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는 법을 모르는 끊임없이 달리는 것들
노스담은 스캇의 가르침대로 나름 열심히 살아내고 있었다.
그가 잠시라도 멈추는 순간, 배고픔이 그를 덮칠 것이고, 그 배고픔은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익히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뛰는 심장은 매 순간 그의 몸과 정신을 몰아세웠으며, 마치 "멈추면 안 돼."하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뛸 뿐 달리 다른 생을 상상해보지 못했다.
그에겐 회상이라든가 추억 같은 과거의 기억 따위는 사치였으며, 삶을 위협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엄청난 대사율을 만족시키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까지도 사냥을 해야 했다.
어떤 날은 하늘에 매가 빤히 보이는데도 굴 밖으로 나가야 했고 또 어떤 날은 인간의 영역까지 침범하기도 했다.
특히 숲의 끝자락에 위치한 인간들이 머무는 곳에는 고양이가 득실대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그럼에도 사냥이 여의치 않을 때면 가끔 그들의 영역까지도 찾아가기도 했다.
그곳에선 사냥보다는 훔치거나 주워 먹는 조금은 다른 형식이지만 어찌 됐든 끼니를 때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손쉽게 먹이를 확보할 수 있지만 고양이라는 변수가 있어 조심해야만 한다.
녀석들은 언제나 등 뒤에서 다가오기 때문에 조금은 비겁하다 . 그렇다고 모두 나쁜 녀석들도 아니다. 한 번은 온몸이 검은색인 고양이에게 노스담이 잡힌 적이 있었는데 노스담을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밀어내기만 할뿐 잡아먹지 않고 놔둔 적이었었다.
물론 녀석의 주인인 중년의 아주머니가 말려서였지만 아무튼 그날 노스담은 그날의 트라우마로 한동안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론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다 사냥에 실패한 어느 날, 노스담이 인간들의 거리로 또다시 들어갔다.
바삐 살아내고 있는 건 노스담뿐만은 아닌듯하다. 거대한 건물들 속에서 인간들 또한 서로를 밀어내며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들도 나처럼 대사율이 높은가? 왜들 뛰어다니지?" 하수구 입구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민 노스담이 혼잣말로 말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빠르게 걷고 있었다. 아니, 걷는다기보다는 우기(雨期)에 상류에서 하류로 빠르게 흘러내리는 물줄기처럼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의 표정은 노스담과 닮아 있었다.
숨이 차오르지만 쉬지 않고 달려야만 하는 표정. 어딘가에 닿아야 하지만, 정작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르는 발걸음.
그들 또한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노스담이 그러하듯 초조하거나 무표정한 모습이었다.
그때, 두 명의 남자가 걷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보폭으로 노스담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프로젝트 마감일이 코 앞이라 거의 밤을 새웠어. 2시간밖에 못 잤더니 정신이 몽롱하네"
"뭐… 지난달에도 그랬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잠은 자야지 그러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안돼! 이번 신입들 스펙이 장난 아니더라고.... 아무리 그래도 내가 선임인데 밀려날 순 없잖아! 남들 쉴 때 다 쉬고 남들 잘 때 다 자고 그러다 밀려나면 어쩌려고, 안 돼 그럴 순 없지!"
"하긴 남 일이라고 쉽게 말했지만 실은 나도 초조하긴 메 한 가지 긴 해!"
"아무튼 자네나 나나 승진할 때까지는 버텨야지. 남들도 다 이러는데, 우리만 못 하면 안 되잖아요?"
그들은 피곤한 얼굴로 커피를 들이키며 말했다.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지만,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의지나 다짐 같은 것이 보이기도 했다.
그 모습은 흡사 노스담이 매일 이빨이 닳아가며 먹이를 씹는 모습과 닮아 보이기도 했다.
"인간들도 나처럼 쪽잠을 자며 생활하는구나... 나는 살기 위해 그러는 건데 저들도 나처럼 살기 위해 그러는 것일까?"
노스담은 인간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다 신참, 승진 그리고 밀려난다는 단어에 그들이 쉬지 않고 달리는 이유가 단순히 살기 위해서만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용어가 낯설어 정확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달리고 있다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역시 생존을 위해 달리는 건 나뿐인 건가...." 노스담이 씁쓸한 표정으로 나직이 한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말하는 승진이라는 것을 하면 그렇게 그곳에 도착하면 쉴 수 있을까? 아니면 그곳에서도 또다시 더 높은 곳을 향해 달려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노스담은 그런 질문을 인간들에게 던지고 싶었지만 자신을 본 인간들의 반응이 먼저 떠올라 걸음을 멈췄다.
고양이로부터 자신을 구해준 중년의 여성처럼 말이다.
그들을 뒤로하고 노스담이 이번엔 공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공원에는 버려진 햄 조각을 어렵지 않게 구할 수도 있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화단이 많기 때문에 지렁이 같은 녀석들을 손쉽게 사냥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퉁이를 돌아 공원에 도착했을 때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또 다른 인간이 보았다.
남루한 노인의 손에는 작은 봉투가 쥐어져 있었고, 그 안에는 빵 한 조각과 우유 한 팩이 들어 있었다.
그는 힘에 겨운 건지 아니면 아픈 건지 작은 움직임에도 긴~ 한숨을 쉬곤 했다.
봉투를 열어 빵을 꺼낼 때에도 빵을 베어 물고 우유를 마실 때에도 한숨을 토해냈다.
허리를 곧게 펴지 못한 채 구부정한 자세로 빵과 우유를 번갈아 먹으며 긴 한숨을 토해내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휴우~ 또 슬슬 움직여 볼까"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에는 삶의 무게가 실려 있었다. 그는 노스담처럼 쉴 수 없었다. 쉬고 싶어도, 현실이 그를 멈추게 두지 않았다.
노스담은 그를 보며 어쩐지 자신의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숨이 차고, 몸이 아파도 멈출 수 없는 자신처럼 어쩌면 미래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
"진정한 휴식이란 무엇일까? 영혼의 안식일까 심신의 안식일까?"
도시의 밤이 깊어졌다. 그러나 도시는 멈추지 않았다.
노스담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다시 숲으로 돌아갔다. 이곳이든 저곳이든, 어디에도 멈출 곳은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는 공원의 노인도 이빨이 닳아버릴 때까지 뛰고 씹다 결국 생을 마감하게 될 노스담도 그들이 달리는 이유를 안다고 해서,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