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 또 다른 타깃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심장은 미친 듯이 고동쳤고,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다.
내가 방금 쓴 글이 현실이 될 거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불안했다. 그리고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걸, 이미 수차례 경험을 통해 깨달아버렸기에.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발 이번만큼은 틀렸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이 저주와도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있다면…. 너무 서둘렀던 탓인지 조심스럽지 못한 내 성격 탓인지 민철희 기자의 명함을 잡는 순간 베였던 손가락이 욱신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그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받아!' 머릿속으로 간절히 기도하며 한없이 긴 시간을 기다렸다.
신호음이 끊기지 않고 계속 울릴 때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뚜르르 거리는 신호음이 반복될 때마다 초조함은 더 커졌다. 혹시 이미 늦은 건 아닌가? 그는 이미 죽어버린 건가?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제발… 제발 받아줘….” 무심코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그 순간, 신호음이 끊기고 통화 연결음이 들려왔다.
“여보세요?” 민철희 기자의 목소리였다. 그가 살아있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며 급히 말을 이었다.
“기자님! 저 이도연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기자님 말씀이 맞아요. 푸른 깃털이 달린 펜… 나도 그걸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조금 전, 당신이 죽는 장면을 썼어요. 그러니 제발, 조심하세요!”
나는 숨을 몰아쉬며 재차 경고했다. 그의 목숨이 달린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도망치더라도, 그의 목숨을 지켜야만 했다.
지금까지의 사람들은 일면식도 없는 누군가의 삶이었다면 처음 나와 관련 있는 사람의 삶이었기에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이 크게 다가왔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죽어가는 이들을 살릴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매번 들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죽음이 알 수 없는 누군가 라면 이번엔 충분히 그의 삶을 Quill로부터 구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기에 기쁘기도 했다.
잠시 침묵이 흐를때, 수화기 넘어 들려오는 그의 숨소리가 나의 가슴을 졸아들게 했다.
예측할 수 없다는 불안감과 희망이 공존했다. 그러다 이내, 민철희 기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 이번에도 나였군요.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사실 그 펜은….” 그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커다란 굉음이 울렸다.
“끼리릭, 쾅!” '억' 하는 비명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나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손에서 떨어진 전화기가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지만, 나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마치 감전이라도 된 듯, 몸이 굳어버렸고, 심장은 갈기갈기 찢길 듯 아팠으며 숨조차 편히 쉬지 못할 만큼 목이 멨다.
“아… 안 돼…” 힘겹게 목구멍을 빠져나온 목소리가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 시각 어디 계셨나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는데요."
"그것을 설명할 방법이 있나요?" 하루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란 말인가 그런 논리라면 세상의 모든 독거노인이 범인이라는 말인가? 다행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잠시 집 밖을 나왔을 때의 모습이 아파트 CCTV에 담겨있어 그들이 말하는 증명이라는 것을 했고 나는 정중한 사과 대신 협조해 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이상한 사람 만드는 거 한순간이네요. 결국 해명하지 못하면 범인이 되는 거잖아요.!" 억울함이 쏟아져 나와 고함치듯 소리쳤다.
"처음엔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날 카페에 함께 계신 걸 CCTV로 확인했거든요.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잖아요. 그리고 마지막 통화한 사람이 작가님이라 혹시 함께 있었나 해서요."
"뭐요! 그럼, 아침에 일어나 저녁까지의 모든 일상을 밝혀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리고 통화했다는 걸 알았다면서요. 그렇다면 더욱 확실한 거 아닌가요? 함께 있는데 통화를 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요즘은 지능범죄가 워낙 많아서 알리바이를 위해 그러는 경우도 있거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통신사에 조회해 보면 들어 날일을 굳이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음…. 설명하자면 길어요. 물론 그렇긴 한데 초동수사에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하거든요. 사실 통화 이력보다 카페에서 함께 있었다는 CCTV 영상을 먼저 확보하기도 했고요. 아무튼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녀석이 나를 어디까지 끌고 갈 작정이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상황이었고 녀석의 노예가 된 듯한 기분도 들었지만 아무렴 어때 이 소설만 끝나면 더는 녀석의 노예로 살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다짐을 했다.
