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칼의 눈물 27화

칼의 눈물 최종회

방울 소리 (15)

by 서기선

"악" 처음 칼이 팔에 박힐 땐 그저 잠시 따끔한 정도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참기 힘든 고통이 밀려왔다.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으니, 녀석이 작은 돌을 밀어내며 안쪽으로 밀고 들어왔다.

녀석의 모습이 온전해질 무렵 나는 마지막 한 발을 녀석을 향해 쐈다.

"탕!" 하지만 이번에도 칼이 부러지지 않았다.

다만 조금 전 발사한 총알이 녀석의 눈을 때렸고 그래서인지 녀석이 단번에 나를 찾아내 죽이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져 바둥거렸다.

바닥에서 들썩이던 녀석이 튀어 올라 허공에 칼질했지만,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력을 일었나 보군 우리에겐 잘된 일이야." 진저리가 말했다.

녀석이 허공에 칼질할 때 동굴 안쪽에서 '투루룩' 하고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녀석이 득달같이 날아가 바닥에 고인 물을 향해 칼질했다.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여전히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는 운명이었다.

렇다고 이곳을 빠져나가거나 녀석을 부러뜨리기도 쉽지만은 않을 터였다.

시력을 잃긴 했지만, 작은 소리에도 반응하는 녀석을 보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더욱이 녀석을 부러뜨릴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던 총이 더는 쓸모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망연자실해 고개를 떨구어 바닥을 응시할 때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진 총으로 시선을 옮겼지만, 별생각 없는 무심한 시선이었다.

그때 달빛이 구름을 헤치고 내 마음에 스며들듯 무지함에 잊고 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아직 실탄 한 발이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6발의 실탄 중 첫발이 공포탄이라는 걸 잊고 5발을 발사했으니, 실탄이 없을 거라 착각하고 있었던 거였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총을 집어 들기 위해 첫발을 내디딜 때 '척'하고 발고리가 들렸고, 그 소리에 반응한 칼이 이번엔 내 쪽으로 부리나케 날아와 오른쪽 허벅지를 베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휘청거리며 앞으로 자빠질 때 '악' 하는 소리를 지르자, 이번엔머리 쪽으로 수직으로 떨어졌지만, 재빨리 방향을 바꾼 탓에 머리가 아닌 오른쪽 어깨에 칼이 꽂혔다.

"소리 내지 마!" 진저리가 소리쳤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눈물이 흐르고 호흡도 거칠어졌지만 참았다. 그러다 바닥의 돌을 들어 동굴 안쪽으로 던졌다.

생각보다 멀리 날아가지 않았지만, 돌이 떨어지면서 큰 소리를 냈고 녀석은 내 예상대로 그쪽으로 날아가 허공을 갈랐다.

녀석이 허공을 가르고 있을 때 참고 있던 거친 호흡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그러자 녀석이 칼질을 멈추고 마치 나의 호흡을 찾으려 정신을 모으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녀석의 행동에 등골이 오싹해졌지만, 진저리가 돌을 던져 주위를 분산시키라는 말에 서둘러 녀석의 오른쪽으로 돌을 집어던졌고 반응은 예상한 대로였다.

녀석의 몸부림은 흡사 망나니의 칼부림 같아 보였다.

허공을 가를 때마다 들리는 '~~'하는 소리가 마치 추운 겨울 들리는 칼바람처럼 들렸다.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동굴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정확하진 않았지만, 얼핏 나를 신고했던 그자의 아들 목소리 같기도 했다.

인기척이 들리자, 칼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 동굴 입구의 작은 틈에 박혔다.

그러다 몸을 비비적거리며 동굴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동굴 밖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칼날에 놀라 '으악' 하며 소리를 쳤고 그 소리에 칼이 더욱 거세게 몸부림쳤다.

"거기 누가 있나요?" 동굴 밖에서 잔뜩 의문에 찬 목소리로 누군가 물었다.

대답하고 싶었지만, 녀석이 돌연 내 쪽으로 달려들까 봐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 진저리가 '저 녀석이 동굴 밖으로 나가면 안 돼'하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녀석에게 달려가 동굴 밖으로 나가려는 녀석의 손잡이를 잡았다.

바둥거리며 밖으로 나가려는 녀석의 움직임이 흡사 도마뱀 같았다.

"누구예요? 거기서 뭐 해요? 얼른 나와요!" 여전히 동굴 밖에서 누군가 소리치며 말했다.

"그 칼 부러뜨려요" 나도 모르게 동굴 밖 누군가에게 소리쳤지만, 다행히 녀석은 내 쪽이 아닌 동굴 밖을 선택했는지 여전히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예? 뭐라고요? 칼을 부러뜨리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칼 좀 부러뜨려 달라고요." 부탁하고 있었지만, 절규에 가까웠다.

그러나 나의 절규에도 그는 행동하지 않았다.

계속되는 실랑이 때문에 도무지 힘을 쓸 수 없을 만큼 오른쪽 어깨에 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총! 총을 들어" 진저리가 말했다.

지금으로선 그 방법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나는 버둥거리는 녀석을 뒤로하고 뒤쪽 바닥에 있던 총을 서둘러 집어 들어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녀석의 칼날을 향해 트리거를 당겼다.

'탕' 동굴 안을 매운 총성이 고막을 찢을듯했기에 칼이 부러지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바위에 박혀있는 칼날과 분리된 손잡이와 검은 연기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끝인가? 이제 끝난 거야? 진저리에게 물었지만, 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1년 후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

세상은 빠르게 달려가고 있고, 나는 여전히 그런 세상 속에서 어울려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경비아저씨가 돌아가셨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되지 않았으며, 그날 함백산에서의 일도 증언할 만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다.

칼바람에 많은 사상자가 생겼지만, 생존자의 증언으로 나는 칼을 피해 달아난 생존자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되었다.

마지막 사투 때, 동굴 밖 사내의 증언으로 내가 칼을 부러뜨려 세상을 구한 사람처럼 언론사에서 묘사하려 했지만, 나는 그것을 끝까지 부인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날의 기억도 사람들에게서 잊혀 갔다.

칼이 어둠에 잡아먹히기 전, 그토록 죽이고 싶다던 그 간자의 후손을 내가 아닌 칼바람이 대신 죽였지만, 그런 죽임을 그가 만족할지는 모르겠다.

왜 그토록 미워했는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이 옳은 생각인지도 의문이 든다.

그렇다고 사과조차 받지 못한 피해자에게 당신이 참으라고 말하는 것도 위선적이니 말이다.

우리는 언제쯤이 고리를 끊고 어깨동무할 수 있을까? 용서란 피해자의 몫이지만, 진정성 없는 사과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화해와 치유의 과정은 시작될 수 없을 것이다.

진저리도 할머니도 없는 거리에 나 혼자 그날의 기억을 끌어안고 아무렇지 않은 척 또 하루를 보낸다.



글을 마치며….

함께 호흡해 주셨던 구독자님 감사합니다.

한걸음 발전한 모습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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