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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Quill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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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Oct 08. 2024

The Quill ( 5화 )

피 묻은 명함.

"야! 사람 죽이는 소설 계속 쓸 거야?" 한 소금이 내게 따지듯 물었다. 

"몰라! , 나도 모른다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밀어내듯 투덜거리며 말했다. 

"미친년아, 모르긴 뭘! 몰라!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둬! 그리고 그 펜 당장 버려" 한 소금이 책상 위의 Quill을 잡기 위해 다가서며 말했다. 

"저리 가! 네가 뭘 알아! 뭘 안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나만큼 슬퍼? 나만큼 두려워? 나만큼 아파? 아니잖아! 제발 그만해 나도 힘들어" 이번에도 머릿속의 이야기가 필터링 없이 쏟아져 나왔다. 

"뭐! 어떻게 네가….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어?" 순간 눈가가 붉어지며 한소금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만 나가줘!" 내 곁에 바짝 다가선 그녀를 문밖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너…. 너무 많이 변했다.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이게 모두 저 펜 때문이야!" 내 등 뒤로 재빨리 돌아선 한 소금이 책상 위 Quill을 잡아채며 베란다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당황한 내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아당기자, 한 소금이 "악!"하고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지만, 고의는 아니었다.

“이리 내, 이건 내 거야! 그리고 이걸 버리든 부수든, 내가 결정할 문제인데 네가 왜 지랄이야! 지랄이” 악에 받쳐 마음에도 없는 말을 마치 진심인 양 내뱉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 말이 내 본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 사건 이후, 우리는 한동안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불편한 일상을 이어갔으며, 그런 상황이 싫었던 내가 결국 독립을 선언하면서 집을 나왔다. 

사실, 진작 그렇게 했어야 했다

이혼 후 심적으로 불안한 나를 붙잡아주려 흔쾌히 곁을 내주었던 한 소금이었는데…. 그녀도 나도 서로를 위해 진작 떨어져 지냈어야 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관계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는데 그도 나도 서툴렀다.




어느덧 겨울이 깊어지고 있었다. 

창밖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당장이라도 내게 달려들 것만 같아 불안하고 두려웠다. 

지난가을 소금이 와 다툰 후 이곳으로 이사 왔지만,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그녀의 집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도대체 이 소설이 언제쯤 끝이 날까?" 속으로 생각해도 될 일이었는데 굳이 입 밖으로 소리 내며 말한 건 고독이 싫어서였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지내는 날도 있다. 

TV를 켜 보지만 프로그램 내용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람 소리가 그리워 그랬을 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함께 할 땐 소중함을 모른다. 

가까울수록 지켜야 하는 선이라는 게 있는데 나는 그것의 경계를 자주 잊었고 그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처지완 다르게 내가 쓴 글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결국 유명세가 나를 점점 더 옥죄었기 때문이었다. 

소설가인 나의 글이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은 결국 경제적인 부와 연결되니, 나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내 처지에선 그런 관심을 기뻐하기 어렵다. 

내 글로 인해 누군가의 생명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저 성공과 명예를 즐기기에는 마음이 무겁기 때문이다. 

더욱이 언제부턴가 나의 글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면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월요일 아침이었다.

한 기자가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보내왔다.

평소라면 적당히 무시하거나 무반응으로 일관했겠지만, 그자의 메일은 그럴 수 없었다.

재목만으로도 충분히 나를 얼어붙게 했기 때문이었다.

'민철희 기자입니다. 파란 깃털이 달린 펜에 관해 얘기하고 싶습니다.'라는 재목이었다.

"뭐야! 이 사람!" 너무 놀라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또다시 손끝을 물어뜯기 시작했고 비릿한 피비린내가 혀끝을 차고 나와 코끝으로 향했다.

"이 사람…. 설마! Quill에 대해 다 아는 거 아냐? 어디까지 알고 있지? 만나볼까? 아니지 그러면 인정하는 꼴 이잖아! 그렇다고 무시하기엔 뒷맛이 쓴데…." 방안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혼잣말로 구시렁거렸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카페 ARIA에 들어선 순간 왼쪽 벽 끝자리에 야구모자를 깊게 눌러쓴 50대 초중반쯤 돼 보이는 남성이 앉아 있었다. 

"저~ 혹시~" 상대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해 말끝을 흐리며 물었다. 

"아! 어서 오세요. 작가님 앉으세요. 아! 내정인 좀 봐!" 사내가 안주머니에서 지갑 속 명함을 꺼내 네게 내밀며 말했다. 

"모닝 이슈에 민철희 기자라고 합니다." 모자챙을 살짝 열어 가볍게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으며 입꼬리를 치켜세웠다. 

"이도연입니다. 저는 아직 명함이 없어요." 무성영화 시절 변사 혹은 찰리채플린의 콧수염 같은 수염을 하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히죽거리며 말했다. 

요즘은 나이 든 아저씨들도 패션에 신경 쓰는 세상인데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기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더욱이 콧수염과 같은 크기의 턱수염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그랬다. 

"굉장히 개성 있으시네요." 웃음을 참아내며 말했다. 

"아~ 이거요! 하하! 제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한 번 보면 잊히지 않거든요." 턱수염과 콧수염을 번갈아 만지며 말했다. 

"예! 그렇네요. 쉽게 잊히지 않겠어요. 하하하!" 참았던 웃음을 토해내며 말했다. 

"사실 만나자고 한 이유는…." , "잠시만요! 제가 기자님 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이후 다른 약속도 있거든요. 되도록 30분 이내로 끝내주셨으면 하는데…. 길어질 것 같으면 다른 날 약속을 다시 잡아도 되는데 어떠세요?" 사내의 말을 끊으며 말했다. 

