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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The Quill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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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선 Sep 25. 2024

The Quill ( 2화 )

현실이 된 글

또다시 한주가 지나 수요일 저녁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책상 앉았다. 매주 목요일 07시면 다음회차를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결과물을 소개하는 날 이기 때문에 메주 수요일 혹은 그전에 발행할 글을 예약해야만 한다.

하지만 오늘 책상 앞에 앉은 건 글을 쓰기 위함이 아니라 그간의 댓글을 살펴보기 위함이라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내가 푸른 펜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최근 몇 주 동안 내 소설의 조회수가 급격히 상승하며, 독자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기에 처음엔 즐겁기만 했지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마음이 무거워졌으며, 불안한 마음과 걱정도 함께 늘었다.

원래 나는 글 쓰는 것을 취미 삼아 시작했었다.

그저 일상의 답답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작은 탈출 구였다고나 할까! 그러다 몇 권의 책을 출판하게 되었고 소이 마니아층이 생기면서 그들과 소통하는 것이 즐거워 글을 쓰는 평범한 3류 작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1류는 아닐지 모르나 마음만은 1류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구독자가 기하급수적으로 급등했으며, 다음회차를 기다리지 못하고 일일 연제로 바꿔달라는 구독자도 만만치 않게 늘었기 때문이었다.

'작가님! 소설 너무 재미있어요.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하네요.'

'소설이 너무 맛있어요. 너무 맛있어 정신을 차릴 수 없네요.'

'주 1회 연제는 너무해요. 이건 고문이라고요. 또다시 일주일을 기다리라니... 일일 연제로 해주시면 안 되나요?'

남겨진 댓글을 읽다 문득 책상 위 파란 깃털의 펜 쪽으로 시선을 옮겨갔다.

녀석과 글을 쓸 때의 묘한 기분이 들기 전 잠시 느껴지는 쭈뼛거림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마치 녀석이 자신을 봐 달라고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어디까지나 추축일 뿐 녀석은 여전히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을 뿐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그러다 지난날 녀석과 글을 쓸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펜을 쥘 때면 벅차오르는 기운에 심장이 빨라지고 전두옆까지 이어지는 강한 끌림과 세상의 모든 표현과 쏟아져 나오는 단어들이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생생히 느껴졌다.

내가 쓴 글이지만, 마치 펜이 글을 완성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글을 쓰고 있지만 마치 춤을 추듯 나는 그저 그 흐름에 몸을 맡기기만 하면 되었다.

댓글을 확인하기 위해 앉아있었는데 펜을 바라보자 다음회차를 계속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몸이 무겁고 머리에 열도 조금 있는 것 같아 계속해서 글을 쓸지 아니면 나를 위해 휴식을 취할지에 대해 고민에 잠겨있을 때였다.

현관문 쪽 에서 '삑삑삑'거리며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누군가 들어오며 소리쳤다.

처음엔 소금이 들어오는 소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이고 집이 이게 뭐야!" 하는 한숨 섞인 목소리에 그녀의 어머니였음을 알았다.

"어머니 오셨어요?" 서둘러 현관으로 나가며 인사했다.

"어~ 그래! 도연아! 잘 지냈니? 소금이는 면접 본다더니 나간 모양이네." 어머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예! 그런데 이게 다 뭐예요? 뭘 이렇게 많이 싸가지고 오셨어요?" 시선을 아래로 떨구며 그녀가 싸가지고 온 밑반찬들을 들어 보이며 물었다.

"너 요즘 잘 나간다며? 소금이 가 그러더라!" 내가 묻는 질문의 답은 아니었지만 되묻는 그녀의 물음이 싫지 않았다.

"아니에요~ 잘 나가긴요. 하하하"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극적이며 답했다.

"너는 잘 될 줄 알았다. 노력하는 모습이 언제나 기특했거든!" 내 오른쪽 어깨를 가볍게 툭 하고 밀치며 말씀하셨다.

조금은 과한 칭찬에 부끄럽기도 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반응에 어찌할지 몰라 주저거리고 있을 때 어머님이 열려있는 내 방을 힐끗 쳐다보시며 말씀하셨다.

"글 쓰고 있었는데 내가 방해했구나! 어서 들어가 마저 해라 난 이것만 냉장고에 넣고 갈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어서 하던 거 마저 해!"

웃으며 등을 떠미는 손길이 고맙고 따스해 육신의 피로를 잠시 잊혀 지닌 듯 가벼웠다.

그래서일까 망설임 없이 펜을 집어든 나는 또 한 번 강렬한 영감에 몸을 바르르 떨며 글을 써내려 갔다.

그야말로 일필휘지였다.

마지막 페이지를 적을 무렵 몽환의 상태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몽롱해졌지만 그리 오래 걸리진 안았다.

이윽고 마지막 페이지를 쓰고 나자 목 뒤로 피곤함이 밀려왔다.

