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끄는 여자(#3)
'흥! 말하기 싫으면 그만둬! 나도 그다지 궁금하지 않아' 과묵한 그녀를 향해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한참을 앞질러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을 터이지만 나는 그녀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그렇다고 뒤돌아보는 바보 같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야! 서대리 어제 미스 강 네가 마지막에 집에 보냈지?"
"내가 보내긴 했는데 마지막에 라니?" 집에 보낸 것이 궁금하다면 굳이 마지막에 라는 부사를 붙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반문했다.
'내가 보낸 시간이 궁금한 걸까? 아니면 내가 보낸 것이 궁금해서일까?' 잠시 의문이 들었다.
"말꼬리 잡지 말고…. 조금 전에 미스 강 사직서 내고 갔다. 너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일은 무슨 일? 나도 몰라. 왜? 뭐라면서 사직서를 냈는데?"
그의 물음을 되받아 물어서일까? 이 대리가 당황한 건지 머쓱해하며, 머리를 긁적이다 나직이 혼잣말을 했다.
"그러면 왜 그만둔 거지?"
"그게 왜? 궁금한데? 무슨 사연이 있겠기 그럴 시간 있으면 시장 조사한 거나 마무리해서 넘겨줘! 나도 일 좀 하자" 조금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너 그거 알아? 네가 우리 엄마보다 잔소리 더 많이 하는 거!"
이 대리는 웃으며 말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 역시 내가 잔소리나 짜증이 늘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빨리 좀 부탁해 네 자료가 있어야 보고서를 만든다고…. 보고서에 통계가 빠지면 되겠냐?"
"그놈의 잔소리 또 시작이네" 이 대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말했지만, 손에 담배가 들려있는 것으로 보아 내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라기보다도 핑계 삼아 담배를 피우기 위한 행동인 듯했다.
"어지간하면 끊어" 이 대리의 뒷모습을 보며 소리치자, 이 대리는 오른손 중간 손가락을 올려 보이며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미스강의 빈자리를 대신할 신입사원 공고는 그녀가 나간 후 빠르게 진행됐다.
부제 3일 만에 면접을 볼 정도였으니 평소 일주일은 걸렸던 면접일을 고려해 보면 그녀의 빈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하였다.
내가 외근 신청을 위해 홍보사업부 김 과장을 만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전무실에서 나오는 영업부 김 과장이 나를 보며 말했다.
"야! 서대리 거긴 할만하냐?" 결제 서류철을 내 등 쪽으로 쭉 뻗어 가볍게 토닥이며 물었다.
"예 지루하진 않아요."
"너 김 과장 그 새끼 돌아이인 거 알지? 너한테도 시비 걸면 말해 이번엔 제대로 밟아 줄 테니 말이야."
"왜 무슨 일 있습니까?" 영업부에 있을 때 사적으로도 친분이 있었던 김 과장은 공적인 자리에서도 가끔 친분을 들어내곤 했었다.
그런 김 과장이 가끔은 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성품이 워낙 꾸밈없이 맑은 사람이라 단어 선택이나 어휘력이 마치 청소년기 아이 같을 때가 많았다.
그 때문에 일반사원들이나 경리 아가씨들이 함부로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과장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미스강 말이야 너희 김 과장한테 엄청나게 까여서 그만둔 거잖아.! 얼마나 모진 말을 했으면 그 어린것이…. 아무튼 그 자식 때문에 내가 힘들어졌어! 일은 그 자식이 쳤는데 내가 왜 수습해야 하는지…."
그때까지만 해도 미스강의 퇴사 이유가 가정 문제쯤으로 생각했던 나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야! 바쁘냐? 안 바쁘지? 잠시 따라와 봐"
김 과장은 자신이 물어놓고 상대방이 말할 틈을 주지 않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바쁘냐고 물었으면 대답을 들었어야 하는 건데 안 바쁘지, 따라와 봐 하는 식의 특이한 화법을 구상한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뭐 먹을래? 하고 물어봐 놓고 이 집 김치찌개 맛있어 그거 먹어! 하며 의사와 상관없이 주문까지 원스톱으로 하는 아무튼 특이한 사람이었다.
가끔은 그런 형식의 말이 편할 때도 있다.
자문자답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것 좀 봐!, 누가 좋을 것 같냐?"
감 과장이 손에 들고 있던 결제철을 열어 모집공고에 응시한 강희원 씨의 후임을 사전에 검토하고 있었다. "이건 이력서잖아요? 이걸 왜…?"
"너 사람 잘 보잖아! 한번 봐봐~ 누가 좋겠냐? 너라면 누굴 선택하겠냐고?" 이력서가 들어있는 서류철을 넘겨 보이며 물었다.
"제가 무슨 사람을 잘 봐요…. 이런 건 과장님이 하셔야지요." 김 과장이 내민 철을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아~ 그 자식 튕기긴 그러지 말고 한번 봐 나도 머리 아파서 그래, 그냥 네 생각이 어떠냐고 누가 그 사람 하겠데?"
다시 한번 서류철을 열어 보이며 물었다. 김 과장이 보여준 이력서에 낯익은 얼굴이 스쳤다.
"어! 조금 전 그 사람은…."
"누군데 아는 사람이야?" 김 과장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우리 집 근처에 사는 사람 같은데…. 정확하진 않아요."
"왜? 어떤 사람인데?"
"몰라요! 지나가다 한두 번 본 것 같은데 그 사람이 이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OK 일단 알았어! 그리고 또 잘 봐! 한 명만 더 골라줘 봐"
마치 귀찮은 숙제를 대신해 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 같았다.
내가 영업부에 있을 때 대리점계약을 위해 오셨던 점주님이 계셨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반겼지만 유독 나 하나만 그 점주님을 반대했던 적이 있었다.
말하면서 간혹 눈치를 살피는 행동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단둘이 있을 때 은근슬쩍 나에게 하대 하는듯한 말투와 반말과 존댓말을 교묘하게 섞어가며 사용하는 언어습관이 마음에 들지 않아 사석에서 김 과장에게 조금만 지켜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던 적이 있었다. 결국 내 의견을 존중해서가 아닌 다른 이유로 계약하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는 그 사람이 사기꾼이었다고 했다.
그날부터 영업부 김 과장은 내가 사람을 잘 본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우연이지 내가 진짜로 사람 보는 눈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쯤은 이미 김 과장도 잘 알 테지만 놀리는 건지 정말 믿어서인지 이력서만으로 두 명을 추천해 달라고 졸라 됐다.
"과장님! 죄송합니다. 이건 진짜 선 넘는 행동 같아요. 제가 무슨 권한으로…."
"알았어! 알았다고 그만 가봐! 참! 집사람이 너 집에 한 번 오란다."
"사모님이요? 왜요?" 접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뜬금없는 말에 놀라 물었다.
"몰라! 나한테도 말 안 했어! 언제 시간 되냐? 내일 어때? 오늘은 내가 바쁘니까 내일 가자 알았지 준비해!" 이번에도 물음에 답하기 전에 일방적인 약속이 생겨버렸다.
오늘도 휴대전화 알람 소리에 눈을 뜬 나는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동선의 움직임으로 밖으로 나왔다.
정문을 나가기 전 가볍게 허리와 다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이제 뛸 테니 준비하라는 신호를 보낸 나는 망설임 없이 뛰었다.
새벽공기, 뺨을 스치는 바람, 그리고 숨소리 모든 것이 완벽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