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신경미(3화)

3화 가진 자의 사회

by 서기선

가진 자의 사회


점자 도서관에선 다양한 책들이 만들어진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다양한 책들이 모여있어 취향에 따라 골라 읽는 일종의 문화공간이지만, 점자 도서관은 조금 다르다.

도서가 있기도 하지만 만들기도 한다는 점에서 일반도서관 과는 사뭇 다르다.

이를테면 종이책을 음성파일로 변환하기 위해 녹음하는 녹음실이 있고 음성파일을 텍스트로 옮기는 작업도 한다.

이곳에 오면 더 이상 타인의 도움을 받거나 흰 지팡이를 쓰지 않아도 된다.

물론 전혀 그렇지 않은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일상을 도움 없이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만큼 익숙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나처럼 시각장애인이 활동하기에 많은 부분의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정문을 통과할 때 울리는 초인종 소리로 내가 출구를 지나쳤음을 알게 하였고 점자블록을 따라 걸으면 곧장 사무실이나 편집실로 이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근처를 산책할 때도 음성 알림으로 현재의 위치를 알려주기도 했다.

이런 사소한 배려가 곳곳에 숨어있어 안정을 넘어 배려의 마음마저 읽혀 따스함마저 들었다.

내가 편집실을 지날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경~ 여기서 뭐 해? 설마 혼자 온 거야?”

경미가 반가운 목소리로 다가오며 물었다.

“경미야! 오래간만이다. 잘 지내고 있지? 그런데 너야말로 여긴 무슨 일로 왔어?”

일반 도서관도 아니고 점자 도서관에서 경미를 만나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뭐! 자원봉사? 네가?”

“뭐야 이런 반응은? 야! 나는 자원봉사 하면 안 되냐?”

경미가 내 등을 가볍게 때리며 이야기했지만, 서운한 듯 꼬리말이 가늘고 길어졌다.

경미와 오랜 시간 함께 하면서 알게 된 본인도 모르는 경미만의 말버릇이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나는 네가 동적인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거든.”

“이 계집애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뭐? 나 때문이라고? 어째서?”

경미의 팔을 잡아끌며 물었다.

“너랑 시간을 보내면서, 너의 세상이 궁금해졌어! 무엇보다 네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나를 움직이게 했지!”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 그게 뭔데? 너 요즘 어른스러워졌다.~”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 힘들어 다시 한번 물었지만, 경미의 답은 1시간이 흐른 뒤에나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시각장애인이 도움을 청했기 때문에 그곳으로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경미 씨~”

“내~ 가요~ 야! 여기 계속 있을 거지? 기다려 1시간 정도 걸릴 거야 내가 찾아갈 테니 나중에 봐~”


1시간 뒤

“소리를 만지는 사람이라~ 와~! 어머님 멋지시다.”

“그런데 그게 무슨 소린지 난 아직 찾아내지 못했어!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일까?”

“뭘 그리 어렵게 생각해! 너는 손끝으로 점자를 읽잖아, 마치 소리를 만지는 것처럼... 정보를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말이잖아”

“역시 그런 것이겠지!”

“당연하지! 어머니 멋지시다. 그리고 보니 해결됐네”

“뭐가? 뭐가 해결돼?”

“너 엄마한테 단말기 전원 때문에 신경질 부렸다며, 그게 해결됐다고”

“어떻게?”

경미의 음성이 들리는 쪽으로 몸을 틀며 물었다.

“뭐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네. 생각나는 글이 있거든 복잡한 절차 없이 녹음해 그러면 되잖아. 안 그래?”

경미의 해법은 심플하고 명쾌했다.

“그렇네. 내가 왜 그 생각은 하지 못했지!”

“뭐! 그럴 수 있지 하하하! 맞다 너 아직 식사 전이지? 밥 먹으러 가자”

경미의 손에 이끌려 건물 지하 식당으로 내려온 나는 선택의 고민에 빠져야 했다.

학교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메뉴의 선택 때문이었다.

