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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Quill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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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Oct 04. 2024

The Quill ( 4화 )

Reynolds 레이놀즈

"뭐! 정보살? 싫어 안 갈래 내가 거길 왜가? 그리고 나 기독교야 교회 다닌다고 알잖아!" 정보살을 찾아가 보자는 한 소금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기독교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야! 내가 너 몰라 그리고 그게 뭐! 교회 다니는 사람이 보살 집 가면 누가 잡아먹는다던?" 반색하는 내 모습에 한 소금이 흥분한 목소리로 다구 치듯 말했다.

하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나를 교회로 인도한 것 또한 그녀였으니 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같은 동네 살았던 소금이는 조금은 되바라진 아이였다.

내성적인 나와는 다르게 조금은 남성적인 성향이었으며 외향적인 아이였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집으로 찾아온 소금이 가 나를 꼬드겨 교회에 갔던 게 내가 처음 종교를 가지게 된 동기이다.

크리스마스에 교회 가면 선물도 주고 초콜릿도 준다며 나를 설득한 소금이는 크리스마스 이후엔 교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교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건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이후 나는 더 이상 교회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 평생 죄인처럼 그렇게 살래? 살인 가자 되는 것 같다며!" 한 소금이 내 양쪽 어깨를 잡아 흔들며 말했다.

"하지만 정보살 그 사람이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네가 어떻게 알아? 물론 네 말대로 해결해 줄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해줄 수도 있는 거 아냐? 지금으로선 달리 방법도 없으니 두드려봐야지 혹시 아니 도움이 될지!" 한 소금이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밑져야 본전인데 뭘 망설여 쉰 소리 말고 일단 따라와" 한 소금이 내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외국 사람이네...." 정보살이 두 눈을 감고 몸을 흔들며 말했다.

"외국 사람? 그게 누군데요?" 한 소금이 물렀다.

"에드거…. 엘런…. 포? 자기가 에드거 앨런 포라고 말하는데…."

"누가 그래요? 설마! 그 사람이 보여요?" 내가 물었다.

"야! 너!" 정보살이 날 노려보며 소리쳤다.

"너 혹시 남에 것 들고 온 일 있냐? 자기 걸 가져갔다는데?" 정보살이 여전히 노려보며 물었다.

에드거인가 뭔가가 보이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나의 물음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듯 계속해서 묻기만 했다.

"예! 있어요. 푸른 깃털 달린 펜을 주었어요" 나를 대신해 한 소금이 답했다.

"야! 한 소금! 내가 너에게 물었냐? 왜 매번 네가 답하냐!" 정보살이 반상을 '탕' 하고 내리치며 말했다.

"아이 깜짝이야!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요." 한 소금이 내 쪽을 힐끗 쳐다보다 정보살의 입술을 보며 말했다.

"아~ 더는 못 하겠다. 야 너희들 그만 돌아가라 머리 아파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정보살이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리며 말했다.

"방법을 알려줘야지 이렇게 보내는 게 어디 있어요!" 한 소금이 정보살에게 말했다.

"아 나도 몰라! 자기 거라면서도 달라고 하지도 않고 가라고 했는데, 가기 싫은가 봐 얘가 좋다는데…. 떨어질 생각이 없네. 뭐" 정보살이 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면 어떻게 해요? 굿이라도 해야 하나요?" 이번에도 한 소금이 물렀다.

"몰라! 몰라! 야! 그만 좀 가라 나 정말 힘들다." 정보살이 돌아앉아 등을 내보이며 말했다.




일주일이 왜 이리도 빨리 지나가는지 모르겠다.

정보살을 만나고 온 게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수요일이라니….

하고 싶은 걸 할 때와 하기 싫은 걸 해야만 할 때의 시간이 달리 흐를 거로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엔 코웃음 치며 무시했었는데 요즘은 그날의 코웃음 치던 내가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책상 위 Quill이 날 비웃는 것 같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다.

