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울 소리 (14)
"뭐! 903호 무당 할머니 말이야?" 도무지 납득하기 힘들어 허공에 물었다.
"그래 맞아! 간난이가 날 이리로 보낸 거야"
"와~ 할머니 무당 아니라면서 그런 것도 할 줄 알아? 대단하신 분이셨네…. 나중에 고맙다고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해 드려야겠다. 하하하!"
"미안하지만 그건 힘들 거야 간난이는 이제 없거든." 예상 밖의 말을 전해 들은 나는 눈만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고 한참을 서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할머니가 없다니?"
"내가 간난이 몸에서 떠나면 간난이는 죽어! 그걸 알면서도 날 이리로 보냈어." 목소리의 말에 어떤 댓 구도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러면 할머니가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어? 설마 벌써 돌아가신 거야? 힘겹게 입을 연 나는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죄스럽기까지 한 복잡한 마음으로 나직이 물었다.
"내가 간난이 몸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목소리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한 가지 물음을 더 했다.
"가족들에게 연락은 했어? 가족은 있을 거 아니야, 설마 독거는 아니지?" , "물론이지"
"혹시 나에게 남기신 말씀은…. 있니?"
"응! 미안해하지 마라! 너 한 사람 살리려고 선택한 것이 아니다 너를 살려야 죄 없는 사람들을 더 많이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해달라더군"
"허! 허허!" 할머님의 마지막 말씀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 말씀이 진실이든 투박한 거짓말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자신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녀석을 막으려 했던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 녀석이 오기 전에 입구를 막아야 해!" 내가 헛웃음을 이어갈 때 목소리가 말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나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입구를 막기 시작했다. 입구가 좁았던 탓에 그리 어렵지 않을 거로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돌을 나르는 것이 그랬다.
막일로 다져진 몸이었지만, 등짐을 지고 걷는 것과 맨손으로 돌을 나르는 것의 차이는 상당했다.
"아주 메꾸진 마! 녀석이 힘겹게 들어올 만큼은 남겨둬" 내가 입구를 거의 매워져 갈 무렵 목소리가 말했다.
"뭐! 왜? 이곳에 녀석을 불러들인다고? 날, 살리려고 메꾸란 말 아니었어?"
"맞아! 정확히 말하자면 칼을 부러뜨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야" 소름 끼치도록 냉정한 목소리의 어법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결론은 내가 살 수 있다는 것이기에 씁쓸하지만 잊기로 했다.
"너의 계획을 설명해 줘 매번 물어볼 수 없잖아"
"좋아 우선 녀석이 어렵게 비집고 들어올 만큼의 공간만 남기고 입구를 메워야 해 그래야 녀석이 들어오겠지. 하지만! 절대로 쉽게 들어오진 못하게 해야 해! 그래야 녀석을 부러뜨릴 기회가 생기거든 녀석이 들어오기 위해 몸부림칠 때 총으로 녀석을 쏴 좁은 통로 탓에 쉽게 도망가지 못할 거야 명심할 건 반듯이 녀석을 맞춰야 한다는 거야"
"만약! 만약에 내가 녀석을 부러뜨리지 못하고 녀석이 이곳으로 들어오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입구를 막아야겠지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뭐!!! 그러면 나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건데?"
"죽어야겠지! 물론 입구를 막고 말이야." 목소리의 냉정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만약 내가 입구를 막지 못하면….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건데?"
"무조건 막아야 해! 그래선 안 되지만 그것을 실패한다면 간난이의 죽음이 의미 없어지잖아! 더욱이 이유도 모른 채 죽어야 할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고" 목소리는 마치 AI처럼 차가웠다. 그 때문에 더는 목소리라 부르지 않기로 했다.
