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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Quill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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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Sep 27. 2024

The Quill ( 3화 )

절망의 고리

수요일 밤이었다. 

매주 수요일이 찾아오면 미처 연제 하지 못한 글 때문에 은근 스트레스였는데 Quill로 글을 쓰면서부터 더 이상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았다.

이번 주 목요일에 연재될 소설도 이미 완성하였고 예약까지 걸어뒀기 때문에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내 글이 어떤 평가를 받게 될지 구독자의 평가만이 남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의 평가를 무시한다거나 그들의 평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지금은 조금 다른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잠시 뒤로 미뤘을 뿐 언제고 다시 해야만 할 고민이긴 했으니 말이다.

나는 매주 목요일 연재를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일주일의 중간 지점이 목요일 이기 때문에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은 중간이라는 생각과 그것 이주는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매주 목요일에 소설을 연재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 된 지도 오래되었지만, 요즘은 안정감 대신 부담감이 점점 더 커져만 갔다. 

목요일에 어떤 문재가 있어서라기보다 매번 연재할 이야기를 쓸 때마다 글이 현실이 되는 것 같은 기이한 경험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몇 편은 나조차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길고양이 몇 마리가 죽었다 해서 기사화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은 동내 도둑고양이였다, 그러다 강아지에서 사람으로 이어진 것이다.

내가 의심하기 시작한 건 2주 전 발표한 소설 속 아무개가 죽었을 때 그의 죽음을 전하는 뉴스를 보개 되면서였다.

그러나 나는 나의 글이 현실이 되었다고 느끼기보다 누군가 모방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먼저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황이나 현장의 모습이 소설 속 묘사와 너무나도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직 발표도 하지 않았던 글이었기에 내 글을 읽고 모방범죄를 저질렀을 리는 만무했기에 나는 또 다른 가능성을 생각했어야만 했다.

허나 어떤 가능성도 그것을 뒷받침할 만큼 설득력 있지 않았다.

결국 정답을 찾아내지 못한 채 글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글을 읽은 독자의 반응 때문에 난 잔뜩 예민해졌다.

'며칠 전 있었던 살인사건을 묘사하셨네요. 재미있긴 하지만 망자를 폄훼하는 것 같아 기분이 유쾌하진 안네요.'라는 서평이었다.

"치! 뭘 안다고 이따위 서평을 남기는 거야! 내가 먼저거든 폄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누가 누굴 폄훼한다는 거야 자기가 날 폄훼하는 거 아냐!" 댓글을 읽던 내가 화가 나 목소리를 높였다.

"너 또 댓글 읽냐!" 소금이 가 등 뒤에서 소리쳤지만 내쪽으로 시선을 돌리진 안았다.

"......" , "야! 신경 쓰지 마 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런 걸 왜 신경 써! 어차피 그 사람들이 듣는 것도 아니고 결국 그 욕 네가 듣는 건데 적당히 무시해 버려." 핸드폰에 시선을 빼앗긴 소금이 가 말했다.

처음엔 나 역시 '우연이라고 그저 소설일 뿐이다' 라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우연이라 믿었던 일 들이 하나, 둘 겹치면서 그 생각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목요일이면 독자들이 내가 쓴 글을 읽고, 금요일이 되면 내가 상상한 이야기가 실제로 벌어진다. 때문에 더는 우연이라고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이 계속되자 나는 글을 발표하는 것이 점점 무서워졌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글을 멈출 순 없었다.

혹시 내 글이 현실이 된다는 착각은 아닐까? 라며 스스로를 부정하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다.

굳이 착각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라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내기 급급했다.

그렇게 현실을 밀어내고 나면 나는 또 글을 썼다.

글을 쓸 때만큼은 잠시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그것이 몰입이라고 생각했는데 한참 뒤에야 내가 정신을 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또 글을 썼고 매주 목요일 글을 발표했다.

독자들은 내가 쓴 글을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은 나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쓴 소설은 아이러니하게도 엄청난 인기를 얻었으며, 댓글과 조회사가 나날이 늘어났다.

더러는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감사하다는 생각보다 '내가 얼마나 고통 속에 글을 쓰고 있는지 알기나 하나?'라는 비뚤어진 생각이 먼저 떠올렸다.