안은 자세로 목을 이리저리 흔들고 있는데 '똑똑똑' 하며 문 밖에서 아주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도연아! 괜찮니?" 목소리에 다급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예~ 어머니 들어오세요." 몸을 틀어 문쪽을 바라보며 답했다.

문을 열고 어머님이 들어오시며 두리번거리다 바짝 붙어 서며 물었다.

"이상한 소리가 나서 무슨 일 생긴 줄 알았잖아!" , "이상한 소리요?"

"그래! 짐승소리 같기도 하고.... 아무튼 무서웠어! 별일 없으면 됐다. 이거나 마셔라." 음료수컵을 내밀며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이게 뭐예요?" , "우유에다 수삼 넣고 간 거야 먹어봐!"

"음~ 달다! 수삼을 넣었다고 하셨는데 달아요!." , "꿀을 넣었거든 입맛에 맞니?" 어머님이 미소를 그리며 말씀하셨다.

"감사합니다." , "도연아! 피곤하면 쉬어가면서 해라 얼굴이 까칠하다."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말씀하셨다.

"고마워요 어머니!" , "고맙긴 네 엄마가 있었다면... 아니다!" 그녀가 말을 채 잊지 못하고 얼버무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아이는 자주 만나니?" , "아니요" 묵직한 그리움이 목젖까지 올라와 더는 말하지 못하고 마른침만 삼 겼다.

나에게 엄마와 내 아이의 안부를 묻는 건 금지된 일이었다.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당할까 봐 억척스럽게 날 기르신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3살 난 딸아이를 남편에게 빼앗겨 버린 채 아픔을 달래며 하루하루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 나에겐 그리움을 회상하는 것조차 버거웠기에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차마 꺼내지 못하는 금기어였지만 한 소금의 어머니는 달랐다.

아무도 하지 않는 금기어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소금이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한동안 슬픔에 잠겨 있을 때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일으킨 건 한 움큼의 의지와 반듯이 성공해 보이겠다는 각오 그리고 아이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있는 엄마가 되겠다는 스스로의 약속 때문이었다.

책상에 앉아 몇 시간 전 썼던 글을 읽어보았다.

이번 회차의 내용은 이전의 내용과는 사뭇 다르게 어둡고 탁했다.

주인공이 골목길에서 쫓기는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손에 땀이 고였으며, 심지어 두렵기까지 했다.

공포에 질린 그의 모습이 마치 눈앞에 보이는 듯 상황묘사가 엄청나게 디테일했으며, 그를 쫒는 추적자가 가까이 다가오면서 그는 절망에 빠졌고, 끝내 주면 인물 중 하나가 끔찍하게 살해당하는 장면까지의 글이었다.

글을 읽으며 나는 몸을 떨었다.

마치 내가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처럼 모든 것이 너무나도 생생했기 때문이었다.

글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을 땐 이미 늦은 밤이었다.

분명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단어들 중 하나를 선택해 글을 완성했을 것인데 마치 자신이 적지 않은 것 같은 조금은 생소한 단어들과 표현이 다수 섞여있었기 때문에 답답했다.

고스란히 받아들이기엔 너무 거칠었지만 그렇다고 수정을 한다면 글의 맛이 사라져 어느 것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완벽했기에 답답함을 느끼는 듯했다.

나는 노트북을 닫고 창문을 열어 바깥공기를 마셨다.

그제야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불길한 기운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곁을 맴돌았다.

글을 쓰고 나면 언제나 찾아오는 악몽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야~ 이도연!" 창 밖에서 한 소금이 나를 향해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소리쳤지만, 목소리에 잔뜩 때가 낀 듯 탁한 소리가 나는 걸로 보아 오늘도 한잔 마시고 들어오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어제와는 다른 스산한 기운이 감돌다.

'뭐지 이 스산한 기운은?' 잠시 몸이 바르르 떨리다 책상 위에 놓인 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펜을 보고 있자니 어제 쓴 소설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며 지워지지 않았다. 

너무나도 현실 같았던 그 장면들. 심장이 불안하게 뛰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TV를 켜며 불길한 예감을 떨치려 했다.

유명 영화배우들이 타국에 가서 한국 요리를 하고 판매하며 그들의 반응을 살피는 그런 프로그램이 나왔다.

산더마처럼 쌓인 설거지 그릇을 보며 담당 PD가 자발적 지원을 하는 모습이었는데 선 듯 눈길이 가지 않아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뉴스 채널에 멈췄다.

앵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사건현장을 취재한 듯 주변을 비추는 카메라에 앵커의 목소리가 더해져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어젯밤, 한 남성이 도심의 골목길에서 살해되었습니다. 현재 경찰은 용의자를 추적 중이며..." 

