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편의점에서
편의점에서
일요일 아침이지만 여전히 침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게으름을 펴고 있다기보다 간밤에 문득 생각난 글감들을 녹음기에서 꺼내 그것을 다시 점자정보 단말기에 입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 전 경미가 알려줬던 간단하지만, 효과적인 녹음을 시작한 이후 글감이 하나둘 늘어나 이젠 제법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한참을 몰입해 글을 적어가고 있었는데 방문 밖 부모님의 대화가 신경을 거슬렀다.
“편의점 가려는데 뭐 시킬 거 없어요?”
아빠가 줄곧 이야기하시던 G 편의점에만 있다던 그것을 구입하려고 하시는 눈치였다.
“그럼 올 때 선경이 군것질거리 좀 사다 줘요”
“뭐 가 좋을까?”
아빠가 물었지만, 엄마의 아무거나 사가지고 오라는 무성의한 말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뭘 아무거나 사와!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거든요. 나도 갈래!”
내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엄마도 아빠도 당황하셨는지 아무런 말씀을 하지 못하셨다.
“그래 우리 딸 같이 갈래?”
아빠의 음성이 짧은 침묵을 뚫고 들렸지만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켰는지 평소 당신의 목소리보다 한 키 높게 들렸다.
“응 나도 편의점이라는데 가고 싶어 같이 가요 아빠”
그깟 편의점 한번 가는 것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각장애인인 나에겐 대단한 도전이다.
물론 누군가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긴 하겠지만 그런 용기를 내는 것 자체만으로 말이다.
막상 아빠의 손에 이끌려 편의점에 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기대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엘리베이터를 나와 오른쪽으로 돌면 편의점까진 불과 100m 정도이다.
보폭으로 계산을 해 봐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아빠와 호흡하며 걷고 있을 때 아빠가 물었다.
“왜? 갑자기 편의점에 가고 싶었어?”
“몰라! 그냥 오기가 생겼어! 같지만 다른 세상이 궁금해졌다고나 할까?”
“우리 딸 어느새 많이 자랐네! 이젠 세상과 부딪힐 줄도 알고.... 그래 맞아 피하기만 해서는 해결책을 찾지 못해 부딪히고 깨지고 그러면서 사람은 발전하는 거야. 누구나 처음엔 두려워 그것을 극복하느냐 복속되느냐는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고 선택에 대한 책임도 본인이 지는 것이야 잘하고 있어, 우리 딸 이쁘다.”
어느새 편의점에 도착한 아빠가 입구에서 말했다.
“여긴 네가 이야기한 대로 같지만 다른 세상이야! 어쩌면 철저히 가진 자들의 입장에서 운영되고 있을 거야, 그렇다고 너무 의기소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아빠가 무슨 말하는지 알지?”
“알아요,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호기롭게 말했지만, 여전히 두렵긴 매한가지였다.
아빠의 도움으로 매장을 한 바퀴 돌았지만, 생각보다 작은 규모에 당황했다.
그럼에도 다양한 물건들이 있다는 아빠의 설명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빠의 말로는 라면의 종류만 30가지는 된다고 하셨다.
혼자 먹을 수 있도록 도시락도 수십 종이 있다고 들었지만, 손으로 만져본 도시락들은 그리 단단하지 않은 플라스틱 상자로 이루어져 또 한 번 비닐 포장을 한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이게 도시락이라고요?”
“그래 한번 먹어볼래?”
아빠의 권유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라고 말하고 그것 중 요즘 잘 나간다는 요리사 아저씨의 이름을 딴 B 아저씨 도시락을 집어 들었다.
물론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따뜻하게 하는 것까지의 절차는 아빠의 몫이었다.
편의점 한쪽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도시락을 먹을 때 소꿉장난하는 것 같다는 아빠식 표현이 어떤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반찬이 조금씩 그러나 여러 종류가 있었다. 아빠가 말하는 소꿉장난이라는 표현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어때?”하며 아빠가 물었다.
“나쁘지 않아! 솔직히 엄마가 해주는 것보다 맛있는데.”
“딸! 어떻게 그런 말을.... 엄마에게는 비밀이다. 무슨 뜻인지 알지?”
“하하! 알지 그럼! 아빠! 절대 비밀이야.”
간단한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한 가지 다짐이 들었다.
같지만 다른 세상이라고 믿어왔던 세상을 같은 세상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어쩌면 가당치도 않을 다짐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