나의 소설이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라면 모를까 스릴러작가의 글이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게 흘러갈 리 만무하기 때문에 뻔히 보이는 막장의 전계를 어느 정도 추축할 수 있었고, 때문에 생각이 그리 곱지만은 안았다.

"도연아! 한잔할래?" 소금이 능글거린 표정으로 말했다.




"뭐! 소설이 현실이 된다고? 지랄하네 고작 2캔 마시고 취했냐?" 소금이 비아냥되며 말했다.

"진짜야! 나 심각하다고!" 테이블 위에 떨어진 낙엽을 손등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그러면 차라리 잘 됐네! 이참에 네가 주인공인 소설을 써 그리고 수억의 자산가가 된다는 콘셉트로 쓰면 되겠네.... 혹시 내 생각이 나거든 나도 곁다리로 끼워 주던가 이참에 나도 너 덕 좀 보자." 소금이 마른오징어 하나를 내쪽으로 '툭' 집어던지며 말했다.

"야! 한 소금 장난해!" 자리에서 일어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응! 장난해! 너라면 믿겠냐!" 한 소금이 시크한 표정으로 맥주잔을 비우며 말했다.

"하긴 나조차 믿기지 않는데 누가 공감해 주겠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필터링 없이 입 밖으로 흘러내렸다.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호기롭게 일어났지만 소금이 가 일어서는 나의 오른팔을 끌어당겨 맥없이 다시 퍼질러 앉았다. 

"휴우~ 아~ 답답해!" 숙변을 비우듯 가슴아래의 묵직이 남아있는 한숨을 입으로 토해내며 말했다.

평소와 다른 내 행동을 분명 소금이는 눈치채었을 테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소설이 현실화된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무도 모른다. 가장 친한 친구소금이 마저도 나를 이해하지 못했으니 다른 이들이 나를 비판적 시각이로 바라보는 것이 그리 이상하지도 원망해서도 안될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용기와 희망을 주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걸....' 이런 생각을 한두 번 한 게 아니었다.




책상 위에는 여느 때처럼 파란 깃털이 달린 Quill가 놓여 있었다. 

내내 망설이다 손끝으로 펜을 쥐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이제는 나의 의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것이 그리 무섭고 두려우면 버리면 되는 것 아냐?' 어둠 속을 해 집고 나온 무의식 속 자아가 계속해서 나를 설득하고 있었지만 결국 이제야 자신을 알아봐 주는 명애욕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자신의 판단 이 계속 글을 연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한 자신의 진짜 속내가 어떤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Quill를 쥐는 순간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나를 현실에서 끌어내리는 듯했다. 

이번 주 내용은 주인공이 절망에 빠진 채 도망가는 이야기였다. 그를 쫓는 무언가가 점점 가까워졌고, 그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다행히 이번주엔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는 안도의 마음과 다음 주면 또 한 사람을 죽일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이 공존했다.

손끝이 떨렸다. 펜을 종이 위에 내릴 때마다 심장은 요동쳤다. 이번 이야기를 끝내는 순간, 또 다른 비극이 현실에서 벌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다. 

매주 수요일이 되면 이런 고통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글을 멈출 수 없었다.

독자들은 매일 연재를 원했다. 

독자들이 매일 연재를 원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들은 매일 새로운 이야기에 목말라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모든 것이 너무 빠르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은 쉼 없이 달리고, 디지털 세상은 매 순간 새로운 정보와 자극을 쏟아낸다. 

그런 시대에 하루하루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기 위해, 어쩌면 그들은 쉼을 위해 이야기가 필요한 걸 지도 모른다. 

하루치의 이야기가, 그들이 이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잠시나마 안정을 찾고, 다음 날을 살아낼 힘을 주는지도 모른다. 

매일 새로운 걸 원하고, 더 빠르고, 더 자극적인 걸 추구하는 독자들의 마음을 왜 이해 못 하겠는가? 

그들의 요구는 단순히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바람을 넘어서, 이 변화무쌍한 현실 속에서 자신을 채우고 싶은 갈증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나도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매일 연재를 해주는 것이 작가로서의 도리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수가 없다. 

매일 글을 쓴다는 건, 누군가를 위험에 처하게 하고 때로는 누군가 죽어가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처음부터 일주일에 한 번, 목요일 연재로 시작했고 Quill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는 것 같았다.