목소리란 목에서 나오는 소리지만, 이 녀석은 가슴속에서부터 올라와 목을 타고 흐르는 따뜻한 소리가 아닌 기계음처럼 차갑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이제부터 너를 진저리라고 부르겠어! 그래도 되겠지?" 정확한 답을 일러주긴 하지만 도무지 인간다운 따뜻함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녀석의 어법이 어찌나 차가운지 진저리 쳐졌기 때문이었다.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 어차피 간난이의 부탁이 아니었으면 네게로 오지도 않았을 일이야 일이 끝나면 나도 떠날 거야 그런데 말이야 이럴 시간 없어 서둘러야 할 거야." 진저리의 말 대로라면 간신히 입구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에 마치 미로처럼 공간을 만들어가며 돌을 쌓아야 했다.
"아이고 허리야 이제 이만하면 되겠지?" 마지막 돌덩어리를 입구에 쌓으며 말했다.
"이제 녀석을 불러드려야겠어." 진저리가 말했다.
"쿵!" 동굴 밖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굳이 그럴 필요 없겠는 걸 녀석이 찾아온 모양이야!" 진저리가 말했다.
동굴 밖을 보기 위해 입구에 막아놓은 돌 틈 사이로 오른쪽 눈을 가져갔을 때였다.
칼에 달린 눈이 동굴 밖에서 내 쪽을 내 쪽을 바라보다 나와 시선이 마주쳤고 너무 놀란 나는 '헉'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물러섰다.
"칼! 칼이야! 칼이 왔어!"
"침착해! 총 준비하고 녀석이 비집고 들어올 때 칼날에 총을 쏴! 실수하지 말고!" 나와 눈이 마주친 칼이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돌 틈 사이 작은 공간으로 마치 미꾸라지가 빠져나가듯 꿈틀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덜그럭 덜그럭" , "꽹 그랑" 녀석이 점점 다가올수록 돌과 칼날이 부딪히는 소리와 작은 돌들이 들렸다 떨어지는 소리가 격렬하게 들렸다.
"뭐 해 어서 쏘지 않고" 진저리가 말했다.
그제야 정신이든 나는 서둘러 입구로 다가가 칼날이 보일 때 '탕!'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녀석이 움찔거리더니 뒤로 물러서는 모습이 보였다.
"안 돼! 탕 탕" 총소리가 어찌나 크게 들리는지 그 소리에 네가 더 놀라 양쪽 귀를 틀어막았다.
그 틈에 녀석이 달아났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벌써 3발을 쐈기 때문에 그만큼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결론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귀를 막으면 어떻게 해 녀석이 달아났잖아!" 진저리가 타박하듯 소리를 높였지만, 녀석의 말투에 짜증이 난 내가 도리어 더 큰 목소리로 녀석을 나무랐다.
"너는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이 정도 소리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야. 더욱이 동굴 안쪽이라 소리가 더 커졌다고." 내가 소리 지르자, 진저리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반박하고 싶었지만, 칼이 또다시 들어오려 했기 때문에 반박할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칼이 처음 기어들어 올 때 어느 정도 길이 생기 탓에 내가 있는 마지막 돌무더기까지 단번에 도달한 칼이 쑥 하고 들어왔고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또다시 총을 쐈다.
"탕!" 그러나 이번에도 빗나갔다. 순간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빨리 뛰었다.
이제 마지막 한 발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순간 녀석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무작정 서슬 퍼런 칼날에 다가가 흔들리는 돌덩이가 더 이상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손으로 막았다.
방아쇠를 당기고 싶었지만, 마지막 한 발이라고 생각하니, 마치 목숨줄 같은 생각이 들어 차마 그러지 못했다.
돌이 더 이상 밀려나지 않도록 막고 있어서인지 녀석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고 칼끝이 천천히 사라졌다.
칼이 사라지자, 다행이라고 생각할 무렵 진저리가 말했다.
"조심해!" 순간 사라졌던 칼날이 다른 쪽 구멍으로 쑥 하고 밀고 들어와 돌을 잡고 있던 오른쪽 어깨에 박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