"아니요! 충분합니다." 갑자기 차가운 모습으로 태도를 바꾼 그가 말했다.

"작가님, 제가 그동안 모은 자료입니다. 작가님께서 쓴 소설 속 사건들과 최근 벌어진 실제 사건들이 너무 비슷하지 않나요?" 그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내가 내민 서류에는 최근 몇 달간 벌어진 여러 사건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떤 기사에는 빨간 줄까지 쳐져 있었으며,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상세하게 조사된 내용들이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눈앞이 어지러웠고, 머릿속은 텅 비어 가는 듯했다. 

심장 소리가 어찌나 요란하게 뛰던지 그 소리를 들킬세라 평소보다 한 톤 높게 목소리를 올렸다. 

"말도 안 돼요…. 그건 그냥 우연이예요. 그렇지 않아도 기자님 말씀처럼 의문을 같은 댓글들이 있긴 해요. 하하지만…. 어떻게 그게 가능하겠어요. 그냥 우연이예요." 

"우연이라고요?" 

"예 그래요! 이런 이야기하자고 바쁜 사람 보자는 거였나요?" 나는 억지로 한 톤 높게 말을 뱉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내뱉은 내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자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다시 자료를 펼치며, 마치 나를 궁지에 몰아넣으려는 듯 멈추지 않았다. 

"작가님,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점이 일치하지 않나요? 피해자의 외모, 사건이 일어난 시간, 그리고 심지어 장소까지…. 어떻게 이런 우연이 반복될 수 있을까요?" 기자는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고, 나는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나 자신도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내가 쓴 소설 속 사건들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지만,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지랄하네…. 뭘 안다고." 혼잣말로 나직이 말했지만 어쩌면 눈치채었을 것이다. 

"예! 뭐라고요?"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신경 쓰지 마세요." 속으로 중얼거렸어야 할 말을 이번에도 입 밖으로 토해내고 말았다.

당황한 내가 습관처럼 손톱을 물어뜯었다. 

입가에서 피가 배어 나왔지만, 그 고통이 내 불안을 잠재워주지 못했다. 

내가 초조해 손톱을 물어뜯을 때였다. 

"파란 깃털이 달린 펜을 알고 계시죠?" 사내가 나를 가만히 바라보며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자의 눈빛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확신의 눈빛이었다. 

나는 펜에 대한 언급을 들었을 때 심장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자가 어디까지 알아낸 걸까? 나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그 질문을 부정하려 했다.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요. 바쁜 사람 불러놓고 실업은 말씀이나 하시고 계속 이런 식이면 더는 인터뷰 못 합니다." 단호하고 명확하게 말했지만, 그자는 나의 대답을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요, 작가님. 알고 있잖아요. 당신도 그 펜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잖아요.!" 그의 표정은 이미 진실을 읽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밝혀진다면, 내 인생은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지금까지 쌓아온 명성과 성취는 단숨에 무너져 내릴 것이고, 나는 그저 비난과 비웃음 속에 잊힐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로이는…. 절대로 그럴 순 없다. 어떻게든 진실을 감춰야 했다. 

Quill이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나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어떡하지? 이자를 죽여야 하나?' 잠깐이지만 사내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 했다. 

"그만하시죠. 푸른 펜인지 붉은 펜인지 내 알 바 아니고요, 내 글은 그저 상상 속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쓸데없는 소리 하려거든 그만 돌아가 주세요." 내 말에 기자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요,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하지만 기억하세요, 멈추지 않는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갈 거예요, 저는 그걸 막아야겠어요. 한때 그것의 노 애로 살았던 사람의 마지막 조언이라고 생각하시고 판단 잘하세요." 그가 남긴 '한때 그것의 노예로 살았던 사람의 마지막 조언'이라는 말이 구미를 당겼지만, 이제 와서 시인하면 내 꼴이 우스워진다고 생각하니 선뜻 그 말에 반응하지 못한 채, 돌아서 나가는 그의 뒷모습만 불안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긴장이 풀려서인지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사람처럼 축 늘어져 거실 바닥을 기었다.

현관에서 소파까지의 거리가 불과 4m 남짓이라 걷는다면 대여섯 걸음에 불과한 거리였지만 그조차도 내겐 버거웠다. 

힘겹게 소파에 도착한 나는 온몸의 근육이 한꺼번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렇게 소파에 널브러진 상태로 서너 시간이 흐른 뒤에야 몸을 가눌 수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또다시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것이기에 고민할 법도 한데 이번엔 달랐다. 

당장이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아직 완전히 녹지 않은 마지막 근육마저 녹아내릴 것 같은 불안감과, 꺼져가는 휴대전화에 어미젖 같은 에너지를 밀어 넣는 아슬아슬한 기쁨이 공존하고 있었다. 

양자택일의 기회가 있으면 난 언제나 희망을 먼저 선택한다. 

그래야 악과 싸울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책상에 앉아 Quill을 잡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아니, 틀림없이 달랐다. 

예전에는 최소한 첫 문장 정도는 내가 직접 적었지만, 오늘은 시작부터 나의 직관적인 사고는 전혀 작용하지 않은 채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는 이미 글이 완성되어 있었다. 

이제는 그런 일이 제법 익숙해져서인지, 나는 아무렇지 않게 완성된 원고를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악 아악! 이게 뭐야! 아… 안 돼…” 완성된 글 속에는 오전에 만났던 민철희 기자가 살해당하는 장면이 적혀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가 준 명함을 찾기 위해 손가방을 열었고, 가방 안쪽의 동전 주머니에서 명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것을 잡기 위해 손을 넣는 순간, 명함의 단면에 손이 베이며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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