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신경미 (5화)

5화: 선경이의 도전

by 서기선

선경이의 도전

부쩍 경미와 통화하거나 만나는 일이 많아졌다.

얼마 전 편의점을 다녀온 후로 생긴 변화였지만 부모님은 알아차리지 못하셨다.

다만 엄마가 경미에게 ‘요즘은 자주 오네!’라는 말로 그간의 흔적 같은 것을 눈치채셨을 뿐 목표를 이루기 위해 모의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하셨다.

“그래서? 편의점 사장님에게 말은 해 봤어?”

“아니 입구까지 갔다가 되돌아왔어. 나 바보 같지?”

“아니야~ 나라도 쉽게 말하지 못했을 거야 제품 목록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점자로 만들겠어! 설령 네가 만들어 준다 해도 일일이 붙이는 것도 힘들겠다.”

“맞아! 나도 그것 때문에 선 듯 말을 못 하겠더라고”

경미와 편의점이 제품명을 한글과 점자 두 가지를 혼용하는 문제를 두고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뭐 방법이 없을까? 어떻게 하면 편의점 사장님이 제안을 받아들일까?”

나는 경미를 앞에 두고 혼잣말을 했지만, 마치 경미에게 너는 뭐 생각나는 아이디어 없냐는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혼잣말 치고는 제법 크게 말했기 때문이다.

“글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지 말고 우리 사장님을 직접 만나보고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어떨까?”

경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웃옷을 집어 들며 말했다.

조금 전까지 침대 왼쪽에 자리했던 그녀의 옷자락이 순식간에 사라졌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더욱이 옷자락을 끌어올릴 때의 펄럭임이 정체되었던 공기를 움직였는데 나는 그런 사소한 공기흐름도 느낄 수 있어 확신하였다.

“지금 가려고?”

“뭐 어때 가보는 거지 밑져야 본전이잖아!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야 개선책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였고 그건 평소 내가 자주 하던 말이었기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경미와 편의점을 찾았을 땐 사장님이 아닌 아르바이트 학생이 있었다.

다행히 손님은 없는 듯했다.

‘어서 오세요’ 하며 인사하는 아르바이트 학생의 목소리가 습관에서 나오는 기계적인 인사말처럼 들렸다.

“저~ 혹시 사장님 이 신가요?”

“아니에요. 저는 직원인데요, 왜? 그러세요?”

“아~ 예~ 사실 이 친구가 장애가 있어요.... 앞을 보지 못해요.”

“예~ 그러시구나.... 그런데 사장님은 무슨 이유로 찾으세요?”

학생이 뒷말을 흐리며 물었지만, 그 물음에 나보다 경미가 더 적극적이었기에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이 친구 혼자 편의점에서 물건을 고를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예 그러세요. 손님은 무엇을 찾나요?”

목적어가 빠진 경미의 말 때문에 우리가 기대했던 대답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 들어갔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시각장애인도 쉽게 편의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제품에 점자표기를 해달라는 말입니다.”

듣고 있던 내가 미리 연습했던 요구를 단숨에 뱉어 내자 직원분이 당황하셨는지 머뭇거리는 어투로 말했다.

“어~ 그건 사장님이 결정하셔야 할 문제예요. 말씀드렸지만 저는 아르바이트하는 직원이라 결정권이 없어요.”

“그럼, 사장님은 언제 오시나요?”

난감해하는 직원에게 경미가 묻고 있을 때 ‘딸랑딸랑’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저기 때마침 오시네요”

아르바이트 학생의 말에 나는 또 한 번 심장이 두근거렸다.

직원이 우리의 요구를 사장님에게 전달하는 동안‘누가? 저분들이?’라는 목소리에서 여사장님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사장님의 답변이 돌아왔다.

“시각장애인이시라고요! 얼마 전에도 오시지 않았나요? 그분 맞는 거 같은데...”

