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칼의 눈물 06화

우발적 살인

칼의 눈물 (#6)

by 서기선

"뭐야! 옷장 문 이 왜? 움직여?" 놀란 나는 거실까지 달아났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했다.

어느새 출근 시간이 다가왔지만 나는 출근하지 못했다.

날이 밝아오자 알 수 없는 용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지 날이 밝다는 것 말고는 여전히 같은 공간에 머물러 있지만 심리적 안정감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안했다.

그래서일까 다시 한번 옷장 문을 열어 보기로 했다.

심리적 안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안함이 남아있어 오른손엔 고등학교 졸업 후 단 한 번도 돌려본 적 없는 쌍절곤을 들고서야 일말의 용기가 생길 것 같아 그것을 거머쥔 뒤에야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거실 베란다 창문 너머로 아파트 주민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지만, 생각일 뿐 실체를 확인하진 못했다.

8층에서 아래층의 사람들을 보기 위해선 베란다를 나가야 볼 수 있다.

그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구조이다.

그럼에도 날이 밝았다는 이유 때문일까? 마치 그들이 나를 응원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였다.

어찌 됐든 그런 착각이 심리적 안정을 주고 있었기에 그리 나쁘지 않았다.

다시 왼손을 뻗어 옷장 손잡이를 잡았고 속으로 하나, 둘, 하며 외쳤다.

셋에 맞춰 내가 옷장 문을 열려는 순간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그 소리에 또 한 번 놀라 거실까지 전력 질주하였다.

서둘러 나가느라 미끄러져 무릎을 다쳤지만 아프거나 창피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은 몸이 좋지 않아 못 갔습니다. 내일은 꼭 나가겠습니다."

십장이 직접 전화를 걸어왔지만, 몸이 아프다는 원초적 핑계를 대며 상황을 모면하였다.

통화를 하는 동안에도 나의 시선은 드레스룸 손잡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살금살금 드레스룸에 도착해 또다시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친 후 왼손을 빠르게 잡아당기며 오른손을 들어 언제들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을 대비했다.

"나와! !"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무수히 많은 경우의 수를 모두 빗나간 고요만이 나를 반겼다.

그럼에도 나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심장은 이미 터질 듯 빠르게 달리고 있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코트를 뒤로 젖히며 또 한 번 긴장 상태를 유지했다.

"뭐야! 칼 어디 갔어? 이쪽이 아닌가? 분명 왼쪽 코트 뒤쪽에 넣어둔 것 같은데 아닌가?"

순간 소름이 또다시 돋아났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여전히 닫혀있는 옷장의 오른쪽을 확인하기 위해 천천히 문을 열고선 절반의 옷을 왼쪽으로 젖힐 때 '쿵' 하며 쓰러지는 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놀라라!" 소리에 놀라 뒷걸음질 쳤지만, 방안을 나가진 않았다.

칼은 여전히 쓰러진 체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마 내가 옷을 젖힐 때 딸려 올라갔던 칼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잠시 쓰러져있는 칼을 바라보다 들고 있던 쌍절곤으로 '툭'하고 칼을 건드려 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 칼을 다시 손으로 잡기까지는 대략 1시간이 더 걸린 것 같았지만 실상은 30분인지 40분인지 알 수 없었다, 단지 대치 중인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심리적 시간일 뿐 중요하지도 않았다.

"에이 내가 미쳤지! 정신 나간 만신할매 말을 믿고 허허허!" 비로소 안전하다고 판단되자 그간의 대치 상황이 그려지며 두려워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져 조용히 실소했다.

칼을 구입했지만, 한 번도 칼집에서 칼을 완전히 빼내어 본 적 없는 나는 그제야 칼날을 보았다.

칼날엔 한문으로 무어라 적혀 있었는데 어떤 내용인진 알지 못했다. 아니 알고 싶지도 않았다.

여전히 칼 손잡이 끝부분에 눈 모양의 조각이 있었지만, 신경 쓰일 만큼 징그럽다거나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눈 주위에 좁쌀만 한 빨간 점이 있었는데 처음부터 있었던 것인지 어디서 묻은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게 뭐지? 에이 모르겠다. 공연히 이딴 걸 사가지곤…."

그때 반품이 안 된다던 주인장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렇다고 계속된 악몽을 참아가며 굳이 이런 애물단지를 들고 있을 이유도 없었기에 아깝다는 생각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처리하고 싶은 생각에 망설임 없이 칼을 집어 들고 아파트 밖으로 향했다.

