신에게 의사 선생님께서 [이 사람이 할아버님 살린 거예요] 하면서 당시 매우 급했던 상황을 설명했지만, 굿이 들으려 하지 않으셨다.
가끔 들러 인사하고 가는데 그것조차 귀찮아서 가끔은 핀잔도 주곤 하셨던 터라 아마 미안해서 그러셨을 것이다.
많은 어르신을 만나다 보면 고마움의 표현을 방법이 개인에 따라 다름을 알 수 있다.
어떤 어르신은 고맙다는 말 대신 [뭐 한다고 치아라] 하시며 거부하는 듯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또 다른 분은 온몸을 다해 감사함을 표현하기도 하신다.
옥기 어르신은 [뭐 하러 자꾸만 와 냄새나는데] 하시며 한발 물러나는 듯한 표현을 주로 하신다.
당신께서 쓰러지기 전날 막걸리병을 발견한 센터장이 잔소리했더니 [그럴 거면 오지 마라]하시며 내치셨는데 마음에 걸리셨던 모양이다.
나중에서야 미안했다며 [삐친 거 아니지?] 하시며 팔을 툭 하고 치셨다.
그날을 계기로 옥기 어르신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센터장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보호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다행히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하셨다.
센터에서 관리해야 할 수급자 어르신들이 늘다 보니 매일 뵙던 할아버님을 이틀에 한 번 3일에 한 번 조금씩 멀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1달에 1번도 찾아뵙기 힘들어졌다.
그래도 다행인 건 행정복지센터에서 전담관리를 하고 계셨기에 자주 찾아뵙지 않아도 안심은 되었다.
그렇게 잊힐 때쯤 행정복지센터 복지담당 주무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옥기 어르신 상태가 너무 좋지 않다면서 센터에서 관리하면 안 되겠느냐는 문의였다.
보통은 복지센터에서 관리하는 것이 정석이긴 하지만 옥기 어르신께서 센터장이 자신의 보호자인 양 말씀하시며 지목을 하셨단다.
그런 것도 있긴 하겠지만, 행정복지센터조차 마치 담당보호자인 양 인식하고 계셨다는 점이다.
센터입장에선 관리해야 하는 회원이 늘었으니 나쁘진 않았지만, 문제는 요양등급 절차가 필요한 사항이라 서둘러야 했다.
공단에 신청서를 넣기 전 센터장과 함께 오래간만에 할아버님댁을 방문하였는데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으로 생활하고 계셨다.
예전에 알고 있던 할아버님의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누워서 일어서지도 못했을뿐더러 집안을 가득 메운 나프탈렌 냄새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밥상 위의 반찬은 언제 것인지 이미 곰팡이가 즐비했으며, 머리 곁에는 막걸리병만 덩그러니 둘러 다니고 있었다.
[아유~냄새! 아버님 왜! 이러고 계세요? 식사는 언제 하시고 안 하신 거야? 술 만드신 거 아니야?]
[누고? 조양이가?] [예 아버님 식사하셔야지 이게 뭐야 일어나 보세요.] [마침 잘 왔다. 나가서 막걸리 좀 사와라] [우리 아버님 큰일 날 소리 하시네 아버님! 식사하셔야지 막걸리만 드시면 어떻게 해요 안 돼 참아요 내가 식사 챙겨 드릴 테니 그거 드세요.] [넘어가야 먹지, 안 넘어간다.]
[식사를 안 하시고 막걸리만 드시니까 안 넘어가지 억지로라도 드셔야지요] [아니 글쎄 안 넘어간대도...] [그러니까 내가 차려드린다고요] [아냐 싫어 다음에 지금은 먹고 싶지 않아]
[다음에 언제?] [아 글쎄 나중에 먹을게 막걸리 안 사줄 거면 어서 가라 나 좀 눕자]
할아버님께서 완강히 거부하시며 센터장을 밀어내며 목소리를 높이셨다.