“예 맞아요. 아빠하고 한번 왔었어요”

“그때 많이 불편하셨나 봐요. 그런데 그 일이 그리 쉽지만은 않아요. 우리가 취급하는 물품만 하더라도 수천 개가 될 텐데 그걸 누가 다 하겠어요. 더욱이 위치는 몰라도 품목이 자주 바꿔요. 그때마다 그걸 바꾼다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예요.”

예상했던 답변이 돌아왔고 이미 그런 경우 물러나야 한다는 것을 경미와의 연습으로 알고 있었지만, 돌발질문이 생각나 사장님에게 물었다.

“그럼, 방법이 없나요? 방법이 있다면 들어주실 의향은 있으신가요?”

내 돌발질문에 경미가 당황했는지 내 오른팔을 끌어당겼다.

“사실 현실적으로 힘들긴 해요. 아시겠지만 우리 매장은 아주 협소해요 이 협소한 장소에서 수천 개나 되는 상품에 일일이 이름표를 붙이는 건 무리예요. 죄송해요. 도와주지 못해서.... 재조사에서 찍어 나오지 않는 이상 판매점에서는 현실적으로 힘들어요.”

“아~ 역시 그러시구나”

“대신 직원에게 찾는 물건 이야기하시면 찾아드리겠습니다.”

“예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그건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나는 사장님이 계시는 방향으로 짧게 묵례하였지만, 경미는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나도 경미처럼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싶었지만, 앞이 보이지 않으면 그런 사소한 것도 쉽지 않다. 동작이 크면 그만큼 위험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너무 큰걸 바랐나? 우리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부터 차근차근히 해 보자”

돌아오는 길에 경미가 말했다.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 그런 게 뭐가 있을까?”

축 처진 목소리로 대답하자 경미가 가던 길을 멈추고 나에게 말했다.

“야! 기운 차려 처음부터 안될 거 알았잖아! 그리고 우리 포기하는 것 아니잖아. 너! 설마 포기하는 거야? 아니지?”

경미의 말에 발끈해서 ‘당연히 아니지’라며 씩씩한 척 대답했지만, 솔직히 자신감이 떨어지긴 했었다.

“그래 맞아 우선순위가 바뀐 거지 포기한 건 아니다 그렇지?”

경미가 다시 한번 확인하려는 듯 어깨를 툭 치며 말했고 나도 웃어 보임으로써 경미의 말에 호응했다.

“선경아! 학교는 어때? 거긴 잘 되어있어?”

“뭐가?” 경미의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다시 한번 물었다.

“점자 말이야 여기저기 네가 만들어서 붙여놓은 건 봤는데 그것으로 충분하냐는 말이야”

경미의 말에 다시 한번 곱씹어 생각해 보니 그동안 익숙해져서 찾아다니던 곳이었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학교를 찾는다면 분명히 불편하고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렇네! 당장 할 수 있는 곳 거기라면 가능성이 있겠네”

그 길로 경미와 함께 학교로 향한 나는 그간 무심코 다녔던 길들을 다시 한번 느끼며 걸었다.

횡단보도에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는지 안전 손잡이의 시작점과 끝점에 안내 문구는 적혀 있는지 진행을 의미한 선형블록과 정지를 의미하는 점형 블록의 조화는 이루고 있는지 등 다양한 정보들을 기록해 가며 걸었다.

경미와 함께 걷는 길이 마냥 행복했다.

“경미야! 그런데 너는 왜? 갑자기 사회복지사를 하려는 거야?”

지난번에도 같은 질문을 했었지만, 답을 듣지 못했는데 문득 생각이나 물었다.

“내가 지난번에 정학당할 뻔했다고 이야기 안 했었나?”

경미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하긴 했어! 그런데 왜? 사회복지사를 하려는지는 말하지 않았어!”

“어! 그래! 뭐 별것 없어 막상 착하게 살아보니 그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야. 너 때문이라고 계집애야! 하하하!”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삶인가 난 경미가 놀던 아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고 지금의 선한 경미로 이끌어 준 것이 다름 아닌 나 때문이라는 말이 너무나 고마웠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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