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의 눈물(#8)
너무 두려워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마땅히 지낼 곳도 없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아저씨가 실려 가고 하나둘 현장을 벗어났지만 나는 딱히 갈 곳이 없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지만, 목적지를 누르지 않고 공간에 갇혀 있었다.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903호 할머니가 올라타셨다.
할머니가 나를 잠시 힐끗 쳐다보셨지만 말을 걸어오거나 기분 나쁘게 쳐다보지 않은 채 무심히 9층을 누르셨다, 하지만 나는 누르지 않았다.
잠시 후 할머니가 내리시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왜 이러세요?"
"잔말 말고 내려 어디 갈 때도 없잖아!"
"이 노인네가 미쳤나. 왜! 이러세요. 나한테"
나는 너무나 뻔뻔스럽게 할머니를 다구 쳤지만 마치 내 속을 알고 계신 양 행동하시는 할머니가 고맙기도 했다.
"싫어? 싫으면 말고" 무심하게 잡았던 손을 놓으며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시자 문이 스르르 닫혔다.
순간 나도 모르게 닫히던 문에 손을 밀어 넣어 문을 열고 나오며 말했다.
"누가 싫대요?" 쭈뼛거리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나를 보던 할머니가 '허 그놈' 하며 헛웃음을 지어 보이셨다.
"들어와" 할머니를 따라 자연스럽게 그곳에 들어갔다.
집 구조가 우리 집과 같았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TV가 걸려있어야 하는 자리에 커다란 탱화가 걸려있고 그 밑으로 제단이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할머니 무당이에요?" 머릿속에 생각난 궁금증이 필터링 없이 입 밖으로 빠져나왔다.
"무당? 하하하! 신을 모셔야 무당인데 나는 신을 모시진 않아!"
"그러면 탱화나 제단은 왜? 이렇게 하신 거예요?"
"신을 모시고 싶어서 만들어놨는데 머물지 않으셔 그렇다고 아주 안 오는 것도 아니고 가끔 오셔서 이야기하시는데 나도 언제 오시는지는 몰라!"
"뭐야 그러면 무당도 아니고 뭐라는 거야?" 혼잣말로 구시렁거리자, 할머니가 대답하셨다.
"너 칼에 베인 적 있냐?" 할머니가 제단에 헌화하시며 물으셨다.
"아뇨 왜요?" 할머니의 동선을 졸졸 따라다니며 묻자, 할머니가 걸음을 멈추시고 뒤돌아 내 쪽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베이면 아들이 어둠에 잡아먹힌 거야 그럴 땐 어떻게든 빨리 그 녀석을 부러뜨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네가 죽어"
"아이 뭐라는 거야? 좀 알아듣게 말해봐요! 복채라도 드려요?"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맥주를 사 먹고 남은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 제단 위로 올려놓으며 말했다.
"육시랄 놈 내가 언제 돈 달라고 했냐?" 할머니가 제단 위의 잔돈을 네게 집어던지며 말씀하셨다.
"그러면 알아듣게 이야기를 해 주시던가요 장가도 안 간 총각에게 아들 운운하시는데 그걸 어떻게 믿고 알아들어요?"
성질을 못 이겨 순간 버럭 소리를 지르며 따지듯 목소리를 높였다.
"그놈 성질머리 하고는…. 나도 몰라 이놈아! 신이 오셔서 그리 이야기 하시길에 전달해 준 거야 난들 뭔 소린지 알겠냐 그러길래 내가 무당 아니라고 했지!"
내가 버럭 하며 소리 질렀지만, 할머니도 지지 않을 기세로 나를 몰아붙이셨다.
"신이 다른 말씀은 없으세요?" 잔뜩 기가 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경비아저씨는 왜? 죽였어?"
"내가 그런 거 아니에요! 칼이 스스로 그런 거예요. 칼을 잡는 순간 바르르 떨리더니 내 의지와 상관없이 칼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에요. 진짜 내가 그런 거 아니에요."
"조금 전에도 칼이 내 손을 통제했어요. 부시려고 했는데….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고요."
"경비는 네 아들놈이 죽인 거고, 아직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어!, 그림자가 움직이기 전에 중놈을 찾아야 해"
할머니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연신 쏟아냈지만, 도무지 어떤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하~ 씨! 뭐라는 거야!" 오른손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앞머리가 길어지면 눈을 가끔 찌른다 그럴 때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쓰게 되는데 그런 행동이 상대로 하여금 내가 인상 쓰고 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 때문에 머리를 쓸어 넘기는 행동을 자주 해야만 내가 화가 난 것이 아니란 걸 우회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버릇처럼 돼버린 무의식적 행동이었다.
"꿈 말이다. 꿈! 아들놈이 열심히 알려주고 있는구먼. 예비란 놈이 멍청해서 알아듣질 못하는구나."
"뭐라는 거야?"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몰라 들은 대로 이야기해 주는 거야! 들은 대로 전달해야지 짐작 간다고 살을 섞어 이야기하면 그게 사이비인 거야 자기 편한 쪽으로 해석하거든 그러니 보채지 말고 네가 알아봐 난 들은 대로 전달만 할 테니 괜히 엄한 사람 무당 만들지 말고"
"좋아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아직은 네 차례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진 말아라 하지만 어둠이 아들을 삼키기 전에 중놈을 빨리 찾아야 해 그리고 찾거들랑 네가 직접 죽여라."
그 이야기를 끝으로 신이 할머니를 통해 어떤 메시지도 주지 않으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