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母스 23화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의료파업
1999년 12월 의료분업 관련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치는 물론이고 뉴스에 관심이 없던 내가 기억할 정도이니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의료기관에서 진료받은 외래환자는 원내에서 조제·투약을 받을 수 없고, 반드시 원외에 있는 약국에서만 받아야 하며, 약국에서는 의사의 처방전에 따라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인 약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병원 내 1층에는 약국이 따로 있어 번호표를 뽑아가며, 약을 받아가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외부 약국으로 확대한다는 말이었다.
지금처럼 처방전을 가지고 병원 밖 일반약국에서 약을 살 수 있었던 건 당시의 아픔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어쩌다 뉴스를 볼 때면 [뭐 그럴 수도 있지 병원에서 너무 독점하니까 그러는 거 아니냐?]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치부해 버렸고 그것이 나에게 줄 고통이 얼마나 될는지 에 관해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어머님께서 쓰러진 건 2000년 5월 말 그리고 의료파업이 일어난 것이 그해 6월이다.
의료혁명이라며 연일 떠들던 의약분업은 의료계 집단 휴폐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만들어냈고 그 중심에 어머니가 계셨다.
조제권한을 빼앗긴 병원이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자 전국 대학병원은 진료 거부와 파업으로 사실상 의료마비가 되었다.
그 때문에 우리 가족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다.
이제 막 수술을 마친 어머니는 상처가 아물기도 전 병원에서 쫓기듯 나와야 했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퇴원이라니요?] [병원이 파업하면 더는 상주하는 의사가 없어요. 굳이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으니 퇴원하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걸리는데요?]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제 막 수술하고 나온 환자를 퇴원시키십니까?]
피가 거꾸로 쏟아져 내리는듯한 기분이었다.
이미 사형선고를 받은 환자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며 그들을 원망했다.
그리고 이런 현실을 만든 것이 하늘 때문 인양 하늘도 원망했고 그런 현실이 안타까웠다.
어머니의 참담한 삶이 너무나도 안타까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당신의 삶은 이제 곧 떠나야 하는 이생의 마지막 순간조차 편안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몸이 바르르 떨렸고 숨을 쉬고 있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표현도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당신이 이제 곧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족 모두가 숨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퇴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기뻐하셨고 그 모습을 보는 우리는 모두 죄책감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처음부터 어머니를 속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의지를 놓아버리면 살아계시는 동안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지 않느냐는 아버지의 말씀에 공감했기 때문에 내려진 결론이었다.
그리고 심리적으로 약해지면, 아니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약을 쓴다고 해도 무익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도 한몫했었다.
어머니가 깨어나 아버지를 처음 만나던 날 당신이 하셨던 말씀을 평생 잊을 수 없어 가슴에 묻고 살아간다는 아버지의 말씀처럼 어머니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가족 모두에게 빗이 되기도 했고 길이 되기도 했다.
[여보! 나 죽어?] [아니! 왜 그런 말을 해?] [그런데 왜? 그렇게 울어?] [응 당신 깨어난 게 기뻐서]
[당신 눈물 오래간만에 본다.] [그래! 미안해] [뭐가 미안해?] [막상 당신 쓰러지고 보니까 못 해준 건만 기억에 남더라고 그래서 더욱 미안해] [호호호 그러니까 이제부터 잘해!] [그래 알았어. 내가 잘할게] [그런데 왜 이렇게 졸린 지 모르겠네] [졸리면 좀 더 자 곁에 있을게] [알았어. 어디 가지 말고 내 옆에 있어.] [그래 알았으니까 어서 자]
어머니는 한동안 깨어났다 주무시기를 반복하셨다.
어머니가 잠이 들자 아버지가 나와 동생 그리고 김 서방을 불러들였다.
[명심해! 절대로 어머니에게는 비밀이다.] 아버지의 말씀에 동생이 또 한 번 오열했다.
[우리 엄마 불쌍해서 어떻게 해] 동생의 우는 모습에 아버지가 김 서방을 보면서 [자네가 달래주게] 하시며 또다시 병실을 나가셨다.
아마 지금의 슬픔에서 도망치고 싶거나 마주한 현실을 맨 정신으론 버텨내기 힘드셨나 보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술에 빠져 사셨다.
하지만 술에 취하면 매일 부르시던 녹슬은 기찻길이나 내 마음 별과 같아를 부르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나가시고 내가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잠들어 계셨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어나신 어머니가 나를 보며, 조용히 속삭이셨다.
