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스母스 24화
# 어머니와 코스母스
퇴원 후 한동안 칩거생활을 하시던 어머니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셨다.
비록 거실을 한 바퀴 돌아보는 정도였지만 그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퇴근해 돌아오면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시는 어머니를 보는 것은 당신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아버지는 달필가이시다 아버지의 글은 간결하고 힘이 있으며, 무엇보다 멋이 있다.
나도 그랬지만 어머니는 아버지의 재주를 매우 부러워했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붓을 치는데 어머니가 달려와 그 모습을 보시며 [한 글자 적어줘요] 하신 적이 있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아버지가 써준 글귀는 「蘭香千里 人香萬里 난향천리 인향만리」였다.
기존에 있던 말을 쓰신 것인지 아니면 당신의 창작물인지는 모르겠지만, 난의 향기는 천 리를 가고 사람의 향기는 만 리를 간다던 아버지의 글귀에 두 모자는 취했다.
물론 人 香을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하면서 새삼 그날의 人香萬里를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한동안 사라졌던 어머니의 향기가 집안을 가득 메우자 이제야 주인을 찾은 주방의 것들이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마당의 꽃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자 마치 꼬리 치며 주인을 반기는 강아지 모습 같기도 했다.
퇴근해 들어오니 안방에 누워계시는 어머니가 보였다.
노크했지만 어머니는 듣지 못한 듯했다.
잠들어있는 어머니를 잠시 바라보다 엄마 곁에 누웠다.
멀리서 볼 때는 어머니였지만 곁에 누워보니 엄마가 되었다.
[음~ 엄마냄새] 잠시만 있으려 했는데 어느새 잠이 들어버렸다.
내가 눈을 뜬 건 부엌에서 들려오는 달그락거리는 소리 때문이었다.
부엌에서 요리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상상하며 눈을 떴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여전히 어머니는 내 곁에 있었고 부엌의 달그락 거림은 저녁을 준비 중인 아버지의 소리였다.
[일어났니? 조금 더 자지] [음~ 엄마냄새 너무 좋다.] [여드름 짜줄까?]
여드름을 짜는 건 힘든 일이다.
물론 짜는 쪽은 희열을 느낄지 모르나 짜임을 당하는 쪽은 작지만, 고통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처음엔 [아니요] 하며, 거부하던 나는 어쩌면 이 또한 내 생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엄마 곁으로 누웠다. [살살 짜줘요! 아프지 않게]
어머니가 집에 오신 후 우리 가족은 어머니와 조금 더 행복한 시간을 같기 위해 노력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을 볼 수 있도록 가끔이지만, 거리로 나가기도 했으며, 당신께서 만나보고 싶어 했던 사람이며, 드시고 싶었던 것들을 찾아다녔다.
마루만 걸어다시던 어머니가 조금 더 넓은 곳으로 나가고 싶다며, 아버지에게 함께하여 달라고 부탁하셨고 그 후론 아버지와 어머니는 늘 함께 산책하러 다니셨다.
유난히 꽃을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이맘때면 감자 꽃이 피는데 홍 감자는 연보라색이고 수미 감자는 흰색 꽃으로 핀다고 알려주셨다.
하지만 그다지 꽃에 관심이 없던 나는 홍 감자와 수미 감자를 지금도 알지 못한다.
굳이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걸 아는 순간 어머니가 알려주신 홍 감자가 사실은 홍색이 아니라 노란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현실 속 홍 감자를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용머리 꽃, 붓꽃, 찔레꽃 이런 건 요즘 피는 꽃이야 생김은...] [엄마 꽃이 그렇게 예뻐요? 나보다?] [당연히 너보다 예쁘지] [허허 정말?] [남자가 예쁘면 안 되지 넌 멋지지!] [그런가 하하]
[다른 건 모르겠고 장미하고 코스모스는 알아요 예전에 엄마가 학교 데리고 갈 때 길에서 봤잖아요 그거 맞지요?] [기억하네! 맞아 너희 학교길에 코스모스가 많이 있었지]
강원도로 이사 왔을 때 나는 전학생 신분으로 처음 학교를 찾았고 그때 어머니가 함께했었다.
주변에 학교가 없어 버스로 통학했었는데 멀미가 심했던 나는 등굣길에 버스에서 자주 내려야만 했다. 그때 길에 핀 코스모스를 보았는데 예쁘다는 생각보다 정직하게 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시 내 기억이 그랬다.
처음 학교에 가던 날 그때도 멀미 때문에 버스에서 내렸는데 나는 속이 뒤집어져 구토하고 있었지만, 어머니는 당신 앞에 펼쳐진 코스모스에 마음을 빼앗기셨다.
코스모스길은 제법 길었다.
버스에서 내리면 학교까지 10분 넘게 걸어야 했는데 그 먼 곳까지 코스모스길이 이어져 있었다.
어머니가 코스모스길 중간으로 앞장서 걸으면 나는 뒤따라 걸었다.
한참을 걸어가는데 어머니가 양팔을 좌우로 크게 벌리더니 고개를 살짝 들었다.
시선은 하늘을 향하는 듯 보였고 그 상태를 유지하며, 코스모스길을 걸었는데 그 모습에서 유년시절 어머니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꽃에 취해 걷고 있는 엄마의 모습에 심술이 난 내가 꽃을 발로 차자 코스모스 대가리가 툭 하고 날아갔다.
그 모습이 재미있어 몇 번 더 발길질했지만, 내 모습에 놀란 어머니가 달려와 나를 붙들고는 눈을 쳐다보았다.
서로의 시선이 오갈 때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느꼈다.
[왜 그래?] [그냥] [뭘 잘못했는지 알지!] [예] [그러지 마! 예들도 아파] [그러게 왜 혼자 가요]
[그건 엄마가 미안해]
그날 함께 손잡고 걸었던 코스모스길은 이제 추억이 돼버린 지 오래다.
양팔을 벌려 코스모스의 예쁨을 만끽하던 어머니의 모습도 더는 볼 수 없지만, 당신의 따스한 마음은 내 심장에 자리하고 새로운 코스母스로 피어났다.
아버지와 산책을 다녀오신 어머니가 피곤하셨는지 방안에 들자마자 쓰러져 한참을 누워계셨다.
그 모습을 보신 아버지가 눈시울을 붉어져 잠시 자리를 피하셨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서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평상시 아버지 모습으로 어머니에게 꾸지람하셨다.
[여편네야 뭐가 힘들다고 퍼질러져 있어! 밥 할 생각은 안 하고] [조금만 조금만 있다가요]
아무렇지 않은 듯 말씀하셨지만, 당신의 깊은 뜻은 고스란히 나에게 전달되었다.