늘 정해진 메뉴를 먹어야 했던 과거의 시간에서 이젠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현실에 처음 부딪혔을 때의 감정은 좀처럼 정의하기 힘든 기쁨이었다.

“뭐 먹을래?”

경미가 아무렇지 않게 던진 ‘뭐 먹을래’라는 질문이 낯설었다.

우리 집은 외식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집밥 아니면 급식이 전부였던 나에겐 낯선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글세 뭐 먹지? 뭐가 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여전히 가슴이 뛰었다.

나는 아직 경미의 평범한 일상을 누리기엔 부족하구나 라는 생각이 드닌 조금은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여러 가지 메뉴를 읽고 있는 경미의 노력에도 무색하게 ‘너랑 같은 거’라고 대답한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동안 경미가 시켰던 돈가스가 나왔고 학교에서처럼 식판을 가져다주며, 반찬의 위치를 꼼꼼히 알려주는 경미가 너무 고마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 아기 이제 밥 먹자!”

식사를 마치고 1층 벤치에 앉아 이야기하는 동안 그간 몰랐던 경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까 세상을 대하는 태도라고 말했는데 그게 뭐야? 뭘 말하는 거야?”

때 마치 오전의 일이 생각나 경미에게 물었다.

“사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나 말이야 중학교 때 정학 당할 뻔했거든”

경미의 말에 ‘왜?’라는 질문 말고는 달리 생각나지 않았다.

“헤헤~! 나 솔직히 좀 놀았거든 맞아!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웃기지 않냐? 그런데 고등학생이 됐을 때 선생님이 너하고 짝을 시켜 주셨어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처음엔 싫었어 그런데 너 생각보다 좋은 녀석이더라. 그래서 관심이 생겼어 사실 내가 누굴 돕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 물론 자의에 의한 건 아니었지만 한 두 번 하다 보니 나쁘지 않더라고.... 선행말이야 하하하! 너하고 있으면 내 영혼이 맑어지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2학년에도 3학년때에도 너하고 짝 시켜달라고 선생님에게 졸랐지 뭐야 하하하!”

경미가 이야기하기 전까지 선생님의 배려로 경미 같은 좋은 짝을 3년 동안 이어 주신줄 알았던 나는 충격이었다.

“뭐! 선생님을 졸랐다고?”

“그래 맞아! 네가 물었던 세상을 대하는 태도 말이야 난 있잖아. 너를 만나기 전엔 세상이 나를 버렸다고 생각했었어! 허구한 날 자책하고 나만 불행하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선경이 너는 불편한 몸을 가졌음에도 너무 밝더라고 그래서 호기심이 생겼었어! 사실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긴 해 어떻게 그렇게 밝을 수 있는지 말이야.”

예상치 못한 경미의 말에 한동안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자기 민낯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주는 경미가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궁금한 게 뭔데?”

“오해하지 말고 들어 너는 말이야 앞이 보이지 않잖아! 그러면 화나지 않아? 나 같으면 속상해서 매일 울 것 같은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밝아?”

차분하고 발음이 정확한 것으로 보아 장난스럽거나 모욕감을 주기 위한 질문이라기보다 진심이 묻어있는 진지한 질문 같았다.

“있다가 없어진 사람은 화나고 불편하겠지만 나처럼 처음부터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은 불편함보다 순응을 먼저 하게 돼 원래 세상은 이런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야, 어쩌면 처음부터 각인이 되었기 때문일 거야”

내 말을 듣던 경미가 나를 끌어안으며,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다.

“가져본 사람들은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권리를 주장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개선을 요구해 그러기 때문에 동정이나 측은지심이 들지 몰라도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너의 세상과 나의 세상은 같은 듯 다른 세상이거든.”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경미는 여전히 흐느꼈다.


다음 편은 12월 18일 이어집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남기는 말 :

피드백을 위해 직원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했는데 그중 한 분이 요즘은 계집애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귀띔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이 사용한다는 '이 자식'처럼 남성화된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집부려 봤습니다.

눈에 거슬리실 테지만 이번엔 넘어가 주세요.^^ 좀처럼 '이 자식'이라는 표현이 내키지 않아 그렇습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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