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칼의 눈물 07화

피비린내

칼의 눈물(#7)

by 서기선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틀림없는 건 나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과 내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가 나의 결백을 믿어주냔 말이다.

답답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경비아저씨의 몸에서 빠져나온 선홍빛 피가 아파트 계단으로 흐르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정신이든 내가 주위를 빠르게 살폈지만, 다행히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재빨리 아저씨를 뒤에서 끌어안고 경비실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 아저씨 목에 걸려있던 수건을 벗겨내려다 아저씨의 모자가 벗겨지며 바닥에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파트 입구라 서둘러 핏자국을 지워야 했기에 아저씨의 수건으로 빠르게 바닥을 닦은 후 수건을 아저씨 손에 들려주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순간 칼이 생각났다.

생각 같아선 버리고 싶었지만, 지문이 신경 쓰였다.

칼이 있는 한 잡히는 건 시간문제라는 생각이 들자 서둘러 경비실로 되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이미 먼발치에서 신혼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빠르게 비상계단의 방화문 뒤쪽으로 몸을 숨겼다.

"오빠! 바닥 이상하지 않아?" 여인이 물었다.

"그러게, 끈적거리네" 남자가 재활용 봉투에 가득 담긴 식재료를 왼손으로 바꿔 잡으며 말했다.

"남자가 그까짓 걸 가지고 무거워하냐!" 여자가 남자를 바라보다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몰라 무거워 빨리 올라가자" 남자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바짝 다가서며 말하자 여자가 뒤를 따랐다.

부부가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경비실로 가려했지만, 남자는 엘리베이터에 오르지 않았다.

"잠깐만! 이거 피 아니야?" 남자가 킁킁거리며 말했다.

"이거 피 비린내 같은데…." 남자가 비닐봉지를 여자에게 맡기고 먼저 올라가라고 손짓했지만, 여자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던 남자가 경비실 쪽으로 걸어갈 때 난 심장이 멎어버릴 것만 같았다.

"오빠 나 힘들어 이걸 나에게 주면 어떡해! 올려놓고 내려와도 되잖아! 지금 나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거 아냐?"

여자가 투덜거리며 말하자 남자는 까만 뿔테안경을 오른손 검지로 추켜올리며 주변을 쓱 훑어보다 여자 쪽으로 몸을 틀어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들이 올라간 것을 확인한 후 나는 빠르게 경비실로 달려가 칼을 집어 들고 비상계단으로 또다시 몸을 숨겼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마냥 두렵기만 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졌다. 그리고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사람을 죽이다니….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자수를 해야 하지 않을까?" , "뭐라고 해야 하지" "내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 믿어주려나"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돌아다녔다.

그러다 들고 들어온 칼이 눈에 들어왔다.

"모두 저놈 때문이야." 내가 칼을 집어 들고 바닥에 힘껏 내리쳐 그것을 부숴버리려고 했지만, 칼을 집어 드는 순간 또다시 칼이 나를 통제하며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였다.

"놔! 이거 놔!" 내가 바둥거리며 왼손으로 칼을 들고 있는 오른손을 잡아당겨 보았지만, 꼼짝도 하지 않았다. 순간 903호 할머니의 말씀이 머릿속을 스쳤다.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하며 칼에게 말을 건네자 그제야 오른손이 움직였다.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이해할 수 없지만 903호 할머니의 말씀 때문일까 마치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허공에 사과한 것이었는데 기대하지 않았지만, 오른손이 움직였다.

얼른 집어 든 칼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뒷걸음질 쳤지만, 무의식적 행동이었다.

나는 도망치듯 집 밖으로 나와 비상계단을 통해 1층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어 내려갔다.

그러나 1층에 도착해서야 경비원을 죽였다는 사실을 인지한 나는 마지막 복도의 문을 차마 열지 못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두려움에 사지가 후들거려 더는 서있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을 때 방화문 밖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최초 목격자가 누굽니까? 할머니가 신고하셨어요?"

"최초 목격자는 저예요. 신고는 할머님이 하셨고요."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또렷하진 않았다.

대화 내용이 궁금해 방화문을 조금 열어보니 이미 밖은 경찰과 주민들로 왁자지껄했다.

문틈으로 아까 보았던 부부의 남편이 경찰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처음 목격자가 저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지만, 발바닥을 가르치며 하는 행동이 조금 전 끈적였다고 할 때의 움직임과 같았다. 그때 부녀회장님과 몇 명의 아주머니가 방화문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서둘러 한 칸 위로 뛰어올라갔지만, 그녀들은 문을 열지 않았다.

"회장님! CCTV도 고장 났다면서요?"

"그러게,…. 오늘 오기로 했었는데…. 하필이면 이때…. 아파트값 뚝 떨어지는 거 아냐!"

"회장님!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뭐야! 이거 왜! 이래! 나만 속물이야! 고고한 척하기는 자기 너무한 거 아냐?"

"왜들 이러세요! 부끄럽게…."

"뭐! 부끄럽다고? 지금 나보고 부끄럽다는 거야?"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부녀회장과 아주머니의 대화가 복도를 타고 올라와 귓전을 때렸다.

CCTV가 고장 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휴~'하는 한숨을 토해냈다.

그때 위쪽에서 인기척이 들리면서 아래로 사람들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숨이 멎을 만큼 가슴이 뛰었지만 애써 태연한 척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경비아저씨 돌아가셨다면서요?" 위에서 내려오던 사람 중에 누군가 말을 건넸다.

"예 그렇다네요. 저도 소식 듣고 내려가는 길이라 잘은 몰라요."

나는 위층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119에서 경비 아저씨의 시신을 데려가기 위해 들것이 들어왔고 잠시 후 건장한 사내들이 아저씨를 들것에 실었다.

들것에 실려 나가는 아저씨의 모습을 볼 때 반쯤 벗겨진 아저씨의 가발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아저씨가 민머리였다는 것을 나는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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