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신경미 (6화)

6화: 선경아! 집필하자.

by 서기선

선경아! 집필하자.


정리되지 않는 날것의 글감이 쌓이면 다시 그것들과 어울릴 만한 곳으로 분류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예를 들면 생뚱맞게 시가 생각나기도 하고 SF나 순정 소설에 어울릴 법한 글감들이 떠오르기도 하므로 큰 틀에서 분류가 필요하다.

장르별로 나눈다는 것이 조금은 웃기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SF에 시조가 나온다면 독자 입장에서 이질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그때 작성하는 편이긴 하지만 간혹 몰아서 써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다고 글만 쓰는 것도 아니다.

점자로 만들어야 할 것들도 짬짬이 적고 있었고 얼마 전부터는 식품회사로 이메일을 보내고 있다.

제조사의 포장 과정에 점자를 넣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메일을 보내고는 있지만 여전히 아무런 답이 없다.

경미는 경미 나름대로 실습 때문에 쉽지 않다는 소리를 했지만,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가 밝은 것으로 보아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소식이 뜸하던 경미가 저녁 무렵 전화를 했다.

“선경아! 집필하자!”

“야! 밑도 끝도 없이 생뚱맞게 전화해선 집필하자니? 또 무슨 소리를 듣고 와선 집필 운운하는데?”

“하하하! 그냥 오늘은 너무 힘들어서 아무 말이나 막 해보는 참이야 넌 언제쯤 글을 쓸 거니? 네가 쓴 글 정말 궁금하다.”

길게 내뱉는 한숨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건너와 귓전에서 주저앉았다.

“왜! 요즘 힘들어? 실습한다면서 뭐가 잘 안돼?”

“선경아! 언니 힘들다 오늘은 너무 힘들다.”

“뭐야? 무슨 일인데? ”

녀석이 내뱉는 한숨 소리가 연신 고막을 자극했고 걱정이 된 나는 도움도 못 되면서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묻고 또 물었지만, 경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통화를 끝으로 또다시 경미는 모습을 감추었다.

근황이 궁금했지만 벌써 서너 번 연락을 고의로 끊은 터라 더는 찾지 않았다. 어쩌면 나에게도 숨기고 싶은 아픔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경미와 연락이 끊기고부터 나의 손끝은 분주해졌다.

미뤄왔던 글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졸업식에 마쳐 경미에게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첫 작품의 제목은 내 친구 신경미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미는 졸업식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날은 꼭 함께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선생님에게 물어봤지만, 선생님도 알려주지 않으셨다.

경미의 집에 찾아가 보고 싶었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경미의 집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다.

나 같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 혼자 친구 집에 놀러 간다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어쩌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기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달고 살아가는 자신이 미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선경아! 우리 같이 사진 찍자”

같은 반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와 나와의 추억을 담고 싶었는지 사진을 찍었지만 나는 여전히 유쾌하지 않았다.

비단 경미가 없어서만은 아니다.

사진이야말로 가진 자들의 추억이지 나에겐 특별할 것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둘, 셋 김치~”

‘나의 멈춤이 친구들에겐 추억이 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이제 그만 가요,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요.”

“왜? 경미가 없어서 그러니? 이제 졸업하고 나면 만나기 힘들어져 그러니 조금만 있다가 가자 응?”

엄마의 말씀이 아주 틀린 말도 아닌데... 나는 마치 세상에 홀로 버려진 듯한 모멸감이 들어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냥 갈래요”

나는 학교 밖 작은 정원에 잠시 앉아 하늘을 향해 눈을 감았다.

그리고 깊게 호흡해 이곳의 공기를 패 깊숙이 들여보내며 조금이라도 행복했던 날들을 가슴속 깊이 새겨 넣었다.

그때 바람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는 하늘을 볼 수 없었지만, 그것을 느낄 수는 있다.

바람이 내 뺨을 타고 흐를 때, 새들의 지저귐이 귀에 들렸다.

그때 비로소 내가 가진 다른 감각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나는 눈으로 세상을 볼 수는 없지만,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고, 손으로 세상을 만져볼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은 축복일 것이다.

졸업 후에도 나는 여전히 세상과 싸우고 있다.

비록 그렇다 할 성과는 없지만 오래전 경미가 말했듯 피하기만 해서는 어떠한 성과도 나지 않는다는 그 말을 꼭 끌어안고 살아간다.

나는 점자책을 만드는 일 외에도,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모교에 점자로 된 지도를 만들어 학교 곳곳을 누구나 쉽게 다닐 수 있게 했다. 또한, 도서관 식당엔 점자로 된 메뉴판을 제공하여, 시각장애인도 스스로 음식을 주문할 수 있게 하였다.

그렇게 나의 일상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루는 지역신문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내 책을 읽어본 기자가 인터뷰 요청을 한 것이었다.

“엄마! 나 오늘 인터뷰 가는 날인데 뭘 입고 갈까요?”

“이번엔 네가 직접 골라봐 엄마가 패션 센스가 없는 건지 우리 딸이 여태 남자친구가 없네”

물론 엄마의 농담이었지만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평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2가지 단어를 한꺼번에 사용하셨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남자친구라는 단어였고 두 번째는 ‘직접 골라봐’였다.

전자에는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았지만, 후자는 나를 충분히 설레게 하였다.

“내가 어떻게 골라 엄마가 골라줘야지”

“아니야 할 수 있어 우선 여기에 서 봐”

엄마가 거울 앞에 세웠지만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이건 원피스야 길이는 이 정도야 무릎을 살짝 밑돌지?”

“치마 말고 바지는 없어?”

“물론 있지! 바지는 길이가 거의 비슷해 몇 가지만 빼고 말이야 우선 재질을 느껴봐 촉감으로 느껴봐 어때? 조금 뻣뻣하지? 청바지야 가장 무난하게 입는 바지야 그리고 이건....”

한껏 진지한 목소리로 설명하고 있을 때 내가 엄마의 말을 끊었다.

“아무거나 입으려면 왜 굳이 엄마에게 물어봤겠어! 어울리는지 아닌지를 묻는 거잖아요”

“어울린다는 것은 결국 타인의 마음에 드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문제가 아닐까?”

“얼마 전 압구정에 나갔는데 젊은 친구들이 바지 위에 치마를 입었더라. 엄마의 시선에는 전혀 이뻐 보이지도 어울리지도 않았는데 과연 그 친구가 그것을 몰라서 그렇게 입었을까?”

“그래도 인터뷰인데....”

“아니야 할 수 있어, 그렇게 해보자”

설득인지 강요인지 알 수 없는 경계선의 것을 받아들이고 선택한 것은 처음에 알려 주셨던 원피스였다.

상하 발란스가 걱정되던 나에게 원피스는 어쩌면 가장 현명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나의 패션은 원피스로 고착화되었다.

‘이선경 작가님 반갑습니다’로 시작해 ‘다음 작품 기대하겠습니다’로 인터뷰가 끝이 났을 때 앞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관객 중 몇몇이 나에게 다가와 소설 내 친구 신경미를 읽었다며 사인을 부탁했다.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었기에 성함을 묻고 앞쪽 내지에 큼지막하게 이름을 적어 드렸다.

다음 분이 책을 내밀며 사인 요청을 했을 때 나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내민 책의 내지를 펴 보이며 물었다.

“신경미입니다.”

금요일 연재
이전 05화내 친구 신경미 (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