어쩌면 에드거 앨런 포가 어떤 인물인지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나도 그도 같은 장르의 글을 선호했으니,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일 것이다.

다만, 그는 아주 유명한 작가였고 나는 B급 작가라는 점이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일 것이다.

물론 성별은 이번 조건에서 배제하고 말이다.

어찌 됐든 나는 또다시 펜을 들어야 했고 이번에도 글을 썼다.

내가 글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몇 가지 더 있었는데 그것들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다시 한번 파란 깃털이 달린 Quill을 집어 들었다.

Quill을 잡기 전 잠시 녀석의 깃털을 손등으로 비볐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잠깐이지만 녀석이 나를 시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언제부턴가 녀석을 손에 쥘 때면 차갑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딱히 신경 쓰진 않았다.

늘 그랬듯 머릿속에서 수많은 단어와 문장이 쏟아져 내렸고 나는 그것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잡아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문제는 첫 문장을 쓰고 난 직후 벌어졌다.

물론 그것을 알기까지 여러 날이 걸렸지만….

의식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의식을 잃어버렸고 정신이 들 때면 어느새 글이 완성되어 있었다.

펜을 잡는 순간, 또다시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것이라는 죄책감과 아무렴 어때!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충돌했지만 결국 야망을 품은 후자 쪽을 선택한 것 역시 내 판단이었다.

판단을 내렸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전진하라고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났다.

처음 그 문장을 봤을 땐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모든 상황에 해당하는 말이 아님을 깨달았다.

비열한 인간, 나는 비열한 인간이었으며 야망녀였다.

'또 누군가 죽겠지….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이 이야기는 멈출 수 없어.' 내 머릿속에서는 끊임없이 두려움과 야망이 충돌하고 있었다.

Quill을 잡으면 내 손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고 그러면 안 되는 것이라고 양심이 소리쳤지만, 소리 뒤편으로 보이는 로이의 얼굴이 나를 또다시 뛰게 했다.

"로이야! 조금만 기다려 엄마가 데리러 갈게!" 이번에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가끔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입 밖으로 내뱉곤 했다.

로이 아빠하고 이혼하게 된 계기도 그것이 한몫했다.

때로는 감정을 숨겨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잘되지 않았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로이 아빠를 처음 만났을 땐 나의 이런 모습이 좋다고 했었는데 모두 거짓말이었음을 신혼 초에 알았고 그를 위해 고쳐보려 노력도 했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도 함께하는 동안은 조심하려 노력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나의 직설적 화법이 글에 묻어나오며 꽤 많은 독자가 좋아해 주었다.

그리고 Quill을 잡는 순간 날것의 표현과 숨 막히는 전계 그리고 추리에 가까운 스토리 때문에 웹 소설 플랫폼에서 조회수가 급격히 늘어났고 그것에 힘입어 출판사에서도 나에게 연락이 왔다.

그들은 내 소설을 책으로 출판하길 원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쓰는 조건이었다면 거절했을 지만 이미 발표한 글을 담는 것이기에 흔쾌히 허락했다.

새로운 이야기는 새로운 사건이 될 것이고 그로 인한 죄책감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는 건 분명 무리였다.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서둘러 이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 건데 그것은 내 몫이 아닌 Quill의 몫이었다.

이렇게 만든 것도 녀석이니 마지막도 녀석이 하는 것이 옳으니 말이다.

아무튼 출판사와 계약 후, 내 소설은 서점에서 판매되기 시작했고, 빠르게 입소문을 타고 판매량이 치솟았다.

하지만 마냥 좋지만도 않았다.

분명 가슴 설레는 순간이 있긴 했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비로소 내가 로이에게 떳떳한 엄마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칠 때면 가슴이 설레었고 벅찬 감동이었지만 결국 내가 살인을 저질렀다는 생각이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인터뷰를 앞두고 화장을 고치기 위해 화장실로 가던 길이었다.

불현듯 스케줄이 떠올라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누군가가 내 앞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이도연 작가님 맞으시죠? 저… 사인 좀 해주실 수 있나요?" 얼마 전 출간한 살인의 향기를 손에 들고 있는 젊은 남성이었다.