[양말통 안에 스타킹 말아 놓은 거 있거든 거기에 엄마가 모아둔 금반지하고 목걸이 있으니까 꼭 챙겨라] [엄마는 기껏 일어나서 처음으로 한다는 말이 고작 금반지 챙기라는 말이야?] [쓰러질 때 이대로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그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게 뭔지 알아?] [뭔데?] [스타킹에 금반지하고 목걸이 아이들이 모르고 버리면 어떡하지였어] [엄마는 무슨 그런 소리를 해 누가 엄마 죽는데?] [그럼 나 안 죽는데?] 엄마는 조금 전 아버지의 말씀을 기억하셨지만, 다시 한번 나를 떠보고 계셨다.
하지만 사전에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 넘어가지 않았다.
[뭐래! 엄마 물혹 떼어내는 수술 했어요 예전에 엄마가 옆구리에 뭐 만져진다고 했잖아! 기억해? 그게 물혹이라는 건데 그거 제거했어.] [맞다 옆구리에... 그리고 보니 만져지지 않네 그랬구나]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셔 얼른 퇴원해서 나 수삼이나 더 갈아줘요] [싫다며] [누가 싫다고 했나 엄마 귀찮을까 봐 그런 거지]
어머니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 무렵 함께 병실에 계셨던 아주머님이 TV를 켰다.
응급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을 때 어머니는 다인실에 계셨는데 그 때문에 당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TV를 시청해야만 했다.
오늘도 뉴스에는 의료계 총파업 선언 등 과격한 문장을 써가며 떠들어댔고 그때마다 옆 침상에 계시던 아주머니들은 육두문자를 사용해 가며 시원하게 욕을 하셨다.
[아이고 저 미친놈들 자기 살자고 저러는 거 아냐! 에이 썩을 놈들] [그러게요 사람들 너무하네요]
[방법이 잘못된 거지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어떻게 아픈 환자를 두고 저럴 수 있는지 쯧쯧쯧 나쁜 놈들] [설마 우리 병원도 저러는 거 아니겠지?] [에이 설마이요]
하지만 GS 대학병원도 다른 병원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어머니가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니?] 하며 물어보셨고 나는 또 한 번 거짓말해야 했다.
[우리도 퇴원해야지 엄마는 여기가 편해?] [아니 편하기는 가시방석 같구먼] [엄마는 그리 큰 수술을 한 것이 아니니까 빨리 퇴원해서 집에서 재활해야지] [왜? 나가라던?] [아니 조금 전에 말했잖아 엄마는 퇴원해도 된다고] [그래 나도 집에 가고 싶다.]
거짓말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욱 불편해지고 죄책감은 쌓여만 갔다.
파업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불편한 거짓말을 만들어내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시작한 거짓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계속됐고 합리화하기 위해 또다시 거짓말을 하게 되는 악순환을 하게 되었다.
퇴원하던 날 병원 마당에 몰려나와 있던 의사 선생님들을 보았다.
마치 그들의 모습은 하얀 가운을 입은 악마 같아 보였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의 안위 따위는 신경 쓸 바 아니라는 듯 웃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워 잠시도 그곳에 머물러있기 싫었다.
문득 예전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식」 선생님의 시조가 떠올랐다.
까마귀 검다하고 백로야 웃지말
겉이 검은들 속까지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물론 안에 담긴 처음의 뜻과는 다르겠지만, 지금의 내 마음을 인용하기엔 가장 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무리 중 아는 얼굴도 보였다.
어머니를 수술하셨던 선생이었는데 오른손엔 커피잔을 왼손은 바지 주머니에 꽂아둔 체 짝 발을 하고 서서 주변 사람들과 희희낙락 떠드는 모습에 이가 갈리고 심장이 찢어지는 듯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요즘도 TV를 통해 시위, 파업현장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라든가 택배노동자들의 파업 현장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시위 혹은 파업과 의료파업은 본질부터가 다르다.
왜냐면 의료파업은 시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을 살려야 할 의사가 오히려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하는 격이니 어떤 경우라도 정당화할 순 없을 것이다.
저들의 행동을 보자니 마치 하얀 가운 속 검은 악마가 꿈틀거리는 듯 보였다.
이 더럽고 추잡한 곳에 더는 나의 어머니를 둘 수 없었다.
물론 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서둘러 이곳을 빠져나가기야 했다.
잠시 후 아버지의 갤로퍼가 코뿔소 두 마리를 달고 우리 쪽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아버지 자동차의 코뿔소 장식이 멋있어 보였다.
마치 저들의 검은 그림자를 두 마리의 코뿔소가 물리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