그러기 위해 서둘러 이 소설을 끝내야 했지만 지금으로선 어디가 끝인지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조차 불투명했다.
무엇보다 초조했던 건 내 소설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소문이 점점 더 커지며, 사람들이 나를 의심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시선이 늘 두려웠다.
가끔 인터뷰할 때면 기자의 끈질긴 질문이 마치 추궁하듯 들렸고, 때문일까? 신경질적인 반응을 자주 보였다. 나의 그런 반응이 모니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나자, 안티팬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메시지가 나를 계속 흔들었으며, 마치 나를 무너뜨리려는 듯, 끝없이 밀려들었다.
하루하루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기까지 했다.
칩거 생활이 늘어났으며 대부분의 음식은 배달로 해결하는 은둔형 외톨이의 삶을 이어갔다. 그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건 가끔 연락을 해주던 한소금 이었다.
"야! 너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건데….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뭔데? 아~ 몰라 몰라. 아무튼 계집에게야 혼자 끙끙대지 말고 힘들면 다시 들어와 알았지!"
"그래, 고마워" 소금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돼서인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 보다 친밀감이 형성된다는 걸 살아가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던 나는 결국 비겁하지만, 회피를 선택했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또다시 도망치듯 숨어버리기로 했다.
경남 산청군 시천면에는 로이 할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머물던 주택이 있다.
어머님이 먼저 돌아가신 후 홀로 남으신 아버님께서 그곳을 잘 관리해 오셨다. 하지만 아버님마저 돌아가신 지금, 그곳은 버려진 주택이 되었으나 내가 머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게다가 몇 해 전부터 글감을 얻기 위해 자주 찾았던 곳이기도 했었다.
이혼 전, 로이 아빠가 그 주택을 매물로 내놓았지만 농가의 주택을 선뜻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오랫동안 빈집으로 남아 있었다.
이런 일은 우리 집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농가 주택에서는 흔한 일이다.
그곳에서 살던 사람이 죽거나 이사를 하면 대부분의 집은 버려진 채 흉가로 남기 일쑤였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아 다소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들지만, 약간의 손질만 하면 충분히 머물 만한 장소였기에 나는 그곳으로 거처를 옮기기로 했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편안함이 내가 회피하러 떠났던 우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것이라 생각했다.
예전,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면 마치 홀린 듯 찾아가곤 하던 나만의 창작 공간이었지만, Quill을 만난 후로는 한 번도 그곳에 가지 않았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를 기억해 주시는 어르신 몇 분이 계셨지만, 이제는 거동이 불편해 내가 찾아가지 않으면 쉽게 만날 일조차 없는 분들이기에 더욱 편안했다.
그러니 그 주택은 나를 쫓는 불안과 의심을 피해 숨어 지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도시의 번잡함이 멀어질수록 마음속에 조금의 평온이 찾아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 평온은 잠시 스쳐가는 바람처럼 가벼워 오래 머물지 못하고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그것이 머물던 자리에 두려움이 꿈틀대고 있었다.
언제쯤 이런 두려움으로부터 온전히 해방될 수 있을까. 초조함이 밀려올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불안은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마도 스스로를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수록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아 보았지만,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믿음이란 그렇게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애써 나 자신을 설득하려 했다.
나보다 먼저 도작한 어둠이 나를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익숙한 곳이지만 적막함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사방을 둘러봤지만, 자동차 불빛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낮이라고 해도 이웃도 나를 알아볼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별반 다를 것이 없긴 했다.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릴까도 생각해 봤지만, 언제고, 부딪혀야 할 문제였고 또 차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것이 내키지 않아 차에서 내렸다.
마당을 지나 시골집 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나를 먼저 맞이했다.
'춥겠는데…. 그냥 차에서 잘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말 그대로 잠시였다.
화목보일러 주변에 아버님이 살아생전 모아두신 장작이 제법 많았기에 거침없이 불을 지피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이제부터 나는 스스로를 고립시켜야 했다.