경비실을 지나 분리수거함에 도착했지만, 이것을 어디에 넣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멀쩡한 청년이 긴 칼을 들고 서 있으니 이상했는지 경비 아저씨가 다가오며 말을 건넸다.

"우와~ 멋지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 이순신이야 뭐야 하하하!"

"에이 농담도 하하하! 그런데 아저씨 가슴에 그 마크는 뭐예요?"

경비아저씨의 왼쪽 가슴에 특이한 마크가 달려있어 물었다.

"이거! 별거 아냐 산악회 마크야 하하" 아저씨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씀하셨다.

AI 생성 이미지 허풍선이 산악회

"무슨 산악회 마크에 허파 모양이 그려져 있어요? 금연 광고에 나오는 모양 같은데요! 하하!"

"응! 우리 산악회 이름이 허풍선이 산악회인데 이건 허파 모양 풍선이야! 하하하! 어때 그럴듯하지?"

"이름도 마크만큼이나 특이하네요. 하하하! 아참! 아저씨 이런 건 어디다 버려야 하나요?"

"뭐? 버리려고? 아니 왜? 멋지구먼, 아깝다. 진짜 버리는 거야? 그럴 거면 날 줘" 경비아저씨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투로 말씀하셨다.

"정말요…? 아이 안 돼요!"

"버린다며. 진짜 버릴 거면 날 줘 경비실에 장식품으로 쓰게 하하하!"

아저씨의 말에 당장이라도 드리고 싶었지만 마치 나에게 일어났던 악몽을 아저씨에게 떠넘기는듯해 찜찜함이 남아 거절했다.

"안 돼요! 사실 충동구매 했는데 계속 악몽을 꿔서 버리려는 거예요. 기운이 좋지 않아 안 돼요"

"기운! 하하하! 그런 거라면 괜찮으니 날 줘 넘치는 기운 어디 쓸 때도 없으니, 말이야! 하하하!"

"농담 아니에요"

"나도 농담 아니야." 찜찜하긴 했지만 내가 버린다 해도 당장 주워 갈 것 같은 아저씨의 태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저씨에게 드렸다.

시원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한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무엇보다 걱정스러웠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내가 거실 소파에 널브러져 앉아있었는데 알 수 없는 부아가 슬슬 처 올라왔다.

이 모든 게 윗집 할머니 때문인 것만 같았다. 당장이라도 따 저 물을 까도 생각했지만, 노망 난 할머니에게 따져봐야 나만 손해를 볼 거란 생각에 차마 그러지 않았다.

"에이 망할 할멈 다시는 상종하나 봐라!" 계획에도 없던 쉼이 생기니 딱히 뭘 할 것도 없어 한동안 읽지 못했던 소설책이나 읽을 도량으로 도서관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왼 걸 점심때가 되자 가지고 간 책을 모두 읽고 식사를 하기 위해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에 망할 놈의 903호 할머니가 계시는 게 아닌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인지는 알 수 없지만 꾹꾹 참았던 부아가 또다시 올라와 나도 모르게 그만 도서관에서 소리를 버럭 질러버렸다.

"뭐야! 이 할머니는 왜 자꾸만 따라다녀요."

내 목소리에 할머니도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심지어 소리 지른 나까지 놀라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서둘러 할머니에게 다가선 내가 할머니 팔을 잡아끌며 나직이 말했다.

"왜 자꾸만 따라다녀요?" 그러자 할머니는 어이없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씀하셨다.

"미친놈 지랄하고 자빠졌네 네가 왜 널 따라다녀! 이놈아!"

"그럼 우연이란 말이에요?" 할머니는 나의 물음에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냥 '허~'하는 짧은 호흡만 남기시고 뒤돌아 가셨다.

나 역시 도서관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경비실을 지날 때 경비실 아저씨가 황급히 달려 나오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저거! 저거! 다시 가져가요!" 경비아저씨의 시선을 따라가니 테이블 위에 칼이 놓여있었다.

"왜요?"

"아무튼 가져가요" 아저씨가 칼을 들고 나와 나에게 건네자 하는 수 없이 칼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칼이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어! 이게 왜 이러지?" 내가 칼을 바닥에 내려놓으려 했지만 거머쥐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게 왜 이래...."'왜요? 무슨 일인데요?' 하며 아저씨가 다가왔을 때 나도 모르게 칼집에서 칼을 빼 들어 경비 아저씨를 베어버렸다.

"악!" 아저씨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지셨다.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내가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너무 놀라 아저씨 옆에 주저앉았고 그제야 칼이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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