뉴스를 보고 있던 나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화면에 비친 장면은 내가 어제 쓴 글 속 내용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골목의 모양, 남자의 복장, 심지어 쓰러진 위치까지도. 모든 것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나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불길한 예감이 점점 커져갔다. 

어쩌면 내가 쓴 글이 현실로 나타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너무나도 똑같은 상황과 장소 위치가 나를 그쪽으로 몰아가고 있었으며, 확신을 가지게 했다.

그러나 현실성 없는 사건 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부인했지만 그 불길한 예감은 점점 더 나를 짓눌렀다.




살해된 남자의 시선

평소처럼 늦은 퇴근길이었다.

김 사장과 작은 말다툼이 있긴 했지만, 영업부에서 흔히 있는 일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대리가 한잔하고 가자고 했지만, 나는 얼마 전부터 감기 기운이 있어서 콧물이 흐르고 있었고, 기침이라도 하면 요즘 다시 시작된 코로나 아니냐며 괜히 의심받을까 봐 오늘은 쉬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에 하자. 오늘은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그래." 이 대리와 헤어지고 집 근처에 도착했지만, 꽤 멀리 있는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워야 했다. 

원래 같으면 집 앞까지 차를 몰고 갔겠지만, 얼마 전 새로 이사 온 50대 중반의 남자가 골목 입구로 들어오는 차들 때문에 보행에 방해된다며 자비를 들여 주차금지봉을 설치해 놓아 자꾸 마찰이 생겼다. 

그 일 이후로 나는 먼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사거리를 지나 골목길로 들어설 때였다.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지만, 대수롭지 않게 그냥 걷고 있었다. 

골목길에서 사람 소리가 들리는 건 그다지 이상할 게 없었다. 설령 이상하다고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로등이 비치지 않는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자니, 왠지 모를 으스스함이 느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골목길을 막 돌아서는데, 뒤쪽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가는 사람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나는 속도를 높이기보다는 뒤를 돌아보는 쪽을 택했다. 

다가오는 사람이 위협이 될지 여부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섰을 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더 스산한 기분이 들면서 심장이 조금씩 빨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죄를 지은 사람처럼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기자 또다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고 이번에는 빠르게 뒤를 돌아봤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그 순간 심장이 요동치며, 손끝이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등골을 타고 한기가 흘렀다.

나는 지금의 상황이 나와는 상관없을 거라 믿으려 했고, 그 믿음 덕에 크게 숨을 쉬며 공포심을 떨쳐내려 했다. 

"험!" 하고 일부러 소리를 내면 그쪽에서도 반응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발자국 소리는 점점 빨라졌다. 그 소리는 마치 맹수가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처럼 들렸다.

그런 상상을 하자, 숨이 가빠지고 목이 말랐다.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고, 몸은 점점 굳어갔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믿으려 했기에 망설였다. 

그러나 그런 믿음과는 달리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두려움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다 두려움이 절정에 달한 순간, 검은 그림자가 내 앞까지 다가와 무언가를 주듯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그것을 받지 못했다. 

칼! 그것은 분명 칼이었다. 칼이 내 가슴을 파고들었다.

"헛!" 짧은 비명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처음 느낀 것은 차가움이었다. 

차가운 금속이 내 가슴을 꿰뚫고 들어왔다는 걸 인지했다. 그러나 고통을 느끼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뭐지?'라는 의문이 먼저 떠올랐고, '이 사람은 누구고 왜 나에게 이런 짓을 하지?'라는 생각이 뒤따랐다. 

그런 생각을 아주 짧은 순간 했다. 그리고 그다음으로 밀려온 것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심장이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뛰고 멈췄다. 내 몸은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고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나를 향해 다가오던 남자의 검은 그림자였다. 그것이 이승에서의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며칠 후,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동안 소설을 꾸준히 연재하면서 어느 정도 반응이 있을 것이라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연락이 올 줄은 몰랐다. 

출판사 담당자는 내 연재소설이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며 출판 계약을 제안했다. 

그들은 내 글이 강렬하고 독창적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기분이 묘해졌다. 글을 쓴 후 얻게 되는 성취감과 동시에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었다.

특히 내 글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댓글을 보았을 때 가슴이 뭉클했다.

'내 글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다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 불안감 뒤에는 또 다른 감정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쓴 글이 현실이 되고 있다는 공포, 그것은 공포였다.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벌어진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인 것은 발표전에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건을 희화화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 이미 나는 소설 속에서 사건을 썼다는 것이다.

그 불길한 사건이 나의 펜 끝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로 인해 한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건 이 모든 사실을 혼자 감당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 없었다. 

펜을 잡을 때마다 느껴지는 그 알 수 없는 감각. 글을 쓸 때만큼은 모든 불안이 사라지고, 오로지 글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고 조금은 인정받는듯한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글이 완성되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달았다. 

이런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뛰어다녀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불확실한 도의적 책임과 명예욕 속에서 고민하며 또다시 하루를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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