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 순간, 문득 소설 속 살인자의 눈과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순간 나는 입가의 미소를 물렸고 온몸이 굳어져 갔다.

심한 한기가 몰려왔으며, 마치 얼어붙은 듯, 차가운 기운에 잡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괜찮으세요?" 남성이 물었다.

"아! 예! 죄송합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했어요." 애써 웃으며 말했다.

"여기 싸인 좀…." 남성이 살인의 향기를 내밀며 말했다.

책을 받아 든 내가 펜을 꺼내기 위해 가방을 열자 "여기 펜 있어요" 하며 안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내밀었다.

그가 내민 펜을 본 순간 나는 또 한 번 까무러치게 놀랬다. 마치 Quill처럼 깃털이 달린 펜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건…."

"아~ 예쁘지요! 작가님께 사인받으려고 저기에서 급하게 샀어요. 하하! 마음에 드시면 가지세요. 선물로 드릴게요." 그는 건물 안의 선물 가게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의 손끝이 가리킨 작은 선물 가게에는 인형부터 키링, 그리고 Quill과 유사한 볼펜들까지 진열되어 있었다.

볼펜을 받아 든 나의 손은 단지 모습이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떨고 있었다. '이러지 마 이건 녀석이 아니야!' 평정심을 찾기 위해 속으로 왜 쳤다.

사인을 받은 남성이 고맙다며 환하게 웃으며 돌아섰지만, 내 눈엔 소설 속 잔인한 살인자의 미소 같았다.

그가 돌아간 후에도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빠르게 뛰고 있는 심장을 보듬어야만 했다.




집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어 댓글을 읽었다.

댓글 창을 열어보니 독자 중 몇몇이 이미 내가 쓴 글과 현실의 사건이 닮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이 소설, 너무 현실적이야. 사건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 같아."

"진짜 이 글이랑 비슷한 사건 뉴스에서 본 것 같은데…. 작가가 뭘 알고 있는 거 아님?"

"죽음의 순간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어 무서워요. 설마! 작가님이 범인은 아니시죠? ㅋㅋㅋ"

'지랄하네…. 너희들이 뭘 안다고.' 나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욕을 내뱉었다.

그들은 나를 모른다. 내가 얼마나 고통 속에서 글을 쓰는지, 그들은 알지 못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댓글을 읽고 또 읽었다. 손끝에서 피가 흘러내렸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낸 이 이야기가 이제는 나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계속 글을 쓰기로 했다.

적어도 지금은 멈춰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더 큰 성공을 원했고 버려진 자아와 타협을 했다.

글을 쓰고 나면 언제나 후회했지만 나의 성공만이 로이와 함께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멈추지 않았다.

“야! 전화받아!” 한 소금이 소리쳤다.

너무 몰입한 나머지 휴대전화 벨 소리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 그래!” 나는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출판사 대표의 전화였다.

“이 작가님, 안녕하세요. 도서 출판 풀 문의 이기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2 쇄도 완판됐습니다. 3쇄에 들어가야 할 것 같네요.”

“아, 그래요?”

“진행해도 되겠지요?”

“그건 대표님께서 판단하셔야죠.”

“하하하! 예, 그러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그것보다 혹시 후속작을 생각하고 계시는지 여쭙고 싶어 전화드렸습니다.”

“아니요, 아직 계획은 없어요.”

“노파심에 말씀드리는 건데, 후속작을 시작하시면 무조건 저희와 계약하셔야 합니다.”

“예, 그럴게요.” 출판사에서 후속작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나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다른 글을 쓸 수 있을지조차 나 자신도 확신할 수 없었다.



작가의 말:

Reynolds는 1849년 10월 7일 에드거 앨런 포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확히 Reynolds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현재까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라는 것이 마음을 끌어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주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무튼 폭넓은 상상을 위해 소제목으로 Reynolds를 선택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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