나를 괴롭히던 모든 시선과 Quill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현실로부터 철저히 말이다.
거실엔 낯익은 가구들이 동공을 타고 기억 속 그곳을 마구 해 집고 다니다 신혼 때 잠시 앉아 시간을 보내던 소파가 그날의 기억을 가져다주었지만 딱히 반갑지는 않았다.
창작을 위해 이곳을 찾았을 때도 집 안으로 들어온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으니, 이제는 달라진 사정을 받아들여야 했다.
어쩌면 먼지 묻은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오르겠지만 그것을 이겨내는 것 역시 내 몫일 테니 말이다.
아침햇살이 다리 쪽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을 때였다.
마치 알람 소리라도 들은 듯 단번에 일어난 나는 서둘러 창가로 다가가 모든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치며 바깥과 단절시켰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지만 어쩌면 나도 모르게 세상과 단절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나 보다.
또다시 어두워진 방을 둘러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치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감옥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순간 나 자신이 한심스럽고 미치도록 미워졌다.
그러다 문득 글을 쓰다 의식을 잃는 내 모습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진주에 있는 CCTV 판매점에 들려 홈 카메라를 구입하였다.
CCTV는 직원이 방문해 직접 설치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그것 대신 와이파이를 이용한 저용량의 홈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정신을 잃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설치된 카메라는 책상을 비추고 있었고, 나는 거울 앞에 앉아 나를 지켜보았다.
밤이 되었고,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아 Quill을 앞에 두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잡기 전 홈 카메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빨갛고 작은 불빛이 나를 향해 깜빡거렸고 나는 그것에서 시선을 돌려 Quill을 바라보다 녀석을 잡았다.
그것을 잡는 순간, 다시 한번 그 차가운 감각이 손끝에서 느껴졌지만, 그때까진 온전히 내 정신이었다.
천천히 글을 쓰기 시작했다.
잠시 무언가 고민하는 듯 시선이 위쪽에서 머물더니 이내 아래로 떨어졌다.
시선을 위로할 때까지는 의식이 남아있었지만, 이후의 기억은 없었다.
그렇게 글을 완성하고, 의식이 돌아왔지만 이성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모든 의식이 돌아온 아침이 되자 나는 서둘러 CCTV에 찍힌 내 모습을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에 서둘러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다.
모바일로 연동되어 확인할 수 있다고 했지만, 앱을 깔아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메모리를 직접 연결하는 고전적인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드디어 전날 밤의 기록이 재생되었다.
화면 속에서 나는 책상에 앉아 펜을 들고 글을 쓰고 있었다.
처음엔 그저 평범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영상이 계속될수록 나는 점점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인다던가 가끔은 이마를 책상에 가만히 기대어 움직이지 않는 행동 따위가 그랬다.
그러다 뭔가에 홀린 듯 글을 썼고 글을 쓸 때면 머리를 땅에 처박듯 불편한 자세로 글을 썼다.
한참 동안 글을 쓰던 내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CCTV를 노려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흘렸고 그것을 관찰하던 나는 까무러치듯 놀라 뒷걸음질 쳤지만 결국 마지막 영상까지 모두 시청하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카메라를 응시하던 내 눈은 영혼이 없는 듯 비어 보였지만, 분명한 건 카메라를 통해 자기 모습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건들거리는 행동은 마치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영화 속 좀비의 모습 갔기도 했다.
눈앞에 펼쳐진 내 모습은 충격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내 손끝에서 써 내려가는 단어들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치 나를 조종하는 무언가에 의해 움직이는 것 같았으며,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었다.
나는 자리에 주저앉아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언젠가 Quill을 통제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도 더는 들지 않았다.
잠깐이지만 세월이 지나면 언제고 녀석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고 오만함이었다. 오히려 Quill이 날 통제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더 이상 펜을 쥘 수도, 쥐어서도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조금은 이성적인 판단이 서자 녀석이 남긴 소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안돼!!! 소금이를 살려야 해!" 녀석의 다음 타깃은 한소금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