아무리 나이 드신 할아버님이라 하더라도 화가 나서 덤벼들면 당할 재간이 없다.
한발 물러서는 수밖에 [알았어요 그러면 내일은 꼭 먹읍시다.]
약속만 받아내고 돌아온 센터장이 평소 즐겨 먹던 무역국 체인점에 전화를 걸어 가자미 미역국을 주문예약 하였다.
평소 센터에 소속된 수급자 어르신들이 생일을 맞으시면 센터에서 따뜻한 미역국을 대접해 드리는데 그곳의 미역국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임을 확신했고 다음날 미역국을 사 들고 옥이 어르신 댁을 다시 한번 방문하였다.
여전히 누워계시는 할아버님께서 머리를 돌려 안으로 들어오는 센터장을 맞이하였다.
[막걸리 사 왔나?] [아니요! 아버님 오늘 식사하기로 하셨잖아 일어나서 얼른 식사합시다.]
[가라 귀찮게 하지 말고] 하지만 센터장은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일어나세요 오늘은 아무리 그래도 그냥은 못 가요 한술 뜨시는 거 보고 갈래요]
[나중에 먹을게 가라] [온종일 아무것도 안 드셨으면서 뭘 나중에 들어요 나도 안 돼요 아버님 나 고집 센 거 아시잖아요] [우유 마셨다.] [하얀 우유 그게 무슨 영양가가 있다고 먹기 싫어도 사 온 사람 생각해서 한 숟가락만이라도 드세요 그러면 내가 갈게 자~ 일어나세요]
억지로 등을 밀어 앉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도무지 먹을 생각하지 않으셨다.
할아버님 보는 앞에서 미역국에 밥을 조금만 말아 억지로 드시라고 숟가락을 권했지만, 완강히 거부하시며 또다시 막걸리나 사달라고 소리를 지리셨지만, 센터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버님 나 하루 이틀 본 거 아니잖아요 아시면서 고집을 부리시네 제가 이야기했잖아요 한 숟가락이라도 드시면 간다고] 할아버님은 센터장의 고집을 겪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겪어보았기에 잘 알고 계셨지만 한 번 더 강짜를 놓으시며 거부하셨지만 결국 한 숟가락 입에 넣으시며 버럭 화를 내셨다.
[됐지? 먹었다, 꼭! 노인네를 이겨 먹어야겠느냐! 니 못된 거 아나?] [알지요 내일도 올 거니까 저 보기 싫으면 이거 다 드세요.] 아버님 약속했으니까 저 일어날게요] 하며 순순히 집 밖을 나왔다.
돌아서는 센터장에게 굴러다니던 막걸리빈병을 획 집어던지시며 [올 때 막걸리나 사와]
지켜보던 나는 속에서 천불이 올라왔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나 다음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바쁜 걸음을 이어가는 센터장이 놀라웠다.
평소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와 ~ 당신 많이 변했네 멘털 강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눈물부터 나왔을 텐데...] [하하하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제 나도 나이가 먹어가나 보네.]
웃고 있었지만 변한 것이 나 때문인 것 만같이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날 복지사 선생님을 통해 요양등급신청을 지시한 센터장이 등급판정 전까지 요양보호사를
사비를 들여가며 보내었다.
보통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음식섭취를 거부하시는 어르신을 며칠이나 두고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다.
다행히 행정복지센터에서 도와주니 공단에서도 예상보다 빨리 나와주셨고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옥이 어르신의 가정에 요양보호사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이야 예전에 비할 바 아니지만, 식사도 잘하시고 집안도 정리가 잘 되어있다.
무엇보다 막걸리 드시는 횟수도 현저히 줄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지만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 건 담당 요양보호사 배정 2주일이 지날 때쯤이었다.
평소처럼 아침에 출근하시던 요양보호사님 눈에 쓰러져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계신 옥이 할아버님이 들어온 것이다.