굳이 같았다라고 말하는 건 글을 쓰는 과정에서 간혹 정신을 잃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나면 어느새 글이 완성되어 있었고 그 과정이 기억 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불안해하는 것이 바로 이런 부분이기도 하다.

통재할 수 없는 자아 그것이 늘 나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내 글 때문에 목숨을 잃었지만 내 뜻이 아니었다. 

연재가 마무리되면 나는 항상 혼자서 괴로워했다. 펜을 내려놓는 순간, 마치 나의 손끝에서 무언가 끊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끊어진 감각은 곧 나를 더욱 강하게 옥죄었다. 

글이 끝나면 현실은 무너졌다. 내가 쓴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가 목숨을 잃게 된다.

'이제 그만해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수없이 반복했지만, 그러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렸다. 

내 소설은 독자들에게 중독처럼 퍼지고 있었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아니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관심이 마치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만 같았다. 그역 시도 결국 나의 결정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들은 내가 쓴 이야기에 몰입했고, 그들이 남긴 열렬한 댓글은 나에게 다시 펜을 들게 하였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내가 겪는 혼란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즐기는 것 또한 무의식 속 나 이기 때문에 딱히 그들을 원망한다거나 나의 선택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혼란스러운 현실을 넋두리처럼 쏟아내고 있을 뿐 변하거나 변화를 추구하지도 않았으니 어쩌면 나의 내면엔 천사의 얼굴을 한 악마의 근성이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발버둥처 봐도 목요일은 어김없이 돌아왔고 그렇게 발표된 글은 어김없이 나를 죄책감으로 몰아갔다.

그나마 그런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길은 내 글을 읽고 달아준 몇몇의 댓글이었다.

물론 모두 나를 지지하진 않지만 나를 지지하는 펜덤이 생겼으며, 그들의 응원댓글이 그나마 숨을 쉴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피난처였다.

꼭 그들이 아니더라도 많은 독자들이 내 글에 대해 열광하고 있었으며, 다음화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더 자주 연재해 달라는 요청을 끊임없이 남겼지만 나는 그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었다.

"너무 몰입돼서 밤을 새우며 읽었어요."

"제발 하루만 더 빨리 올려주시면 안 되나요? 매주 목요일을 기다리기엔 너무 길어요."

"다음 편을 기다리기엔 일주일은 너무한 것 같아요. 매일연재가 힘들면 주 3회라도 해 주세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지만, 나는 결코 그들의 바람대로 할 수 없었다. 매일 연재를 한다면, 매일 누군가가 죽거나 다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이들이 내 손끝에서 희생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알 리가 없었다.

처음엔 그들의 빈소를 찾아 남몰래 인사를 드리곤 했었지만 남아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죄책감에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했기에 결국 이제는 그조차도 하지 않는다.

결국 내가 그들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나의 목을 조이는 것 같았다 이런 고통을 일주일에 한 번 느끼는 것조차 버거운데 매일 연재라니 그리된다면 그거야말로 끔찍한 형벌 아니겠는가.

그것을 알리 없는 독자들은 내가 왜! 일주일에 한 번만 연재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더 자주, 더 많은 이야기를 원했고, 내 글이 단순한 소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수의 독자들은 나의 연재 방식이 마음에 든다며 옹호하기도 했다. 극 소수이지만 말이다.

"나는 오히려 일주일에 한 번 올리는 게 좋던데 기다리는 맛도 있고"

"너무 보채지 마세요. 완성도를 위한 작가님의 큰 그림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댓글들을 보면 잠시나마 위로를 느끼지만, 그야말로 잠시였다.

온갖 상상이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으며, 여전히 Quill가 적은 끔찍한 장면들이 생각나 머리가 부서질 것만 같았다.

"왜 그래? 너 요즘 이상한 거 알지? 숨기지 말고 말해봐! 뭔데?" 소금이 물었다.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그래, 너무 몰입했나 봐" 노트북을 덥고 일어나 침대로 걸으며 말했다.

"야! 너 진짜 아무 일 없는 거지?" 등 뒤로 소금이 물었지만 나는 답 대신 허공에 손을 몇 번 휘적 거림으로 답을 대신했다.