[아이고 아버님... 이게 무슨 일이야? 괜찮으세요?] [아이고 머리야] [일어날 수 있겠어요?]
기력이 회복된 할아버님께서 홀로 움직여보겠다고 하시다 그만 쓰러진 것이었다.
[집안에 계시지 뭘 하시려고 이곳까지 나오셨어요?] [막걸리 사러 가려고 했지 너희가 안 사주니까] [아이고 아버님도 참 드시지 말리니까 고집도... 일어날 수 있겠어요?]
[119 불러라] 부축해서 집안으로 모실 수 있었지만, 골절이 있을 수도 있고 만약 그렇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하리라 판단한 보호사님께서 119를 불러 근처 병원으로 이송하셨다.
할아버님은 넘어지면서 머리가 깨지긴 했지만 다른 이상은 없다고 하셨다.
당 신계서 균형을 잃고 넘어지셨지만, 귀신이 넘어뜨렸다고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신다.
[귀신이 넘어뜨렸다고요?] [아암 뒤에서 확 밀더라고] [아버님이 자꾸만 술을 드시니까 헛것이 보이시나 봅니다.] [아니래도 무슨 말만 하면 술이야 술 안 먹었어.] [알았어요 어르신]
치료를 마친 의사 선생님께서 함께 오신 요양보호사님에게 큰 병원 진료를 권하셨다.
[예전에 오셨을 때 큰 병원에 한번 가보라고 이야기했었는데 안 가셨네요] [그래요? 이야기 못 들었는데?] [정확한 건 아니니 한번 가 보세요] [무엇을 의심하십니까?] [지금은 말씀드리기 힘들어요 그러니 검진 먼저 받아보세요.] [그래도 알아야... 혹시 암인가요?] [그래 보이는데 정확한 건 그쪽에서 검사를 받아봐야겠습니다.] [예 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난번 실려오셨을 때 받았던 초기검사에 이상 소견이 있어 환자 본인에게 이야기하셨다는데 할아버님께서는 함구하고 계셨다.
일부러 그러신 것인지 잊으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우린 너무 당황스러웠다.
[아버님 전에 의사 선생님이 큰 병원 가보라고 했다면서요] [그래? 몰라 나중에 가면 되지 그게 뭐 중요하다고] [중요하지요] [나는 막걸리만 있으면 돼] [왜 이야기를 안 하셨어요?] [몰라]
미간을 찡그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더는 귀찮게 하지 말라는 듯 획 돌아누우셨다.
아마 할아버님께서는 이미 알고 계신 듯 보였지만 더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생각해 보면 독고노인의 대다수는 가난으로 힘들어하신다.
전기세 아끼려고 손빨래를 고집하시고 난방비 아끼려고 추위에 떨고 계셨으며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
순연할머님이 초코파이로 식사를 대신하듯 옥이 할아버님은 막걸리의 취기로 하루를 버티신 것이다.
이런 분들을 보호할 대안은 없는 것일까?
매번 같은 질문을 던지지만, 아직 해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던 센터장의 마음이 지금의 나와 같았을 것이다.
그간 보아온 어르신들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 인가에 대한 방향을 얻은 듯했다.
다만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생겨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으면 초고령 사회라고 하는데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15~ 20년 도체 남지 않았다고 한다.
미래의 기술발전으로 조금은 보완되겠지만, 추측일 뿐 결정된 바 없고 나이 들면 의료비 역시 많이 들 테지만 수입이 전혀 없는 노인층에게는 부담될 수밖에 없다.
또한 지금의 젊은 세대가 감당해야 할 부분 역시 늘어남으로 세대 간 갈등의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조금만 둘러보면 독고노인이 보이고 고독사에 관한 이야기 역시 심심찮게 들리는 것이 현재의 상황인데 앞으로는 더욱 심할 것이 자명한 상황이라 정부의 발 빠른 대처가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