"야! 이도연~ 너 정말...." 소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방문을 닫은 나는 침대 위로 지친 몸을 뉘었고 내가 눈을 떴을 땐 금요일 아침이었다.

창문을 통해 들어선 아침 햇살 때문에 정신이 들었을 때 금요일임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아침이 달갑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글이 현실이 되는 요일 이기 때문이었다.

힘겹게 일어선 내가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갈 때였다.

언제부터 내 방문 앞에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소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 너 진짜야?" 한 소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저리 비켜 나 화장실 가야 해!" 내 앞을 가로막은 소금이의 오른쪽 팔을 밀쳐내며 말했다.

"저거 말이야!" 소금이 들고 있던 리모컨으로 TV 볼륨을 올리며 물었다.

"어젯밤, 도심의 한 골목길에서 또다시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피해자는 30대 남성으로, 경찰은 아직 용의자를 찾지 못한 상태입니다. 목격자 역시 없는 상황에서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적당히 짧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의 앵커가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중년의 앵커는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었으며 소식을 전하는 내내 차분해 보였지만, 그가 전하는 소식은 대부분 차가운 소식이었다.

앵커가 전하는 소식이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여전히 낯설었고 차가운 칼날에 베이는 듯 아팠다.

"저거 네가 말한 아니 아니지 네가 쓴 소설 속 그 장면 아니냐고!" 소금의 차가운 시선이 당장이라도 동공을 파고들듯 마치 날카로운 송곳의 촉 갔았다.

그녀의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이 부담스러워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소금인 그런 나를 순순히 보내줄 마음이 없는 듯 보였다.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지? 사과를 해야 하나? 아니지 내가 뭘 잘못했는데 내 가죽인 것도 아닌데...'  하는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지만 정작 내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것과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다.

"그러게 내가 처음부터 이야기했었잖아 왜! 내가 말할 땐 믿어주지 않다가 이제와 야단인데.... 내가 뭘!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렇게 보는 건데!" 참았던 울분이 쏟아져 나오듯 소리쳤지만 애초에 그런 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막상 소리를 지른 나 조차도 당황했다.

막상 내가 고함을 지르자 소금이도 나도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한 채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런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어색한 침묵을 비집고 들어온 앵커의 목소리가 냉정하고 침착하게 사건현장의 모습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해자가 골목을 지나는 모습은 인근 상점의 CCTV를 통해 확인되었으나, 이후의 행적은 어디에서도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사건 당일, 해당 골목을 드나든 사람은 최초 목격자인 환경미화원 외에는 없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해당 골목은 평소 인적이 드문 지역으로, 인근 상인들이 CCTV 설치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던 곳으로 밝혀졌습니다. 피해자는 발견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으며, 외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앵커의 목소리는 냉정하고 침착했지만, 그가 전하는 소식은 나의 심장을 한 번 더 옥죄었다. 

화면 속 사건 현장은 내가 쓴 소설의 장면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똑같은 장소와 똑같은 상황, 그리고 똑같은 결말까지 모두 같았다.

나는 TV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손끝은 차가워졌다. 마치 내가 만들어낸 세계가 나를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이미 예견했던 일이지만 어김없이 내 글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다시 현실에서 벌어졌고 머릿속은 또다시 복잡해졌으며, 온몸이 경직되어 굳어갔다.

“너... 진짜 뭐야...” 소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차가웠지만, 그 속에 공포와 혼란이 뒤섞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한 소금의 물음에 답 하지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

한순간에 모든 것이 뒤바뀌어 버린 현실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소설인지 조차 구분하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쓴 것이 맞는 건지도 의심스러웠다.

소금의 시선에서 도망치듯 고개를 돌리고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은 창백하고 피곤에 찌들어 있었다.

내가 거울 속 내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를 따라온 한소금이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했다.

"야! 이도연 너 도대체 뭐냐고? 너 진짜... 소설을 쓰면 그게 현실이 된다는 말 사실이야?"

"그래! 맞아! 이제 나 어떡하지? 나 무서워~"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부짖으며 말했다.

"말도 안 돼!!! 울지 마! 방법이 있을 거야" 한 소금이 나를 안으며 말했다.

왜 나의 글이 현실이 되는 걸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잘못한 걸까?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어디였을까? 그저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나 자신이 이 모든 일을 만들어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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